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읍 본리리에는 남평문씨 본리세거지가 자리잡고 있다.
문익점의 18세손 문경호가 터를 닦은 이곳에는 조선조 말기의
전통한옥 9채와 정자 2채가 들어서 있다.
당시 문경호는 정전법에 따라 구획을 정리하고 집터와 도로를 반 듯하게 닦은 후
집을 지었다. 그 옛마을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건물로 광거당과 수봉정사, 인수문고를 들 수 있다. 광거당은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학장소로 쓰였다.
수봉정사는 세거지 입구에 있는 정자로 손님을 맞을 때나 문중의 모임을 열 때 주로
쓰는 건물이다. 문중서고인 인수문고는 국내외 1만여 권의 전적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곳 수봉정사는 영화 황진이의 촬영 장소였다.
도서열람실인 서사와 보조서고도 꾸며 놓았다. 흙내음 가득한 토담길을 따라 남평문씨
세거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마치 고향에나 다녀온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도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어 가볍게 다녀오기에 좋은 곳이다
인흥 서원
.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서원으로서, 추계 추씨(秋溪 秋氏)이 시조이며 고려 충렬왕
때의 문신인 노당 추적[고려 고종33년(1246년)∼충숙왕4년(1317)]선생을 봉안한 서원이다.
조선 순조25년(1825년)10월에 팔도 유림과 20대손인 추세문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대원군의 서원정리 당시에 화를 면하여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경내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 지붕의 서원을 비롯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사당 등 6동의
건물이 있고 신도비가 있으며 추적 선생이 쓴 명심보감 목판 31매가 유일본으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상화대
화원읍 성산리 지금의 화원동산에 있으며, 일명 웅달성이라고도 한다.
서북쪽에 산성의 절벽을 끼고 유서깊은 낙동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산수가 아름다운 이곳을 신라35대 경덕왕이 세자의 문병을 다니면서 지나게 되었다.
그때 이곳의 아름다운 풍치를 보고 여러번 왕림하여 하루, 이틀씩 쉬면서 감상하곤 했다.
당시에 행궁을 두었다고 하는데 그때 경덕왕이 이곳의 이름을 상화대라고 붙였다고 한다.
과거에 봉화대로 사용한 일도 있었으며 지금 상화대 위에는 팔각정이 우뚝 서 있어서
주위의 경관을 모두 바라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화원읍은 사방이 꽃동산처럼 아름답다는 그 이름처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성산리, 구라리가 자리한 서북쪽의 경관은 특히 빼어나다.
신라 경덕왕이 그 풍치에 반해 아홉번이나 들렀다는 '구라리'나 낙동강이 성산을 휘감아
도는 '성산리' 일대는 옛부터 호걸과 가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화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싶다면, 화원유원지 내의 성산 자연전망대를 찾는 것이 좋다.
성산은 북쪽 낙동강을 향해 절벽을 드리운 천연의 요새로, 옛날 동·서·남 편에 성을 쌓아
전쟁에 대비했다고 한다. 지금도 성산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쌓아 올린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원의 명성은 화원유원지가 조성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화원유원지는 일본인이
맨처음 조성했으며, 1958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다.
현재 유원지 내에는 안동댐 수몰지구에서 옮겨온 고가 2채와 동물원이 있으며,
수영장·잔디밭, 광장 등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원한 강바람, 토성과 동물들, 울창한 숲이 조화를 이룬 화원유원지는 손색없는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화원유원지로 조성된 성산리 성지구릉에서 남쪽으로 연장되는 구릉일대에
대소고분이 백기이상 유존한다. 고분의 규모는 대형의 경우 밑지름이 20m 내외이며,
높이는 4m 내외로서 천석과 할석으로 측벽을 쌓은 장방형 석실에 판석 여러장을 뚜껑으로 덮은
수혈식석곽분이다.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는 성산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 이래의 무늬없는 토기 와 돌로 만든
연모가 발견되었고 현재 유지로 조성된 지역에는 고대토성이 남아있다.
이로 보아 이지역에는 선사시대 이래로 일찍부터 유력한 부족이 삶의 터전 을 마련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인근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으로 성장발전하여 삼국시대에 이 고분군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도동서원
달성군 내에는 많은 서원이 있지만 그 중 도동서원의 의의는 남다르다. 그 경치도 일품이지만
그 보다 조선5현의 수장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도동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거되지 않은 서원으로, 현재의 서원은 1605년(선조38년)
중건되었으며, 2년 후인 1607년(선조40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서원앞에는 수령 400년 된 은행나무가 눈길을 끌고 있으며 서원 경내는 수월루, 강당 등 주요
건물이 일직선상에 있고 나머지 공간에 부속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간결, 소박하며 아름다운 토담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암키와와 수막새를 엇갈리게 끼워 장식한 이 토담은 강당, 사당과 함께
보물 제350호로 지정된 보기 드문 걸작으로, 우리 나라 재래토담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인흥서원 다녀왔습니다. 자원봉사하는분의 친절한 설명. 커피서비스까지^^ 사진속 人처럼 앉아서 ~ 나의 정원에 앉아있는것처럼 ~ 여유롭게 내리는 비를 보며... 가까운곳에 이렇게 고풍스런곳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옛날푸세식 화장실(ㅋㅋ)좋은 경험.
첫댓글 여기는 언제 갑니까? 또 날짜 안맞으면 현재님이 나만 미워하는 걸로 알고 있을께요....ㅡ,.ㅡ
이번 추석연휴 중에 고향가면서 갈건데ㅎㅎㅎ...화원 유원지..고분군은 바로 우리산 뒤.. 녹음이 우거져 나름대로 멋있답니다.
함 가볼려고 들어왔는데..무서운 말씀만 잔뜩... 앞으로 어디가서 위로받나 ㅠ.ㅠ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인흥서원 다녀왔습니다. 자원봉사하는분의 친절한 설명. 커피서비스까지^^ 사진속 人처럼 앉아서 ~ 나의 정원에 앉아있는것처럼 ~ 여유롭게 내리는 비를 보며... 가까운곳에 이렇게 고풍스런곳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옛날푸세식 화장실(ㅋㅋ)좋은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