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503)
라파엘로
라파엘로(Raffaello, 1483-1520)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양모 상인이자 은행가인 도메니코 가바리가
사후 자기 영혼을 위해 매일 미사를 올릴 수 있도록
움브리아주 북부의 작은 도시 치타 디 카스텔로에 있는
성 도미니코 교회의 성 예로니모 경당을 장식하기 위해 봉헌한 제단화이다.
이 경당 제단에는 아직도 석조 틀에 라틴어로 비문이 적혀 있는데,
“1503년에 도메니코 디 토마소 가바리가 봉헌하다.”라고 쓰여 있다.
가바리는 라파엘로의 첫 번째 제단화를 봉헌한 안드레아 바론치의 친구였고,
바론치는 치타 디 카스텔로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회에
<톨렌티노의 성 니콜라스 제단화>를 봉헌했다.
그림을 보면 십자가 위에 사지를 길게 늘어뜨린 그리스도가 있고,
은색의 구름 위에 균형을 잡고 서 있는 두 천사는 허리에 두루마리 띠를 두르고,
그리스도의 손과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성혈을 성작에 담는다.
이는 미사성제 중에 포도주가 성혈로 변모하는 성찬례를 연상시킨다.
미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부활의 약속은
가바리의 영혼을 위한 위로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고 있다.
이는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루카 23,44-45)라는 성경 말씀을 반영한 것이다.
라파엘은 달에는 은박을 사용했고, 해에는 금박을 사용했다.
십자가 위에 달린 명패에는 “I.N.R.I.”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란 뜻이다.(요한 19,19)
이 그림에서 십자가는 마치 무대 같은 갈색 전경에 서 있으며,
배경은 움브리아 지방,
아마도 치타 디 카스텔로가 멀리 보이는 발 티베리나 근처를 그렸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십자가 처형에 관한 성경의 일화는 그려지지 않고,
성인들이 명상하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대치되었다.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두 성인은
성 예로니모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존경과 동정심을 담은 눈길로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이는 제단에서 경배하는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자세이다.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 자줏빛이 도는 튜닉과 검은색 망토를 걸친 성모 마리아는
약간 뒤틀린 자세로 깍지를 끼고 슬픔에 잠긴 모습으로
감상자들을 바라보며 왼쪽에 서 있고,
오른쪽에 사도 요한은 희망의 색인 녹색 튜닉과 사랑의 색인 붉은색 망토를 입고, 깍지를 끼고 명상에 잠긴 모습으로 감상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회색 옷을 입고 붉은 띠를 허리에 두른 성 예로니모는
십자가 처형 때 그곳에 있지 않았지만, 교부 중 한 명으로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그곳에서 은수자로 살며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기에,
십자가를 향해 왼손을 벌리고 참회를 상징하는 돌멩이를 오른손에 쥐고 있다.
그는 그 돌멩이로 자기 가슴을 때렸으므로,
피가 흐르지는 않지만, 가슴이 붉어졌다.
성 예로니모가 십자가 아래 있는 인물에 포함되고,
프레델라에 그가 죽은 후에 벌어진 기적이 그려진 것은
이 경당을 성 예로니모에게 바쳤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남아 있는 프레델라 중 하나는 리스본의 고대 미술관에 있는
<세 명의 죽은 사람들을 소생시키는 성 예로니모>이고,
또 다른 프레델라 중 하나는 롤리의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에 있는
<실바누스 주교를 고난에서 구하는 성 예로니모>이다.
지역의 성 예로니모 수도원에 봉헌했고,
성 예로니모의 이름을 따서 장남의 이름을 지롤라모라고 지었던 가바리는
그의 장례를 위한 경당을 성 예로니모에게 바치기로 결정 했을 것이다.
이 제단화는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전반적인 구성은 1480년대 후반과 1490년대에 페루지노가 그린
풍경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하며
특히 페루자에 있는 산 프란체스코 알 몬테 수녀원의 제단화와 유사하다.
등장인물과 자세도 비슷하고,
페루지노 인물의 귀엽고 작은 타원형 얼굴과 양식화된 손짓도 닮았으며,
페루지노의 작품에 나타나는 대칭과 조화와 구성의 명확성의 원칙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페루지노 양식의 기법과 구성법에서 점차 멀어지고,
완전히 독창적인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그의 그림에서 풍경은 저 멀리 희미해지고
인물들의 감정과 영적 상태가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