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 수 17 ; 12-18 주어진 은사가 부족할 리가 없다 !
살다가 보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가 자신 보다 나은 점이 있울 때 불만족스러워 하며 불평 하기도 합니다.
상대적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빈곤하지 않는데도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이 빈곤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불만족과 불평과 욕심만이 나올 뿐입니다.
그러한 생각 속에서는 하나님 우선인 생각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과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 하여 주심을 감사 하는 마음이 생겨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족 하는 생활과 매사에 감사드리는 마음과 기뻐 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다른 사람의 여건과 자신을 비교하려고 하는 마음 자체를 빼내서 버려야 합니다. 사단은요 수시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한숨 나오게 만듭니다.
오늘 내가 움직이고 일하고 있다는 자체가 감사 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를 감사하며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의 일이 내 앞에 있게 되고 그것 때문에 편안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주신 은혜에 자족하며 감사 할 줄 알아야 내일의 소망이 내게 다가 오는데 그것을 착각하고 오늘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면 내일은 불만족으로 만들어져서 내게 다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편한 일만 생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내 자신이 내일의 불편한 일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내일의 불평의 소리를 스스로 오늘 만들어 놓고 내일을 맞으니 그 불평할 일과 불만족스러운 일들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가요 자신들이 미리 만들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읽은 본문 속에서 분배 받은 기업에 대한 요셉 자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으로 받은 땅이 좁다는 것입니다. 요셉지파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로 나누어져 있으니 한 분깃이 아닌 두 분깃을 받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배 받은 그 땅에는 막강한 철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속이 있으므로 여호수아 명대로 스스로 개척하여 차지 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다른 지파에 비해 자기들 지파가 손해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은 용납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미 분배 받은 땅은 다른 지파 것보다 광대하고 전체 가나안 땅 중에서 가장 기름지고 교통도 편리한 요충지였습니다. 그리그 그들이 겁내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철병거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병거를 가진 가나안 사람들은 아직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복하지 못한 다른 가나안 땅 전역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지파든지 분배 받은 땅을 온전히 차지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가나안 족속들과 치열한 일전을 치러야만 하는 일들이 아직도 많이 있을 때입니다.
물론 그들이 출애굽 할 때부터 지켜 주신 하나님을 의지 해서 싸우기만 하면 능히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요셉지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요셉 자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올바로 활용 하기만 하면 풍요로운 땅을 차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땅에 아니라 그 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능력에 힘입어 자기들에게 분배 받은 땅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온전히 차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현대의 상식과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남이 잘 살고 있는 땅을 내 쫓고 차지 한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용납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허나 고대 사회에서는 그렇게 차지 하고서 살아와서 현대에서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존재 하고 있는 이 땅도 조금은 작지만 수많은 침략전쟁을 받고서도 우리의 조상들과 군인들이 목숨바쳐 지켜낸 것입니다. 만주벌판까지도 우리의 땅이었지만 빼앗긴 것이 못내 아쉽지만 중국보고 우리 땅이니 내어 놓으라고 한다면 들은채나 하겠습니까? 김치도 한복도, 비티에스도, 심지어는 아이유도 자기네 사람이고 상추쌈도 자기네가 원조라고 헛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우리네 고대 역사를 모두 자기네 것이라고 현재도 조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은요 중국이랑 별반 다름 없이 김치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데 좀 유명해지는 것이 나오면 한국 것은 무조건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침략해서 모든 것을 차지하고 우리네 한글도 말살 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입니다. 하다못해 성과 이름도 일본식으로 다 개명하라고 강제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때문에 한국이 지금 같이 잘 살게 되었으니 지금 일본이 상당히 어려우니 당연히 한국이 일본을 도와야 한다고 생때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북은 어떴습니까 아직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북입니다. 미국은요 인디언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고 죽여서 차지한 땅입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여러나라도 유럽의 여러나라의 식민지화 되어져서 노예로 팔려가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가 해방이 되었지만 지금도 극심한 기후와 빈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거기에다가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슬로건을 앞세워서 도와 준다고 돈을 꾸어 주어서 갚지 못하자 그 나라들의 항구나 좋은 땅을 99년동안 공짜로 차지 하려고 하는 속셈을 드러내놓고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약해 지면 언제라도 침략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 간에 일어나고 있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은요 요사이도 치열한 전쟁 중입니다. 다행이 유엔과 이집트가 중간에 서서 휴전 하기로 했지만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고대 사회로부터 지금까지 이어 오는 땅싸움입니다.
불평의 현실은요 싸움과 질시 뿐입니다. 불만족의 현실은요 시기와 증오 뿐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 받아서 쓰고 있는 현실을 다른 사람이 받아서 쓰고 있는 현실과 비교해 보고 부족하다고 불평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부러워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하찮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정말 부족한 것은 자신이 받은 은사가 아니라 그 받은 은사를 올바로 활용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그 은사를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나 자신보다도 더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니까 우리인 나에게 주어진 은사가 부족할 리가 없습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삶이 이 귀한 믿음을 갖고 사는지 의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 많은 사람들과 앞서간 수 많은 신앙인들의 행적을 보면 무두가 다른 사람들 보다 특별히 더 뛰어난 은사를 가졌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들 보다도 더 어렵고 힘든 환경과 여건에서도 더 보잘 것 없는 지식과 더 적은 소유물을 가지고도 살아 온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그 열악한 환경과 여건임에도 순종 하는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끌어 주셔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바로 선한 도구로 써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처한 환경과 여건에 감사하며 자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 드문 이 시대이지만 바로 여기에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지금 현재의 여건과 환경을 그대로 보며 안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주시는 은혜의 소리에 따라 순종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혁신의 변화가 놀라운 은혜의 열매로 열려 질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요셉 자손들이 기업의 추가 요구의 근거로 삼은 것이 예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 주심으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다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인구 조사를 한 결과 요셉 자손의 인구가 85200명이엇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마는 고대 사회에서는 많은 자손이 있는 것을 가장 큰 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요셉 자손은 스스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땅히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에서는 감사 대신 불평을 쏟아낸 것입니다. 그들에게 베풀어진 은혜를 감사의 조건으로 삼아야 하는데 도리어 불평의 근거로 삼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오늘 현재 언행심사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 이겁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불평하면 그 은혜를 쏙 빼서 버리는 결과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은혜라도 그것에 감사하며 자족 할 수 있다면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창대케 될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 주신 은혜가 우리 눈에는 아주 작고 미약하더라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걸 믿고 그것에 감사하며 자족한다면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용 하시는 귀한 존재요 선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