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암의 여름날, 선물로 받은 난초를 두고 나들이에 나섰다가 아차하고 돌아서 온 순간, 번개처럼 드는 깨달음 하나. 장면은 자막 처리가 간결하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한 셈이었다.”
영화 ‘법정스님의 의자’는 법정스님의 생을 통해 불교 가치가 두루 집약된다. 삶의 여정 자체가 무소유와 불교였기 때문이다. 짧게 등장하는 네 장면. 스님 방문이 비쳐지며, 당장 읽을 몇 권의 책이 쌓여있고, 다기 한 상, 건전지로 듣던 단파 라디오, 이어 마당의 몇 평 채마밭.
그리고 고무신 한 켤레, “그 네 가지가 그가 소유해본 전부였습니다” 내레이션은 음악과 책과 고무신에 채소밭이 무소유를 압축한다. 고무신 놓인 전경 화면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물건 몇 개만을 곁에 둔 생활”을 말하며, “그가 평생 소유해본 것은 딱 네 가지입니다”를 웅변한다.
휴먼다큐에 최불암 내레이션 푸근
43년 쓴 세숫대야에 스님의 온기가
부엌 장작나무로 만든 의자〈사진〉는 영화의 주인이다. 법정스님은 “의자 이름은 지어둔 게 있어. 빠삐용 의자야,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는 거야”라고 말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참된 행복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휴식과 치유의 의자를 찾아 법정스님의 ‘무소유’ 삶 자체를 담아낸다. ‘의자’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며 하루하루 바쁘게 흘러가는 삶에 지쳐 있는 모두에게 다시 한번 스스로를 뒤돌아볼 상징이다.
기댈 곳이 마땅치 않고 지친 이들에게 투박하지만 안락한 의자 하나가 무소유 정신과 결합돼 모두의 마음을 채워준다. 의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이 깃들어있다. 불일암 거주 시절에 교외에 나올 일이 있을 때 종종 극장을 찾아 조조영화를 봤던 법정스님이 영화 ‘빠삐용’에서 영감을 얻어 후원의 참나무 장작개비로 손수 만든 실물이다.
상징은 그만큼 강하다. 양은대야 하나는 장면 가득 넘친다. 세숫대야 하나만을 43년간 평생 쓴 흔적이 ‘67년 12월3일’로 박혀있다. “자기 주거 공간 같은 것은 될 수 있으면 단순해야 된다고. 공간이 단순해야 어떤 광활한 정신 공간을 지닐 수 있어요. …무엇인가를 갖게 되면 거기에 붙잡힌다고. 말하자면 가짊을 당하는 거지. …매인 데가 없으니까, 텅 빈 상태에서 충만감을 느끼는 거예요.” 직접 인터뷰 한 스님 육성은 여운이 길다.
청빈의 상징 ‘무소유의 삶’이 영화 영상에서 어떻게 피워질까. 대중 영화가 쉬 다루기 어려운 주제는 다큐멘터리 기법과 귀에 익숙해 더 신뢰감 넘치는 최불암의 포근한 내레이션이 거부감을 씻어버린다.
영화의 반전은 주변 인물의 몫이다. 상좌 덕조스님의 인터뷰는 상징의 반전이다. “다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다 주고 가셨죠. 정신적으로 저희들에게 주신 것을 본다면 무궁무진하고 세상에 물질보다 더한 보배스런 선물을 저희들한테 주고 가셨죠.”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이를 극화시킨다. “누구 주려면 살아있을 때 줘야 돼.” 삶에 철저하고 죽음에도 철저했던 법정스님 주연의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는 몇차례 시사회를 갖고 12일 개봉.
[불교신문 2719호/ 5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