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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은 '어미소 모성애와 맹상군 모성애'로 잡아 봤습니다.
대개 매일 생활 이야기 정치 경제 뉴스, 국내외 토픽과 지방뉴스며
지방신문까지 한바퀴 쭈욱 돌면서, 2시간 생방송 재료나 소재들을
찾게 됩니다. '우면골 상사디야' 같은 경우 2시간중 꽁트코너, 기획코너.
초대석, 창극코너에 요일마다 한코너씩 해서 보통 8개의 코너로 짜여지는데
하루 평균 원고 집필량이 원고지로 환산하면 90매에서 110매 정도를
써야 합니다. 이걸 매일 쓴다고 상상하면 조금은 질릴 겁니다.
그런데 그날 그날 재료깜, 식재료며 양념들이 좀 신이 나는 경우도 있고
쓸 것이 없는 날도 있습니다. 난감하죠. 그런땐 작가의 창작지평에 기댈수
밖에 없어 그도 난감합니다. 왜 이런 방송 내부 이야길 하는가 하면
'어미소 모성애와 맹상군 모성애' 이야기는 당일 쉽게 건져진 오늘의 정보와
2천 3백년 전 정보라 비교적 주제잡기가 쉬웠다는 겁니다. 만약 이 코너가
전해오는 '명심보감' 구절이나 공자왈 맹자왈 하기로 한다면 저 같은 정도면
방송하는 사람들 말로 '앉아서 먹는다'고 할 겁니다. 그렇게 쉬운 길을 두고
왜 고생을 하느냐 하겠죠. 그게 그날의 방송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체질화 된 방송감각은 KBS 25년, 국방부 국군방송 10년 등 국가 기간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감각이요. 일종의 사명감이라 할 것입니다. 방송글, 그래서
쉽지 않다는 변명인가 봅니다. 자, 그럼 '어미소 모성애와 맹상군 모성애'
이야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날 '강원일보'에 횡성 살처분 현장에서
근육주사를 맞은 어미소가 세상 모르고 젖을 문 송아지를 보고 과학적 한계시간
1분을 넘기고 그 세배나 되는 3분동안 죽지 않고 서서 떨면서 젖을 물리고 있더란겁니다.
그 불가사의한 모성애 앞에서 한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그리고 맹상군의 모성애로
연결해 보자고 작정했던겁니다. 인간과 다른 것은 횡성 어미소는 과학적 한계시간
1분을 세곱절이나 넘기고 젖을 물렸지만 결국 숨졌고, 인간의 어머니 맹상군은
죽였어야 할 자식을 살려 훗날 중국 천하를 쥐락펴락 했던 제후 지위에 올라
식객 3천명을 거느린 당대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는 겁니다. 그 차이가 바로
동물과 인간의 차이요 문화와 정신의 차별성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거룩하고 위대한 모성애 이야기가 많은데 2천 3백년 전 맹상군 어머니였느냐?
이 역시 사이즈 큰 것에 쏠리는 일종의 피라미드 증후군이라 할 겁니다.
이왕이면 큰 판으로 열어보자. 그 모성애로 살아 난 맹상군이 중국천하를 호령했다니
크게 놀아 본 인간 이야기로 잡아 보자. 그래서 맹상군 어머니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어쩌면 길어질지도 모릅니다. 다음 올린 방송글까지만 봐도 좋습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살처분 소의 모정과 아이 살린 모정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오늘은 모성애 이야기 둘 정도 돌아볼까 합니다.
초란 알아주시는군요. 우리 여성들 모성애가 다 큰 남성들도
구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아 애들 같은 때 많잖아요. 어른도.
놀보 이러다 초란이에게 휘둘려 제가 할 말도 못하겠군요.
자, 얼마전 강원도 횡성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초란 고전 이야기 하재놓고 어떻게 강원도 횡성 살처분 이야깁니까?
놀보 보통은 안락사 주사를 맞은 소가 10초에서 1분 안에
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 송아지가 있는 암소가
주사를 맞은 순간 송아지가 와서 젖을 물더랍니다.
초란 짧게는 10초, 길게는 1분간 밖에 남지 않은 어미의 운명도
모르고 송아지가 젖을 물었군요.
놀보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미소가 젖을 물고 있는 송아지를 보며
3분을 넘게 버티고 서 있더랍니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요.
그리고 쓰러졌는데요. 송아지는 그 주변을 울며 맴돌고요.
초란 모성애가 얼마나 강한가를 눈물겹게 보여준 횡성 암소였군요.
놀보 마찬가지로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자식을 지켜낸 모성애
고사는 이루다 셀수 없이 많은데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때
맹상군 어머니 모정을 돌아볼까 합니다.
초란 맹상군이라면 심청가에 등장하는 그 인물이잖아요.
‘ 닭아 우지마라 반야 진관에 맹상군이 아니로다’
놀보 그 사설의 주인공인 맹상군은 제나라 재상 전영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5월5일생이었답니다. 원래 첩실 소생이었습니다.
초란 그 훗날 식객을 수천명 거느렸다는 맹상군이 원래 재상의
아들로 태어났군요. 첩 자식이라는 운명까지 안고서요.
놀보 그런데, 그때는 5월 5일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문 높이에
닿을 쯤이면 아비를 죽인단 속설이 있어서/ 아버지 전영은 맹상군을
버리라고 했던거죠.
초란 그 당시 중국에서 5월 5일생 아들은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군요. 그런데 맹상군 어머니는요?
놀보 일국의 재상 부인도 아니고 천첩 소생이었으니
거역했다가는 자신도 온전치 못한 일이었죠. 그런데
맹상군의 어머니는 목숨을 걸고서 몰래 몰래 그 자식을
키웠다고 합니다.
초란 동 서가 다 비슷하군요. 자라서 아버지를 죽일 자식으로 저주받고
태어나면 산에 두거나 강에 띄워 보내 운명에 맡기곤했잖아요.
놀보 그렇게 목숨을 걸고서 키운 자식이 마침내 장성했습니다.
그리고 맹상군 모친은 또 한번 목숨을 걸고 그 장성한
자식을 전영에게 보이며/ ‘이 아이가 버리라 했던 당신의 아들입니다’
초란 재상 전영이 깜짝 놀랬겠군요. 키도 훌쩍 큰 아들이 나타났으니
놀보 그럼요. 전영이 화를 내면서 ‘5월 5일 낳은 아들은 키가 문 높이만
되면 아비를 잡는다는데 어찌 이 아이를 키운 것이냐?‘
그러자 맹상군 어머니가 당당하게 말했답니다.
모친 (당당히) ‘그럼 문마다 높이를 더 높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놀보 그 말을 들은 전영이 번뜩 깨닳은 바가 있어 그 자식을
거둬 들였는데요. / 천첩소생이었던 맹상군이 훌륭하게 자라
훗날 제후가 됐다는 겁니다.
초란 한 어머니의 목숨을 건 모성애가 아들을 살리고 마침내
한 나라를 이끄는 제후가 되게 했다는거군요.
놀보 우리땅에도 목숨을 건 모성애 고사가 많은데요. 오늘 강원도
횡성 살처분 현장에서 과학으로 해명할 수 없는 그 불가능한
시간까지 버티면서 송아지 입에 젖을 물려 주었던 암소의 모성애.
초란 때때로 아이를 버리거나, 아이 목숨을 끊는 비정한 오늘의
모성애를 돌아보게 하는 고사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신 명심보감’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글도 인연이 따로 있나보다. 1시간을 정리한 글이 한 순간에 날아가기도 하니.
시간상 간단히 갈무리 할 수 밖에 없다. 우선 방송글에서 맹상군 어머니가 말했다는
'문 높이를 더 높이면 되잖습니까?' 이 구절은 원래 맹상군 자신이 했던 말인데
사건을 압축하고 드라마틱 하려는 욕심 때문에 맹상군 어머니 말로 처리했다는 걸
말했고, 그 다음은 2천 3백여년 전 중국 대륙이 합종연횡으로 국가연합과 연맹 분열을
반복하던 때 제나라에 맹상군이란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다는 점.
당시 중국이 제나라와 진나라 양강 구도로 패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을 때
맹상군은 제후국들과 합종책을 써서 진나라를 견제 했다는 점
3천의 식객을 거느리며 인간관리, 인물관리, 적재 적소에 사람을 쓰는 용인술에
탁월한 현장 감각을 익혔다는 점. 그 많은 식객들 중에는 학자그룹과 각 분야 전문가 그룹
특히 무사 협객 그룹들이 망라돼 많은 인재를 직접 관리해 미래를 대비 했다는 점.
우리 판소리 심청가에 등장하는 한구절 ‘ 닭아 우지마라 반야 진관에 맹상군이 아니로다’
이 대목은 진나라에서 죽게된 맹상군이 식객의 도움을 받아서
여우털 옷을 훔쳐 진소왕 애첩에게 바치고, 애첩이 맹상군 석방 로비를 해서
탈출을 서둘렀을 때 함곡관 문이 닭이 울어야 열리게 돼 있고, 바로 후방에서
진나라 추격군이 쫓아 오고 있는 순간, 식객 중에 닭울음 소리 잘 내는 자가
닭울음 흉내를 내자 주변의 모든 닭들이 울어 함곡관 성문이 열리고 마침내
진나라를 탈출해 살아 돌아 왔다는 고사 등을 비교적 자세히 기술했는데
원고가 날아가 간단히 요약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다.
식객을 통해 천하의 인재를 모았고, 세객을 대접해 중원의 외교 수완을 발휘하며
제나라의 제후와 맞먹는 세력을 갖추웠던 맹상군은 여러차례 살해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제나라 실권자에 오르는데, 우리 조선의 학자들이 자주 인용했던
풍환(馮驩)과 맹상군 고사는 잠시 돌아보고 가야겠다. 식객 3천을 거느렸던
맹상군이 처음엔 풍환을 별스럽게 여기지 않고 홀대를 했는데. 그가 늘상 하는
일이 칼을 두들기면서 '장검이여 장검이여 밥상에 고기가 없어 못 먹겠네'
그 소리 듣고 식객 중에 한단계 대우가 좋은 식객으로 대접해 주면 거기도 또
하는 일이 '장검이여 장검이여. 밥만 먹고는 못 살겠네 마차가 없어 못 살겠네'
먹고 하는 짓이 칼을 두들기며 늘상 그 짓이니 얄밉기도 했지만 요즘말로
세단정도 타고 다니게 대접을 해줬는데. 거기서도 또 칼을 두들기면서
'장검아 장검아 내 집이 없어서 못 살겠구나' 하니. 이 대목에서는 맹상군도
버릇 잘못 들었구나 싶어 더 이상 신분상승을 안 시켜 줬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설땅에 풀어 논 이자와 원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자. 식객 밥 먹을 자금이
부족하여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풍환이 나가서 그 맹상군 돈 빌려다 쓴 사람들
죄다 모아놓고 소를 잡아 잔치하며 하는 짓이 갚을 능력 있는 사람 빼놓고서
변제 능력 없는 사람들 문서를 모아서 불태우고 돌아오니, 맹상군이 분노하여
따질 때 풍환이 했던 말이 참 인상적이다. '그들이 끝내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인데 형벌로 다그친다면 그 이전에 모두 다 당신 곁을 떠날 것이다.
그래서 갚을 능력 있는 사람 것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돈보다 사람을 잡았다'
한때 장검을 두들기며 밥상에 고기가 없네. 마차가 없네. 내 집이 없네
타령만 하고 있던 그 풍환이란 자가 맹상군의 진정한 멘토로 여러차례 위기에서
구해 주는데, 이자문서 불태운 일 역시 돈을 잃더라도 사람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걸 보여준 일이라 하겠다. 식객의 밥값을 제대로 한 셈이다.
그리고 훗날 제나라 민왕이 맹상군을 제거하려고 실권을 뺏을 때
식객 3천명이 바람 처럼 흩어져 맹상군을 떠났는데. 오직 풍환만이 남아서
맹상군을 지켰다고 한다. 진나라로 가서 맹상군을 재상으로 써라 유세를 했고
제나라로 돌아와 '진나라가 맹상군을 재상으로 쓰려고 한다. 그럼 천하는
진나라로 통합될 것이다. 구경만 할 것인가? ' 해서 놀란 제 민공이 다시
맹상군을 불러 들이고 더 높은 지위로 융숭하게 대접받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제나라 제후에 버금가는 국제적 지위를 가지고 외교역량을 발휘했고
만년에 까지 그 부귀 영화는 식객들 지원 속에서 빛나게 된다.
사마천은 그의 <사기>에서 맹상군을 논평하여 말하기를
'맹상군이 지배했던 그 설땅을 가보니 지금도 불량배 같은 힘쓰는 자들이 많은데
그가 남긴 악습과 폐단이라 하겠다. 선비를 보다 더 대접하는 유풍을 남겼더라면
설땅에 무사니 협객이니 기골 장대한 장사들이 몰리는 폐습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쪽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정리해야겠다.
맹상군은 그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애 때문에 살아 남았다는 것.
사람 다루는 식객용인술로 당대 최고 전문가들을 끌어 모았다는 것.
진나라와 제나라 양강구도에 그 많은 식객 세객들을 잘 활용해 패권을 유지했다는 것.
위기 때 마다 식객들이 나서서 맹상군을 구해 냈다는 것.
강대해지는 진나라 세력을 합종책으로 막아냈다는 것.
인물을 알아보면 끝까지 믿고 그 책략이나 정책을 과감하게 받아 들였다는 것.
다만, 후대 역사가들이 혹평했던 것 처럼, 지식인 집단보다 자잘한 재주까지
전문가 집단으로 챙겼고 무력집단을 양성한 폐단을 남겼다는 점.
식객과 세객을 적절히 정치와 경제 군사무대에 잘 활용했다는 점 등등을
맹상군의 특출한 면모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우리 땅에서 맹상군은 어떤 인물로 받아 들였을까?
조선 왕조실록에 18번이나 등장하는 맹상군은 세종 때 교육기관의 영세성을
혁파하기 위해 맹상군처럼 과감히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성공모델로 말했고
그 나머지는 국가에서 빌려다 쓴 돈, 원금과 이자를 어떻게 거둬 들여서
불안한 경제환경을 극복할 것인가에 맹상군이 풍환의 계책을 받아 들여서
과감한 탕감책을 쓰라고 건의하는 부분에 인용됐고, 그 이후 인조 때는
청나라와 외교 문제에 봉착했을 때, 맹상군의 외교적 성공사례를 열거하기도 했으며,
정조 22년에는 인동 부사(仁同府使) 최헌중(崔獻重)이 상소를
과감하게 받아 들여 풍환의 탕감책을 실시하라고 특명을 내리기도 했다.
한가지 고려말 지식인이나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맹상군이 3천 식객을
거느렸다. 풍환과 같은 인재를 잘 활용해 위기를 타개했다. 鷄鳴狗盜 닭울음 흉내내는 무리와
도둑질 잘 하는 무리들 이끌고서 천박한 무뢰한들까지 챙겼다는 비판도 있는데
잠시 박세당이 남긴 맹상군에 대한 시 한수로 그의 일생을 간추려 보자.
맹상군(孟嘗君) 과작(課作)
오월생 아이가 군에게 우환이 아니니 / 生兒五月不憂君
식객 삼천 양성함에 문에게만은 한 수 접는다네 / 養客三千獨讓文
그날 함곡관을 빠져 나올 때는 정말로 죽을 뻔하였고 / 當日脫關眞萬死
노년에 설에 살면서는 재산을 나누고자 하였네 / 老來居薛欲中分
진나라의 요구 끝이 없어 호백구(狐白裘)를 훔쳐 내었고 / 秦求無已裘須竊
고을 사람들 빚을 갚지 못하매 빚 문서를 불살랐네 / 邑債多逋券可焚
영원히 영웅이란 칭송 아 다함이 없으니 / 終古英聲嗟未沫
길이 계구지도로 하여금 황량한 무덤에 절하게 하리 / 長敎鷄狗拜荒墳
마지막 남는 아쉬움 하나.
이 시대에 과연 맹상군 같이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각분야 전문가를 마음껏 후원해 주면서, 학술. 기술. 외교.
지역일꾼, 웅변가, 오만잡동사니 잔기술까지 포괄적으로
끌어 안고 그들이 서로의 재주를 소통하면서 한 사람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대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이 시대의 맹상군은 과연 바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요즘 식객 식객 착각들 하고 있는데, 2천 3백년 전 식객은
뭐가 맛있는가 먹을거 찾아 다니는 먹충이들이 아니라
그 밥을 먹고 밥값을 어찌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재집단을
식객이라 했다는 걸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당나라 때 시선詩仙 이태백이 맹상군의 천금짜리 여우털옷도
술 한잔으로 바꿔 마시며 살련다 호기를 부렸던
<장진주> 끝 구절에 인용한 그의 시를 음미하며 줄일까 한다.
將進酒 이백
(李白)
군불견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지수천상래黃河之水天上來아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분류도해불부회奔流到海不復迴라
세차게 흘러 바다로 달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을.
우불견又不見
또 보지 못하였는가?
고당명경비백발高堂明鏡悲白髮가
높은 집의 맑은 거울 앞에 백발 슬퍼하는 모습을.
조여청사모여설朝如靑絲暮如雪이라
아침에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는 눈 같이 가버린 세월들.
인생득의수진환人生得意須盡歡이니
사람으로 태어나 소원했던 거 얻으면 기쁨 다 누려야 할지니,
막파금준공대월莫把金樽空對月하라
금술잔 잡고 부질없이 달 마주하지 말게나.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이니
하늘이 나의 재목 낳으심에는 반드시 쓸데가 있을 것이고,
천금산진환부래千金散盡還復來라
천금의 재물 따위 다 흩어져도 다시 돌고 도는 게 돈이지.
팽고재우차위락烹羔宰牛且爲樂이니
양 삶고 소 잡아 잠시 즐기려 하노니,
회수일음삼백배會須一飮三百杯라
만났으니 모름지기 한 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 하네.
잠부자 단구생岑夫子, 丹丘生아
잠 선생, 단구도사님!
진주군막정進酒君莫停하라
술잔 올리나니 거절하지 마시기를.
여군가일곡與君歌一曲하니
내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바치리니,
청군위아청請君爲我聽하라
청컨대 그대들 날 생각해 들어 주시오.
종정옥백부족귀鍾鼎玉帛不足貴요
부귀와 재물 같은 거 귀하게 여길게 뭐 있수
단원장취불원성但願長醉不願醒이라
다만 바라건대 길이 취하여 깨지나 말았으면 .
고래현달개적막古來賢達皆寂寞하되
예로부터 현명하고 통달한 자들도 모두 쓸쓸히 사라졌지만,
유유음자유기명惟有飮者留其名이라
오로지 술꾼들만은 그 이름 남겼잖수
진왕석일연평락陳王昔日宴平樂엔
진사왕은 옛날에 평락관에서 연회 열고,
두주십천자환학斗酒十千恣歡謔이라
말술에 만금 주고 마음껏 기쁘게 즐겼다네.
주인하위언소전主人何爲言少錢고
주인네가 돈 적다 걱정할 거 뭐 있수,
차수고주대군작且須沽酒對君酌하리라
곧 술 팔아와 그대와 대작하리니.
오화마 천금구五花馬, 千金裘를
오화마와 천금짜리 갖옷,
호아장출환미주呼兒將出換美酒하여
아이 불러 내보내 좋은 술 바꿔오라 할거니
여이동소만고수與爾同銷萬古愁라
그대들과 함께 만고의 시름 삭여 보리라.
'장진주'를 조금 더 찬찬하게 이해하려면 다음 주석을 참고하며
감상하는 게 좋을 듯 싶어 주석문도 첨부해 본다.
***장진주」는 원래 한(漢)나라의 악부시(樂府詩) 고취요가(鼓吹鐃歌) 18곡 가운데 하나였다. 이 시는 시상의 번득임이 황하의 분류 같은 웅대한 시로 천마가 하늘을 나는 듯한 시풍이다. 이 자유분방하고 종횡으로 구사되는 화려한 시구 중에는 억제하기 어려운 인생의 비애가 넘치고 있다. 인생의 무상함을 슬퍼하여 그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노래한 시는 「고시」 19수 이래 끊임없이 지어져 왔다.
***황하(黃河): 하(河), 강(江)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하천. 통상 중국의 하천은 모두 한 자로 되어 있는데, 하와 강만은 별도로 황하, 장강(長江: 揚子江)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북부를 가로질러 발해로 흘러드는데, 물에 황토가 섞여 항상 누런빛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득의(得意): 바라던 일이 뜻대로 성취되어 매우 만족스러움.진환(盡歡): 즐거움을 다 누리는 것. 환(歡)은 환(懽)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는데, 같은 뜻의 모양이 다른 자.
***금준(金樽): 금술잔. 미주(美酒)를 담기에 썩 잘 어울린다는 뜻.공대월(空對月): 공은 부사로 ‘부질없이, 헛되이’의 뜻. 마시지도 않을 술잔을 들고 달을 마주보고 있음.
***아재(我材): 재(材)는 여기서 재(才)의 뜻으로 쓰임.
*** 팽고(烹羔): 팽은 물에 삶는 것. 고는 검은빛을 띤 새끼양. <이태백집>에는 팽양(烹羊)으로 되어 있다.재우(宰牛): 소를 잡음. 재는 칼로 고기를 저며 요리하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나라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의 「공후인(箜篌引)」에 “주방에 풍성한 음식 갖추고, 양 삶고 살찐 소 저미네(中廚辦豐膳, 烹羊宰肥牛)”라고 하였다.차(且): 여기서는 고차(姑且)의 뜻으로 쓰였는데, ‘잠시’의 뜻.
*** 회수(會須): 응당(應當), 모름지기.일음삼백배(一飮三百杯): 한 번 앉아서 삼백 잔의 술을 마심. 남조 송(宋)나라 임천왕(臨川王)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신어> 「문학(文學)」에서 유효표(劉孝標)가 주석으로 인용한 <정현별전(鄭玄別傳)>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원소가 정현을 초청했다가 정현이 떠날 때 성의 동쪽에서 전별하면서 그를 반드시 취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그 때 모인 사람들이 300명쯤 되었는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한 잔씩 권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현은 300잔은 마셨음직한데도 그 온화한 모습이 시종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백은 또 「양양가(襄陽歌)」에서 “백 년 3만 6,000일을, 하루에 삼백 잔씩은 기울여야지(百年三萬六千日, 一日須傾三百杯)”라고 읊기도 하였다.
*** 잠부자(岑夫子): <이태백집>에 보이는 잠징군(岑徵君)으로 이름은 훈(勛). 시인인 잠삼(岑參)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부자(夫子)는 선생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존칭어로 쓰였다.단구생(丹丘生): 원단구(元丹丘)를 말한다. 잠훈과 함께 은자로 알려졌으며 이백과는 친한 친구였다. ‘생’ 역시 여기서는 경어로 쓰였다.
*** 여군가일곡(與君歌一曲): 남조 송나라 포조(鮑照)의 「밝은 달 노래를 대신하여(代朗月行)」에 “그대에게 노래 한 곡 바치려 하니, 밝은 달 노래 지어 부르리(爲君歌一曲, 當作朗月篇)”라는 구절이 있다.
*** 청(聽): <이태백집>에는 경이청(傾耳聽)으로 되어 있다. <예기>에 “귀 기울여 듣는데 얻어 들을 수가 없었다(傾耳聽之, 不可得而聞也)”라는 말이 있다.
***종정옥백(鍾鼎玉帛): <이태백집>에는 종고찬옥(鐘鼓饌玉)으로 되어 있는데, “종과 북 같은 악기를 벌여 놓고 음악을 연주하고, 옥에 비길 만한 훌륭한 진미를 차려 먹는다”는 뜻이다. 종정은 고대 동기(銅器)의 총칭으로, 웬만큼 부귀한 집이 아니면 소유할 수 없었으므로 부귀를 뜻한다. 옥백은 옥과 비단 등의 재물. <이태백집>의 뜻이 더 낫다.
*** 현달(賢達): 현명하고 덕이 있어 사물의 이치에 달통한 사람. <이태백집>에는 성현(聖賢)으로 되어 있다.적막(寂寞): 흔적도 없이 사라져 쓸쓸한 것을 말한다.
***진왕(陳王):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을 가리킨다. 조조의 셋째 아들이자 위 문제(文帝) 조비(曹丕)의 동생. 자는 자건(子建)이며 태화(太和) 6년 진왕에 봉해졌다.평락(平樂): 누관(樓觀: 올라가서 먼 곳을 살펴볼 수 있도록 높이 지은 집)의 이름.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현의 낙양성 서쪽에 있었다.
***두주십천(斗酒十千): 한 말에 일만 금이 나가는 술. 십천은 곧 일만. 조식의 「명도편(名都篇)」에 “돌아와 평락관에서 연회 여는데, 좋은 술 한 말에 만금하네(歸來宴平樂, 美酒斗十千)”라는 구절이 있다.자환학(恣歡謔): 마음껏 지껄이고 즐김. 학은 희학(戱謔)질, 곧 농지거리하는 것.
***주인(主人): 이백 자신을 말한다.
***차수(且須): 차는 여기서 ‘다만[只]’의 뜻으로 쓰였다. <이태백집>에는 경수(徑須)로 되어 있는데, 경은 ‘곧장, 즉시’의 의미이다.
***오화마(五花馬): 털에 오색의 꽃무늬가 있는 말. 또는 갈기를 다섯 갈래로 땋은 말이라고도 한다. 뒤에 나오는 두보의 「부도호 고선지의 푸른 말(高都護驄馬行)」에 “다섯 꽃 흩어져 온몸에 구름 모양 되었네(五花散作雲滿身)”란 구절이 있는데, 전자의 뜻으로 쓰였다. 당 대종(代宗)의 말 이름은 구화규(九花虯)라고 하였는데 역시 온몸의 털이 아홉 색의 무늬로 뒤덮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거이(白居易)의 「화춘심(和春深)」이란 시에 “봉황 모양의 편지 다섯 색으로 마르고, 말 갈기 세 갈래로 잘라 묶네(鳳書裁五色, 馬鬣剪三花)”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후자의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명마(名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천금구(千金裘): 천금의 값이 나가는 모피옷. <사기>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맹상군은 여우의 흰털로 만든 모피옷[狐白裘]을 한 벌 가지고 있었는데 값이 천금이나 되고 천하에 둘도 없는 것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 소(銷): 녹이다. 삭이다. 소(消)와 같은 뜻.만고수(萬古愁): 영원히 없앨 수 없는 인생무상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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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하디 귀한 자식이 어디 부모마음 아나요 ...!!!
하늘에서 뚝 .....
다리에서 주워 왔다고 ...
내리사랑이 무었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면 매를 주고 자식이 미우면 밥을 주라 하셨지요 ...
말 못하는 미물도 젓을 물리고...
주사약에 아파서 힘도 없는데 ...
송아지에게 젓을 먹여야 한다는 어미소의 마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
보고 슬퍼할뿐 ..시간이 지니면 ...
조용합니다... 옛 이야기지요 ...
이제 라도 ..덕과 예절.그 다음이 공부입니다..
저도 그리할랍니다....잘 보고 공부하고 갑니다요 ..
가르침 중용: 原文원문: 子莊曰자장왈 何謂五美하위오미 子曰자왈 君子惠而不費
군자혜위불비 勞而不怨노이불원 欲而不貪욕이불탐 泰而不驕태이불교 威而不猛위이불맹.
語譯어역: "자장이 물었다."오미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은혜를 베풀되 비용은 들이지 않으며, 일하되 원망
하지 않으며, 의욕을 가지되 탐내지 않으며, 태연하돠 교만하지 않
으며,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다. 자장 중에서 ... 중용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이군요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배우지도 못했지만 배웠다 하더라도 정말 행하기 어려운 일들이죠
그러나 맹자가 공자의 도를 따르고 싶다고 하였듯이 우리 우사모 회원님들은 이제 배웠으니 다같이 독려하고 실천해 나가도록 노력했음 좋겠어요
월초님 고맙습니다 ...
글에 마음을 담아 주시고요 ...ㅎㅎ 제 복인가요 ..^^!!!
맹상군은 흥부가에도 나오죠
맹산군에 수레바뀌처럼 둥글둥글 생긴돈 일명 돈타령
부자의 대명사로만 알았은데 돈과 사람을 부릴줄아는 훌륭한 사람이었네요
또한 비운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특히 어머니의 희생으로 ......
동물들의 모성은 본능에따라 모두 그러하지만 인간의 모성은 이성이 개입되는 순간 더 훌륭해져야 하는데
사람에따라 더 훌륭해지거나 자신의 나태나 편함 이기심에 져버리기도 하죠
또 어떤 사람들은 지나친 자식사랑에 온실속 화초처럼 과잉보호를 일삼기도 하지요
이런걸 생각하면 참 씁쓸합니다
만물에 영장인 사람은 옳고 그름을 판단 할수 있기에 만물의 영장입니다...요
두발로 다 걸어 다닌다고 다 사람이라 ...할 수있나요 ...ㅎㅎ
.항상 아래로 흐르는 것이 모든 것에 이치 아닐까요 ...? ?!~~~ !!!
늘~~~~~~~~~~~~웃~~~짜구요 ... 월초님
심청가의 '반야 진관의 맹상군이 아니로다', 흥보가의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돈' 등등
판소리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맹상군...
맹상군이 극적으로 함곡관에서 탈출, 살았고, 삼천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부를 누렸다는데 기인해서 그런 가사가..
심청은 닭이 울어 날이 밝으면 죽음을 맞이해야 했기에 닭울음이
사무치게 싫었고, 매품을 팔아서 식구를 먹여살려야 했던 흥부에겐
맹상군의 부가 뼈가 시리게 부러워서 각각 맹상군이 등장하는 거였네요.
목숨걸고 아들을 살려서 청사에 빛나는 위인으로 만든 맹상군의 어머니나
기적같이 3분을 버티며 송아지에게 젖을 물린 어미소나 모성애는 매 한가지
술과 달을 사랑했던 당나라 최고 시인 이백.
술을 마주 대하며 노래한 시 가운데 만고의 절창이라는 그의 '장진주'.
그의 전성기는 당현종과 함께 양귀비의 춤을 감상하면서 시를 지었던 때가 아닐까?
그 만한 글솜씨에, 학덕에, 배포에....
무릇, 사내 대장부가 세상에 나면 글공부 힘써 하고 그 큰 뜻을 세워
천하를 경륜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술에 취해 깨어나지 않고 싶다는 노래를 남기고
술에 취해 사랑하는 달과 함께 물에 빠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백.
그보다 천년 정도 앞선 맹상군과는 대조되는 삶을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시인으로만 대접받는 세상에서 술에 취해 깨고 싶었을까?
소는 글자를 모르지만 소 눈에 눈물이....ㅜㅜ
술을 마주 대하는 남자치고 호방하지 않은 이 뉘있으리오만,
-물론 쓴 술잔을 마주 하며 눈물 섞어 취하는 이는 제외하고
이백이 진정 술을 사랑하고 술에 취해 극도의 환희속에 죽었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웬지 그 호기 속에 감춰진 한 귀절
(但願長醉不願醒 ; 단원장취불원설)은 술취해 환장하게 기분좋으니
이대로 취해 죽어버리자는 뜻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끝귀절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이 그걸 강력히 뒷받침해주고
있는게 아닌가 하면서 말입니다.
원래 시란 작자의 의도대로만 전달 되는 게 아니니까요.
보는 이에 따른 왜곡이 있을 수가 있으니 이런 제 나름의 짐작도
또한 가능한 게 아닐까요?
사람은 일장일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단점이 없는 사람은 절대자 신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