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사데 교회는 온통 책망 받을 것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 중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옷을 더럽힌다는 것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뜻이다. 로마 사회는 오늘날보다 더 성적으로 문란했다고 한다. 역사상 로마보다 더 문란한 사회는 없었다고 한다. 궁전의 파티에서는 가면무도회가 있었고, 거기는 왕뿐 아니라 왕비도 가면을 쓰고 정원 아무 데서나 낯선 남자와 성교를 나누었다 한다. 사람은 본디 조금은 가난하고 조금은 괴롭게 생을 살아야 하는데, 너무 풍요롭고, 너무 평안하면 어떻게 즐길까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못할 짓이 없게 된다. 그런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제로는 죽은 사데 교회에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예수님께 격려를 받고 있다.
세상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양극화되는 가운데 있다. 악한 사람은 전에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악하지만, 의로운 사람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의로워진다. 신세대 가운데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깨끗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동성애와 수간이 용인되는 유럽에서도 정말 진실한 신앙인들을 나는 많이 만나 보았다. 그들은 대개 우리나라의 신자들보다 훨씬 진실하고 온전한 사람들이었다. 진실된 신자들의 수도 우리나라보다 아마 독일에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들의 삶은 삶 자체가 모든 것을 남을 위하여 나누고 베푸는 삶이었다. 일 년의 휴가를 몽땅 바쳐서 아프리카에 가서 우물을 파는 데에 몰입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도 넉넉하지 않은 월급쟁이면서 남이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면 부인과 의논해서 돈을 나누어 주는 사람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악하다고 하여 탄식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작은 것 하나라도 감당하여야 한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선 안 된다. 예수님은 항상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다 들여다 보고 계신다. 남을 비판하고 시대를 한탄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고, 내가 나를 지키고 가꾸고 발전시키고, 나아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울리는 꽹과리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데교회의 소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