산행일자 : 2007. 8. 25. 10:00 - 18:00 (8시간)
산행구간 : 이화령 - 조령샘 - 조령산 - 조령3관문 - 고사리주차장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도 지나 이제 더위가 한풀 꺾일 만도 하건만 올해는 폭염이 늦바람 났나보다. 도무지 주체를 못한다. 학생들의 개학을 연기할 정도라니.
장마철 내내 햇볕이 쨍쨍하더니 장마가 물러갔다고 하자마자 연일 비가 쏟아지는 등 유난히 맞지 않은 올 여름의 일기예보 덕분(?)에 휴가는 참으로 조용하게 보냈으나, 우리의 대간길은 폭우도, 벼락도, 불볕 더위도 피해 갔음에 감사한다.
이화령 - 오늘의 산행 기점이다. 이름값을 하는 애절한 사연 하나쯤은 담고 있으리라 기대하였으나 일제가 신작로를 내면서 제멋대로 갖다 붙인 이름이란다. 그랬으면 바꿨어야지. 해방된 지가 언젠데....우리 산하를 사랑하고 제대로 알고자 하는 대간꾼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꿈의종주대의 깃발아래....우리의 모델들께서 한자리에 모여 축하해 주신다]
이화령의 한쪽은 충청북도 괴산땅이다. 특산품 괴산 고추를 홍보한다. 그런데 왜 모델로 할아버지를 내세웠을까?

[아무래도 맵기도 덜하고, 크기도 덜할텐데....ㅋㅋ]
조령으로 부터 물려 받은 신작로였으나 또 아래로 터널을 뚫고 길이 새로 나는 바람에 문경 - 괴산간 통행량을 양보하여 한적한 길이 되고 말았으니 주변을 운치있게 낭만적으로 가꾸었으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多情歌)」를 기억해 본다. 다른때 처럼 심야 산행이면 더 어울릴법한 시조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쉬는 날이어 그런지 등산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조령산을 목표로 오른다. 많은 등산객들과 함께한다. 빡세다. 산세만큼이나 억세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40여분쯤 올라가자 조령샘이 나타난다. 한참 된비얄을 오르느라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헉헉거릴 때쯤에 나타나는 샘이라 더 귀하고 고맙다. 샘물을 떠서 목을 축인다. 물맛이 좋다. 수통도 채운다.

[그대로님은 입을 뗄 줄을 모른다. 중국은 특히나 물사정이 좋지 않았다니.... ]
11시 50분 조령산 정상에 도착한다. 전망이 좋다. 시력이 닿는데 까지 다 보인다.

[산세가 험해 새나 겨우 날아 넘을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련지]
지난번에 거쳐온 희양산에서 백화산 능선이 뚜렸하고 앞으로는 거침없는 산세를 자랑하는 주흘산과 부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저멀리로는 앞으로 가야할 월악산의 연봉들이 장엄하다. 조령산은 특히 멋드러진 소나무와 기암절벽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

[월항3봉과 그 너머 월악산의 영봉이 아스라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을 끌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건.....지현옥岳友 추모비다. 묵념과 함께 먼저 간 악우의 명복을 빈다.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여성 산악인 지현옥 추모비가 주흘산을 바라보고 있다]
1993년 5월 10일 현지시간 19시 45분경 동료 2명과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름으로써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세계여성으로는 3번째로 에베레스트에 등정에 성공하였고, 1998년 7월에는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파키스탄령 히말라야 가셔브룸 제2봉을 무산소 단독 등정하였으며,
1999년 4월 세계에서 열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을 정복하고 정상에서 내려오던 중 추락해 사망하였다. 대단한, 그리고 참으로 아까운 산악인을 우리는 너무 일찍 잃었다. 언젠가 안나푸르나를 찾아가리라. 안나푸르나를 꼭 가야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정상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다. 다른 팀원들이 우리보고 많이들 먹는다고 그렇게 흉보지만 또 친정에 왔다가 돌아가는 보퉁이 마냥 바리바리 많이도 싸오셨다.
식사 후 무릎때문에 그간의 대간 산행을 주저할수 밖에 없었던 향기님께 산그림자 대장께서 테이핑 요법을 시술하신다. 효과가 좋아 향기님은 하산시까지 무릎 통증 이상무였었단다.

[빼어난 각선미를 은근히 표안나게 자랑하는 효과까지]
889m봉으로 내려선다. 이제 부터 그 유명한 밧줄 구간이 시작된다. 혹자들은 속리와 대야의 북벽이나 심지어 희양산 오름보다 더 힘든 구간이라고 까지 말한단다. 올포유님께서 밧줄 마흔두구간을 거쳐야 한다고 안내했기 세기 시작하는데 열두어군데까지 세다가 까먹었다.
중간중간 널찍한 바위가 즐비하다. 자리마다 명당이요, 자리마다 장관이다. 크고 작은 봉우리마다 거대한 암봉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여기 또 월항3봉만큼이나 듬직한 바위다]

[내가 누구게? 글쎄요....월항3봉에 사는 월궁항아님들 아니신지]
889m봉을 떠나 신선암으로 향한다. 암릉길의 연속이다. 그러나 몇차레 단련된 우리 대간꾼들에게 큰 장애는 아니다. 조령산은 이제 저만치 물러나 있고 주흘산과 부봉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다가와 있다.

[계속해서 밧줄과 암릉 구간이니 스틱은 이제 그만]

[밧줄구간 몇군데 내려와 돌아보면 거긴 깎아지른 절벽과 산봉우리였다]
신선암봉을 찾아가는 길도 큰 바위들이 즐비하다.

[앞장서 가던 그대로님이 잠시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무슨 생각?]

[우렁각시님과 함께 시작부터 냅따 달아나신 망울님을 여기서 붙잡았다]

[너무도 좋은 전망에 어쩔줄 몰라한다. 삼각산 치마바위 오름과 감촉이 비슷하다]
신선암봉이다. 신선봉보다 바위가 많아서인지 바위巖자를 하나 더 얹었다. 신선이 살만한 풍광을 맘껏 음미한다. 바로보고, 가랑이 밑으로도 쳐다보고, 누워서도 본다.

[신선들이 노닐만한 곳에는 역시 망울 선녀가 제격이다]

[이런 고마운 손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산행이 더 수월하고 즐겁다. 캄사합니다]
소나무와 기암절벽이 잘 어우러져 기막힌 절경을 이루고 있는 암릉지대를 잇따라 지난다. 역으로 오는 홀로 대간꾼을 만난다. 반갑다. 서로의 안전산행을 기원한다. 이제 오늘의 산행도 막바지에 접어 들었음을 알게된다.
장난기가 발동한 호산자님 지난번에는 집채만한 바위를 어깨로 받치고 있더니, 오늘은 바위를 잡아 당겨 본다.

[으이그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이걸그냥]

[이번에는 여럿이서 당겨본다. 조금 움직인것도 같다]

[한발떼고 풍광에 취하고, 한발떼고 돌아보고....그래서 진도가 더디다]
오후가 되니 간혹 산들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 주기도 한다. 깃대봉 갈림길에서 3관문 방향으로 내려선다. 오래된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민초들의 애환과 땀이 진하게 베어 있겠지. 임진왜란 그 훨씬 이전부터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구려는 신라와 접경이었고, 후삼국 시절엔 견훤과 왕건이 이곳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곳 이기도하다.
천태와 같이 오다가 이곳에 이르니 길 아래로 3관문을 가리키는 팻말을 보고는 기다리잔다. 그러나 나는 거침없이 팻말 무시하고 능선길을 따른다. 천태가 걱정스레 바라본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대간길이 그렇게 아래로 쳐지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드뎌 조령 3관문에 도착한다. 길옆 조령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다. 이 약수는 조선 숙종때 발견된 것으로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길을 넘나들 때 타는 목을 적셔 주던 역사속의 명약수로 사시사철 마르는 법이 없었다고 하며 이 샘의 물을 많이 마시면 장수를 한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관문 주변은 도립공원으로 조성, 잔디를 잘 가꾸었으며 평상을 놓아 오고가는 길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깔끔하다. 다음에 시간이 허락하면 제1관문인 주흘관과 제2관문인 조곡관도 둘러 보았으면 좋을것 같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고사리주차장까지는 2.5km를 더 내려가야 한다. 이제 산길이 아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다. 예전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시험을 보러 이 재를 넘었으리.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 새재는 웬 고개인고
구비야 구비구비가 눈물이 난다
소리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
첩첩히 쌓은 한을 풀어나 보세』
청산도에서 촬영했다는 서편제의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대목이 생각난다. 우리의 아리랑이 다 그렇지마는 특히나 이 진도아리랑을 들을라 치면 애절하기가 그지없다. 그런데 거기에 문경 새재가 왜 들어가는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간 선비들의 애환이 보통이 아니었나보다. 아무래도 급제하는 사람보다 낙방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을테니....

[향기님은 아예 등산화를 벗어 들었다. 그래서 맨발이다]

[식당 담장위로 수세미가 영글고 있다. 가을을 부르나 보다]
주차장이다.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으려 계곡을 찾아 풍덩 빠져본다. 아직까지 더위가 전혀 변함없는 줄 알았더니 물 속의 온도는 차이가 난다. 한여름이 아니었다. 거기엔 가을이 조금 스며들어 있었다. 그럼 저녁엔 청국장을 먹어야지.
첫댓글 날씨는 불볕이지.. 구간은 끝이없는 유격훈련장이지.. 봉우리는 넘어도 또 넘어도 이어지지.. 정말 힘이 드는 구간이였지요. 이틀이 지난 오늘 산행기를 보며 밀려오는 그리움은 뭘까요

무더운 기후에 산행을 하며 땀에 젖은 메모장에다 꼼꼼히 기록하더니 멋진 산행기가 완성 되었네요 새롭게 대간길이 생각나게 합니다........고추대장은 아마도 힘의상징 임꺽정이 아닐지?????
만태님의 감칠맛 나는 샌행기 목 빠지게 기다려 드디어 멋드러고 구수한 산행기 읽으며 지나온 길 더듬어 봅니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힘든 산행이었지만 기암 절경에 모든 피로 잊고
거운 마음으로 대간길 마쳤습니다.
진도 아리랑의 문경새재는 문전세제가 오기된 것이라고 들은것 같습니다...잘보고 뒤 따라 가겠습니다

후기가 점점 탄력이...잘 보았습니다.감사...
만태님의 후기를 따라가면서 산행한듯 합니다 즐감하고 가유>>>
만태님 나날이 더 구수해지고 사실감이 더하는 것 같아요 잘 보았습니다
그리 많이는 안마셨는데, 늘 재밌습니다.
겨울의 혹독한 산행이후 함께한 님들 반가웠습니다

^^* 폭염속 내내 힘은 들었지만 절경속에 취해서 등산화의 깔창이 없는 것도 모른채 
일 산행했는데 새
스레 하산길 끝머리에 들여다 보니 썰렁

어쩐지 발가락밑이 넘 아프고 크더라구요 

잘 읽고 갑니다
부지런한만태님
산행기 쓰려면 시간도 여유도 있어야 하는데,늘 깔끔하고 사색이 담긴 산행기를 쓰시니 수고가 많습니다.만태님의 산행기를 읽으며 그날의 산행을 다시 맛보고 갑니다
만태님



언제나 구수한 덕담까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