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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매 입문기
우형달
얼마 전까지만 해도 ‘1억원 만들기’라는 제목의 책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어느 사이에 부자 기본단위가 10억원으로 높아져 버렸습니다. 10억원은 고사하고 1억원도 없고, 심지어는 전세보증금 5천만원이 자산의 전부라며 낙망하는 분도 계신데 말입니다. 가혹하지만 부자의 기준을 좀 더 명확히 제시하고자 합니다. 막연한 10억원이 아니고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집 빼고, 그리고 부채 빼고 10억원 정도는 있어야 비로소 요즘 유행하는 웰빙스런 삶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가장 바보들 중 하나가 집 하나 달랑 가지고 있으면서 집값 올랐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설령 10억원 짜리 강남의 아파트라고 해도 이 집은 이미 자산가치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적어도 이런 생각이 타당하려면 적어도 다섯 채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서라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 아파트를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나라면 팔아서 5억원 짜리 같은 평수의 강북아파트로 이사가고, 나머지는 5억원으로 재테크 종잣돈으로 쓸 텐데!’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부채도 제외해야 합니다. 수중에 10억원의 현금이 있지만 은행 부채가 10억원 있다면 상계처리해서 현금자산은 제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엄격한 기준으로 따져 보면 여러분의 대차대조표는 어떻습니까?
저 역시 가난했습니다. 무일푼에 가까운 처지에서 IMF를 거치면서 짧은 기간에 오직 부동산 경매로만 오늘의 부를 어떻게 축적했을까요? 인생역전을 가져다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정말 우연히 시작한 부동산 경매에 대한 나의 생각과 투자전략, 철학을 가감없이 보여드리며 낙찰사례도 소개하겠습니다.
게임은 끝나지 않아 결론으로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누가 언제 시작해도 지지 않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 부동산 경매를 통한 부동산 투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환희의 순간도 있었고, 몇 천만원이라는 거금의 입찰보증금을 날려야만 했던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의 내용이 본인의 실제 투자사례인가 아닌가를 궁금해 하실 수도 있는데, 이유는 자신의 투자사례나 명도 경험은 단 한차례도 없이 오로지 책상과 인터넷의 산물로 투자현실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공허하기 짝이 없는 부동산 경매투자서가 재테크 비법을 전수하는 관련 서적들이라고 오늘도 유명 서점 진열대를 꽉 채우고 있는 현실에서, 내 돈 싸들고 경매판에 뛰어들어 조사하고 분석하여, 응찰하고, 낙찰받고, 잔금내고, 명도하여, 부동산을 차지한 다음 처분(임대나 매각)해서 수익을 올린 생생한 투자체험서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동산 경매시장을 처음 경험한 것이 1994년 말이었으니 벌써 10년 이상이 흘러갔습니다. 처음부터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여 투자하겠다는 야무진 각오가 있어서가 아니라 뒤늦게 입사한 곳이 경기도 성남에 있던 모 상호신용금고였습니다. ‘뒤늦게’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것이 1990년 2월이었는데,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 4학년 때부터 유학을 준비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동경에 가서 약 3년 여의 유학생활을 했는데, 너무 가난했던 일본 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너무나 춥고 배고팠던 동경 유학시절 이야기를 하나만 하자면, 유학생활 거의를 동경 나까노구(中野區)의 와까미야(若官)라는 곳의 조그마한 아파트(다다미 4.5장 짜리 실평수 3평 정도)에서 살았습니다. 한 층에 공동 화장실이 한 개 있던 주택으로 동경의 여름은 길고 높은 습도와 무더운 날씨로 에어컨 없이는 생활하기가 힘들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샤워를 해야 하는데, 동전샤워장에는 갈 돈도 없고, 아까워 가지 못하고 집안 싱크대 수도꼭지에다 조그마한 호수를 연결하여 최대한 약하게 물을 틀고는 싱크대 안에 올라가 샤워하는 식의 생활이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역까지는 자전거로 10분 정도를 가서 전철을 타고 학교를 가는데, 어느 하루는 역에 도착해서 전철 패스(1개월 정기권)를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천천히 생각해보니 전날 정기권이 1개월이 다되어 검색기계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 그때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학교까지 일반권으로 가려면 130엔이 있어야 했는데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70엔 뿐이었습니다.
아쉬운 소리를 하고 무료티켓을 하나 받을까 하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내리는 비와 함께 한없이 울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어제처럼 선명합니다. 마침 그 날은 쌀까지 떨어져 아침도 먹지 못하고 학교 가서 교수님한테 밥값을 얻어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3년 내내 거의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참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그 때의 경험은 내 생의 또 다른 밑받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동경생활을 3년 넘게 버티다 경제적으로 기력이 완전히 소진하여 중도에 포기할 수 밖에 없어 내 인생에서 공부는 끝났다고 체념하고 귀국해서 입사한 곳이 성남의 모 신용금고였습니다. 하는 일이 고객에게 적금을 유치하고, 아침저녁으로 채무자들한테 이자와 원금이 밀렸으니 언제까지 송금해 주세요, 채무자가 시간이 없다면 직접 받으러 가고, 또 연체상태가 심한 경우는 담보로 잡아놓은 부동산을 경매 넣는 일을 어깨 너머로 보면서 경매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게는 두 분의 인생 은인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이 시절에 내게 경매공부를 권유한 직장상사입니다. 하고 싶던 공부를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와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으로 선택하게 된 직장에서의 업무는 단순한 회사의 일로만 여겨졌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어떤 일을 아무리 오래 해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고 배우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부동산 경매와 관련된 일을 나름대로 하면서도 내공을 쌓지 않고 업무로만 익숙해지며 회사를 다니기 2년 정도 될 즈음에 나를 아껴주던 직장의 상사가 어느 날 “우계장 경매공부 한 번 해보지!” 라고 지나가듯 한 마디 하셨습니다.
이처럼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가 천산에서 들려오는 신의 복음처럼 내 머리를 때렸고 “어떻게 공부하면 되나요? 방법을 알려 주세요”하면서 신천지 경매세계로 뛰어든 것이 1996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부동산과 경매 공부가 그렇게 즐거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기본적인 법률공부, 권리분석, 수익률 분석, 물건분석 요령, 임차인에 관한 사항 등 공부하다가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어볼 때마다 싫은 소리 한 번 안하고, 심지어 새벽 두세 시에도 자다 일어나 성실하게 응대해 준 상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사합니다.
처음 부동산 경매공부를 권하면서 권해 준 서적이 ‘당신도 이틀이면 경매박사(강현구 지음, 매일경제신문사)’였는데 최소한 30번은 읽어보라고 하던 일이 바로 어제 일 같기만 하다. 이렇게 나에게 지나가듯 다가온 부동산 경매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도구가 되었고, 내가 부동산에 입문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처음 경매법원에 다니던 시절은 호가제와 입찰제가 병행되던 시절로, 아직은 호가제가 주류였던 시기였습니다. 호가제란 원하는 물건이 진행되면 응찰자들이 집행관 앞으로 나가 구두로 가격을 올려가면서 응찰하여 더 이상 응찰자가 없으면 그 때까지 최고가격을 제시한 사람에게 낙찰시키는 방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금 농수산물 도매시장이나, 동산 입찰 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보면 되는데,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경매에 투자하기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요즘처럼 여성들이 법원경매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럼 누가 응찰했는가 하면 극히 한정된 꾼(?)들만의 잔칫집으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상시로 벌어지면서 경매꾼들에게 떼돈을 벌어주었습니다.
경매꾼들만의 잔칫집이라며 일반인들은 꺼리던 그 곳에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부동산 경매가 인생역전의 전환점을 가져다 주리라고는 공부시작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생전 처음 낙찰받은 물건이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에 있는 대지 면적 20평, 반지하 1층 지상 2층 단독주택이었습니다. 지금 성남 구시가지 재개발논의가 한창 뜨거운 지역의 물건으로 당시 감정가격이 8,500만원 정도였는데, 3회 유찰로 4,352만원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4,620만원에 응찰하였는데 결과는 단독이었습니다.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비용과 1층에 살면서 보증금을 날린 임차인에게 이사비용으로 준 200만원을 합해 총 5천 여 만원이 들어갔습니다. 이중 2천만원은 잔금융자를 받았으니 실제로 투자된 제 돈은 3천만원 정도로, 소유권을 취득한 다음 전체를 전세로 임대한 내용을 보면 지층은 보증금 1,500만원, 1, 2층은 각 3천만원으로 총 7,500만원이 회수되었습니다. 이 물건처럼 회사에 근무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낙찰받은 물건이 총 4건이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낙찰 받는다는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비밀에 붙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부동산 경매에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되었고 자립의 기틀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물건은 전세로 임대하고 있다가 경기도 성남 구시가지가 개발 열풍에 휩싸이던 2002년에 1억2,500만원에 매도처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말에 몰아닥친 IMF 한파로 다니던 금융회사가 부도나기 일보 직전에 실시한 명예퇴직을 자진신청하면서 조직(회사) 생활 4년 만에 실직자가 되었고, 차라리 잘 되었다고 판단하고 경매에 전념하기로 작정하고, 집사람과 퇴직하기로 합의하고 이틀 만에 사표를 내고는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경영기술개발원’이라는 곳에서 노동부 고용실업급여를 받으며 고급 이론무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경매세계에 뛰어든 것이 1998년부터 였습니다.
당시 함께 명퇴를 신청했던 동료가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는데, 송별회식장은 그야말로 눈물의 바다였습니다. 그 때가 J모 은행의 눈물비디오가 TV에 방영되던 시기였습니다.
경매투자 시작 당시 수중에는 퇴직금을 포함해서 투자가능 총금액이 3,100만원이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처음부터 가난하기도 했지만 다니던 회사 3층에 모 증권회사 지점이 있어, 그 곳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날린 돈이 4천 여 만원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당시 우리회사 직원들 중 주식으로 까먹은 금액이 제가 가장 작았다는 점입니다. 주식에 손 안 댄 사람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정상화되면 받아주겠다던 신용금고는 퇴직 얼마 후 회사도 부도처리되었고, 올 데 갈 데 없어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으로 경매에 뛰어들 때에는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도 했지만, 당시 사회분위기는 부동산을 가진 것 자체가 더 없이 고통스럽고, 적어도 이 땅에서는 부동산은 더 이상 재테크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염세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미 달러 대비 환율은 2천원을 넘었고, 은행이자율은 30%에 육박했으며, 대통령은 TV에 나와 하루라도 빨리 외환위기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하고 그것에 동참해서 착한 국민들은 몇 시간씩 긴 줄을 선 다음에도 아무런 군말 없이 금 모으기에 동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경제코너 기자님들과 언필칭 전문가를 자칭하는 일부 부동산 점쟁이들은 이 나라에서는 부동산은 더 이상 재산증식 수단이 아니라 애물단지일 뿐이라고 침이 마르게 떠들던 시절이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하에서 눈 앞에서 벌어지는 단군 이래 초유의 부동산 가격 대폭락을 목격하면서,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더 이상의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고 아우성치는 기사들을 읽으면서 착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맞아”, “그래 정말이야”, “부동산은 이제 끝이야!”라고 중얼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 일처럼 느껴집니다.
누가 봐도 이런 시절에 부동산 경매는 권할만한 재테크 방법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많은 돈이 있던 것도 아니고 가진 돈이라고는 3,100만원이 전부인 종잣돈을 몰빵치는 심정으로 남들이 경매시장을 쳐다보지도 않을 때 본격적으로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시쳇말로 ‘물반 고기반’이던 당시 경매시장을 잠시 들여다보면, 고리사채도 아닌 은행이자율이 연 27~30%에 육박하자 파산에 빠진 경매물건이 폭증하는 바람에 자고 나면 법원경매계가 하나씩 생기는 판이었고, 인천×수원지법의 경우는 경매계가 23~25계까지 늘어나 공휴일과 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경매가 진행되었고, 하루에 진행되는 물건이 200~250여건에 이르렀습니다.
서울 시내 크고 작은 빌딩들이 외국계 투기자본에게 속속 소유권을 강탈당하던 가슴 아픈 시절로, 부동산 매매시장은 종별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최고 반토막 난 것들도 허다했고, 부동산 경매시장 역시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남부법원에서 진행된 목동의 40평형대 로열층 APR가 감정가격 2억2천만원에 형성되어 2차 유찰은 기본이고, 심지어 3차 유찰되어 감정가 대비 51%(1억1,200만원)에서 55%(1억2,100만원)에 응찰하면 경쟁률은 높아야 3대1이면 낙찰받을 수 있었고,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감정가 1억8천 여 만원짜리 분당의 32평형 로열층 아파트가 2차례 유출되고 3차에서 1억2천만원 정도 쓰면 너끈히 낙찰받던 시절이니, 다른 물건들은 어땠을까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랬던 것이 2002~2003년의 부동산 폭발 장세를 맞아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의 경우 평당 매매가가 대략 1,500~1,800만원 선으로 약 6~7억원 선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고, 분당의 경우 5억원 전후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자체만 보면 정부의 부동산을 규제하겠다는 것과 금융 측면을 보면 은행의 금리가 낮다는 것 정도가 당시와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3,100만원으로 시작한 부동산 경매건수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개인적으로 낙찰받은 것이 15개이고, 동업자와 공동으로 투자한 것이 15건, 법인과 펀드로 투자한 것이 20여 건으로 총 50여 건에 이릅니다.
이 중에 IMF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99~2001년 사이에 낙찰받은 20여 개 물건들은 현재 원금대비 최소한 2배에서 많게는 6배까지 부풀어 올라 있는데, IMF 당시 저는 권리분석이 좀 복잡하고 세입자가 많아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다가구주택만 집중적으로 공략했는데, 그래서 본인이 ‘다가구 전문’으로 소문이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사례 하나를 소개하면 감정가격 3억5천만원 짜리 마포구 망원동 소재의 대지 47평,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20여 평으로 총 9가구의 세입자가 들어있던 다가구 주택이 3차 유찰되어 감정가격 대비 51% 상태인 1억7,800여만원에서 2억1,300만원에 입찰하여 경쟁률 6대1에 낙찰받아, 총 투자금액이 2억4,500만원 정도 들어갔는데, 전세로 회수한 보증금만 3억4천만원을 받았습니다.
임대만으로 1억원 정도를 더 확보하는 식으로 재산을 불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뭘 믿고 홀로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왔는지 지나고 보니 제 자신이 대견스럽습니다. 결과를 가지고 출발점을 칭찬하자는 것이 아니라 마인드가 말입니다. 남들은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하지 못해 난리법석을 떨던 시절에 낙찰로 부동산을 사들이겠다는 돈키호테식 발상은 신념과 확신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시작(1994년)부터 1998년(IMF로 회사퇴직)까지는 경매를 접하고 배우던 시절로 회사업무에 충실하여 그다지 본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식투기로 돈 까먹는 줄 모르고 허송세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경기도 성남 구시가지에 낙찰받은 20평지 구옥 두 채를 낙찰가의 거의 세 배 가격에 매매했다는 것으로 공부에는 확신을 가졌지만 투자로는 재미를 보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98년 퇴직부터 2002년 월드컵 개최 시까지는 솔직히 말씀드려 제가 평생 먹고 살 것을 만들어 놓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비장한 호들갑이 전국을 덮고 있던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부동산 경매시장에 투자한 사람치고 재미보지 못한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이 때 낙찰받은 물건들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당시는 이자율이 높아 경매물건은 넘쳐나도 낙찰받은 사람들은 미친놈(?) 취급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미친놈 취급하던 분들이 그러나 지금은 배가 아파 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개인적인 투자와 법인 및 펀드 물건을 구분해서 입찰에 임하고 있습니다. 1억원 전후의 물건이나 오래 버티기를 해야 하는 경매물건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낙찰받아 장기전으로 임하고, 덩치가 큰 물건이거나 수익용 부동산의 경우에는 법인이나 펀드를 구성해서 입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현재 상황을 보면 수익률이나 우량물건이 IMF 때보다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부동산 시장의 가격전망에 대한 영역은 귀신도 모르는 부분입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아 장래를 예상해 본다면 적어도 2006년 말까지 경매시장은 다른 어떤 시장보다 수익률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예상해 볼 수 있는 이유로는 부동산시장과 경매시장의 서로 연관된 특성 때문입니다. 부동산매매시장이 나빠지면 경매시장은 구조적 특성상 약 6개월 후부터 감정가격이나 낙찰가격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현재는 참여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으로 불황국면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회복국면을 2006년 초로 본다면 그 1년 뒤인 2006년 말까지는 부동산 경매시장은 다른 어떤 투자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할 것입니다. 다만 현재 과열되고 있는 경매시장의 일부 ‘토지’는 이 전망에서 제외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