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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김 남 천
“내가 다시 소생해서 이렇게 오늘 저녁으로 전선에 나가게 된 것은 말하자면 팔순이 가까운 그 할머니 덕분이지요”
하고, 1950년 8월 하순의 어떤 날, 낙동강 전선에서, 얼마 아니 격하여 있는 합천 관기리 야전 병원에서 한나절을 나와 같이 지낸 부상병 동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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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안의 전투를 결속지을 무렵에 나는 다른 두 동무 함께 거창을 돌아 적의 후방 종심¹ 깊이 침투하여 적정(敵情)을 정찰하고 돌아오라는 임무를 띠고 본대를 떠났던 것입니다.
당시 안의에서 괴멸의 운명에 봉착하였던 적들은 거창읍에서 합천 땅으로 들어서며 봉산 묘산을 거쳐 합천읍으로 나가 황강을 따라 낙동강 본류를 넘을 것이 예상되면서, 도중 몇 군데의 방어진지에서 패주하는 병력을 수습할 방도로 완강한 저항을 시도하리라고 추측되었지요. 우리들의 정찰 임무는 거창군 양곡리에서 합천 권빈리에 이르는 지역에 집결 중인 적 병력의 수량, 화력 및
그 매치 등이었습니다.
부대를 떠나자 이내 교전 지대를 돌아 적중 깊숙이 드는 것임으로 세 사람은 임무를 분담하고 세심한 위장을 갖출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동행 셋 중 두 동무는 권총을 휴대하고 농민처림 변장하였고 나는 인민군 전사복 위에 국방군의 웃저고리를 껴입고 전사모 위에 철갑모를 눌러쓰고 미국식 자동총으로 무장하였었지요.
셋이 모두 사민의 복색을 하는 것이 적중에 들기는 편하지만 일행이 전부 권총만으로 무장하는 것은 다소 허전하였고 큰 무기를 메자면 역시 사복보다는 군복이 자연스러운데 안팎으로 융통성있게 써먹자고 나는 철갑모를 쓰고 국방군 웃옷 밑에 우리 전사복을 받쳐 입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모두 부대장 동무의 지시로 한 것이지만.
복색 자체가 말하듯 두 동무에 대해서 나는 마치 호위와 같은 부차적 임무를 띠게 되었습니다. 거창 조금 못미처 하고리에서 셋은 길을 갈랐지요. 한 동무는 거창을 북으로 우회하여 남하면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동무는 거창 남쪽으로 무림을 꿰뚫고 남상먼에 들어가는 대신 나는 동무들이 돌아오는 동안 국군복을 입고 민정을 살피면서 거창 부근에 묻혀 있었지요.
이리하여 두 동무는 양곡리에서 권빈리에 이르는 지역에 집결 중인 적군 주력의 적정을 각각 정찰한 뒤 미리 작정하였던 시간에 하고리에서 거창읍에 이르는 작정한 지점에서 나와 다시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먼동이 트자 한 사람 국방군에게서 호송되는 두 사람 사민을 가장하여 피란민들에 섞여서 우리들은 무사히 산등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무명 6고지를 넘어선 곳에 마침 아늑한 샘물 터가 있어서 세 사람은 여기서 수집한 정보를 종합할 겸 휴대 식량으로 아침 요기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나는 총을 풀숲에 눕히고 두 개의 웃저고리를 모두 벗어젖히고 셔츠 바람으로 땀을 들일 수 있었지요.
그것은 참말로 상쾌한 아침 이었습니다. 안개가 벗어지면서 멀리 흰 바위틈을 돌아 흘러내리는 푸른 냇물을 쫓아 굽이굽이 휘감긴 하이얀 신작로가 군데군데 소나무 가지에 가리어서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것을 아득히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것입니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 맛은 말도 말고 아침 맛도 별미였고 담배 맛도 각별 했지요.
자아 인제 단숨에 본대로 달려가자고 막 우리들은 자리를 뜹니다. 두번째 옷을 꿰면서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일어서서 사위로 눈을 돌리자 아뿔싸 하고 멈칫 단추 꿰던 손을 멈추었습니다. 우리 있는 쪽을 향하여 몰려오는 한 소대 가량의 적의 부대를 발견한 때문입니다.
“오백 메타 전방에 적병 일 소대 가량 출현.”
셋이 모두 그쪽을 바라보고 일시에 다시 몸을 숨겼지요. 필시 안의 전투에서 패하고 허둥지둥 산줄기를 타고 후퇴 지점으로 몰려가는 것이 틀림없이 전의는 상실한 패잔병일 것이나 우세한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가 아니므로 우리는 흩어져서 각각 안전하게 본대로 돌아갈 것을 결정 했지요. 두 동무가 우선 골짜기를 따라 풀숲으로 빠져나갑니다. 나는 두 동무가 착탄 거리에서 벗어날 때까지 이들을 엄호할 임무가 있으므로 바위를 안고 전방을 주시하면서 차츰 비스듬히 하향선을 긋고 적이 오는 방향에서 떨어져나갑니다.
그런데 겁을 집어먹고 허둥대는 패주병 일수록 귀는 초롱처럼 밝은가 보지요. 앞서서 오던 몇 놈이 우뚝 서며 두리번거립니다. 나는 바짝 땅 위에 배를 붙였지요. 놈들 중의 한 놈이 손짓을 합니다. 다행히 내가 발견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손가락의 방향을 더듬으면 잔솔포기와 가당나무 숲을 흔들며 산 밑을 빠져 내려가는 무명 증의에 농립을 쓴 두 동무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남로당패다!”
하고 한 녀석은 카빈을, 또 한 녀석은 엠원을 들어서 연발로 쏘아댑니다. 그러나 이곳저곳서 공연한 총소리를 낸다고 꾸짖어대는 소리가 연방 들려옵니다.
“빨리, 빨리!”
서로서로 지저귀며 우르르 몰려서 선두에 섰던 놈들은 벌써 산고지를 타고 넘어갑니다. 총도 없이 맨손으로 뛰는 놈으로, 철갑모도 웃저고리도 없이 셔츠 바람으로 두리번거리는 놈으로, 어떤 놈은 숫제 군복 웃옷을 벗어버리고 배적삼을 걸친 놈도 있어서, 그 행색이 가지각색이지요.
그런데 질색할 일이 생겼습니다. 오십 미터 가량 간격을 두고 뒤따라오던 십여 명의 적병은 저희들 총소리에 놀래어 우르르 내가 엎디어 있는 쪽으로 산개하여 굴러떨어지듯 몸을 숨기며 총부리를 겨눕니다. 놈들은 총소리의 유래도 모르고 제풀에 놀랐을 뿐 아니라 빨리 가자고 서두르는 앞서간 놈들의 떠드는 소리에조차 착각을 가집니다. 잔뜩 긴장한 놈의 눈에 나의 철갑모가 보이고 이어서 내가 겨눈 총구에 놈의 총신이 후들후들 떨립니다. 그 순간 눈먼 총탄이 무수히 내가 엎드린 바위에 부딪칩니다. 드디어 나도 방아쇠를 닥쳤지요. 침착한 묘준²에 우선 두 놈이 침묵합니다. 그리나 유리한 위치에 산개한 적병들이 집중 사격으로 쏘아대는 총탄 속에서 잠시는 눈을 뜰 새도 없습니다. 다리께가
후끈합니다. 연이어 어깻죽지가 망치로 후려 맞는 듯 쩡 하고 울립니다.
한 놈, 또 한 놈, 두 놈의 시체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자 왼팔에 더운 것이 쭈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뿌리치듯 하며 나는 벌떡 일어섭니다. 밸이 꼴려서 고성으로 구령을 던지며 자동총을 한바탕 휘둘러 댑니다.
“이 분대는 좌측으로 돌고 삼 분대는 적의 측면으로 돌 것이며 일 분대는 정면에서 추적할 것!”
우수수 갈팡질팡 흩어지며 달아나는 적병의 그림자가 차츰 희미해지면서 나는 마침내 몇 발자국을 못 걷고 소나무 긁³에 엎드러졌지요. 엎드린 자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어서 노곤해진 육체는 두 고패⁴를 떼굴떼굴 굴러납니다. 사위가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나는 이대로 죽는 것일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나서 흐려지는 눈자위에 힘을 주며, 노동당 만세, 공화국 만세, 김 장군 만세를 입속으로 불렀지요. 마지막 만세가 입 안에서 느리게 읊조려지는 것을 남의 의식처럼 느끼면서,
‘죽어선 안 된다.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타일러보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이나 그럴수록 의식은 자꾸만 희미해져갑니다. 드디어 나는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얼마나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는지요. 내가 왼편 어깨와 오른 다리에 참을 수 없는 동통을 느끼며 다시 정신을 돌이켰을 때, 소나무의 그림자가 기다랗게 나의 옆을 두세 줄 건너간 것이 보였습니다.
참말로 이러다가는 아무도 모르는 개죽음을 할밖에 별도리가 없겠다고 나는 기를 쓰고 이를 악물며 총을 짚고 일어서봅니다. 그러나 도저히 일어나서 걸어갈 기력이 나지 않습니다. 피가 흥건히 흘렀다가 말라들기 시작하는 땅 위에 다시 쓰러졌지요. 갑자기 목이 타올랐습니다. 해가 넘어가기 전,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순간입니다.
어디에 아까의 샘물터가 있는 것일가? 그것을 찾아 헤매느니 차라리 골짝을 따라 신작로 가에 나서려고 생각합니다. 물과 인가를 찾는 외에 부대와 만나야 살 수 있다는 강한 욕망이 앞을 섭니다. 기어도 보고 미끄럼 타듯 지쳐도 보고 하면서 죽을힘을 다하여 움직입니다. 멀리서 포 소리가 나지만 포의 종류도 분간할 수 없고 소리 나는 방향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두 동무는 돌아가서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을 것이다.’
‘살아야 한다! 찬물로 목을 축이고 길 쪽으로 나가서 우리 군대가 거창을 향하여 진군하는 것과 만나야 한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때, 소로에 나섰고 그곳서 한 마장⁵ 가량을 다시 기어서 나는 어느 쓰러져가는 초가집 앞마당에서 기진했습니다. 인가가 있으니 마실 물이 있을 것이나 우물이나 냇물을 찾아볼 기력이 없습니다. 누가 있으면 들어서 알라고 힘껏 소리를 친다는 것이 아이구 하는 느린 신음 소립니다. 인기척이 있는 듯싶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부엌 토방을 미처 넘지 못하고 한 손에 총을 잡은 채 번뜻이 누워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신의 피로가 찬물에 씻은 듯이 시원히 풀려나갑니다. 불그레한 노을이 한옆으로 비낀 넓디넓은 하늘이 차츰차츰 나의 눈 위에 가까워지다가 그대로 그것이 명주 이불처럼 나의 전신을 가볍게 덮어주는 것 같습니다.
펄떡 정신이 듭니다. 확실히 인기척이 난 것에 귀가 번쩍 뜨인 겁니다. 총신을 짚고 몸을 뒤척이려 합니다. 어깨와 다리에 무서운 동통!
“거 누군기오?”
하는 가느다란 목소리.
군댑니다, 물 한 모금만 주십시오, 부상한 군댑니다 하며 가까스로 쳐다보는 눈에 방 아랫목에 동그라니, 그러나 터럭보다도 가볍게 앉아 있는 표주박만한 늙은 할머니. 얼굴이 온통 주름살로 욱여들고 까맣게 탄 이마 위에 가르마를 한 뼘이나 밀어던지고 은실 같은 머리카락이 얼깃살6처럼 갈라붙여 있지요.
“군대몬 와 거창 쪽으로 안 가고 아침 내로 신작로가 메게 거창읍으로 밀려갔는데.”
필시 나를 국방군으로 아는 모양이지요. 나는 다시 방 있는 편 댓돌 봉당까지 기어갑니다.
“할머니 국방군이 아닙니다. 인민군댑니다.”
조용히 할머니는 나를 굽어봅니다. 팥알만큼 반짝이는 두 눈에서조차 도시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내사 구신 다 된 늙은 거라 아무것도 모르니더.”
다시 얼굴을 돌려 산자 같은 수수깡이 앙상하게 드러난 윗목 바람벽께를 바라봅니다. 찬 서릿발이 이마와 두 눈 가에 비수처럼 스칩니다.
“할머니 리승만네 군대가 아닙니다. 국방군이 아니라 인민군댑니다.”
힘을 다해 외치듯 하고는 기운이 지쳐 댓돌 밑에 머리를 부딪고 엎드려버 렸지요.
할머니는 일어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때에야 나의 웃옷이 국방군의 것임을 깨달았으나 그것을 활짝 벗어버릴 기력이 없습니다.
“빨갱인 게오?”
문지방에 서서 묻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 입에서 나오는 냉랭한 그 말이 어쩐지 섬찍하게 느껴졌던 때문이지요.
“남로당팬기오?”
또다시 나직이 가느다랗게 묻는 것이나 눈을 감은 채 역시 이내 대답이 나지 않습니다. 나는 거의 애원하듯 머리를 들고 눈을 뜨며 ,
“할머니……”
그렇게만 불러보았지요. 할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소리 나지 않게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나의 옆으로 가까이 옵니다. 이윽고 그는,
“에구 이 피, 어데 다쳤노.”
그렇게 오므라든 입속으로 읊조리듯 하며 나의 군복께를 만집니다. 옷을 두 겹으로 입은 것을 그때야 비로소 똑똑히 압니다.
할머니는 내 몸을 곁들어서 부축하여 일으킵니다. 방이 누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잡니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며칠째 우물이란 우물은 국방군 것들이 죄 바닥을 냈으니 어디 시원한 냉수가 있어야지 라고 나직이 한숨집니다.
나를 안아서 방 가운데 눕히고는 자기도 따라 내 옆에 앉으며 노랑개란 것들이 개 몰리듯 쫓긴다고 아침 한나절 갈팡질팡했는데 어디서 이렇게 상처를 입었느냐고 묻습니다.
부대보다 앞서 거창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라니까, 할머니는.
“거창요?”
하고 놀란 듯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뜹니다. 눈 가장자리로 모여들었던 잔주름이 일시에 치켜올라갑니다.
“아 거창!”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 옷소매를 잡은 채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아 거창요, 하고 뇌면서 할머니는 내 옆에서 소리도 없이 일어납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에서 나가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답답한 얼마 동안을 아무것도 없는 봉당 내 풍기는 빈 방 안에 혼자 누워서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그때에는 목이 타는 것보다도 온몸에 아픔이 젖어들어 거의 의식을 잃을 성싶습니다. 쿡쿡 쑤시는 아픔이 가쁜 숨결처럼 가슴께를 뚜드립니다.
‘어디로 갔을까? 거창읍이 어떻다는 것일까?’
불길한 생각조차 머리를 스쳤으나 인제 모든 것이 될 대로 되라고 한편으론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체념이 가슴을 지그시 누르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골짜기 너머로 물매암이 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려 왔으나 그것조차 어쩐지 구성 지기 그지 없더군요.
펀뜻 고향 생각이 납니다. 할머니, 어머니, 누이동생, 그들은 지금 내가 이렇게 하염없이 죽을 경지에 헤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살그머니 꿈결처럼 들려오는 할머니의 발자취 소리. 나는 일시 그것이 내가 고향에 두고 온 할머니의 발자취 소리로 혼동합니다.
번쩍 눈을 뜹니다. 내가 누워 있는 옆에 할머니가 서 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표주박처럼 작다란 아까의 그 할머니였지요. 두 손에 무엇을 들었던 것을 방바닥에 놓고 그는 부엌으로 나가 한 양푼 냉수를 떠갖고 들어옵니다.
“자아 은자 저인 좀 채려보소.”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야위었으나 아까와는 딴판인 인정이 풍기는 음성인 것을 나는 이내 느낄 수 있었지요.
파초 잎을 아무렇게나 그린 팔각이 난 푸르딩딩한 단지기⁷와 그 옆에 중의 동냥 자루 같은 자루 주머니와 그리고 외올 무명 한끝이 베치마 앞자락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찬 곳에서 갑자기 꺼내온 것 이 분명 한 것이 단지기에는 서릿발이 잡힙니다.
단지기 뚜껑을 열어놓고 소복이 담겨 있는 산청 가운데로 놋숟가락을 푹 박습니다. 그리고는 잽싸게 꿀을 떠서 냉수 그릇에 옮깁니다. 물에 알맞추 꿀을 떠놓고는 그 숟갈로 다시 자루에서 미숫가루를 퍼냅니다. 한 손으로 양푼을 누르고 익숙한 솜씨로 숟갈을 젓습니다.
“자아 이거로 좀 드이소, 면저 기운을 돌리야 되니이더.”
아프지 않은 팔로 가슴을 고이며 두 손으로 받쳐주는 손 양푼에 입을 댑니다. 입술에 닿는 놋그릇이 선뜩 찹니다. 단숨에 반 양푼을 마시고는 잠시 숨을 돌렸으나 그러나 이내 다시 입을 대어 벌떡벌떡 소리를 내어 들이켜버립니다. 이마에 땀을 주욱 뿜으며 나는 다시 덥석 누워버렸지요.
‘살았다!’
속으로 우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기가 금시 샘솟듯 솟아납니다.
‘인저 나는 살았다!’
그때 우르르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소란스럽 게 달려듭니다. 가슴이 섬찍 했으나,
“어서 다 들오소”
하는 할머니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지요.
“이 동뭅니까?”
씨근거리는 높은 숨결들이 서너 너덧 맞부딪칩니다.
“아아.”
감격한 외마디 소리를 제가끔 지르며 숨결 높은 장정들이 누워있는 나를 가운데로 하고 쭉 둘러섭니다. 나는 눈을 크게 떴습니다. 모든 것을 한눈에 또 대번에 보아버릴 듯이.
“동무!”
다리께를 타고 넘으며 그 중의 하나가 불쑥 손을 내밉니다. 그들은 이 동네 노동당원들이라고 하면서 며칠 전에 모두 동네로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내 오른손을 맡기며 어쩐지 울컥 솟구쳐 올라오는
눈물을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 군대의 동무는 첫 분이십니다.”
또 하나의 얼굴이 그렇게 외치듯 하며 내 눈 앞에 크게 확대되어 보이었으나 넘쳐흐르는 눈물에 어리어 나는 드디어 그의 얼굴도 아무의 얼굴도 얼굴의 표정들도 분간할 수 없었지요. 성한 몸으로 늠름히 나타났어야 할 군대 대신에 출혈에 새파랗게 질린 양초 가락 같은 부상병이 한 팔 한 다리로 간신이 엎어지고 기고 하면서, 하루를 천추처럼 몇 해째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그들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 어이 기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보게들 그만두소. 어서 상처를 이거로 처매고 떠날 채비를 해야지.”
그들이 손목을 놓는 대로, 그들이 외올 무명을 끊어서 상처를 동이는 대로 아픔도 괴로움도 모두 잊어버리고 나는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에 얼굴을 적실 뿐이었지요.
출혈엔 꿀물 이상이 없다느니, 이제 여기서 이십 리만 가면 우리 군대의 선발대와 만나게 되리라느니, 곧 달이 뜰 것이라느니, 군대와 만나는 대로 급히 손쓰면 요맛⁸ 상처는 이내 아문다느니 서로 두런거리는 것을 마치 응석받이 아이처럼 누워서 몸을 맡기고 귓결로 들으며, 그러나 나는 할머니와의 나직한 대화를 흘려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아니 이 꿀과 미숫가룬 다 웬 겁니까? 하는 어느 동무의 물음에 할머니는 나직 이!
“그 일 있인 뒤로 가아가 혹시 들르더라도…… 그때 꿀을 찾기로”
라고만 대답하는 것이었으나, 그 일 있은 뒤라니 무슨 일인지? 혹시 그 애가 들르더라도라니 그 애가 누군지? 모두 그 당시의 나로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들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뒤에 부락 동무들한테 들어서 안 일이지만 할머니는 금년에 일흔여덟에 나시는데 면에는 아들네 양주와 손자까지 도합 네 식구가 살아왔답니다.
아들은 1946년 10월 항쟁 때 농민 폭동의 선두에 섰다가 놈들의 흉탄에 쓰러졌고 손자는 1948년 2·7 구국 투쟁 때 산으로 올라가서 빨치산이 되었답니다.
동무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그때 열아홉의 이 청년 빨치산은 군당 빨치산에 소속되어 금룡산 덕유산을 근거지로 소백산맥의 등을 타고 5·10 단선 분리와 8·25 총선거 투쟁 등을 거쳐 줄기차게 싸워 나아갔고, 여수 순천 항쟁을 계기로 그 이듬해 이른 봄부터는 지리산 유격대의 휘하에 들게 되었다 합니다. 겨울과 봄에 걸쳐 놈들의 가혹한 소위 트벌 작전의 어려운 시련에서 단련된 유격대들은 대열을 정비하여 작년 1949년 이맘때 드디어 저 유명한 도읍 작전인 거창읍 진격을 신호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을 근간으로 또한 한편으론 호남 평야 일대에 퍼져나간 야산대의 활발한 투쟁에까지 그렇듯 광대한 유격 지구를 이루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여하튼 거창 진격이 있은 뒤 경찰놈들은 유격대원의 어머니를 데려다가 아들의 거처를 대라고 갖은 고문을 다하였으나 끝내 자기 아들이 거창 진격 얼마 전에 집을 다녀간 사실조차 깊이 가슴속에 품은 채 놈들의 혹독한 심문에는 일찍이 남편이 그러했던 겻처럼 목숨을 조국 앞에 바치는 것으로 유일의 대답을 삼았답니다.
그러니 남은 가족은 할머니 한 사람뿐으로 되었지요. 할며니의 ‘그 애’란 빨치산 동무를 가리킴일 것이요, ‘그 일’이란 거창 진격 사건과 아마도 며느리의 사건을 함께 몰아서 말함일 것이요, 거창이라는 말 자체에서 할머니가 받는 충격이 큰 것 역시 그 탓인가 합니다. 빨치산 동무는 정보 수집차 고향에 들렀다가 밤을 타서 잠시 집에 들렀던 모양이고 할머니의 대답에서 미루어보면 그때에 지나는 말로 꿀이나 미숫가루가 없는가고 물었던 것 같다 합니다. 이래 일 년 동안 꿀과 미숫가루를 독 속에 넣어 깊이 묻어놓고 기다리는 빨치산 손자는 나타나지 않고 그 동무 대신에 인민군대의 첫번째 군인으로 내가 그곳에 나타난 셈이 되었지요.
“동무! 인민군대 동무!”
하고 어깨와 다리의 상처를 처매고 난 부락 동무들은 이미 그때에는 어둡기 시작하는 방 가운데 우중충하게들 늘어선 채 나를 정색해서 부릅니다.
감사합니다. 동무들! 하고 나는 오른손을 허공에 들어 사의를 표하려 하나 그들이 나를 찾는 것은 그런 것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지요.
“우리는 동무를 모시고 우리 군대의 선발대가 진격해 나오는 방향으로 맞받아 출발할랍니다. 야전 병원이나 후방 병원으로 한시 바삐 모시고 가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일 게요.”
나는 오직 동무들의 분초를 다투는 조처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뿐이었습니 다.
할머니는 벌써 마당에 나가 들것에 멜빵을 매고 배기지 않게 깔개를 깔고 하며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동무들은 나를 맞들어 뜰 가운데로 나릅니다. 달이 솟으려고 사위가 우련하니 밝아옵니다.
“할머니!”
내미는 나의 손길에 할머니의 말려올라간 베옷 자락이 스쳤고 이내 작다란⁹ 그의 손이 나의 손 속에 들었습니다.
“할머니!”
나는 다시 또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덤덤히 이미 팔순이 가까웠을 그의 얼굴만 쳐다봅니다. 달빛이 팔십 년 동안의 고난의 자국인 잔주름들을 파란 망사로 감추어줍니다.
“어서 속히 나사서 싸움터에 나서야지.”
할머니는 내 곁에 서서 그렇게 대답합니다.
“꼭 낫습니다. 나아서 곧 전선에 나서겠습니다.”
이윽고 나를 눕힌 들것은 동무들의 어깨에 들려서 소로를 거쳐 신작로로 나섭니다. 들것 옆에 밭게 섰던 할머니의 상반신조차 네 동무가 앞으로 전진함에 따라 나의 시야에선 벗어져나가고 나는 오직 뭇별이 비 오듯 하는 가이없는 파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걸음에 맞추어 북두칠성과 은하수가 우쭐우쭐 춤을 추며 저편 가로 느리게느리게 이동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은 그날 밤 자정 안으로 진격하여오는 우리 군대의 척후대와 만났고 나는 곧 접수과로 넘어가서 응급 처치를 받고 그 뒤 군의 소로 야전 병원으로 전전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입니다. 한 번도 후방 병원에 후송되지 않은 것은 전선과 떠나기 싫은 나의 고집에서였지요.
그러니 내가 이렇게 몸을 고쳐가지고 오늘 저녁으로 다시 본대를 따라 낙동강 전선에 나서게 된 것은 말하자면 그 팔순이 가까운 할머니 덕분이지 않습니까?
나는 부상병 동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나서 이 짤따란 이야기가 남기고 가는 여운을 따라가노라고 잠시 아무 대꾸도 건네지 못하였다.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그는 무연히 읊조리듯 하는 것이었다.
빨치산의 청년 동무는 그 뒤 한 번쯤 자기 집에 들러볼 수 있었는지? 혹여 아직도 팔순의 할머니는 표주박처럼 빈 방을 지키고 앉아서 영웅적인 자기 손자가 나타나는 날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지나 않는지?
-끝-
2016년 5월 3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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