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피겨영웅 커플 세기의 유료 결혼식
하객 1만8000명 · 입장료 수입 10억원
이동훈 기자
지난 9월 4일 저녁 7시30분 중국 베이징(北京) 수도(首都)체육관 빙상장. 1만8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빙상장에 검정색 연미복을 입고 스케이트화를 신은 자오홍보(趙宏博·37)가 빙판 위로 등장했다. 자오홍보는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페어부문 금메달을 획득한 중국의 피겨 선수. 자오홍보는 연미복을 입은 채 한쪽 무릎을 얼음판 위에 꿇었다.
곧 빙판 위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꽃다발을 든 채 화동들과 함께 미끄러지듯 등장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자오홍보와 호흡을 맞춰 피겨 페어부문 금메달을 딴 선쉐(申雪·32). 선쉐는 국제무대서 한국의 김연아에 비견될 정도의 지명도를 갖추고 있다.
자오홍보는 환한 웃음과 함께 나타난 선쉐를 번쩍 안아들고 빙판 위를 수십 번 빙글빙글 돌았다. 신부 선쉐도 전혀 긴장한 기색없이 자오홍보의 연기에 몸을 맡겼다. 빙상장에 운집한 관중들은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중국 관영 CCTV를 비롯, 홍콩과 대만의 언론들까지 자오홍보와 선쉐의 이날 결혼식 장면을 생중계했다.
플루센코·아사다 마오도 들러리로
신랑 자오홍보와 신부 선쉐는 중국 피겨 스케이팅계를 대표하는 남녀 선수다. 지난 1992년부터 연기를 함께 해온 이들 커플은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페어부문에서 46년간 이어져온 러시아의 아성을 깨뜨리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 커플이 따낸 금메달은 중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첫 금메달이었다. 이들은 지난 동계올림픽 이후 스포츠 인민영웅으로 부상했다.
이들 두 선수는 그동안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하지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도 각각 동메달에 그쳤다.
화려한 명성에 걸맞게 이들의 결혼식에는 러시아의 빙상황제 예브게니 플루센코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알렉세이 야구딘, 미국의 피겨스타 조니 위어, 일본의 아사다 마오 등 세계적 피겨스타들이 대거 참가해 축하공연을 펼쳤다.
특히 팬티만 걸친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등장한 플루센코는 파워풀한 연속회전과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을 선보이며 하객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반면 우리나라 김연아 선수는 이날 결혼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공식적으로 결별한 김연아 선수는 중국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10대 때 만나서 18년간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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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 4일 베이징 수도체육관 빙상장에서 열린 자오홍보와 선쉐의 결혼식 겸 축하공연.
이날 결혼식과 함께 ‘얼음판의 연인(氷上情侶)’으로 불려온 둘의 관계도 새삼 화제다. 자오홍보와 선쉐가 만난 곳 역시 얼음판 위다. 이들 둘 모두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출신이다. 매년 겨울 빙설제(氷雪祭)를 개최하는 하얼빈은 얼음과 눈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선쉐의 이름 역시 ‘눈(雪)’이란 뜻이다. 1991년부터 스케이트를 시작한 선쉐는 1992년 자오홍보를 만나 호흡을 맞췄다.
당시 키 150㎝도 안되던 14세의 선쉐는 5살 연상의 자오홍보를 한눈에 사로잡은 파트너였다. 이후 두 선수는 같은 코치 아래서 연습파트너로 만나며 교제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18년간 연인 관계를 지속해 왔다.
지난 2005년 자오홍보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 이어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서도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이들 커플은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이들 커플은 다시 빙판에 복귀했다. 결국 각각 37세, 32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녹슬지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특히 37세의 피겨 금메달리스트는 1920년 이후 처음이다. 게다가 자오홍보는 만주족이고, 선쉐는 한족이다. 이민족 간의 결합인 셈이다. 이들 커플의 결혼식이 13억 중국인의 주목을 끈 까닭이다.
‘유료 결혼식’ 비난 여론
세간에 화제를 뿌리며 결혼식을 올린 이들 커플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결혼식을 핑계로 기업 스폰서를 끼고 유료 하객을 모았기 때문이다.
1인당 결혼식 입장료는 최소 100위안에서 1080위안(약 18만3000원)에 달했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1만8000명이 운집한 이날 결혼식으로 이들 커플이 벌어들인 입장료 수입은 600만위안(약 10억원)에 이른다. 행사진행비를 뺀 순수익만 수백만위안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자오홍보와 선쉐 부부는 지난 2007년 5월 28일 베이징시 하이딩(海定)구 민정국(民政局)에서 이미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마친 상태였다. 지난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때도 정식 부부 사이였다. 다만 결혼식만 미루고 있던 상태였다. 빙판에 한쪽 무릎을 꿇고 신부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것도 2007년부터 빙판에서 선보인 장면이었다.
결국 이들은 이미 법적으로 결혼을 한 상태에서 돈벌이를 위해 결혼식을 올렸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힘들게 됐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4년부터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하는 중국 체육계 부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중국 신세기주간(新世紀周刊)이 선정한 체육계 부호 순위에서도 연수입 210만위안으로 중국 체육계의 28번째 부호로 기록됐다.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획득 후 연수입은 500만위안(약 9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빙상 결혼식을 기획단계부터 총괄했다고 스스로 밝힌 신랑 자오홍보는 “결혼식을 피겨스케이트 공연에 포함시킨 것은 아내 선쉐가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료 상업공연으로 우리가 조금 돈을 버는 측면도 있지만, 벌어 들인 입장권 수익의 10%는 청소년 기금마련을 위해서 쓰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