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네월아 나달 봄철아 오고가지 말아라
알뜰한 이팔청춘이 다 늙어를 간다
세월이 가려면 저 혼자나 가지
알뜰한 청춘을 왜 데리고 가나
태산이 높고 높아도 소나무 밑으로 있구요
여자일색이 아무리 잘나도 남자 품으로 돈다
월미봉 살구나무도 고목이 덜컥된다면
오던새 그 나비도 되돌아 간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역음 정선아라랑
우리 댁에 서방님은 잘 났던지 못 났던지
얽어매고 찍어 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 나무 지게 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 오세요
네칠자나 내팔자나 네모반듯 왕골 방에
샛별같은 놋요강 발치만큼 던져놓고
원앙금침 잣벼게에 앵두같은 너를 안고
잠자보기는 오초 강산에 일 글렀으니
어툴멍툴 장석자리에 깊은 정만 두자
당신이 날마다 고울치고 담치고
오이김치 소금치고 오이치고 초치고
칼로 물치듯이 뚝 떠나가더니
평창 팔십리 다못가고서 왜 돌아왔나
아들딸 낳지 못해서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 암자 마디봉봉 마루 끝에
찾아가서 칠성당을 모아놓고
주야삼경에 새움의 정성에 치성 불공을 말고
타관객지에 떠다니는 손님을 푸대접 말게
가다보니 감나무요, 오다보니 옷 나무요,
엎어졌다 업 나무, 자빠졌다 잣나무,
청실홍실 대추나무 꽝꽝 울려 뿔 나무냐
옹고화루 죽 괄이 앞에 놓고 앉았으니
임이 오나 누웠으니 잠이 오나
등불을 도도 놓고 침자를 도도 베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잠시잠깐 깜빡 조니
새벽달이 오늘 갈런지 내일 갈런지
정수정망 없는데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 놨나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세월이 가고서 임마저 간다면
이 세상 한 백년을 누굴 믿고서 사나
간다지 못 간다지 얼마나 울었나
송정암 나루터가 한강수가 되었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구슬픈 아라지가 들려오는곳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위치해 있으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상지중의 한곳으로서
엣부터 강과 산이 수려하고 평창군 도암면에서
발원되어 흐르고 있는 구절쪽의 송천과
삼척군 하장면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임계쪽의골지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하여
아우라지라 불리우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적인
배경에서 송천을 양수,골지천을 음수라 칭하여
여름 장마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예상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옛말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이곳은 남한간 1천리길 물길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 시작지점으로
각지에서 모여든 뗏꾼들의
아라리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특히,뗏목과 행상을 위하여 객지로 떠난 님을
애닯게 기다리는 마음과 장마로 인하여
강물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애절한 남녀의 한스러운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지금의 정선아리랑 가사로 널리 불리워지고 있으며
이러한 지명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강건너에 아우라지비와 처녀상과
정자(여송정)를 건립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임을 전하고 있다.
아우라지 강을 사이에 두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 총각이 사랑을 했다.
그들은 남몰래 만나 싸리골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뱃사공 지서방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필이면 그들이 싸리골에서
만나기로 약조한 날 밤
배도 뜰 수 없을 만큼 억수장마가 들었다.
두 처녀 총각은 강을 사이에 두고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이 사정을 아는 지서방도
그저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장마가 그렇게도 오래갔던지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었던지,
끝내 둘은 맺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초성 좋은 지서방은 뱃일을 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노래했던 것이다.
지금도 정선에는 20여리 떨어진 여랑리의
아우라지 강에 가면 비록 삿대 없는 배이지만
쇠줄을 당겨 건너는 배가 있다.
또한 강 기슭에는 바람에 날리는 치마자락을
여미고 강물을 그윽히 바라보는
'아라지 처녀'의 동상이 서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