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름 중 며느리가 들어가면 슬픈 사연들이 꼭 하나씩 있습니다.
다 옛날 먹고 살기 팍팍했던 시절 붙여진 사연들이 많은데요.
지금같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위상이 뒤집힌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이죠.
‘꽃며느리밥풀’은 며느리가 뜸이 잘 들었나 밥알 몇개보다 혼자 밥을 먹은 것으로 오해받아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며느리배꼽’은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오죽했으면
꽃이름에 며느리배꼽을 갖다 붙였을까 싶어요.
오늘 소개할 ‘며느리밑씻개’는 야생화 꽃 이름 중 가장 망측한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밥풀도 아니고 배꼽도 아니고 ‘밑씻개’라니, 독특한 이름답게 며느리밑씻개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참 다양합니다.
이야기는 여러 가지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간의 갈등이 주제인 건 똑 같습니다.
당시 시어머니의 위상이 하늘을 찌를 때이니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어떻게 해서 ‘며느리밑씻개’가 되었는지 전해오는 이야기로 알아보겠습니다.
이야기 하나. 화장지가 없던 시절에는 종이나 마른 짚으로 뒷마무리를 했는데요.
이도 없을 때는 부드러운 풀로 대신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밭을 매다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밭두렁 근처에 주저앉아 일을 본 후,
뒷마무리를 하려고 옆에 뻗어 나 있는 풀을 애호박잎인 줄 알고 덥석 잡아 뜯었는데,
이게 웬걸 아얏! 하고 따가워서 손을 펴서 보니 위와 같이 생긴 놈이 호박잎과 함께 잡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뒤처리를 다 끝낸 시어미가 속으로 꿍얼거리며 하는 말이 "저놈의 풀이 꼴 보기 싫은 며느리 년 똥 눌 때나 걸려들지 하필이면....
"라고 해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둘. 어느 마을에 외동아들을 장가보낸 시어머니가 있었어요.
아들이 며느리에게 빠져 있자 시어머니는 여우같은 며느리한테 아들을 뺏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며느리가 예뻐 보일 리가 없죠.
며느리를 골탕 먹일 기회를 엿보던 시어머니, 어느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밭을 매다 나란히 볼일을 볼일이 생겼습니다.
시어머니가 먼저 뒤를 닦고 일어나자 어떤 풀로 뒤를 닦아야 하는지 모르는 며느리 다급하게 시어머니에게 풀을 뜯어 달라고 하고.
기회는 이때다 싶은 시어머니는 줄기에 잔가시가 있는 덩굴 풀을 한 움큼 뜯어 준 것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뒤를 닦은 며느리, 그 곳이 얼마나 쓰라리고 따가웠을까요. -.-;
시어머니가 뜯어준 풀이 바로 ‘며느리밑씻개’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참 고약한 시어머니네요.
이야기 셋. 일본에서는 ‘며느리밑씻개’를 ‘의붓자식밑씻개(継子の尻拭い)’라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의붓자식이 가장 미운 존재로 의붓자식에게 화장지 대신 이 풀로 밑을 닦으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요.
우리의 며느리밑씻개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며느리밑씻개’라는 말이 처음 문헌상에 나타난 시기가 일제강점기라고 하니,
일본식물학자들이 이 식물의 이름을 등재하면서 우리나라 정서에 맞춰 의붓자식을 며느리로 바꾼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름의 유래도 이때 생겨난 것이라 하고요.
이야기 넷. 이번엔 며느리밑씻개의 약효에 관련된 설인데요.
며느리 밑씻개는 냉대하증과 자궁탈수, 음부가려움증, 옴, 버짐, 악창, 태독, 습진에 유효하며,
타박상에 어혈을 풀어주고 치질치료에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민간요법으로 며느리밑씻개 잎을 끓인 물로 밑씻개를 하여 병을 치료했으며,
또한 요즘의 질세정제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변변한 치료약이 없었던 시절 여인네들이 걸리기 쉬운 부인병과 항문병에 효능이 있는 이 풀을 ‘며느리밑씻개’라고
이름 지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뒷받침하는 문헌은 없지만
고부간의 갈등으로 유래되었다는 것 보다는 설득력 있게 다가오네요.
‘며느리밑씻개’의 꽃은 별로 아름답지 못한 이름과 달리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별모양의 작은 꽃은 진한 핑크빛에서 흰색으로 그라데이션을 준 것처럼 환상의 색을 지니고 있는데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앙증맞은 연분홍색 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단지 잔가시가 있다는 것 이유 하나만으로 고부간의 갈등이나 그리는 ‘며느리밑씻개’가 되었다니,
꽃으로선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아요. 식물계에도 법원이 있다면 억울해서 못살겠다며 개명신청이 줄을 이을 것 같습니다.
며느리밑씻개는 마디풀과에 속하는 1년생 덩굴식물로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꽃입니다.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으며 생으로도 먹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사광이아재비’라고도 부르며, 여뀌속이라 ‘가시덩굴여뀌’라고도
부릅니다.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보다는 ‘가시덩굴여뀌’라는 이름이 훨씬 좋으네요.
꽃말은 이름의 유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시샘, 질투’입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어릴적 이 풀을 ‘신금풀’이라 불렀던 것 같아요.
잎의 신맛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 같은데요. 어머니를 따라 들에 갈 때 뜯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신맛이 강하지도 않으면서 향긋한 풀냄새와 어우러져 입안이 상쾌했었어요.
목이 마를 때 몇 잎 뜯어 먹으면 갈증도 해소됐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을 찍을 때 한 잎 먹어보니 옛 맛이 살아나더군요.
하지만 도심 산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제 입맛이 변한 것인지 어릴적 먹었던 맛보다는 못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