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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공!(7) : 하나님을 소망하는 성공자가 되라!”
+ 본 문 : 시 편 42장 1절 - 5절 (구약성경 832쪽)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줄로 믿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앞으로는 더 평안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앞으로는 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메이어 (William E. Mayer) 박사라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6.25 전쟁 직후에,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풀린 1,000여 명의 미군들을 상담하였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이런 내용을 소개하였습니다. “미군들을 감금시킨 북한 포로수용소에는 특별한,
철조망이나 콘크리트 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북한군이 사용한 악랄하고 무자비 하였던,
심리전술 때문에 정신적인 독방에 갇혀 낙심과 좌절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포자기라는,
무서운 정신질환을 가져왔습니다.”- 이 병은 나중에 ‘Mirasmus - 자포자기병’ 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병은 사람이 낙심이나 절망 때문에, 저항력과 인내심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생기는 정신병입니다.
이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당시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포로 38%가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낙심, 낙망, 절망이 이처럼 무서운 병입니다. 그 어떤 암이나 결핵,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병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S.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탄이 그 동안 싸움터에서 사용했던 무기들을 졸개들에게 판매했습니다.
각각 가격이 매겨진 각양의 무기들이 전시 판매되었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 정욕, 음란, 교만,
공포 등 여러 무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한 무기에,
아주 어마어마한 가격이 매겨져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한 졸개가 두목 마귀에게 물었습니다.
‘이 무기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비쌉니까?’ - 그때 두목 마귀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목마귀가 말합니다. “이 무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가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야.
이 무기는 우선 겉보기에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무기를 별로 경계하지 않아.
그러나 일단 이 무기의 덫에 걸린 사람은 좀처럼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 무기의 장점이지.”
그렇게 두목마귀가 자랑하는 그 무기 표면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낙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혹 어떤 일들 가운데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하지는 않았습니까? 년 초에 계획했던 일들이, 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래저래 나라 경제가 안 좋다보니까 사업도 미진하고, 가정의 일들도 원하는 만큼 풀리지 않았고,
사랑하는 자녀들의 진로나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금 낙심한 분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원치 않는 나이는 한 살 한 살 더 먹어 가는데, 내 인생은 좋아질 기미가 전혀 없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낙심되고, 절망스럽고, 우울해지고, 사는 게 지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고, 마음속에 늘 어두운 그림자를 품고 살아갈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불필요한 비교의식으로 풀이 죽거나 의욕을 상실합니다. 별일 아닌 것에도 속상해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낙망과 낙심에 빠질수록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감정상태가 날카로워집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중압감을 느끼며 신앙생활 자체가 예리해집니다.
제임스 줄로라는 분은, 바로 이런 낙심과 절망의 악순환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기분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편두통을 앓는다. 우리는 자신만의 기분을 삼킨다.
그리고 위궤양에 걸린다. 우리는 자신의 기분에 무게를 싫고, 곧 다시 아픈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런 우리 인생의 현상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놀라운 처방전을 내려줍니다.
굉장히 실제적인 처방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유익한 치료법입니다. 어떤 처방전을 줍니까?
첫 번째 처방전은, 주변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은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저자가 마음이 상하고 침체되었던 것은, 사람들의 말에 예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너를 안 도와주시는 것 같다.” 고 절망적인 말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잘 안 풀려 속상하고 서글픈데, 사람들은 생각 없이 매정하게 말을 내뱉습니다.
어떨 때는 가까운 사람이 오히려 기운 빠지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처량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민감하다 보면 기분이 쉽게 상하게 되고, 기운이 쫙 빠집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다보면, 괜히 내 속만 상하고, 눈물만 나오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일이 잘 안 풀려서 속이 상한데, 이렇게 낙심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라.” 고 외칩니다.
여기 “하나님을 바라보라.” 는 말씀은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대하며 주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나를 낙심하게 만드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예민해지지 말고, 하나님의 일하심에만 민감하라는 것입니다.
금세기 훌륭한 의사로서, 목회자가 된 M.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에 낙심하고 비참한 태도로 투덜거리기보다는,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어떻게 일하실지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모든 낙심에서 해방될 수 있다.” 아멘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면서 살면, 맑고 밝게 트인 인생, 신선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를 따라 선포하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자!” “주님만 바라보자!”
다시 한 번 더 선포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자!” “오직 주님만 바라보자!” 아멘!
찬송가 490장 2절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 될 때 내게 소망을 주었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내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정년 이루어져 주의 얼굴을 뵈오리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낙심 될 때, 첫 번째 처방전대로 주변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들의 말을 듣지도 반응하지도 말고, 오직 나의 주 나의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처방전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오직 미래만 바라보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난 과거에 얽매이기 쉽습니다. 이 시편 기자도 옛날을 생각하니 속이 상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얽매어 옛날에 있었던 일로 속상해 하다보니까,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한때는 내가 직장에서 잘 나갔는데, 지금은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 봐도 내가 지난 번 교회에서는 꽤 영향력 있는 리더였는데, 이 교회에서는 나를 안 알아준다든지,
내가 이 교회 다닌 지가 오래 됐는데 안 알아준다든지 하게 되면, 교회를 다녀도 전혀 은혜가 안 됩니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야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신조어로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정신을 “앞으로이즘” 이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이즘” - 우리 앞에 되어질 미래를 향하여 앞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곧 진행될 것이다.”(사 43:19)
이 말씀을 의지하여 우리도 한 번 선포합시다. “과거 이별! 미래 환영!” “과거 이별! 미래 환영!”
그렇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려면, 과거와 완전히 이별해 버려야 합니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과거라는 밧줄을 완전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난 새 사람들인 저와 여러분의 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미래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새로운 미래를 약속해주십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선포합시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이다. 과거 이별! 미래 환영!” 아멘!
세 번째 처방전은, 조급한 마음으로 살지 말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저자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온전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오직 믿음으로! 오직 기도중심으로 살아온 그가, 이번에는 너무나도 충동적으로 조급하게 행동합니다.
사람들의 말 한 마디에 속상해 합니다. 억울해 합니다. 기운을 잃고 울적해 합니다. 분노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성급한 사람일수록 감정의 기폭이 심합니다. 소위 정서적 up & down이 잦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며, 매우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처량한 자기연민과 깊은 슬럼프에 빠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인만큼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학을 일년 늦게 들어가고, 졸업을 조금 늦게 하면 어때요? 인생의 과정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취직이 일년 늦게 되어지고, 취업을 조금 늦게 하면 어때요? 인생의 과정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 자녀들의 결혼이 점점 늦어지는 현상이 있어서 부모는 걱정하지만, 결혼도 다 때가 있습니다.
강준민 목사님이 참 좋은 충고를 합니다. “조급하면 이스마엘을 만들고, 기다리면 이삭을 만든다.”
아브라함이 조급해서 만든 골치덩어리가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의 자녀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급한 상황에서도, 잠잠히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을 기다리는 믿음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는도다.” 믿습니까?
우리는 그 어떤 절박한 상황에서도, 잠잠히 주님만 바라보는 여유를 갖고 살아갑시다.
우리는 주님의 때를 기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조급하게 발버둥 친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영혼의 평정을 유지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뜻밖의 해법이 생길 줄 믿습니다.
낙심 될 때 네 번째 처방전은, 낙심하는 되신 소망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의와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슬럼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왜 그처럼 쉽게 낙심하고, 슬럼프에 빠졌는지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간단합니다.
그는 너무 지나칠 만큼, 자신의 모든 삶을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42편과 43편에서 보면 ‘나’ 라는 1인칭이 51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렇듯 모든 기준을,
‘나’ 에게 맞추었기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고 낙심되고, 나에게 초점을 맞출수록 더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시선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린 것입니다.
자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낙심이 되었는데,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이렇게 힘차게 선포합니다. “내 영혼아, 너는 네 희망을 하나님께 두어라.”
얼마나 역동적입니까? 스스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답게 희망을 가지라는 외침입니다.
영국의 훌륭한 목회자였던 스펄젼 목사님은 그의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낙심하지 않은 것은,
“나는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읊조립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이마의 주름살을 펴주실 것이며, 내 두 뺨의 눈물도 다 닦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폭풍우가 닥치는 순간에도 내 머리를 들고 웃을 수 있고,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아, 창밖을 내다보라, 그리고 마음을 소망의 향기로운 꽃으로 장식하거라.’
오늘 본문의 시인도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해를 바라본다는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만 보고 있으면, 그의 고개는 결코 아래로 쳐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낙심도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둠과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의 예언자로 살았던 이사야는 이렇게 외치며 선포했습니다.
이사야서 40장 31절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아멘!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소리 질러 부르짖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그는 더 이상 처량하게 신세타령이나 하고, 과거나 회상하며 지질이 궁상이나 떨며 낙심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만 걸겠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보다 더 확실한 낙심 극복 처방전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삽시다.
우리도 더 이상 처량하게 신세타령이나 하고, 과거나 회상하며 지질이 궁상이나 떨며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만 걸고 선포합시다.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아멘!
그리하면 떨어질 낙자 낙심(落心)이 아니라, 즐겁고 기뻐할 락 락심(樂心)으로 바꾸어질 줄로 믿습니다.
제발 제발 주변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담대하게 주님만 바라봅시다. 지나가버린 과거에 얽메어 울고 웃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갑시다.
매사 무슨 일이든지 ‘바빠! 바빠!’ 그렇게 조급하게 살지 말고, 제발 여유 있는 영성을 가집시다.
이사야서 40장 31절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아멘!
오늘 본문 5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능력의 주님을 믿는 성도님들답게, 제발 낙심하며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어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힘 있게 살아가시되,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높이높이 솟아오르듯이 힘차게 올라가는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시고,
삶의 현장에서 뛰어가도 전혀 지치지 않으며,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장자!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자! 성공자! 승리자! 행복자! 축복자가 되시기를,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