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월 24일)은 전북 진안 마이산 산행을 다녀왔다.
코스는 주차장에서 고금당 - 전망대(비룡대) - 갈림길(북부주차장) - 제2쉼터 - 봉두봉 - 암마이봉 - 천왕문 - 은수사 - 은수사 - 금당사 - 저수지 - 남부주차장 (약9.8km)이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넓게 펼쳐져 있는 마이산(馬耳山 686m)은 조선 태종 이방원이 말을 귀를 닮았다하여 현재 이름인 마이산으로 불린다.
산 전체가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졌으나 정상에는 식물이 자란다. 사방은 급경사로 이루어졌으며 섬진강과 금강의 지류가 발원한다.
우리가 맨 먼저 도착한 곳은 고금당이다. 고금당은 일본 교토시에 있는 금각사처럼 금색으로 덧칠해졌다. 주위의 시선을 끌만하다. 고금당은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처로 전해오는 자연암굴로 나옹암이라 하며, 월래 금당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터라 ‘고금당’이라 한다.
고려 불교 중흥에 많은 공을 세운 나옹선사는 공민왕의 왕사가 되었고, 보우, 무학 등 수준 높은 제가를 길러냈고, 많은 시와 가사를 남기고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아래 나옹암 사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금당을 지나 능선 산행을 하면서 마이산을 조망하면서 전진했다.
마이산은 V자형의 계곡의 자연경관과 은수사, 금당사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상을 이루는 서봉인 암마이봉과 동봉인 수마이봉은 세계 유일의 부부봉이라고 한다.
암마이봉 남쪽 기슭에 있는 탑사(塔寺)는 자연석으로 절묘하게 쌓아 올린 원뿔꼴 기둥과도 같은 80여 개의 돌탑이며 마이산 신 등을 모시는 암자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광경은 멀리 암마이봉이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수마이봉이 조그맣게 살짝 비켜나 있는 모습이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에 대한 전설이 있다.
오래전 땅으로 내려와 살던 하늘의 신선부부가 아이를 낳고 살다가 다시금 하늘로 올라갈 시기가 되었는데, 남편신이 아무도 모르게 밤에 올라가려하자 부인신이 밤에는 무섭다며 낮에 가자고 해서 다음 날 아침 산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아침 일찍 물을 길으러 온 어떤 부인이 놀라서 "산이 하늘로 올라간다" 고 큰 소리를 치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남편신이 두 아이를 안고 부인신과 등을 지고 앉아서 바위가 되었는데 수마이봉의 좌우에 아담한 크기의 바위가 두 아이이고, 이에 삐진 등을 지는 형태로 자리한 암마이봉의 모습이 현재의 마이산 봉우리들과 닮았다고 하네요[출처: 김연수 28산우회 회장님의 말씀]
암마이봉에서 바라본 수마이봉은 장관이었고, 수마이봉 중간쯤에 화엄굴을 암마이봉 전망대에서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수마이봉은 아직까지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 화엄굴에서 기도를 하면 득남 뿐만 아니라 거기서 나온 석간수를 마시면 입시와 승진의 기회는 물론 사업의 번창까지 가져온다는데 현재는 위험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못하게 하고 있다.
공원 초소에서 조금 내려오니 천왕문에 이른다. 인근에 쉬어가는 벤치가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천왕문에서 탑사 쪽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불교 태고종 종단의 은수사가 나온다. 태조 이성계가 왕의 꿈을 가지고 기도를 했다는 곳으로 기도 중에 마신 물이 은처럼 맑아 은수사로 불리게 되었단다. 또한, 기도 후에 산돌배의 일종인 청실배나무를 심은 게 현재 천연기념물 제386호로 지정되었다.
탑사아래에 오리보트가 있는 호수를 이루는 수면에 두 마이봉이 흐트러짐 없이 투영된 거로 보아 그야말로 해인(海印)의 모습을 보여준다.
탑사 입구에 이르러 먼저 두 봉 아래에 불가사의한 돌탑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낙안면사무소 앞에 있는 돌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탑사는 처사 이갑용이 쌓았다고 한다. 이갑용은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백팔번뇌를 벗어나고자 온갖 염원을 탐사에 그대로 담아놓았다고 한다. 프랑스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서 별 3개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이갑용(李甲用)은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전국 명산을 돌아다니며 수행을 한 후 25세에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하며, 1880년부터 30여 년간 만불탑을 축조하고 1957년 9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또, 마이산 탑이 쌓인 뒤 사람들이 시주한 돈과 곡식으로 송아지를 길러 독립자금으로 기부했다고 한다.
탑사아래로 조금 내려오니 금당사가 자리잡고 있다. 많은 중창으로 인해 사찰로써 모습은 찾아가고 있지만, 은수사와 탑사의 인기에 밀려 조금은 한적한 모습이다.
어제 월출산과 오늘 마이산 산행으로 너무 행복한 날을 보냈다.
벌써 다음 산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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