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스승: 그대는 어떤 빛으로 봅니까?
제자: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등불로 봅니다.
스승: 어떤 빛으로 이 빛들을 봅니까?
제자: 눈으로 봅니다.
스승: 어떤 빛으로 눈을 봅니까?
제자: 마음입니다.
스승: 어떤 빛으로 마음을 봅니까?
제자: 저의 나입니다.
스승: 그러면 그대는 빛 중의 빛입니다.
제자: 네, 저는 그것입니다.
[샹카라차리야의 에카슬로키 ]
8.
가슴 동굴의 한 가운데에
‘나-나’, 즉 아트만으로서 브람만이 빛납니다.
나 탐구로 깊이 들어들거나
호흡으로써 마음을 통제하여 아트만에 자리를 잡아 머무르십시오.
[바가반]
9.
가슴의 연꽃 안에 순수하고 변함이 없는 의식이 나의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아가 제거되면,
이 의식은 해방을 줍니다.
[데비칼로타람, v.46.]
10.
육체는 지각의 능력이 없는 흙으로 빚어진 항아리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의식이 없습니다.
매일 육체가 없는 잠 속에서
우리는 매일 우리의 참된 성품에 접촉함으로
육체는 ‘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나’는 누구입니까? 이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이들의 가슴의 동굴에
‘나’가 신 아루나찰라의 쉬바로서 빛납니다.
[바가반]
11.
‘누가 태어났는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라고 묻는 이만이
근원인 브람만에게서 진정으로 태어납니다.
그는 정말이지 영원으로 태어납니다.
그는 성자들의 신입니다. 그는 늘 새로운 존재입니다.
[슈리 바가반의 자얀티를 기리며]
12.
‘이 거친 살이 나이다.’라는 개념을 던져버리고
나의 희열을 찾으십시오.
육체를 소중히 여기면서 나를 발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악어를 통나무로 착각하고 그것을 매달려
강을 건너려고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바가반, 비베카추다마니Vivekachudamani, v.84]
13.
자선, 고행, 희생, 다르마, 요가와 박티
그리고 천상계, 실재, 평화, 진리, 은총, 침묵,
안정, 죽음이 없는 죽음, 지식, 포기, 해방, 희열이라는 목표
이 모든 것들은
육체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입니다.
[바가반]
14.
‘무엇이 행위이며, 헌신이며, 합일이며union, 지식인가?’라고 묻는 것은
‘이 행위, 무심, 분리, 무지는 누구의 것인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으면, 자아는 사라집니다.
이 여덟 가지가 그 안에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던
나로서 사는 것, 이것이 참된 존재입니다.
[바가반]
15.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떤 바보들은 기적의 힘을 찾느라 바쁩니다.
그들이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너희가 나를 일으켜 세워주면,
이 적들은 내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친구들에게 허풍을 떠는
불구자와 같습니다.
[바가반]
16.
마음의 정지still가 참된 해방입니다.
기적의 힘은 마음의 행위가 없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힘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의 모든 활동의 끝난
해방의 희열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바가반]
17.
세상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은 신입니다.
그러나 가짜인 자아는 사원 탑을 떠받치는 조각상처럼 얼굴을 찌푸립니다.
만약 여행자가 기차를 타고 난 뒤
계속 머리에 짐을 지고 있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바가반]
18.
흉부의 아래와 복부의 위, 두 젖꼭지들 사이에는
여러 색들을 가진 여섯 개의 기관들이 있습니다.
이 중, 백합 봉오리처럼 보이는 것이 가슴입니다.
그것은 그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손가락 두 마디쯤 떨어져 있습니다.
[아슈탕가 흐리다얌, 말라얄람]
19.
그 입구는 닫혀있습니다.
그 빈 공간 안에는 온갖 욕망들로 가득 찬
짙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큰 신경들이 거기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호흡, 마음, 그리고 지식의 빛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아슈탕가 흐리다얌, 말라얄람]
20.
가슴 연꽃 안이 신의 집입니다.
그 집의 신은 동굴의 주인으로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수련의 힘으로 ‘나는 그이다. 나는 동굴의 신이다’라는 느낌이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자아만큼이나 굳게 자리 잡으면,
필멸의 몸이라는 환영은
떠오르는 태양 앞의 어둠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바가반]
21.
라마가 ‘우리가 사물들의 형상을 보게 하는
큰 거울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가슴이라 불리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바시슈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두 개의 가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가 바시슈타, 5-78, v.32,33]
22.
‘그 하나는 받아들일 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부되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들어보십시오.
신체의 어딘가에 있는
심장이라는 기관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순수한 자각의 형상을 한 가슴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안에도 있고 바깥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습니다.’
[요가 바시슈타, 5-78, v.34,35.]
23.
‘그것이야말로 필수적인 가슴입니다.
그 안에 이 모든 세상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들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그것은 모든 부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자각은 모든 존재들의 가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은 돌같이 지각 능력이 없는
필멸의 육체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요가 바시슈타, 5-78, v.36,37]
24.
‘그러므로 자아를 순수한 자각인 온통 자각인 가슴 안에
합치는 수행을 하면,
호흡 뿐 아니라 마음의 경향성도 가라앉을 것입니다.’
[요가 바시슈타, 5-78, v.38]
25.
모든 한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쉬바로서의 ‘나-나’를 항상 명상함으로써,
모든 집착들을 극복하십시오.
[데비칼로타람, v.47.]
26.
‘존재의 여러 상태들을 탐구했겠지만
그 지고의 실재의 상태를 확고하게 붙들고,
오, 영웅이여, 세상에서 그대의 역할을 연기하십시오.
그대는 온갖 겉모습들의 핵심에 있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 실재로부터 결코 돌아서지 말고, 오 영웅이여,
마치 세상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세상에서 그대의 역할을 연기하십시오.
[요가 바시슈타, 5-18, v.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