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가 부적을 지니면,,,
- 불력 법력이 부적보다 못한가?
세상이 요상하니 불자가 부적을 달고 다닙니다.
몇 장에서 몇 십장씩 베개나 이부자리
그리고 집안 곳곳에 부적을 붙여두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부적을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백과사전을 뒤져보아도 비슷한 말들입니다.
불자는 불법을 존중하고
불법근본으로 수행을 하면서 선악을 판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가서 부적을 만들고 저기 가서 부적을 만들면
부처님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불법의 중함과 위엄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부처님의 불력과 법력 자체에 대한
무지의 소행으로 불자라고 말하기에는 그렇습니다.
우주의 근본인 진리를 터득하여
만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의 위상을
부적으로 어지럽힌다면 이는 무간의 업을 짓는 행위로
악업의 인과를 만드는 것이 됩니다.
이유는 부처님을 불신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원시신앙이나 민속신앙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인간의 간사한 마음에는 아무리 훌륭한 보물을 손에 쥐어 주어도
심기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욕심의 한계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또 역술을 알고 있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불법을 믿는 불자로서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부적에 관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처님을 의심하는 행위이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많은 경전에 나와 있습니다.
마의 우두머리인 제육천의 마왕이나 귀자모신, 십나찰녀,
사천왕 등도 불법에서는 불자를 수호하겠다는 서약을 하였습니다.
부처님 전에서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믿는 사람들이
그것도 자랑을 하면서 부적을 달고 다닌다는 것은
불법을 땅에 떨어뜨리는 행동일 뿐입니다.
불법에서는 엄연히 부처님 불경 근본으로 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일체중생의 고뇌는 업에 의한 것이지 타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부처님의 힘과 지혜를 빌려 현실을 타개해 나아가는 것이 수행일 것입니다.
이 절도 기웃거리고 저 절도 기웃거리고
이 스님도 기웃거리고 저 스님도 기웃거려
누가 용한 부적을 쓰는지 염탐하고 평가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한다면 불법은 소용이 없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몰라서 이 어려운 수행을 남겨 두셨겠습니까?
어리석은 중생의 머리에는 급할 때 부처님이 눈에 보이지 않은가 봅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도 업으로 됩니다.
하물며 부처님을 부적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하는 중생에게
부처님의 공덕이 나타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서 바구니에 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불법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중생이 따르지 않으면 불력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부촉을 하여 홍교를 당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생이 부적이나 붙이고 다니니
부처님 말씀을 따르기는커녕 부처님을 조롱하고 있지나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불법의 그늘에서 자라는 일체의 생명은
불법을 벗어나면 그 힘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부처님은 부적을 만들면 없던 복이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고 불법에서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방법(謗法)의 죄를 만들뿐입니다.
방법은 지옥의 인(人)이 되고 불행의 과(果)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법을 따르는 무리 중에서
만약 부적을 이야기 하고 권하는 자는 따르지 않아도 됩니다.
깊은 행(行)은 미래 복(福)으로 나타납니다.
불법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 세(世)가 아닌 무려 삼세(三世)가 나타나는
위대한 불경 속에는
중생의 희노애락의 인(因)이 있고 과(果)가 있습니다.
불법을 한다면서 부처님에 대한 마음은 없고
엉뚱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병의 원인을 모르고 고치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면 병은 점점 위중하게 될 것입니다.
불교가 부적이나 붙이는 종교로 떨어지게 된 중심에는 불자들이 있습니다.
불자라면 이제는 부적은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아버지를 두고 남의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부적은 부적을 부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부적은 이제 사양하는 것이 마땅하며
만약 집이나 몸에 지니고 있다면 없애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단좌(單坐)하면 됩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아직도 부처님의 불력과 법력에 미치지 못하는
수행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최고는 하나이지 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적은 방편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참다운 불자는 불언(佛言)을 따르는 중생을 말합니다.
2009. 4. 1.
sisabuddha.kr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