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목) 캄보디아에서 VIP란?
‘저의 쓴 글 중에서 캄보디아의 자동차 운전석 앞에 ‘2013 VIP’ 라는 A4 용지 크기의 인쇄물을 붙이고 다니는 차량이
엄청 많다는 내용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독특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이 용지를 붙이고 다니는 차량들이 많은데 몸집이 좀 큰 4륜구동의 RV차량은 100%입니다. 그리고
중형차 이상의 승용차들도 비율이 아주 높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VIP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덩치가 있는 차들은 중앙선도 무시하고 신호도 무시합니다. 낮에도 전조등을 켜고 다니기도 합니다. 중앙선을 침범하고 추월을 하면 상대차량이 비켜가야 할 정도로 무서운 무법자들입니다. 소형차인 비스토를 타고 다니는 저에게 반대편에서 중앙선을 넘어 추월해서 오는
4륜 구동의 RV차량은 마치 탱크가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순간 아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지도 없는 평평한 캄보디아 땅에 4륜 구동차가 별로 필요 없는데 엄청난 크기의 RV차량이 프놈펜 도심을
달리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게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캄보디아의 단면이자 공무원들의 부패와 부자들의
자만과 횡포의 단면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은 선교사들 중에는 이런 모습을 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 대단하게 사역하시는 분입니다. 지역에서 많은 땅과 건물, 많은 교회와 사역자들을 관리합니다. 그 분들은 지역에서 거래하는
은행에서도 VIP대접을 받고 공항에서도 VIP룸을 이용하는
분들입니다. 은행에서는 한번에 수천, 수만 달러의 돈을 인출하니 VIP대접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딘가
마음이 슬퍼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곳곳에 수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수많은 사역자들이 일하고 신학교도
점점 많이 생기고 있는데 잡초가 무성하고 문이 잠겨 있는 교회도 점점 많이 목격된다고 하니 이것은 또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주변에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조기 은퇴를 하고 노년을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고 값지게 보내고자 선교에
헌신하고 캄보디아로 오신 목사님, 장로님들이 몇 분 계십니다. 나이는 60세가 넘으신 분들입니다. 시골로 다니시다가 문이 닫혀 있는 예배당을
발견하고는 예배당 정면 벽에 ‘한국의 어느 교회, 어느 장로님
권사님의 귀한 헌신으로 지어진 예배당’이라는 표지를 휴대폰으로 담아와서 보이면서 이럴 수 있느냐고 한탄을
하십니다. 건물을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고스란히 한국교회에서 베껴 온 것입니다. 상가건물에서는 개척을 해도 잘 안 된다고, 어떻게 해서든지 땅을 사서 교회를 지어야 된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건축을 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건축재정 마련을 위해 부흥회를 개최하고 임직자들에게도
건축헌금을 강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법이 행해지고 있을 것입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요즈음 경매로 나온 예배당 건물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한국교회의 잘못된 습관이 선교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무리하게 건축을 해서 부채를 갚지 못하면 경매처분을 당하게 되지만 선교지에서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냥 방치해 두면 그만입니다. 캄보디아에서는 본인만 알 뿐이지 다른
분들은 그 예배당이 어느 선교사가 지었는지 조차 모릅니다. 한국에서도 자신이 헌금해서 지은 예배당이
그렇게 방치되어 있는지 물론 모르겠지요. 설혹 확인하고 싶어 방문한다고 해도 사람을 모으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그렇게 방치한 건물이 있어도 다른 선교사들에게 사용하도록 부탁을 하거나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권리를 양도해 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겠지요. 언젠가는 재산권 행사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선교사가 점점 나이가 들어서
사역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되었는데 그 많은 땅과 건물들은 누구의 명의로 어떻게 등기되어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나 다른 단체에 넘겨질 때에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특히 시민권을 획득한 경우는 거의 사유재산과
같은데 과연 어떻게 관리 처분할 것인지? 아마도 그런 시기가 오면 실제적으로 땅의 구입이며 건축의 재정을
제공한 교회나 개인과의 사이에서 적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해보면
선교지에서의 부동산의 문제는 서로가 깊이 지혜롭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고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러 왔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캄보디아
땅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려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세월이 흐른 후에 이 땅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프놈펜 거리에 운전석 앞에 VIP표지를 붙이고 난폭 운전하는
고급차량들을 보면서, 그리고 공무원들에게나 은행에서나 공항에서나
VIP 대접받는다는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캄보디아 땅에서 진정한 VIP는 누구인가? 생각해 봅니다. 캄보디아 땅에서 과연 누가 VIP일까요? 하나님께서 VIP로
인정해 주는 사람이 전정한 VIP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VIP로 생각하고 계실까요? 이것이 저와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기도후원자들의 삶의 목표와 자세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8월 10일(토) 맨발로 피아노 치러 온 다윗과 사무엘
금요일 오후 3시부터 강한 비가 내렸습니다. 4시가 넘어서는 약한 비가 계속 오고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어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5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데보라 세 남매가 엄마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날입니다. 그런데 5시가 넘어도 오지 않습니다. 비가 와서 못 오는가? 이 정도면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올 수 있을 텐데 하며 기다렸습니다.
15분쯤 엄마의 오토바이를 타고 세 남매가 왔습니다. 다행이 비는 거의 그쳐서 옷만 조금
젖었을 뿐이었습니다.
세 남매는 오자 마자 모두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아내는 지난
주부터 목이 좋지 않았는데 주일 저녁 심한 구토 이후로 목이 너무 아파서 수요일 헤브론선교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대구제일교회 의료선교팀이 와서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안심을 했습니다만 약 10년 전에
편도선 수술을 한 이후 목이 제일 아파서 아내는 내심 걱정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아내는 목을 아끼면서
어린이들 레슨을 봐 주었고 저도 옆에서 도왔습니다.
세 남매 중에 10월이면 3학년이
되는 둘째인 사무엘이 음악적 감각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악보를 빨리 읽을 줄 압니다. 형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아내는 말했습니다. 오늘도 다른 곡으로
넘어가는데 한 군데에서만 더듬거리더니 바로 쳐 내었습니다. 사무엘은 눈망울이 얼마나 큰지 눈동자가 곧
튀어 나올 것 같고 눈치도 빨라서 눈망울이 구르는 소리가 날 정도입니다. 정말 곁길로 나가지 않고 반듯하게
잘 자라주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곡을 금방 읽고 치는 것을 보고 잘 친다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오후에는 제가 이런 글을 써서 다윗과 사무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피아노 연습하는 것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들과 오래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 그리고 너희들이 음악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다.’ (꼼 쁘러 벙짜올 핱레잉 피아노, 크뇸 쩡 쭈업 유엥웽 찌어무이
뿌억네악, 크뇸 쩡 크언 네악 쪽쩨이 능 프레잉) 다윗도
사무엘도 웃으면서 열심히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제가 숙제로 작문한 문장인 ‘그는 내가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은 학생이다. 그는 내가 피아노를 가르치기
위하여 찾던 학생이다’(꼬앋 찌어 써 다엘 끄뇸 벙리언 피아노, 꼬앋
찌어 써 다엘 끄뇸 룩 다음바이 벙리언 피아노)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네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남매와 부모가 비록 가난하지만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수요일도 그리고 오늘 금요일도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레슨을 마치고는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었습니다. 캄보디아 어린이라면 누구든지 같겠지만 선교사님 집에 오면 맛있는 것도 얻어 먹고 놀다가 가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가득합니다. 그러고도 싶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생활이 눈에 선한데 그냥 돌려 보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려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연습을 하고 나서 아내는 하나씩 청음을 한번 테스트 해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서로 좀
떨어진 음을 치면 곧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를 친 후에 미나 솔은
비교적 잘 알아 맞추는데 파나 라나 시는 힘들었습니다. 아직 음정이 귀에 완전히 익지를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했던 ‘가위 바위 보 하나 빼기’ 놀이를 잠시 하다가 다윗 가족을 배웅 하려고 집 앞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사무엘이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왜 신발을 신지 않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학교에 한국에서 단기선교팀이 와서 학교에서 무슨 행사가 있었는데 학교에 갔다가 잃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의 신발이라야 10달러하는 운동화도 아니고 2-3달러하는 값싼 슬리퍼입니다. 슬리퍼를 잃어버려 맨발로 온 다윗과
사무엘을 돌려보내고 나서 저녁에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2-3달러하는 슬리퍼를
사 줄 것인가? 다윗의 아버지의 벌이가 월 150-200달러, 어머니의 월급이 170달러, 합해서 300달러 조금 넘는 돈으로 집세 50달러를 내고 한 달을 살아가는데
몇 달러 되지 않는 슬리퍼를 사 주면 물론 좋겠지만 그래도 생활만큼은 선교사를 의지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먼저 온 선교사들에게서 많이 들었던 말이 현지인들은 선교사의 주머니만 바라본다는 말이었습니다. 교회 건축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지인 사역자 월급에서부터 교회 운영비까지 모두가 선교사의 주머니에서 나가니 선교사는
한국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 때문에 선교사가
잘 산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와 진리를 전해 주는 것이 옳은
사역의 자세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우선은 좀 미안한 마음, 안타가운
마음이 들어도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게 하기 위해서는 쉽게 손을 내 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지식과 지혜와 진리를 전해 주는 데는 주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몇년전 캄보디아의 남쪽 캄퐁솜의 잘 아는 선교사를 한달 도운 후에 퇴임후에 몇 달 더 도우겠다고 약속 하고는 아직 못해 곧 해보려는 나에게 모든 내용이 큰 관심과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