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6:1~21
하나님과 대적자 사이에 있는 우리 자신의 자리에 대해서 나누려 함.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 있으려고 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것 같은데...실제로는 반역하는 자의 전형적 방식을 따르는 양상. 이미 그러한 부정적 정신을 나도 모르게 따르고 있는. 그 두가지 사이를 오가는 진자운동을 반복. 스스로를 관찰하면, 어떤 사람을 사랑스럽게 여기다가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은 욕망을 발견. 모두 내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가....마음대로 이용하고 싶은 욕망도 함께 있어. 하나님의 편이야..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 반대편에 있는 것을 따르는... 그러므로 '정당하게'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함. 겸손하고 단호하게 내면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 성찰이 없으면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음. 최근 사사기 묵상...사사시대는 가까이 있는 것, 또한 마음에도 있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괜찮다가도 철, 병거가 두려우면 문제가 발생. 나, 내 가족, 내 ㅇㅇ, 내 ㅇㅇ...만 살리려다 보면 그 밖에 대한 희생적 사랑은 부족한. 이렇게 하다 보면, 종국에는 하나님의 손을 놓게 되고..결국 자기의 행복을 찾아 떠남. 결혼식에서..'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망하는 길.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해서 그가 행복해졌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함.
어제 교역자들과 수련회... 사단의 도박성. 처음에는 따게 해 주다가. 처음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걸려 듬. 존재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 그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은 '첫 맛'에 넘거가게 됨. 모든 것이 결국 털털 털리는. 이단 경험자로서 많은 이들이 결국은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오늘 말씀을 통해 4가지를
1. 우리 하나님은 누구인가?
사 26:1, 당신의 완벽한 구원을 외벽으로 삼아서 완벽한 성읍을 만드시는 분. 구원이 가장 완벽한 것. 종종 구원받았는가?에 대한 질문. 그것은 내 의심과 불안, 그리고 그 의심과 불안을 믿는 것에 문제가 있음. 하나님은 이해해 주심. '안다... 그래도 버터라.' 내 불안을 아무리 투사해도 대안은 없다. 걱정, 불안, 근심을 아무리 작동해도 답은 없음에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할때... 그러다가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하나님의 구원이 완벽한 성읍이 라는 것이 믿어지면 누구 뭐래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 그렇게 되어야 힘들어도 길을 걸을 수 있음. 그것이 안 되면 길을 잃게 되는 것임. 그렇게 되면 자신의 행복에 몰두하게 되는 것임. 사람들이 이렇게 해도 문제 없이 사는 것. 오늘만 사는 사람은 오늘을 사는 이유를 모르고 당장의 욕망을 추구. (물론 하나님 안에서 하루를 추구하는 사람 말고). 구원의 문을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아무에게 열어주지 않는다. 2~3절. 신의를 지키는 자에게만 열어준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그리스도 밖에도 많다. 심지가 강하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이 전부인 사람' 계산하는 사람이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위조 지폐 식별하는 방법은 매일 진짜만 보는 것. 그렇게 되면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임. '이거 가짜 냄새가 나는데...'로 반응하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가짜인 것을 그냥 알게 됨. 13~14절, 우린 다른 주 노릇 하는 존재로 둘러 쌓여 있지만....우리는 안다. 이런 것이 심지가 강하다는 진정한 의미. 하나님 밖에 의지가 강한 사람은 많다. 하나님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즉각적으로 알고 행동하는 자가 심지가 강한 자. 평강은 복잡한 계산의 열매가 아니라 믿음의 열매임. 평강의 주체는 하나님. 그 분은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 내가 나를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믿는 것. 12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끌어가시는 것이 가장 우리를 위하는 것.
2.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행복을 버리고 자신을 유익을 따라가는 대적자는 누구인가?
적극적이었든, 소극적이었든... 양심과 만물에 심어 둔 하나님의 원리와 존재를 버린 자들.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에는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욕망이 더욱 강해서. 내가 하나님보다 우월하다는 욕망이 깔려 있는 것. 10절,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일으킴. 교만을 감추지 못하는. 엄청나게 미련한 모습.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정직하면 망할 것 같으니 정직을 버리는 현상. 7절, 정직하신 주계서 의인의 첩경을. 무지하면 무례함. 무례하면 하나님의 길을 버림. 망할 때까지 모름. 만약 의인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때 비로소 후회. 11절. 하나님이 백성에게 하는 것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임.
3. 끝없는 진지운동을 반보갛는 우리는 누군가?
7절,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해서 의로운 것이 아니라 의롭기 때문에 정직하게 되는 것임. 우리는 의인이라 인정받은 죄인. 우리가 붙든 그가 정직함. 망해도 이기고, 죽어도 사는 것...그것이 신자의 길. 망해도, 죽어도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가 이기고 사는 길로 인도하실 것임. 뒤틀린 길, 막다른 길이라도 괜찮음. 하나님은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막다른 길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 내 힘으로 애쓰는 것이 소용 없음. 내가 싸운 것을 내가 누리지 못하는 현상 같이. 바람같이 사라지고 말 허무. 허무를 느끼는 그 대상이 없다는 것에 괴로워하는 바보같은 삶. 거기서 벗어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메시지. 18절, 대학 동창 모임. 친구 목사의 한숨. 90되신 아버님 돌아심. 암 투병. 아버님의 결정 암과 함께 친구삼아 살 거야. 명랑하게 수 년을 살았는데.. 담당의사가 항암치료, 수술을 설득. 설득 당해서 수술하고 한 달 만에 사망. 의사도 돕고 싶어서였지만... 우리에게 있는 현상. 잘 해보려고 하는 것이 책임지지 못할 결과가 되는 것. 그게 사람의 일. 결과를 헤아릴 없음.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확실함. 은퇴하시는 목사님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사람은 사람, 하나님은 하나님.' 신자는 그런 것,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은 누구인지를 아는 자. 19절, 하나님은 생명을 일으키시는 자.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그것을 헤아리고 있는 사람은 절대 흔들리지 않음. 15~17절, 신자는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자들. 거센 정치, 군사적 문제 앞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듯 보이지만...승리하신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는 것임.
4. 3번과 같은 사람들(신자)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20절, 하나님의 심판의 칼 날이 덮을 때 숨어 있으라 그 때 해야 할 일? 8~9절, 주를 기억하고 사모하라. 좌충우돌하지만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자... 심판의 길목에서 기다리는 자. 그래서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자. 형은 부모님과 틀어져, 동생은 부모를 무조건 따라. 형의 폭행. 동생은 부모를 기다리는 갈망과 형에 대한 걱정 불안이 함께 있는 것. 이와 같은 것이 신자의 모습. 신자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변화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세상에 대한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임. 그렇지 않은 마음을 가진 자는 사단의 마음과 같지 않은가? 9절, 세계의 거민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배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것을 배우기를 갈망하는. 교역자 수련회 어떤 목회자님의 강의(성남과 제주를 오가며..). 어릴 때 상처가 큰 그 분. 부모님이 이혼, 새 엄마 미용사. 아버지가 목사가 됨. 교회 건축할 때 새엄마의 헌신. 너무 힘들어서 청빙쪽으로 가려고 하다가 부부싸움. 허리를 부러뜨리고 부러뜨린 상태에서도 아버지 폭력 지속.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음. 나중에 사회복지, 목회자가 되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음. 아버지는 부잣집 남자의 네 째 아내의 아들... 그 부친의 고통에 대해서 이해하게 됨. 한 영혼에 대한 배려와 수용. 사사기, 가나안의 정복은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는 과정. 대적자를 남겨 둠. 우리의 실패가 하나님 안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 진지운동..우리는 깔끔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품으심. "담대함 겸손"..우리가 헤맬 때. 그것을 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