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면을 좋아하기에 오랜만에 아내와 원중이와 같이 경주역 옆의 유명한 중국요리집인 산동대반점에 들러 면을 시켜서 먹고 있는데 반점에서 배달하는 아저씨(?)가 나를 보며 반기며 인사를 해 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오래 전 제자 심00이었다. 그의 나이가 지금 36세이던가? 예전에 학교 다닐 때에 좀 어설펐는데 이제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하기야 세월이 많이도 흘렀지. 벌써 23년 전이던가? 심00는 "선생님 요즘은 잘 계십니까? ", "선생님, 여전하시네요.", "아들이 참 귀엽습니다.", "니 몇살이고?".........등을 물어보는데 말투는 어눌했지만 거의 정상이었다.
그때가 언제던가? 1983년도니까 23년전이 맞다. 나의 첫 부임지가 경주 월성중학교였다. 그때 1학년 영어를 가르쳤는데 1학년 5개반 중에서 유독 1-5반에 좀 어설퍼보이는 학생이 3명이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신지체 학생들이었는데 3명 모두 경주 계림국민학교 특수학급의 학생들이었는데 중학교에는 그 당시 특수학교도 없었고 요즘 일반 중학교에 있는 특수학급도 없어 그저 이 아이들이 일반중학교에는 무작정 배정되어 왔던 것이다. 그것도 3명이 모두 공교롭게도 월성중에 그것도 한 반에 몰려 있었다. 그 반 담임이 나약한 여선생님이었는데 그저 매일 그 애들 때문에 황당해하곤 했다. 수업시간에 헛소리, 엉뚱한 소리는 물론이고 손에 인분이 묻어있는가 하며, 또 사라지기 일수였다. 나로서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어 그 아이들도 보통 아이들과 같이 취급하였고 어긋나거나 일탈하는 행동에 대해서 엄하게 매질하고 기합넣곤 했다. 그 당시에 아이들에게 매우 엄했던 젊은 나에게 그 3명의 아이는 수시로 맞아서 울곤했다.
나는 최근까지도 정신지체라면 정신병으로 생각했고 자폐증이라면 영화 속에 나오는 천재같은 자기 폐쇄 인간 쯤으로 생각하여 어떤 면에서는 낭만적인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내가 내 아들 원중이가 자폐진단을 받고 나서야 자폐가 무엇인지 알았으며 발달장애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파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80년대 초의 우리의 교육은 현장에 있던 내가 봐서도 그야말로 열악, 그 자체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특수한 내용의 교육이 주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그 아이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그대로 배정 받았고 일반학급 속에 그대로 집어넣어 획일화 속에서 방치했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체육선생님은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하여 욕하고 벌주고 빳다치고 하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곤 했다.
지나친 생각 아니 낭만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들이 그런 혹독한 환경속에서 자라오면서 어쩌면 오히려 일반화에 가속화를 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해본다. 반점에서 본 심00군도 35년 정도의 인생 속에서 나름대로는 일반 아이들과는 차별되는 대우를 부단히도 받아왔지 싶다. 생각이 크게 없기에 그런 자극은 그들에게 큰 슬픔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더 생존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신들의 방법을 강하게 터득하지나 않았는지?
하지만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나는 최근에 산동대반점에서 심00군을 보고 나서, 그래도 교육자라는 입장에서 그러한 경험을 되뇌이면서 요즘 나름대로의 반성을 하고 있다. 하기야 이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겠지. 사회적 도덕 문제는 개인한테서 오기 보다는 사회 제도와 정책적인 면에서 야기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교직자라면 교육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했었다. 나는 교육에 대한 별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서울의 신문사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고향에서 투병 중이신 어머니를 모시러 경주로 불현듯 내려와서 교직에 몸담게 되었는데 그 상황 자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교사였었다.
하긴 몇년 전에도 학교 근처에서 길거리에서 자전거 타고 우동그릇을 배달 중인 심00군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유난히 나를 보고 반가워 하면서 자전거에서 내려 짬뽕 국물이 묻은 손으로 나의 손을 잡고 반가워 했었다. 보통 제자들을 보면 매우 잘 알고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피하고들 하는데 심00군의 그런 행동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지났다.
산동대반점에서 아내와 나와 원중이가 같이 있었는데 심00군은 유독 원중이를 보고는 반가워 하면서 "니 몇살이고?", "아이고 고놈 늠름하게 생겼데이...."하고 귀여워했다. 아마 어릴 적 자기와 비슷한 아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리라. "선생님, 못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더!"라는 인사에 나도 그 옛날의 그 미안함과 어떤 죄스러움이 엄습하였으나 손을 꼭 잡고 덕담을 했다. "장가 안 갔나? 언제 한번 만나 막걸리라도 한잔 하자!" 반점을 떠나면서 나의 행동과 표정이 다소 어색했던지 아내가 힐끔 나를 엿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