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종사 법어 ▒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 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요.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 정전 제 1 총서편 제 1장 개교의 동기 (전서 21쪽)-
|
춘삼월입니다~ 옷 좀 얇아지셨어요? 온도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조석으로는 10 °C 이상 차이가 나서 이떄 또 방심하면 감기 걸릴 수 있으니까 잘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춥다고 핑계댔던거 이제 핑계 못대니까 3월달에 마음을 챙기셔서 다시 좀 유무념을 챙기면 어떨까. 공동유무념도 챙기시고 개인유무념도 챙기셔서 3월달에 새 마음으로 새롭게 운동도 유념하고 잡아서 해보시고, 그 동안에 놓았던 마음공부의 부분이 있다면 잡아서 다시 챙겨서 일기로 체킹을 해서 점검을 할 수 있도록 까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원불교 일기법은 마음공부의 최종단계입니다. 마음공부의 최종 단계는 일기법 입니다. 쉽게 말해서 일기법은 원불교 삼학공부가 다 들어가서 그것을 최종 평가하게 되있습니다. 우리가 어떤걸 계획 잡으면 실행하고, 실행을 했으면 반드시 어영부영하고 마는게 아니라 그것을 통계를 내서 평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아요. 이것이 평가가 빠지면 그냥 그런갑다 하고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돌도록 살게 됩니다. 윤회의 삶이라는게 그런거에요. 평가를 통해서 업그레이드를 하고 수정해나가야 하는데, 그 평가가 없이 그런대로 살아가는 것이 윤회에요.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것이 일기를 통해서 평가를 통해서 다시 수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윤회의 사슬을 끊는 것이 일기다라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3월 마음공부 책자> 개교의 동기 개교의 동기는 대종사님의 일대 경륜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불교가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된 동기는 파란 고해에서 헤매는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데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모든 사람이 물질의 노예 생활로 파란고해 (波瀾苦海)에서 헤매게 되었는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는 것이 대종사님께서 원불교를 여신 동기입니다.
|
요것이 개교의 동기를 다시 좀 축약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한 것 같습니다. 현하부터 다시 읽겠습니다. 하면서 질문 있으면 얼마든지 질문해주세요.
<3월 마음공부 책자> 현하
‘현하 (現下)’는 때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지금 이 떄가 바로 새로운 성자가 나오셔야 하는 때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현하’라는 단어 속에서 ‘일대 변역기(一大變易期)의 개벽시대가 돌아왔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일대 변역기’와 같은 뜻을 가진 내용은 ‘정전’ 양육쌍전법 중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라는 구절입니다. 또 ‘대종경’ 변의품 6장에 ‘과거 부처님 말씀에 일대겁으로 천지의 한 진강급을 잡으셨나니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산 종사님께서 쓰신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 비명 병서의 ‘다시 출현하시게 된 기연이다.’는 대목도 ‘때’가 되어서 대종사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교의 동기에 대한 공부를 통하여 이러한 시대에 대한 감각을 확실히 얻어야 합니다.
|
내용이 상당히 좋아요. 그래서 제가 같이 읽고 하려고 한 것입니다. 자 질문 없습니까? 현하는 뭔 말이에요? 지금부터 그 소리죠. 그러면 지금이 어느 때냐? 여기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자가 나와야 할 때다. 새 주세불이 나와야 할 때다. 일대 변혁기의 개혁시대가 돌아올 때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고, 그 다음에 일대변혁기는 어떤 내용이냐. 영육쌍전법에 나오죠.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할 것이다. 라고 나와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때냐. 이제는 세상이 바뀌는 때라 이 말이죠. 변혁기여. 그래서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그런 산 종교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 이야기죠. 변의품에는 일대겁의 한 천지의 진강급이다. 이랬어요. 그리고 비경경서에는 정산종사꼐서 다시 출현하시게 된 기연이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언젠가 다시 나왔다는 그 말이죠. 전에도.
자 제가 잠깐 과학 상식을 같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어디 사시죠? 교당은 어디 있어요? 안암동은 종로구 서울의 남한의 한반도에 있네. (칠판에 점으로 판서하심. 이거 너무 크게 표시했네~) 그런데 지구 안에 있어. 근데 지구 옆에 별들이 있네. 일단 쬐그만 달이 하나 있어. 요새 보름달인데 혹시 보셨어요? 또 수금지화목토천해명. 명은 요즘 빠졌답니다. 그래가지고 태양이 여기 있어. 그래서 요렇게 묶어서 태양계야. 그런데 이런 것이 천 억개가 있습니다. 요것이 은하곕니다. 태양계가 천억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하계라고 하는게 천억개가 있습니다. 여기 그려야 하는데. 내가 그렸어. 이것을 뭐라고 하냐면,
<판서> 世 宇 (시간, 공간) 界 宙 (공간, 시간)
|
세라는 말과 주라는 말은 시간을 말해. 그리고 우 하고 계는 공간을 말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말한다.우리가 대 세계주의 그러잖아요. 그리고 일원상 진리의 맨 처음에 보면 우주 만유의 본원이라고 그래. 그러면 우리는 지금 여기 안암동에 있는데 지금도 폭발이 일어나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어. 성주괴공이라고 우주가 변혁기에 있는데 우주가 계속 팽창되고 있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천 억 개가 넘는 은하계 중에 우리은하에 살죠. 여러분 은하철도999 보셨죠? 그게 뭐냐면 우리 은하 옆에 있는 다른 은하계 안드로메다가 있다 해서 만든 만화 영화여. 그런데, 우리가 이런 속에서 살고 있는데 안암동 내에도 지금 머리수가 몇이냐. 요렇게 우리가 지금 살고 있어요. 요것이 언제 생겼냐 했더니 좀 됐다 그러지 시간이. 135억년 전에 요것이 생겼어. 우주에 빅뱅이 일어났다고 그래요. 팍 폭발하면서 그 안에서 온갖 우주의 먼지가 생겼고 지금도 생기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녁에 하늘의 별들을 보면, 반짝이는게 있죠. 별이 얼마나 많은지 알겠어? 태양계 안에도, 은하계 안에만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옛날에 뉴튼이나 갈릴레오 그런 사람들이 은하계 밖을 본거야. 몇 천 톤에 해당하는 지구가 지금 시당 16 km 로 돌고 있고, 이것이 또 태양주위를 30 km로 돌고 있는거여. 우리가 지금 그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해가 되세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겠어. 저는 서울 북한산만 올라가도, 요렇게 서울 시내를 보면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십 몇 평 산다고 기죽고, 또 1층에 산다고 기죽고, 뭐 좀 그렇게 산다 기죽고 그러고 자빠졌냐.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북한산서만 봐도. 그런데 여러분들이 다른 별에서 여기를 본다고 해봐 어쩌겄어? 우리는 보이도 안해. 그리고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별은 지금 현재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눈에 분명히 보이는데 그 수 광년을 빛의 속도로 왔는데 지금 없어졌는지 아닌지도 몰라. 있는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거든. 우리는 지금 그런 우주에서,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것을 먼저 생각해보고 싶고.
지구가 38억년 전에 생물이 나와요. 단세포가. 그것이 다세포가 되면서 물속의 생물들이 밖으로 나와요. 여러분들은 거기서 나온거지. 100프로 맞는 얘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과학자들이 밝혀낸 내용들이에요. 기독교 신앙하시는 분들은 창조적인 진화를 이야기 하거든요. 요것을 안 믿어. 그러나 믿든 안 믿든 과학자들은 증명을 하고 있어 지금. 자 이제 이 지구를 놓고 보겠습니다. (칠판에 지구전도 표기) 점만도 작은 지구 안에서의 이야기야. 여가 한국이네. 내가 지도를 못 그리니까. 이게 지금 한국을 중심으로 한 지구야. 산소가 생기고 얼음이 녹아가면서 이 수중 생물이 육지로 올라오게 되죠. 우리 인류가 원래 침팬지여 본래는. 이렇게 해서 5600만년 천부터 2600만년 이것을 유인원이라고 그래. 800만년 전부터 160 만년 전에 남방의 원숭이가 있었는데, 이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여. 이것이 160만 년 전까지 살았어요. 네 발로 걷던 유인원이 600만년 전에 두 발로 서게 된거야. 탁 직립을 하게 된거야. 근데 손은 엄청 길었죠. 그렇게 하면서 320만년 전에 보면은 룻 이라는 아이처럼 110 cm 밖에 안되는 존재가 있었다. 뇌의 크기가 침팬지하고 같은 거야. 이렇게 사람이 침팬지하고 점점 달라지는데, 일어서게 되고 뇌가 커지게 되고 손은 작아지고 골반은 작아지면서 서서히 사람이 지금과 같이 되어지게 되었어요. 코끼리는 새끼를 낳는데 22개월이 걸려요. 사람은 원래 더 오래 걸렸을 거에요. 서서 걷다 보니까 골반이 작아야 혀. 그리고 원래 털이 많았잖아요. 털이 많으면 무슨 문제가 생기냐면 뛰질 못해요. 옛날에 유인원이 어떻게 동물을 잡았냐면 뒤지게 모는거야. 사람이 서서히 털이 빠졌거든. 마라톤 하는 동물은 이 세상에 사람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마라톤 못합니다. 왜? 털이 없기 때문에. 요새는 털이 신체의 몇 군데에만 있죠? 옛날에는 다 털이었어. 털이 있으면 땀이 배출이 안되기 때문에 뛰질 못해. 사자 같은 것도 보면 뛰다가 말잖아요. 사람이 이걸 어떻게 잡냐? 계속 모는 거에요. 몇 번을 몰아. 그러면 동물이 가다가 가다가 못가. 그러면 사람이 잡는 거에요. 요렇게 생긴 도끼 봤죠? 요걸로 잡아서 먹고 한 거에요. 불을 쓰게 되고 도구를 쓰게 되고. 불을 쓰니까 생식을 하는 거보다 소화 속도가 5배가 빠릅니다. 그 대신 사람이 위장이 작아져요. 턱도 작아져. 옛날에는 수유를 하면 원숭이처럼 턱이 컸거든. 점차 이렇게 변화가 되는 거에요.
현재 침팬지하고 사람하고 유전자가 1.6%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래. 거의 같은 거에요. 그런데 사람이 지구를 삼키고 우주를 삼키고 신도 지배한다고 해. 그 정도로 처음에는 동물에서 침팬지가 먹이사슬을 중간에 밖에 위치하지 않아. 훨씬 힘센 놈들이 많았다고. 제가 왜 이 이야기를 드리냐. 저는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적자생존이니 약육강식이니, 뭐 이런 것도 있지만은 본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씀을 드리려고 이 말을 하는 거야. 그 안에 60만년 전에서 20만년 전에 하이델베르크인이 있었고, 그 전에는 호로에렉투라스 라는 사람하고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 여러분 학교에서 베이징 원인이라던가 하는 것도 들어보셨죠. 그게 호모에렉투스에요. 약 40만년을 살았어. 이런 것들이 다 지금은 지구상에 없는 존재에요. 호모사피엔스가 나와서 싹 죽어버린거에요. 호모에렉투스를 싹 죽여버리고 호모사피엔스가 20만년 전에 나와서 지금 우리가 되었는데, 그 중에 한 동네에 산 한 백여명의 호모사피엔스가 지금 인류를 만든 거에요. 원래 아프리카가 처음에 살았는데, 아프리카 사막화 되면서 해변가로 다른 대륙으로 가게 되죠. 이 호모사피엔스가 유럽에 살고 있던 아시아에 살고 있던 호모에렉투스를 싹 죽여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선조들이. 그래서 내가 지난번에 종교인 모임에서. 기독교 원죄가 이거 아닙니까 그랬어. 호모사피엔스가 전부다 죽여버리면서 전체를 지배하게 되요. 이 전에 40만년 간을 지배했던 호모에렉투스는 뇌가 900 cc야. 침팬지는 400 cc고. 지금 사람과는 다르게 생겼는데, 언어를 쓰게 되면서 전두엽이라든가 다른 부위가 커지게 된거야. 그래서 우리가 불을 쓰고 언어를 쓰고 문자까지 쓰게 되면서 엄청난 폭발적 발전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 왔다. 사실은 우리는 전부 아프리카에서 나온 호모사피엔스고, 우리의 뿌리는 흑인입니다. 흑인에서 돌연변이가 생기는 거야. 그래서 사실은 인종 중에 백인이 제일 신체적으로 안 좋아요. 가장 건강한 것은 흑인입니다. 백인들이 신체 조건이 안 좋으니까 오히려 죽어라 노력해서 지배하게 되고 나중에 흑인을 노예도 삼았죠. 사실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이 살다 보니까 분화가 된 거야. 그런데 같은 형제인데도 불구하고 막 잡아 먹고 죽이고 노예삼고 이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인류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무슨 역사냐.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를 찾아왔는데, 에너지를 많이 비축하거나 땅을 많이 차지하거나 재산을 많이 차지하면 행복한 줄 알았어.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그런 역사에요. 그래서 너 국가를 위해서 뒤져라, 종교를 위해서 뒤져라. 이런 거였죠. 개인의 삶 보다는 어떻게 하면 국가의 영토를 넓히고 힘을 쌓고 하는 것이 행복인줄 알았어. 그러면서 많았던 민족도 줄어들고, 나라 개수가 줄어들고 있는 거에요. 옛날에는 부족들이 얼마나 많았었어요. 아프리카도 지금은 나라 몇 개 안되잖아. 그런데 인류 역사가 흘러서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행복을 찾아서 땅을 넓히고 재산이나 힘 에너지를 넓히면 행복한 줄 알았는데, 가면 갈수록 안 행복한거여. 이걸 기대치라고 해. 즉 원하는 것이죠. 행복이라는 것은 이 기대치가 너무너무 중요한 거에요.
<판서>
|
생각해보면 옛날보다 우리가 얼마나 좋아졌어. 여러분들 어릴 때만 생각해도 지금 보면 얼마나 좋아졌어. 내가 식당에서 밥 먹으면, 내가 옛날 임금보다 더 잘 먹는거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여러분 그러지 않아요? 근데 그때보다 행복하냐? 통계를 뽑아봤더니 지금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가 부탄이라든가 동남아라든가 이런 데에요. 그게 무슨 이야기여.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기대치가 커지는 거야. 기대치가 커져버리니까 만족도는 더 떨어져버리는 거야. 분명히 모든 것들이 좋아지고 있거든, 근데 더 행복하지 않데. 어저께도 청년들 일기 발표하는데 그래. 한 놈이 경찰대학을 나와서 경감이래. 젊은 놈인데. 이제 30대 초반인가 그래. 근데 경감 한번 더 진급하는데 떨어졌는가봐. 야는 아버지한테 강남의 아파트를 받았어. 그리고 결혼도 해갖고 잘 살아. 그런데 세상 너무 힘든다고 한데. 내가 볼 때 우리 나라 몇 프로 안에 드는데.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자기가 원하는대로 또 승진해야 하는데 승진이 안되니까 성질이 난거야. 기대치가 큰데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지니까 성질이 난거야. 행복의 수식에서 분자는 분자대로 크게하고, 기대치 자체를 줄이면, 즉 인과에 맞게 안배를 하면 행복한데... 기대치가 너무 크니까 행복이 계속 작아지는 거여. 진짜 얼마나 세상이 좋아졌냐고. 아이고 정말로. 나는 군대에서 어떤 놈이 총을 갖고 탈영을 해버렸어. 나 신병교육 때 저 강원도 철원에 있을 때 우리 부대에서. 대대장이 총을 가지고 탈영을 해버리니까 죽겠는거야. 누가 뭐 본다더라 그러면 그 사람한테 가서 그 놈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서, 산에서 총이 보인다고 그러면 온 부대원을 보내서 수색하는 거에요. 또 어떤 놈이 화장실에 넣어 버린거 같다 그래가지고, 우리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내내 똥을 푸고 그랬거든. 찾다가 보니까 저녁에 빵 종이를 보는데 얼마나 내가 빵이 먹고 싶었는가 몰라. 우리 큰 형님은 화천에 근무했는데 짬을 주워 먹었어요. 그렇게 어려운 세월이었다고. 우리 총부에서 정산종사님이나 식사 때 가짜 종을 치고 정산종사님께만 밥을 올려. 그럼 귀신같이 알고 나 속이 안 좋아 그러면서 안드시고. 그렇게 어려운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 그런 사람 있어? 없어. 얼마나 좋아졌는가 몰라. 그런데 밑의 기대치는 더 높아져버리네. 그러니까 개인 소득이 몇 천불이 되면 데모가 일어나고, 만 불이 되면 어떻게 되고, 이만 불 되고 삼만 불 되면 어떻게 되고가 있죠. 지금 우리나라 보면 지금 커피가 활성화되잖아요. 좀 있으면 커피 죽어요. 좀 있으면 뭐가 활성화 되냐면. 차. 홍차 같은 게 유행하게 되요. 달라져요. 옛날에 골프 치는 사람 보면 우와 했었는데, 지금 우리 친구들 다 골프 쳐요. 다 옛날에 나한테 당구배운 놈들이. 지금은 같이 못 놀겠어. 그렇게 세상이 달라져 버렸어. 그러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행복하냐. 어떻게 보면 대종사님이 나온 것은 이 시대가 하나로 되어가는 시대여서. 얼마나 투명하게 되. 요새 TV봐. 미투라 해서 미국도 난리고 한국도 난리고 투명한 세상이 되고 있어. 그래서 옛날에 전망품이나 도훈품이나 이런 법문을 보면 그런 시대가 언제 올란가 했는데 곧 올 것 같지 않아요. 진짜로 진실하고 공심 있는 사람이 앞으로 대우받는다 했는데 진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가 오고 있지 않는가. 그러지 않아요?
<3월 마음공부 책자> 물질의 노예 생활과 파란 고해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마음공부를 하지 않으면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욕심에 끌려가기가 쉽습니다. 최령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과 얻고자 하는 것이 많은데, 과학의 발달로 물질이 풍요로워지고 찬란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편리 위주로 치닫게 되었고, 그에 따라 물질적 욕구도 한량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욕심이 계속되면 물질을 사용해야 할 사람의 정신이 물질에 끌려감으로써 점점 쇠약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물질에 끌려다니는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니, 물질에 끌려 다녀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에게 어찌 파란 고해가 없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다른 생령들에게도 많은 피해를 주게 되고 결국 함께 살아가는 지구도 망치게 됩니다.
|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물질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물질이 오히려 우리를 활용하게 됐다. 제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게 뭐여. 돈이여 돈. 돈 누가 만들었어? 옛날에는 (貝)조개패 이게 돈이었어. 조개였어. 몇 백만 년 전에는 사람이 이것을 썼어요. 구멍을 뚫어가지고 그걸로 장식도 하고 그것이 재산이었어. 이것이 처음에 생긴 돈이여. 요즘에는 땡전도 있고 종이도 있고 달러도 있고 채권도 있고 주식도 있고 집문서도 있고 땅문서도 있고 있는데. 그걸 누가 만들었냐.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사람이 만든거에요. 사람이 그것을 써서 더 행복하게 살라고. 그런데 이놈의 것이 어떻게 된 것이 뒤바뀌어 버렸어. 돈 때문에 형제가 재판을 하지 않나, 돈 때문에 아버지를 가둬 버리지 않나. 이놈의 욕심 때문에. 내가 지난번에 인도에 가보니까, 왕이었던 아버지를 아들이 가둬놔 버렸어. 왜 지가 권력를 잡으려고. 아버지가 죽어라고 이쁘게 키워놨더니 아버지를 가둬놨어. 왜. 명예 땜에. 옛날에 우리 궁에서도 그러잖아. 가까운 친척은 다 궁 밖으로 보내잖아요. 죽여버리던가 보내버렸어요. 왜. 이게 형제간에 싸우게 되고, 형제가 싸울 맘이 없어도 옆에서 건드려. 니가 한번 해보라고 살살 건드려서 싸우게 되거든. 이놈의 명예 때문에, 돈 때문에, 이 온갖 욕심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대종사님이 이 당시에는 말씀하셨을 때는 얼마나 실감했을지 몰라. 근데 지금 우리가 얼마나 더 실감합니까.
<3월 마음공부 책자> 진리적 종교의 신앙
대종사님께서는 ‘일원상의 신앙’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보편적인 단어를 사용하신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란 종교를 신앙할 때 진리적 종교이면 된다는 말씀이니 과거 성자들의 가르침도 다 수용한다는 뜻입니다. 진리적 종교란 모든 법의 근본이 되고 모든 이치의 바탕이 되는 성리를 밝힌 종교를 말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 가운데서도 ‘일원상의 신앙’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고, ‘사은’을 신앙의 강령으로 삼으셨습니다. 대소 유무 가운데 사은(四恩)은 ‘소(小)’ 자리를 응해서 밝히신 법입니다. 과거 성자들께서 주로 형이상학적 절대 자리인 ‘대(大)’ 자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신 점과 비교해 볼 때 대종사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법신불 사은 신앙’은 가히 종교의 혁명, 신앙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우리에게 조석으로 심고를 올리게 하신 것은 전체 신앙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심고와 기도를 올릴 때 ‘법신불 사은이시여!’ 라고 하는데 진리불공을 할 때는 이렇게 ‘법신불 사은이시여!’ 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는 사은을 신앙의 강령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 불공도 잘해야 하지만 사은 당처마다 실지불공도 잘해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불공과 실지불공을 다 잘하는 사람이 법신불 사은 신앙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
신앙 부분이죠. 중간에 보면 진리적 종교의 신앙이라 했죠. 진리적 종교라는 말과 종교적 진리라는 말은 다릅니다. 종교적 진리라는 것은 그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겠죠. 그러나 진리적 종교라는 것은 모든 성자가 말한 그 진리. 모든 성자가 진리가 같잖아요. 어찌 본위가 다르겠습니까. 본위를 밝힌 그 진리적 종교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대로 모든 성자의 가르침을 다 수용하는 진리로서의 신앙이라고 표현해주셨다. 그리고 그 동안의 신앙이 대 자리 신앙이냐, 아니면 부분 신앙이냐, 장엄 신앙이냐, 아니면 신비 신앙이냐. 그 동안은 형식신앙이었다고. 그런데 대종사님은 진리적 신앙이라고 해서, 부분신앙을 전체 신앙으로 형식신앙의 실질 신앙으로 돌려버리셨다. 이것이 신앙의 혁명이 아니고 뭐겠어요. 여러분 원불교 안 만났으면 지금 뭐할꺼여? 아까 말한 장엄신앙 하던가, 기복 신앙 하던가, 아니면 대자리 신앙 하던가 그러실꺼여 아마. 대종사님 나오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처처불상의 소 자리 신앙을, 우주 만유 전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신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그리고 타종교 관계에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이런 내용 때문에. 그리고 신앙이라고 해서 타력신앙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자력과 타력을 아우르는 자타력 신앙이면서, 진리불공뿐 아니라 사실불공도 함께 아우르는 신앙이다. 얼마나 이게 기가 막히냐. 대종사님 만나서 우리가 이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들을 배워가고 있는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3월 마음공부 책자> 사실적 도덕의 훈련
대종사님께서는 ‘삼학훈련’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심신작용과 모든 생활을 진리에 어긋남이 없이 훈련하는 것으로 누구든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바로 인도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도덕의 훈련을 말합니다. 그리고 훈련이란 반복적으로 단련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불가에서 이미 대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수행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란 단어를 새롭게 사용하셨습니다.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가 다 이러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하는 법이 되겠으나, 그 강령이 되는 법은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 입니다.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으로 하는 사실적 도덕의 훈련은 과거 종교의 훈련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정기훈련법은 정(靜)할 때 공부로서 상시 공부의 자료를 준비하는 공부법이 되고, 상시훈련법은 동(動)할 때 공부로서 정기 공부의 자료를 준비하는 공부법이 되어, 이 두 훈련법은 재가 출가의 공부인에게 일분 일각도 공부를 떠나지 않게 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훈련을 하면 삼학 병진의 원만한 수행이 되고, 공부와 생활을 아울러 닦게 되며, 동(動)과 정(靜)을 따라 공부를 여의지 않게 됩니다.
|
그냥 수행이라고 하지 않고 훈련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 다음에 삼학 훈련이라고 하지 않고 사실적 도덕이라고 했다. 사실적이라는게 뭐여. 그 동안의 수행이 사실적이 아닌 부분이 많았다. 쉽게 말해서 관념적이었다. 아니면 한편에 치우쳤다. 영육을 같이 했느냐, 또 생활 속에서 기질 변화까지 하는 수행이냐. 그냥 기도만 하는 신앙이나 선 만하는 수행 이 아니고 내가 실제로 습관이 바뀌고 내 삶의 건강도 좋아지는 여기까지 가는 거죠. 옛날에는 견성만 하면 도인이라고 했어. 이제는 솔성의 실천이 없으면 도인이 아니라는 거야 이젠. 그러니까 대종사님께서 산에 있던 도인들 다 시내로 끌어 내놔버린거여. 실지 경계 경계에서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의식주를 가지고 생활하면서 해라. 원불교 교당은 재가 출가 병진이지만, 사실 재가 교당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습니다. 출가위주의 교당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적으로 출가들이 더 전념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교리나 모든 내용을 보면 사실은 직업을 가지고 수행하고 생활하는 신앙과 종교를 내놓은 것이 대종사님 뜻이에요.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은 어땠습니까. 수도와 생활이 따로여. 수도하려니 생활 못하니 생활하려니까 수도 못하고. 직장생활 하는 사람 도인 아니고, 돈 버는 사람 도인 아니고, 장사하는 사람 도인 아니고. 옛날엔 그랬다 그 말이여. 산에 가서 수행하고, 수염 기른 사람, 하얀 옷 입고, 밥을 안 먹는 사람이 도인이고. 맨날 소설도 그렇게 나오고 영화도 그렇게 나오고. 지금은 그런게 아니다. 그대로 밥먹고 똥도 싸고 웃으면서 돈도 벌고 장사도 하고 일도 하는 도인. 따로 장소와 시간을 잡아서 수행을 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마음 공부를 내놓는 것이 대종사님의 뜻이다. 이제는 그 정도 인지가 올라왔다. 예전엔 인지가 안 올라와서 성자들이 타력신앙을 이야기하셨고 또는 견성만 해도 깨달았다 한거여. 이제는 집단 지성이, 전체가 인지가 올라가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내려올 때가 됐다. 대소유무 전체를 다 강조할 때가 됐다. 그래서 대종사님은 새로 처음 이 지구에 나온 것이 아니라, 과거에 다 인연을 닦아서 이미 한 지역을 맡아서 하셨던 어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일상수행의 요법이 나와서 우리가 외우고 실천하려고 하는데, 그 사이에 뭐가 있어? 일상수행을 하려고 했어. 근데 외우면 돼? 뭐해야 해? 실천을 해야지. 실천을 하려면 막 돼? 안돼. 뭐가 필요하냐. 반복이 필요하다. 이게 훈련법이야. 그래서 바로 일상수행의 요법 다음에 정기와 상시 훈련법이 오는 거야. 그래서 우리 교당에서는 항상 상시훈련법을 봉독을 하고 있는 거에요. 원불교 법의 최고는 일상수행의 요법이여. 그런데 그것을 실지로 실천으로 연결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냐, 상시훈련을 해야 한다. 상시훈련은 두 가지로 되어 있어. 자력으로 하는 상시 응용 주의 사항과 타력을 빌려서 하는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 그래서 자타력을 병진하게 되어 있다고. 그런데 속 없는 어떤 사람들은 정기훈련만 다녀. 그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교당만 다녀. 교당에서만 도인이야. 그게 아니라 모든걸 모아 보면 이렇게 되는 거야.
<판서> 정 - 수양 연구 à 정기훈련 동 – 취사 à 상시훈련 – 自 - 상시 他 - 교당
|
구조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정시 위주의 반복 훈련은 뭐냐, 수양연구 중심의 정시훈련인 거에요. 그래서 11과목을 하죠. 서로 일분일각도 끊이지 않게 해놨어. 그런데 상시 훈련은 취사 중심이에요. 중심이. 우리가 실행 잘하자는 거잖아. 실행이 있어야 깨침이 있던가 할거 아녜요. 그런데 실행을 잘하려고 했더니, 자력으로써 하는 실행이 있고 타력으로써 하는 실행이 있더라. 그런데 힘이 없을 때는 타력이 필요하지. 힘이 없을 때는 교당만 잘 다녀도 고맙지. 그런데 힘이 있을 때는 교당 잘 다니는 게 목표가 아녀. 교당이 주가 아니고, 주는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이여. 상시 응용 주의 사항에 여섯 개 조항이 있어. 이게 삼학인데, 여섯 개 조항 중에서도 일조를 하기 위해서 이걸 하는 거야. 일조를 도와주기 위해서 여섯 개가 있고. 이 여섯 개를 도와주기 위해서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이 있고,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을 도와주기 위해서 정기훈련이 있는 것이여. 이해가 되세요? 따라서 하세요.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이것을 하기 위해서 교당을 다니고, 이걸 하기 위해서 정기훈련을 하고, 이걸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 가장 행복을 불러오는 것은 온전 생각 취사여. 이것을 일심 알음알이 실행이라고 하지. 그래서 그 실행은 어떤 실행이죠? ‘사은보은’ 이다. 감사생활은 실행이다. 감사 보은 실천이 취사더라. 그게 정의더라. 이렇게 대종사님께서 교리 구조를 해두셨다 그 말이죠. 낙원은 그렇게 되면 낙원이 된다는 거니까 단회에서 하던가. 질문 받겠습니다. 하면 낙원이고 안 하면 안낙원인데. 감사합니다.
<3월 마음공부 책자> 광대무량한 낙원
대종사님께서는 파란 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으로 인도하려고 원불교를 여셨습니다. 그 방법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는 것입니다. 원불교는 물질문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구하는 정신도 바로 세우고 물질을 사용하는 정신도 바로 세워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함께 발전하도록 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정산 종사께서는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2장에 “본교의 설립 동기는 과학의 문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질문명을 선용(善用)하기 위하여 그 구하는 정신과 사용하는 정신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종사님께서 개교의 동기를 ‘극락’이 아닌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명시해 주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락이란 고락을 초월한 자리입니다. 상대야 어찌 되었든지 나만 초월하고, 나만 자유하고 나만 해탈해도 자성극락은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원’은 다릅니다. 낙원은 우리가 함께 할 때만이 얻을 수 있는 경지입니다. 만약 지금 내가 처한 곳이 낙원이 아니라면 그것은 내가 원불교 공부를 잘못한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극락을 얻기 위해 이 법을 표신 것이 아니라 낙원을 만들기 위해 이 법을 내놓으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대종사님께서 ‘전 인류’ 라고 하지 않으시고 ‘일체 생령’이라고 하신 것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대종사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제도의 범위를 인간에만 국한하지 않고 육도사생을 다 그 범위 안에 넣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광대무량한 낙원이란 어떤 상태일까요? 그것은 밖으로 ‘신낙원(身樂園)’과 안으로 ‘심낙원(心樂園)’이 이루어진 원입니다. 과학문명을 발달시켜 의식주 생활을 개선하고 빈곤·무지·질병을 물리치면 몸의 낙원이 되고, 도덕문명을 발달시켜 삼학 팔조로 사람의 마음을 개조하고 사은 사요로 세상을 건져서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면 마음의 낙원이 됩니다. 그런데 몸 낙원은 결국 100년 안에 무너지는 일생의 낙원이지만, 마음 낙원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영생의 낙원입니다.
개교의 동기와 마음공부 우리는 교단과 세상의 파란 고해를 많이 걱정해야 합니다. 주인은 걱정이 많지만 손님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는 교단과 세상의 주인이 되어, 파란 고해에서 헤매는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하신 대종사님의 경륜을 나의 경륜으로 받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
첫댓글 본문 320만년전 룻 -> 루시.. 아닐까용? 최초의 인류화석에 붙인 이름
매번 영상만 보다가 타이핑 자료 읽으니 이것도 어마어마한 은혜네요~쑥쑥 잘 읽혀요 법회 복습용으로 좋네욤 감사합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