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소중한 투바리가 하나 있다. 그 그릇은 친정어머니가 좋아 해서 40년 전에 산 귀한 그릇이다. 장인은 옹기 한 개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 천도의 장작불을 달구어 어머니가 배속에서 옥동자를 잉태하듯 혼령을 바친다. 산 중턱 긴 가마엔 갖은 정성을 바쳐 오랜 시간 수차례 손을 만지며 그릇을 만드는 장인은 마지막 까지 혼신을 바치는 도인 같은 모습 에서 숙연해 진다.
정성으로 만든 그릇이 탄생 되면 종유별로 질서 정연히 보물처럼 소중히 앉아 주인을 기다린다. 투발이 그릇에 된장을 풀고 조개와 두부 풋고추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끊여먹는 뚝배기 된장은 최고의 영양과 깊은 맛이 있다. 그릇보다 장맛이라고 했듯이 못나고 볼품은 없지만 단단하고 친환경적인 뚝배기 된장은 그 무엇에 비하랴, 평생을 먹어도 맛이 좋고 우리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고유의 음식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그 기량을 잃어 가고 외세의 물결 따라 음식 문화도 변해간다. 날이 갈수록 젊은 세대들은 우리 그릇과 음식보다 서양 음식을 선호하고 그릇도 화려한 장식용처럼 눈을 현란하게 하는 외제를 선호한다. 대형 백화점에는 외제와 일회용 물건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다. 정성 들이지 않은 그릇에 쉽게 한번 먹고 버리는 편리함에 길들여가는 오늘, 그릇처럼 인정이 매 말라가고 참을성이 없는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온 세상 곳곳에 일회용 쓰레기가 판을 치고 세상은 환경오염으로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정성으로 만든 우리 음식과 모든 것에 관심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인조 인간으로 변신해 가는 세상이 무섭고 걱정스럽다. 사람도 태어날 때 자신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큰 그릇 작은 그릇 놋그릇 사기그릇 유리 그릇 질그릇 많은 종류가 있을 것이다. 똑 같은 사람도 그 사람의 이름과 어떤 자리에서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그릇이 정해지고 있다.
나는 가계부를 적지 않는다. 지난날 가계부에는 하루 벌이는 것보다 지출이 더 많으니 냉기가 돌며 행여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오면 덥석 용돈 한 푼도 베풀 수 없어 마음속은 가시 방석이었다. 늘 어머니 말씀에 사람은 태어나면서 그릇대로 살고 자신의 그릇은 누가 빼앗아 가지 않는 다고 하셨다. 어머니 말씀을 교훈삼아 작은 그릇을 내 그릇으로 삼고 차라리 가계부 적지 않으니 부모님 혈육들에게 마음 편하게 인정을 베풀 수가 있었다. 설마 노력하는 만큼 내 그릇을 만들어 살아가겠지. 외모가 좋고 고급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며 최고의 높은 지휘와 권세를 가진 그릇이 있는가 하며,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어둠속에 새벽을 열며 거리에 청소하는 사람도 있다. 추위에 밤잠을 설치며 따끈한 국물을 파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들도 자신의 그릇대로 성실히 살아간다. 각양각색의 기능 소유자, 장사하는사람 운전기사 아저씨들 현장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 등 모두가 사명을 가지고 제 그릇 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그릇이 다 찬 사람이 더 많이 담으려다가 그릇이 넘쳐 다 쏟아 지는 경우도 있다. 되돌아보면 나의 빈 그릇을 채우기 위해 지난 세월 얼마나 허겁지겁 살아왔던가,
복도에 간장된장 고추장이 다복 하게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 거리며 가지런히 장독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옛 고향 어머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옹기를 굽는 가마에 가면 크고 작은 옹기 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있다. 작은 것은 큰 것 안에서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듯이 함초롬히 담겨있는 모습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순리대로 제자리에 앉아있다. 외형만 반질거리고 무게가 없는 것은 작은 물건을 담아도 쉬 깨어진다. 장인들은 옹기가 비뚤어지고 열에 약한 것이나 잘못 구워진 것은 가차 없이 깨어 버린다. 온 정성을 다 바쳐 만든 그릇 하나에 자신의 모든 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내 그릇의 크기는 어느 정도 일까 주어진 그릇을 얼마나 가치 있게 잘 사용하며 살고 있는가? 오늘 나의 그릇이 얼마만큼 큰지 소중히 쓰는지 알지를 못한다. 재래식으로 만든 그릇은 눈에 보이는 물질에 현혹되어 허울만 쓰고 속이 빈 유리그릇처럼 조금만 건드려도 깨어진다. 그릇들이 텅 비어 제 구실을 못하는 세상은 그릇 깨어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천지 개벽처럼 들려온다. 하루하루 삶의 꿈이 샘솟는 사랑과 자신을 갈고 닦아 혼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참다운 그릇이 만들어 질 것이다. 장인이 정성으로 빚은 옹기를 구어 내듯 우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 갈 때 소중한 그릇이 되리라 생각한다. 늘 생각은 주변에 이리저리 흩어진 어려운 것을 담고 싶은데 그릇이 얇아서 행여 저것을 담으면 깨어지지 않을까, 튼실하게 다져지지 않은 그릇은 늘 불안하다. 그러나 오늘도 다짐을 해본다. 넋이 담긴 그릇은 아니라도 갈수록 잊혀져가는 우리의 것을 중히 여기며 조상님의 혼과 얼이 담긴 뚝배기 같은 그릇을 다독이며 자손 대대로 물러 주고 싶다. 좀 투박하고 볼품은 없지만 깊은 애정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정성이 담겨있는 혼을 남겨주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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