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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 스크랩 성학집요 12(輔德)
시너먼 추천 0 조회 21 12.12.30 10: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11장. 보 덕(輔德)

 

신이 상고하온즉, 천자로부터 필부(匹夫)에 이르기까지 친구를 기다려서 덕을 이루지 않음이 없으니, 증자의 이른바, "친구로 인(仁)을 돕는다."는 말이 이것입니다. 스스로 <몸을> 다스리는 조목들은 이미 앞에서 갖추어 말하였으므로 보덕(輔德)에 대한 것을 그 다음으로 하여, 바른 선비를 친히 하여 간하는 것을 좇아 허물을 고치는 뜻을 논술합니다.

◆ 바른 선비를 친근히하는 일에 대한 말씀

공자는 말하기를, "유익한 친구가 세 친구요, 손해 되는 친구가 세 친구이다. 곧은〔直〕친구와, 성실한〔諒〕친구와, 들은 것이 많은 친구는 유익하고, 편벽(便)된 친구와, 아첨을 잘하는 친구와, 편영(便)된 친구는 손해가 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친구가 곧으면 자기의 허물을 듣게 되고, 친구가 진실하면 정성스러운 데에 나아가게 되며, (양(諒)은 믿음직스러움입니다.) 친구가 들은 것이 많으면 밝은 데에 나아가게 된다. 편(便)은 익숙한 것이니, 편벽은 위의(威儀)에 익숙하고 곧지 못함이다. 선유(善柔)는 잘 뵈여 기쁘게 하는 데에만 잘하고 진실하지 못한 것이며, 편영은 입으로 말하는 데에만 익숙하고 듣고 본 실적이 없는 것이니, 세 가지는 손해와 이익이 서로 반대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따르는 신하〔僕臣〕가 바르면 임금도 바르고, 따르는 신하가 아첨하면 임금은 제가 잘난〔自聖〕줄 안다. 임금의 덕도 신하에서 오고, 부덕(不德)도 신하에서 온다. (주서(周書) 경명편(命篇) ○목왕(穆王)이 백경(伯)에게 명하여 태복정(太僕正)을 삼은 글.)

채씨는 말하기를, "자성(自聖)은 스스로 성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옛날부터 소인이 임금의 덕을 깎아버려 어둡고 사납고 사치하고 방종하게 하는 일이 어찌 다함이 있으리요. 스스로 잘난 체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해되는 것이 옅은 것 같은데, 목왕이 홀로 이 말로써 결단해 말한 것은 대개 소인이 그 임금을 혹하게 하여 반드시 헛된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부풀게 하여 거만스럽게 스스로 잘난척하게 되면 누구나 자기 같은 사람이 없다 하고, 제 말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런 후에는 법도 있는 사람과 바른 말하는 선비는 날로 멀어가며, 유쾌하고 마음대로 하는 일이 혹시라도 그 사이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스스로 잘난 척 하는 징조가 이미 나타나서 온갓 병이 따르는 것이다. 어둡고, 사납고, 사치하고, 방종한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니 의논할 것이 못된다." 하였습니다.

종축(宗祝)은 사당에 있고, 삼공(三公)은 조정에 있으며, 삼로(三老)는 학교에 있다. 왕의 앞에는 무당이요, 뒤에는 사관(史官)이며, 복서(卜筮)와 고유(侑)가 모두 좌우에 있으니, 왕은 중앙에 거하여 중심에 하는 것이 없다. 지극히 바른 것을 지킬 뿐이다. (예기)

진씨(陳氏)는 말하기를, "사당에는 종축이 있고, 조정에는 삼공(三公)이 있으며, 학교에는 삼로(三老)와 오경(五更)84)이 있어 예교(禮敎)를 밝혀 천하를 착하게 하는 것이 아님이 없는데, 임금이 그 가운데 거처하니 그 마음이 무엇을 할 것인가. 임금이 도리의 지극히 바름을 지키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서산 진씨(西山眞氏)는 말하기를, "무당은 제사를 맡아서 귀신의 일로 왕께 고하고, (무당은 제사를 맡아 본래 부정한 것이 아니었는데, 후에 와서 잘못 변하여 사특한 말로 사람을 혹해서 바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관은 글을 맡아서, 삼황 오제(三皇五帝)의 일로 왕께 고하며, 점치는 것을 맡은 자는 길·흉의 사실로 왕께 간하고, 판수 늙은이〔之〕(곧 판수는 악관〔侑〕이니 음악으로 식사 때 반주하는 벼슬아치다.)는 노래와 시로 왕께 간한다. 한사람의 몸인데, 좌·우·전·후에서 끼고 도우니 비록 잠시나마 마음대로 하려 하지만 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초어(楚語)에 이르기를, '옛날 위(衛)나라 무공(武公)은 나이 95세이지만 오히려 온 나라에 글로 주의시켜 이르기를, 경(卿) 이하로 스승과 선비에 이르기까지 조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늙었다 버리지 말고,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공손하게 하고 조심하며 서로 경계하라. 내가 수레에서는 여분(旅賁)의 규정(「주례」에, "여분씨는 창과 방패를 가지고, 수레를 호위하여 나가는 일을 맡았다. 수레가 멈추면 수렛바퀴를 버틴다." 하였습니다.)이 있고, 집에 자리잡으면 관사(官師)의 법이 있으며, 궤()를 의지하면 송훈(誦訓)의 간(諫)(관사는 중하사(中下士)85)요, 송훈은 글 외우는 일을 맡은 벼슬이다.)이 있고, 침실에 있으면(설어(御)의 주의 설어는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다.)가 있고, 일에 당하면 고()·사(史)의 인도가 있으며, 사사로이 거처할 때에는 사공(師工)의 외움이 있는데,(고사는 천도(天道)를 아는 자요, 사공은 악관이다.) 사관은 글에 실수하지 않으며, 눈 먼 이는 외우는 데에 실수하지 않아서 가르쳐 모신다. 여기서 좋은 경계문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다.'하였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니 예성무공(睿聖武公)이라 시호하였다."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의지〔馮〕(의지하는 것입니다.)할 이도 있고, 도울 이도 있으며 효도하는 이도 있고 덕이 있는 이도 있어서 인도〔引〕하고 도우〔翼〕면, 편안하고 즐거운 군자〔豈弟君子〕를 사방에서 법받으리로다." 하였습니다. (대아(大雅) 권아(卷阿)편)

주자는 말하기를, "빙(馮)은 가히 의지가 됨을 말함이요, 익(翼)은 가히 도욱이 됨을 말함이다. 효(孝)는 능히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을 말함이요, 덕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인(引)은 앞에서 인도함이요, 익은 좌우에서 돕는 것이다. 개제군자(豈弟君子)는 왕을 가리킨 것이니, 어진 이를 얻어 스스로 보좌하기를 이같이 한다면, 그 덕이 날로 닦아져서, 사방에서 법으로 삼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동래 여씨(東萊呂氏)는 말하기를, "어진 이의 행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반드시 효가 있고 덕이 있다고 한 것은 무슨 일인가. 대개 임금은 항상 자상(慈祥) 독실한 사람과 함께 거처하면, 선의 실마리를 일으키고 덕성(德性)을 함양(涵養)하며 조급한 것을 진정하고, 사특한 것을 소멸하여, 날마다 고치고 달마다 화하는 것이 언어간에 있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 <쓰는 잘못>을 나무랄 것이 아니며, 정사의 실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다. 대인(大人)이라야만 능히 임금의 마음 그른 것을 바르게 하나니, 임금이 어질면 어질지 않은 이가 없고, 임금이 옳으면 옳지 않은 이가 없으며, 임금이 바르면 바르지 않은 이가 없다. 한 번 임금을 바르게 하면 국가가 안정된다." 하였습니다. (「맹자」하동)

조씨(趙氏)는 말하기를, "적(適)은 허물〔過〕이요, 간(閒)은 그르게〔非〕여기는 것이요, 격(格)은 바루함〔正〕이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임금의 사람 잘못 쓰는 것을 허물하여 비난할 것이 아니며, 행정의 실수를 비난할 것이 아니다. 대인의 덕이 있는 이라면, 능히 임금 마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루하여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 나라가 다스리지 못함이 없다. 대인은 큰 덕의 인물인데, 몸을 바루하면 물건이 바루되는 사람이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말하기를, "천하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은 임금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달려 있다. 마음이 그르면 정사에 해가 되는 것이니, 이것은 밖에서 생기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옛날 맹자가 세 번 제(齊)나라 임금을 보고서도 일을 말하지 않으니 문인(門人)들이 의심하자, 맹자가 말하기를, '내가 먼저 그 사특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니 마음이 바루된 후에야 천하의 일이 따라서 다스려지는 것이라.'하였다. 대저 정사의 실수와 사람 쓰는 데의 잘못은 아는 자라면 고칠 수 있고, 곧은 자는 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일마다 고쳐야 하고 <고친> 후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 나중에는 아주 고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사람 쓰는 것이 글렀다.>고 하여 사람마다 버리고, 버린 후에도 다시 그런 사람을 쓴다면 나중에는 이루다 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므로 재상의 직책은 반드시 임금 마음의 그름을 바로하는 데에 있고, 그런 후에는 바루지 않음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 마음의 그름을 바로하는 일은, 대인의 덕이 있지 않으면 역시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왕의 지혜롭지 못함을 의혹〔或〕하지 말라. 비록 천하에서 쉽게 나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하루 따뜻하게〔暴〕하고, 열흘 차게 하면 능히 살 것이라고는 없게 된다. 내가 <왕을> 뵈옴이 드문데, 내가 물러나면 차게 하는 자가 이르르니, 내가 <왕의 어진 마음의> 싹을 돋아나게 함이 있다 한들 어찌할 것이랴.

주자는 말하기를, "혹(或)은 혹(惑)자와 <뜻이> 같다. 왕은 제(齊)나라 임금을 가리킨 것 같다. 포(暴)는 따뜻하게〔溫〕함이다. 내가 왕을 볼 때가 적으니 하루 동안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으며, 내가 물러나면 아첨하는 무리가 섞여 나오는〔雜進〕날이 많으니, 이것은 열흘 동안 차게하는 것인 즉 비록 싹이 돋아나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내가 또한 어찌할 수 있으랴." 하였습니다.

지금 바둑 두는 것이 작은 기술〔數〕이라고 하지만, 전심치지(專心致志)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혁추(奕秋)는 나라에서 제일 바둑 잘 두는 사람이다. 혁추로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전심치지하여 (혁추의 가르치는 말)만을 듣고, 한 사람은 <그 말을> 듣기는 하지만, 한편 마음으로는 홍곡(鴻鵠)이 날아올 것이라 하며, 활을 당겨 주살〔〕로 쏘아 마칠 것을 생각한다면, 비록 같이 배운다 하더라도 똑같이 잘 두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그들의 지혜가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바둑 두는 것〔奕〕은 위기(圍棋)이다. 수(數)는 기능〔技〕이요, 치(致)는 다하는 것이다. 혁추는 바둑 잘두는 사람인데, 이름이 추(秋)이다. 주살〔〕은 노끈으로 화살을 매어 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범씨(范氏)는 말하기를, "임금의 마음은 오직 수양하기에 있다. 군자는 착한 것으로 수양시키니 지혜롭고, 소인은 악한 것으로 수양시키니 어리석게 된다. 그러나 어진 사람은 멀어지기 쉽고, 소인을 친근하기 쉬우니, 이래서 적은 것이 많은 것을 이기지 못하고, 바른 것이 사특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국가에 다스리는 날이 항상 적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은 것이 대개 이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정자가 신종(神宗)에게 고하기를, "천하의 일에, 우환은 항상 소홀하고 작게 여기는 데에서 생기고, 뜻은 역시 점점 익혀지는 데에 경계하여야 합니다. 이런 때문에, 옛날 임금은 비록 출입하고 조용한 한가로움〔閒燕〕중에도 반드시 옛 글을 외워 가르치고, 법의 말〔箴〕로 간하는 신하가 있어 좌·우·전·후에 바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그래서 그 덕업(德業)을 이룬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예로써 노성한 어진 선비들을 명하시되, 반드시 직책을 주어 수고롭게만 할 것이 아니라, 날마다 편한 자리에 가까히하고 도의를 강론하게 하여 성스러운 덕을 보좌하게 하십시오. 또 천하의 어질고 준걸된 이들을 뽑아서 곁에 모시고 법으로 따르게 하며, 아침저녁으로 맞아 보아서 착한 도리를 개진(開陳)하게 하고, 다스리는 체계를 강마(講磨)하게 하여, 듣고 봄을 넓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성상의 지혜가 더욱 밝고, 큰 계교가 참으로 튼튼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정자는 경연(經筵)을 논하는 차자(箚子)86)에서 말하기를, "옛날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좌하였는데, 어려서부터 가까이 하였습니다. 보는 것은 반드시 바른 일이며, 듣는 것은 반드시 바른 말이며, 좌·우·전·후에 모두 바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습관이 지혜와 함께 자라고 화(化)가 마음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사대부 집에서도 자제(子弟)를 잘 가르치려는 이도 반드시 명망과 덕행이 있고, 단아(端雅)하고 방정(方正)한 선비를 맞아 함께 거처하여, 젖고 물들어 〔薰染〕천성을 이루게 하기 때문에, '젊어서 이루는 것은 천성인 것 같고, 습관은 자연인 것 같다.'합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는 연세 많으시고 밝고 성스러운 바탕이 원래 타고 나셨다고는 하지만, 보좌 수양하는 길을 다하지 않을 수 없사온대, <그것은> 함양(涵養)하고 훈도(薰陶)함에 있을 뿐입니다. 대개 하루 중에 어진 사대부를 친근히 하는 시간은 많고, 내시(內侍)나 궁녀를 친근히 하는 시간은 적으면, 자연 기질(氣質)이 변화되어 덕기(德器)가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조정에서는 삼가 어질고 덕있는 선비를 선택하여 모시고 권장하고 강의하게 하며, 항상 두 사람을 머물게 하여 낮에는 당직하게 하고, 밤이면 한 사람은 숙직하게 하면서 찾아 물으시도록 하십시오, 때때로 내전에서 불러보시고 조용하고 한가롭게 말씀하신다면 점점 도의를 밝힐 뿐만 아니라, 사람의 정과 물건의 형세와 농사짓는 일의 간난(艱難)한 데에 이르기까지 오래되는 동안에 자연 통달하게 되실 것이니, 그저 항상 궁중에만 계시는 데에 비하여 유익함이 어찌 매우 크지 않겠습니까. 가만히 듣사온즉, 가끔가다 한번씩 경연을 열고 두어 줄 글을 강독하며, 여러 신하들이 나열하여 모셔 점잖게〔儼然〕있다가 물러가니, 감정과 의사가 서로 접하지 못한다 하옵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보좌 수양의 공적을 얻으려 하신다면 역시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간언(諫言)을 좇는 것에 대한 말씀

○「주역」에 이르기를,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괘(咸卦)87)이니, 군자는 거기에 의하여 허(虛)함으로 사람을 받아들인다." 하였습니다. (함괘(咸卦)의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산과 못의 기운이 통하는 형상을 보고서 그 속을 허하게 하여 사람에게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속을 허하게 한다〔虛中〕는 것은 나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속에 사사로운 주장이 없다면 느껴서 통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습니다.

쾌()한 이(履)는 정(貞)하되 여()하다. (이괘(履卦) 구오88) 효사(九五爻辭))

정자는 말하기를, "쾌()는 굳세게 결단하는 것〔剛決〕이다. 5는 양강(陽剛)한 신분으로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9·5는 이것이 임금자리입니다.) 그 굳세게 결단함에 의존해서 행하는 것이니, 이렇게 한다면 비록 바르게 되더라도 오히려 위태로운〔危〕것이다. 옛날 성인은 천하의 높은 자리에 거처하여 밝음은 넉넉히 비칠 수 있으며, 강함은 넉넉히 결단할 수 있고, 세력은 넉넉히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찍이 천하의 의논을 다하지 않음이 없으며, 꼴 베고 나무 베는 한미 <한 사람의 말까지>도 반드시 받아들이니 이래서 성인이 되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의 강명(剛明)함에 맡겨서 결행(決行)하여 돌아보지 않는다면 비록 바르게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위태로운 길이니, 하물며 강명이 부족한 자야 일러 무엇하랴." 하였습니다.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을 훈계하여 이르기를, "아, 선왕께서는 간하는 것을 좇아 거스르지〔〕않으시며 선민(先民)들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하였습니다. (상서(商書) 이훈(伊訓))

채씨는 말하기를, "불()은 거슬리는 것이요, 선민(先民)은 전배(前輩)와 구덕(舊德)을 말함이다. 간하는 것을 좇아 거슬리지 않고, 선민들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착한 것을 즐기는 데 정성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말하는 것이 네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도(道)에서 <그 거슬리는 이유를> 찾아보고, 말하는 것이 네 뜻에 공손하면 반드시 도가 아닌 것에서 <그 공손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상서의 태갑편〔太甲籍〕 역시 이윤의 말.)

채씨는 말하기를, "굳고 강한 말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요, 공손하고 순한 말은 사람들이 좇기 쉬운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에서는 반드시 <그 이유를> 도에서 찾아볼 것이지, 문득 마음에 거슬린다고 하여 막아서는 안되며, 좇기 쉬운 데에서는 반드시 <그 이유를> 도 아닌 데에서 찾아볼 것이지, 문득 뜻에 순하다고 하여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개 이윤이 태갑으로 하여금 감정에 치움침을 바로 잡으려함이었다."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다스리는 길은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것이다. 만일 임금으로 하여금 공검(恭儉)하고 착함을 좋아하여 말이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그 거슬리는 이유를> 도에서 찾아보며 말이 뜻에 순하면 반드시 <그 순한 이유를> 도 아닌 데에서 찾아보게 한다면 어찌 다스리지 않음이 있을 것인가. 예로부터 모든 성공의 사실은 곧 이같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고종(高宗)89)이 부열(傅說)90)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네 마음을 계(啓)하여 짐의 마음을 옥(沃)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상서의 열명편〔說命籍〕)

채씨는 말하기를, "계(啓)는 여는〔開〕것이요, 옥(沃)은 물대는〔灌漑〕것이다. 네 마음을 열라는 것은 그 마음을 열어놓고, 숨기지 말라는 것이요, 짐의 마음을 물댄다는 것은, 내 마음을 물대어서 풍족하게〔厭〕하라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 약이 아찔하지〔瞑眩〕않으면 병이 낫지〔〕않고, 발 벗고서 땅을 잘 보지 않으면 발이 상하게 된다.

채씨는 말하기를, "방언(方言)에 이르기를, '약(藥)을 먹으면 독(毒)하다는 것을 해대(海垈)91) 지방에서는 아찔〔瞑眩〕하다고 한다. 요〔〕는 낫는다는 말이다. 아찔하지 않는다는 말은 신하의 말이 입을 괴롭게 하지 아니함을 비유한 것이요, 땅을 보지 않는다 함은 나의 행하는 바가 소견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열(說)이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무를 자를 때는 먹줄을 따르면 바르게 되고, 임금이 간언(諫言)을 좇으면 성군(聖君)이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지극히 착하시면 신하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그 뜻을 받들 것이니, 누가 감히 왕의 아름다운 명령을 좇지 않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채씨는 말하기를, "나무를 자를 때 먹줄에 따른다고 한 것은 임금이 간언을 좇아야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서, 간언은 결코 듣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고종(高宗)은 마땅히 자기 <자신>이 간언을 받아들이기에 힘 쓸 것이요, 반드시 신하의 진언(進言)을 책구(責求)할 필요는 없다. 임금이 과연 간언을 좇는다면 신하들은 비록 명령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임금의 뜻을> 알아 받들 것이므로 하물며 이렇게 명령한다면 누가 감히 그 훌륭한 명령에 공경한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겠느냐."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바로잡고자 하는 말을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잘 못을> 고치는 것이 소중하다. 완곡하게 일러주는 말을 즐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뜻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 소중하다. 즐겨하면서 실마리를 찾지 아니하고, 좇는 체하면서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어찌할 수 없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원문(原文)에> 법어(法語)라고 한 것은 <과실을> 바루고자 바로 말하는 것이고, 손언(巽言)이라고 한 것은 완곡하게 지도하는 말이며, 역(繹)이라고 한 것은 실마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허물을> 바루는 말은 사람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좇는다. 그러나 좇는 체하면서 <지적한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면대(面對)했을 때만 좇는 체하였을 뿐이다. 완곡하게 일러주는 말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으므로 반드시 즐겨한다. 그러나 <즐겨하기만 하고 그 말 뜻의> 실마리를 찾지 않는다면 또 그 <말의> 은미(隱微)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한무제(漢武帝) 같은 이는 급암(汲)92)이 곧은 것을 보고서 깊이 존경하고 두려워하여 장막 가운데에서 그가 아뢰는 말을 옳다고 하였으니 <바른 말을> 좇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제(武帝)는 속으로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仁義)를 베풀었으니 어찌 면전(面前)에서만 좇는 것이 아니겠는가. 맹자가 색(色)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논(論)하였을 때, 제선왕(齊宣王)이 어찌 즐거워 하지 않았겠는가. 만약 그 말 뜻의 실마리를 알지 못하였다면 한갓 옛사람의 이른바 색을 좋아한다는 것만을 알고, 그들이 능히 안으로는 원망하는 여자〔怨女〕가 없게 하였고, 밖으로는 고독한 남자〔曠夫〕가 없게 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옛사람들의 이른바 재물을 좋아하였다는 것만을 알고, 그들이 능히 제 집에 살고 있는 자는 곡식을 쌓은 창고가 있게 하였으며, 여행하는 자는 휴대할 식량이 있게 하였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양씨(楊氏)는 말하기를, "말하여도 통하지 아니하며, <말을> 막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은 오히려 좋다. 그는 혹 깨우치면 오히려 고칠 수도 있고, 실마리를 찾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좇는 체하고 즐겨하는 듯하면서 고치지 않고,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마침내 고치지도 않고, 실마리를 생각치도 않을 것이니, 성인(聖人)이라도 <이런 자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좌전(左傳)에, "은공(隱公) 5년 봄에 공이 당(棠)에 가서 물고기를 구경하려고 하니, 장희백(臧僖伯)이 간하기를, '무릇 사물이 큰 일을 강구(講求)하기에 부족하고, 그 재목이 기용(器用)에 대비(對備)할 만하지 못하다면 임금은 그것을 거론(擧論)하지 않는 법입니다.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은 하인〔隸〕들의 할 일이요, 관리들이 맡아 처리할 일이지, 임금이 관여하실 바가 못 됩니다.'하였다. 공(公)이 말하기를, '내 장차 전국을 순시(巡視)하려 한다.'하고, 드디어 순싯길에 오르니, 희백(僖伯)은 병이 났다 핑계하고 쫓아가지 아니하였다. 희백이 죽고나서 공이 말하기를, '숙부(叔父)가 과인(寡人)에게 감의(憾意)가 있었더니 과인이 감히 잊을 수가 없구나.'하고 관등(官等)을 한 계급 높여서 장사 지내었다." 하였습니다. 호씨(胡氏)는 말하기를, "희백이 간하였으나 <임금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병을 핑계하고 수행하지 아니한 것은 충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은공이 희백의 관등을 한 계급 높여서 장사지내 주었던 것도 타당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은공은 감히 그의 충성을 잊지 못하면서도 그의 간언은 들어주지 않았으니, <이는> 곽공(郭公)이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면서 등용하지 못하여 끝내 나라가 멸망하는 데 이르게 하였음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화(禍)가> 미친 것은 당연하다." 하였습니다. (<화가> 미쳤다고 한 것은 종무(種巫)에서의 시해(弑害) 당함을 말합니다. 은공의 아우 환공(桓公)이 공을 종무에서 시해하였습니다.

○임씨(林氏)는 말하기를, "곽공(郭公)은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면서 등용하지 못하여 나라가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고, 은공은 충간(忠諫)을 착하게 여기면서 쓰지 못하여 몸을 망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옛날부터 헛된 이름만 드러나고 실행함이 없어서 패망(敗亡)하기에 이른 자가 많은데 살피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습니다.)

◆ 다음은 허물을 고치는 것에 대한 말씀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풍(風)과 뇌(雷)는 보태는〔益〕것이니, 군자(君子)는 그것을 본받아 선(善)을 보면 자신에게 옮겨 <실천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하였습니다. (익괘(益卦)93) 상사(象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바람이 맹렬하면 우뢰가 빠르고, 우뢰가 급하면 바람이 성내어, 이 두 가지는 서로 보태는 〔益〕것이다. 군자는 바람과 우뢰가 서로 보태는 현상〔益之象〕을 보고 자신에게 보탬이 되는 것을 찾는다. 선(善)한 것을 보고 능히 자신에게 옮겨 실천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의 선(善)한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능히 고친다면 허물은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것으로 이 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선한 것을 <보고> 자신에게 옮기기를 마땅히 바람처럼 빠르게 하고, 허물을 고치는 일을 마땅히 우뢰의 사나움과 같이 <단호하게 고쳐야> 한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고도 고치지 아니하면 이것을 허물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을 때 능히 고친다면 허물 없는 데로 돌아가지만, 고치지 아니하면 그 허물이 드디어 이루어져서 장차 고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허물을 부끄럽게 여겨서 아닌 것처럼 조작하지 말라.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허물〔過誤〕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지만, 그것을 허물이 아닌 것처럼 조작하는 것은 고의(故意)에서 나온다." 하였습니다.

자공(子貢)94)은 말하기를, "군자의 허물은 일식(日食)이나 월식(月食)과도 같아서, 허물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고,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을 때는 명백하게 드러나서 덮거나 가리움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으며 <있던 허물을> 고친 때는 맑고 투명하여서 티나 흠〔瑕疵〕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자하(子夏)95)는 말하기를, "소인(小人)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꾸민다.〔文〕."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문(文)이란 꾸민다는 뜻이다. 소인은 허물 고치기를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 것은 꺼리지 아니하므로 반드시 <허물이 아닌 것처럼> 꾸며서 그 허물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하였습니다.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허물을 숨기지 아니하기 때문에 허물이 생기면 사람들이 볼 수 있고, 허물을 빨리 고치기 때문에 허물이 없어져서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기를 마치 해와 달같이 한다. 비록 일식이나 월식을 간혹 면하지 못할지라도 도로 밝아지면 무엇이 광명에 손상되겠는가. 소인(小人)은 허물을 숨겨서 덮어 가리어 고치지 아니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데> 굳이 인색하여 더욱 그 허물을 중하게 하므로 더욱 어둡고 더욱 심하여진다. 어찌 해와 달같이 명백하고 투철한 기상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자로(子路)96)는 남이 허물을 말하여 주면 기뻐하였다. (맹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그는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고 충고하는 말을>들으면 기뻐하여 고쳤으니, 그가 스스로 몸을 닦는 데는 이와 같이 용감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자(周子)97)는 말하기를, "중유(仲由: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말 듣기를 기뻐하여서 훌륭하다는 이름이 무궁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허물이 있을 때 남이 규정(規正)하여 주는 것을 즐겨하지 아니한다. 마치 병을 숨기고 의사(醫師)를 꺼려하여 마침내 자기의 몸을 죽음에 빠뜨리게 함과 같은데, <이를> 깨닫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자로(子路)는 역시 영원히 후세(後世)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진실로 <자신의> 허물을 듣기를 원한다면 다만 <일러주는 말을> 하나하나 관용(寬容)하여 받아들여야 하되 다시 그것이 사실이고 사실 아닌 것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면 일의 크고 작음 없이 사람들은 다 말하여 주기를 좋아하여 숨기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하나 하나 계산하고 배교하여 기어이 변명하고 <옳고 그름을> 논쟁한다면 아마 허물을 일어주면 기뻐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멀지 않아 돌아와,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으니, 크게 길(吉)하다." 하였습니다. (복괘(復卦)98) 초구(初九)의 효사(爻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잃은 뒤라야 돌아옴이 있다. 잃지 않는다면 무슨 돌아옴이 있겠는가. 다만 잃었으나 머지않아 돌아온다면 후회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니, 크게 선(善)하고 길(吉)하다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데 다른 길이 없다. 다만 불선(不善)임을 알면 속히 고치고 선(善)한 것을 좇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쌍봉 요씨(雙峯饒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선(善)의 단서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어서 본시부터 서로 연속되고 있다. 사물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이에 비록 간혹 조금 잘못됨이 있더라도, 그 <잘못이> 마음에 걸리어 스스로 불안(不安)하게 여기는 뜻이 이미 마음 속에 싹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천지의 물(物)을 생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露呈〕으로서 맹자(孟子)가 말한 바, '두려워하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惻隱之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다만 반성하고 살펴서 사욕을 이기고 허물을 다스리는 공력을 더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비록 선(善)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선(善)에 돌아가는 실천이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욕심에 방종하여 함부로 망령되이 행하니 그 후회함이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수양을 잘하는〔善用力〕이가 진실로 이 마음이 싹틈으로 해서 재빨리 <선(善)에> 돌아가, 후회하기에까지 이르지 않게 하면 사람의 욕심〔人欲〕은 사라지고 천리(天理)가 돌아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안씨(顔氏)의 아들이 거의 <현인(賢人)에> 가깝구나. 불선(不善)함이 있으며 일찍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일찍이 다시 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 계사(繫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안자(顔子)와 같은 지위에 있는 이가 어찌 불선(不善)함이 있었겠는가. 이른바 불선이라고 말한 것은 다만 조금 어긋나고 잘못됨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조금 어긋나고 잘못됨이 있었는가 하면 곧 능히 그러함을 알고, 알기만 하면 곧 고치어서 다시는 <불선이> 싹트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선(善)이 아님을 알고 일찍이 다시 하지 아니한 것은 허물을 두 번 거듭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다만 안자가 <잘못임을> 알고는 다시 행하지 아니한 것을 어려운 일인 줄만 알고, 도무지 잘못이 있을 때, 일찍이 <그것을> 모르는 적이 없었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어려운 것임을 알지 못한다. 지금 사람이 또한 도리를 얻을 줄 아는 이는 있다. <그러나> 일이 눈앞에 도달하면 도리어 다만 사욕(私欲)에 따라 처리하고 전날에 알고 있던 것은 모두 잊어버린다. 이것은 일찍이 바르게 알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자(顔子)는 타고난 자질(資質)이 지극히 맑은 물과 같이 좋아서 가느다란 티라도 반드시 나타났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내 나이가 16·7세 되었을 때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얼마 뒤에 스스로, '이제 이것을 좋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말하였더니, 주무숙(周茂叔)99)이 말하기를, '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다만 그 마음(사냥을 좋아하는 마음)이 잠재해 있어서 <그저 밖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니, 하루 아침에 싹트게 되면 다시 처음과 같게 될 것이다.'하였다. 그 뒤 12년 되던 해 연말에 집에 돌아가다가 들〔野〕에서 사냥하는 사람을 보고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과연 그 마음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주자(周子)는 공부에 힘을 씀이 깊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음을 알았으며, 정자(程子)는 마음을 다스림〔治心〕이 세밀하기 때문에 능히 눈에 보이는 것에 좇아 성찰(省察)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경계해 살피고 극기(克己)해 다스리는 노력을 더욱 힘쓰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무릇 <배워서> 익히는 일〔習〕을 중단함이 있음은 마음의 허물〔心過〕이 해치기 때문이다. 마음의 허물은 더욱 방지하기 어려운데, 한 번 마음 속에 싹트게 되면 비록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는 없으나 내가 항시로 익히는 공부는 이미 사이가 끊어진 것이다. 살피는 것을 늦추면 <마음의 허물은> 불어나고 자란다. 사람들은 옛 버릇에만 안일(安逸)해져서 작은 일이라고 소홀하게 여긴다. 이런 <버릇을> 어찌 익숙한 습관이 되도록 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오늘 한 가지 잘못된 생각을 고통스럽게 여겨 고치지 않으면 내일에 이 생각이 또 생기게 되어 쌓여서 습관으로 익어버리면 상시로 익히는 공부〔時習之功〕가 소각(銷却)되며, 이 두 가지가 함께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두려워한다. <마음의 허물이> 속에서 싹트면 반드시 깨닫고, 깨달으면 깊이 경계하여 끊기를 동엽(棟葉)을 분간하 듯하여 다시 계속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허물있는 지경은 저절로 소원하여지고 상시로 익히는 공부에 전심(專心)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덕(德)에 이르고 도(道)로 응고(凝固)할 수 있는 것이다. 안자(顔子)가 <허물을> 두 번 거듭하지 않았던 것은, 한번에 아주 단절(斷絶)시키고 다시 생기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의 거실(居室)을 불이(不貳)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바른 데로> 돌아오는 것을 머뭇거리는 것은 흉(凶)하며 군주(君主)된 도리에 어긋난 것이다." 하였습니다. (복괘(復卦) 상륙효(上六爻) 의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돌아오면 도(道)에 합당한 것인데, 이미 돌아오기를 주저하고 있으니 도(道)와 서로 어긋난다. 그러니 흉(凶)한 것을 알 수 있다. 남의 임금된 자가 위에 있어서 여러 국민을 다스리는 데는 마땅히 천하의 선(善)한 것에 좇아야 할 것인데, <선으로> 돌아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으니 임금된 도리에 어긋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상고하여 보건대, <임금의> 덕업(德業)을 도와 이루는 데는 바른 선비를 친근하게 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습니다. 또 반드시 간언(諫言)에 따르는 것〔從諫〕과 허물을 고치는 것〔改過〕을 합하여 한 장(章)으로 한 것은, 남의 임금된 이가 어진 선비를 좋아하는 것은 한갓 그 사람을 친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장차 그 사람의 선(善)한 것을 취하여 자기의 미치지 못하는 바를 보충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간언이 있으면 반드시 좇고,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는 것은 곧 덕(德)을 진취시키고 업(業)을 닦는 데 바탕으로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한갓 그 어진 선비의 이름만을 흠모(欽恭)하여 공연히 측근에 두고는 간하는 말이 있어도 좇지 않고,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다면, 어진 선비가 어찌 헛된 예우(禮遇)에 얽매어 자기의 소신을 잃으려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기회를 보아 물러가서 고반(考槃: 은거실(隱居室)을 지어 마음대로 즐기는 것)을 즐기려할 것이며, 임금의 측근에 있는 자는 아첨하여 총애만을 얻으려는 무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위망(危亡)에 이르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현인(賢人)이라고 이름하는 자가 앉아서 영화와 총애를 받으면서, 충성스럽고 바른 간언으로 <임금의 허물을> 바로 잡아 구하여 주는 유익함이 없다면 역시 현자는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현명(賢明)한 임금은 바른 선비를 신중하게 선택하여서 날마다 함께 있으며, 함양(涵養)하고 그 <덕에> 훈도(薰陶)되어 자기의 욕심을 이기고 선(善)을 좇아서 덕(德)이 날로 높아지고, 왕업(王業)은 날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임금의 덕이 성취되는 것은 책임이 경연(經筵)에 있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 주 >

83) 제후(諸侯). 승(乘)은 수레를 세는 단위. 주대(周代)에 있어서 전시에 천자(天子)는 만승(萬乘), 제후(諸侯)는 천승(千乘)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84) 장로(長老)의 칭호. 옛날에 천자(天子)가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을 두어 부형(父兄)의 예로 섬겼다. 〔食三老五更於大學〕《禮記, 樂記》

85) 사(士)는 관직이 없는 선비가 아니고 하급 관리인데, 그 사중에는 상·중·하의 세 계급이 있었다. 이것은 주(周)나라 시대의 관제(官制)이다.

86) 간단한 형식으로 하는 상소문이다.

87) 「주역」64괘 중 31번째 괘이름이다.

88)주역」, 64괘중 10번째 괘 이름.

89) 중국 상(商)나라의 어진 임금으로 이름은 무정(武丁)이다.

90) 상(商)나라 고종(高宗) 때의 어진 신하. 존래 토목공사장의 일꾼이었는데 고종이 훌륭한 인물이라하여 당시의 재상으로 발탁하여 국정(國政)을 맡기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91) 중국의 동해(東海)와 태산(泰山)의 중간에 위치한 땅의 이름. 순(舜) 임금이 설치한 12주(州)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지방으로 대(垈)는 곧 태산을 가리킨다.

92) 한(漢)나라 복양(陽) 사람. 성격이 강직하여 곧은 말을 잘하였다. 하루는 한무제(漢武帝)가 갓을 벗고 있었는데 급암이 그것을 지적할까 두려워 장막 속으로 피하여 그가 하는 말을 윤허하였다.

93) 「주역」64괘 중 42번째 괘 이름.

94)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로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자공은 그의 자(字). 공문(孔門) 십철(十哲) 중의 한 사람이다.

95) 공자의 제자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자하는 그의 자(字). 공자보다 44세 아래로 시(詩)에 뛰어났다.

96) 공자의 제자.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자(字)임. 공문(孔門) 10철(十哲)중의 한 사람으로 정치방면에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용맹이 있었는데 위(衛)나라에서 벼슬하다가 공리(孔)의 난에 전사하였다.

97) 주렴계(周濂溪)의 존칭.

98) 「주역」64괘 중 24번째 괘 이름.

99) 중국 송(宋)나라 도주(道州) 사람. 이름은 돈이(敦) 무숙(茂叔)은 그의 자(字)임. 송(宋)·이학(理學)의 개산조(開山祖)이다. 이정(二程)이 모두 그 제자이며 저서로 태극도설(太極圖設)과 통서(通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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