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음력 2월 초하루, 사라봉 제단에서는 바다를 향하여 영등 할망을 맞이하는 영등굿제를 지낸다. 설문대 할망은 제주를 창조하는 모태 신이고 영등할망은 바다를 관장하는 외방 신이다. 영등굿제는 영등할망을 위한 제를 드리고 어촌 마을의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 전통문화이다.
코로나 여파로 모든 행사가 취소돼 칠머리 당굿 영등 보존회에서는 영등제도 전수관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오는 16일에는 영등할망을 보내는 송별제를 치른다. 사방으로는 제단을 장식한 깃발을 두르고 갖가지 제물들을 차려놓고 바다의 수호신인 영등할망을 기리는 해신제가 한창이다.
매해 음력 초하루가 되면 영등할망은 제주해협에 찾아와서 보름 동안 한림을 시작으로 서귀포와 성산, 우도 바다를 두루두루 살핀 후 다시 먼 바다로 떠난다.
영등할망이 들어오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영등신은 바람의 신으로 혹한의 꽃샘추위를 가져오는 신이다. 영등굿을 지내는 날은 날씨에 따라 그해 운세를 점쳐 볼수 있다고 한다. 비옷을 입은 영등 우장이 오면 비가 오고, 두터운 솜외투를 입은 영등이 오면 그 해 영등달에는 눈이 많이 오며 차림이 허술한 영등이 오면 유독 날씨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의 영등달은 날씨도 춥지만 습기가 많아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구더기가 괸다고 한다. 이처럼 제주의 영등 신앙은 겨울과 봄의 전환기에 찾아오는 매서운 추위와 관련이 많다.
재미있는 사실은 금기사항이라 할 만큼 영등굿을 하는 동안에는 결혼식도 하지 않으며 장례가 생기면 영등할망의 몫으로 밥 한 그릇을 따로 마련해야만 별 탈이 없다고 전해진다. 또한 소라나 고동은 껍질이 비어 있다고 해서 이는 영등할망이 모두 다 까먹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새로 생길 소라나 전복을 위한 물갈이 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빨래를 하여 밖에 널어두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한다. 글을 쓰다보니 어릴 적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영등할망이 올때엔 절대 빨래를 널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를 했다. 그만 어머니가 한 말을 깜빡 잊고 빨랫줄에 즐비하게 널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마른 옷을 걷으려는 순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벌레가 실제로 옷 속에 달라붙어 있었다. 하나의 무속신앙에 불과한 설화쯤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신기하다.
신명 나게 굿을 하는 동안, 아낙네들은 한 해의 소원을 빌며 수시로 절을 올린다. 굿에 대해 일가견이 없는 나로선 굿 자체가 그저 어수선하고 신비롭다.
방파제 넘어 수평선이 보인다. 끊임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새로운 한해의 기쁨과 희망을 안고 역동 차게 달려오는 모습만 같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음복할 시간이 되자 상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제물들을 내리고 영등 할망과의 마지막 작별을 나눈다.
세월의 흐름속에 대대로 내려오는 옛 선인들의 삶의 지혜이며 굿을 통해 느끼는 마을의 일체감이 섬사람들에겐 한해를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희노애락속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고 했던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