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의 능엄경 강해] 2. 외도의 주문에 걸려든 ‘아난’
2. 마등가녀의 주문
〈원문〉
“그 때 아난이 탁발을 나가 음실(딫室) 옆을 지나다가 환술(幻術)을 하는 마등가녀(摩登伽女)를 만났다. 마등가녀가 사비가라선범천주(娑毗迦羅先梵天呪)로써 아난을 음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음탕한 몸으로 아난을 어루만지며 파계(破戒)시키려 하였다.
이 때 바사닉왕이 부왕의 기일(忌日)에 재를 베풀고 부처님과 제자들을 궁궐로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궁궐에 가서 공양을 마친 뒤 부처님이 아난이 마등가녀에게 붙들린 것을 알았다. 부처님은 궁중에서 하시려던 설법을 생략하고 서둘러 기원정사로 돌아오셔서 정수리에서 백보무외광명(百寶無畏光明)을 놓았다. 그 광명 속에서 꽃잎이 천 개나 되는 보배 연꽃이 생기고 그 속에 부처님의 화신(化身)이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신주(神呪)를 설하셨다. 그리고 문수사리를 시켜 주(呪)를 가지고 가 아난을 구해오게 하였다. 문수가 음실에 도착하자 마등가녀의 악주(惡呪)가 소멸되고, 아난과 마등가녀를 데리고 부처님 계신 기원정사로 돌아왔다.
아난이 부처님을 뵙고 절을 하고 슬피 울면서 자신이 다문(多聞)만 하고 도력이 온전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시방 여래께서 보리를 이룬 미묘한 사마타(奢摩他)와 삼마(三摩) 선나(禪那)의 최초 방편을 은근히 청하였다.”
〈강해〉
경전의 설법이 어떤 동기에서 설해졌는가 하는 것을 교기인연(敎起因緣)이라 한다. 〈능엄경〉의 교기인연(敎起因緣)은 탁발(托鉢)을 나갔던 아난이 돌아오다 마등가녀의 주문에 걸려든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비가라선범천주’라는 외도의 주문에 아난이 끌려들어 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비록 외도의 주문이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위력이 있음을 넌지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이는 7권에 설해져 있는 능엄신주의 위력과 공덕이 수승함을 알게 하는 예비적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능엄경〉 안에 내재된 밀교적 요소를 은연중에 드러낸 단면이기도 하다. 아난이 음실에 끌려 들어가 사문의 위의를 잃고 파계하게 될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 마등가녀는 모녀 두 사람을 말한다. 마등가라는 말은 인도의 천한 신분이었던 매음(賣淫)을 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길을 가는 아난을 보고 그 용모에 반한 딸이 어머니에게 아난을 집으로 불러들여달라 떼를 써서 어머니가 사람을 홀리는 주문을 외우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마등가경〉이라는 별도의 경전에서도 나와 있다. 아난은 용모가 수려하여 부처님과 매우 닮았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의 32상 가운데 20상을 아난도 갖추었다는 설도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석가족 출신으로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다. 또 친형이 교단에 반역을 꾀했던 데바닷타였다고 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난 뒤 경전을 결집할 때 아난이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을 500비구 대중 앞에서 모두 외워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난을 경가(經家)라고도 한다. 이런 아난이 바사닉왕의 공양 청에 가지 않고 별도의 청을 받아 나갔다가 외도의 주문에 걸려 위험한 처지에 빠진 것이다.
이때 바사닉왕의 청을 받아 궁중에 가 계시던 부처님이 급히 절로 돌아와 문수보살을 보내 아난을 속히 데려오게 한다. 부처님 앞으로 돌아온 아난은 자신의 수행이 온전치 못함을 부끄러워한다. 부처님을 곁에서 모셨던 아난은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로 알려져 부처님 말씀을 다 알고 있었지만 수행의 내공(內功)이 부족하여 외도의 주문에 걸려들었다고 자책을 한 것이다. 문수가 아난을 데려오자 부처님이 아난에게 출가동기를 묻는다. 이 대목에서 〈능엄경〉 설법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에 아난이 부처님의 상호가 뛰어남을 보고 출가하였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다시 무엇으로 보았느냐고 묻고 아난은 눈과 마음으로 보았다고 대답한다. 이에 부처님은 눈은 네 얼굴에 있지마는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여기에서 1권의 대의인 ‘칠처징심(七處徵心)’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