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근합니다》
제83화 「둘만의 야근」
생일 파티가 끝난 지 며칠 후.
한빛패션 본사.
일본 프로젝트 마감이 다가오면서
기획팀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사무실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오대리가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먼저 갑니다."
박주임도 가방을 들었다.
"내일 일찍 봐요."
최인턴은 꾸벅 인사했다.
"좋은 밤 되세요."
이민재도 노트북을 닫았다.
"자료는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과장이 시계를 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오늘."
"칼퇴는 실패."
"그래도 집은 간다."
김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하나둘 사무실을 나섰다.
어느새 넓은 기획팀 사무실에는
윤하늘과 강서준만 남았다.
창밖에는 늦은 밤 서울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컴퓨터 소리만 조용히 들렸다.
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강서준은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잠시 후.
탕비실.
커피머신이 조용히 작동했다.
하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강서준은 늘 마시던 블랙커피를 들고 나왔다.
사무실 한쪽 작은 테이블.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누군가 퇴근하며 켜 놓고 간 잔잔한 재즈 음악이
사무실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었다.
하늘이 미소를 지었다.
"이 시간 사무실은."
"낮이랑 완전히 다르네요."
강서준도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용해서."
"생각하기 좋습니다."
잠시 침묵.
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편안한 침묵이었다.
하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강서준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습니다."
"여동생이요?"
"네."
"지금은 지방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강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때는."
"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지금도 전화하면."
"오빠, 밥은 먹었어?"
"그 말부터 합니다."
하늘가 웃음을 터뜨렸다.
"팀장님도 그런 말을 듣는군요."
"네."
"잔소리는 여동생이 더 심합니다."
둘은 함께 웃었다.
이번에는 강서준이 물었다.
"하늘 씨는요?"
하늘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희 집은."
"부모님하고 남동생이 있어요."
"아버지는 작은 가게를 오래 하셨고."
"어머니는 늘 가족부터 챙기셨어요."
"그래서인지."
"저도 누군가를 챙기는 게 익숙해졌어요."
강서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팀원들을 그렇게 잘 챙기시는군요."
하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매일 울었어요."
"혼도 많이 나고."
"실수도 많았고."
"퇴근길에."
"'내일은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많았어요."
강서준은 놀란 표정이었다.
"몰랐습니다."
"말 안 했으니까요."
하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출근하는 게 좋아요."
"왜 그렇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하늘이 대답했다.
"이제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강서준은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회사에서는 늘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웃는 것도."
"실수하는 것도."
"조심했습니다."
하늘이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AI 팀장이었군요."
강서준은 피식 웃었다.
"그 별명."
"알고 있었습니다."
하늘는 얼굴이 빨개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 붙인 별명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서운했습니다."
잠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지금은."
"재미있습니다."
둘은 한참 동안 웃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늘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
"팀장님 이야기를 처음 들었네요."
강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하늘 씨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잠시 침묵.
하지만 그 침묵은
이제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사람들의
따뜻한 여유였다.
퇴근하기 위해 불을 끄고 사무실을 나서며
하늘이 웃으며 말했다.
"팀장님."
"오늘 커피."
"정말 맛있었습니다."
강서준도 미소를 지었다.
"커피보다."
"대화가 더 좋았습니다."
하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환하게 웃었다.
"저도요."
늦은 밤.
조용한 사무실에서 나눈 가족 이야기는
두 사람의 거리를 또 한 걸음 가까워지게 했다.
사랑은 아직 고백되지 않았지만,
서로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에게 가장 편안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 제84화 「마음을 들킨 사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