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매우 난처했다. 나를 잘 아는 사찰 신도들도 아니고 그것도 짝 아닌 짝을 이룬 젊은 남녀들을 더욱 정답게 만들어 뭔가 사건(?)을 만드는 모임에 레크리에이션 지도자를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몇몇 지도자에게 시간 가능성을 타진해 봤으나 꽉 짜여진 일정으로 곤란하다는 대답들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가 가기로 결정했다.
불자 가정 만들기를 목표로 설립된 구룡사 결혼 상담소에서 주최하는 결혼을 원하는 젊은 남녀들을 위한 야외미팅이 8월 20일 광릉내 봉선사를 중심으로 벼락소 유원지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모르는 남녀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 회장의 이름으로 나선 것이다. 사찰, 단체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진행 요청에 회장인 내가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것은 내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서거나, 대중을 꺼려하거나, 레크리에이션 지도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능한 한 다른 지도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요, 참가 대중에게 보다 자유로운 기쁨을 주기 위함이다. 사실 승려가 레크리에이션을 지도하면 분위기가 좀 무겁고 재미가 감소될 우려가 있다. 특히 신앙적, 동질성을 매개로 한 어린이, 청소년, 일반, 노인 등의 단체인 경우가 아니라 좀 더 감칠맛 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야한 이야기도 섞어야 하는 쌍쌍모임의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재미있게 하다보면 승려에 대한 존엄이 깍일 위험이 있고, 대상의 재미도 줄어들 위험부담이 큰 것이다. 또 그렇게 느끼면 내가 이끌고 있는 불교레크리에이션포교회에 대한 평가도 문제가 있게 된다. 그래서 가능한 한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운전수와 역할을 바꿔 스스로를 보호했던 것처럼 다른 지도자를 보낸다. 같이 가더라도 존재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진행을 코치하거나 간단한 멘트 및 유희정도에 참여 하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 날은 다른 지도자가 없는 탓도 있었고 불교계에서 최초로 하는 일이라 포준 모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또, 앞으로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서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직접 동참한 것이다.
준비를 해 온 보살님들의 정성어린 선물과 공양을 제공하고 출발했다. 주지스님의 인사를 청해 듣는 것부터 차안에서의 자기소개 및 장기자랑, 그리고 봉선사에서의 예불 및 정근과 좋은 일(?) 있게 해 달라는 축원, 또 점심 후의 레크리에이션과 돌아오는 차안에서의 시간에 이어 구룡사 노래방에서의 시간까지 변화 없는 나의 얼굴에 시선을 모아준 선남선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옆에서 수고해준 우진군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만일 혼(魂)에게 다니는 흔적이 있게 한다면 그대의 문 앞에 놓인 섬들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것(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沙)" 이라는 고백에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이 거짓말
꿈에와 보인단 말 그 더욱 거짓말
나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라고 대답하는 멋진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 여섯 단계의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그녀(그이)가 뭔가 달라 보여 기억이 되고(remember), 좋아하게 되며(like), 함부로 할 수 없는 기품에 존경하고(respect), 드디어 절실하게 필요로 하게(need)된다. 이 필요성을 넘어 그 아픔까지 사랑하는 이해(understand)가 이루어진 연후에야 드디어 사랑(love)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얻어 미래를 약속하게 되면 그 사랑을 모든 친지들에게 공시(公示)하는 의식을 치른다. 그것을 이름하여 화혼(華婚)이라 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 의미도 알지 못하고 화혼이라는 말을 쓰나 원래 화혼은 불교 용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선혜(善慧)라는 이름으로 보살행을 닦고 있었을 때에 보광불께 구리선녀가 가지고 가던 꽃 다섯 송이를 구해 같이 올린 인연으로 결혼한 것을 꽃결혼(華婚)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불교식 결혼인 화혼에서는 남자가 일곱 송이의 꽃을 여자가 두 송이의 꽃을 부처님전에 올리고 있다.
부디 이 날 모임에서 다정함을 보였던 모든 이들이 좀 더 가까운 모임을 가지면서 여섯 단계 사랑의 맛도 보고 일곱 송이의 꽃을 부처님께 올리는 꽃결혼을 하게 되기를 불보살님께 기원 드린다. 구룡사 결혼상담소에서 주최하는 지속적 모임인 매월 셋째주 모임에 자주 동참하여 전생의 인연도 찾고, 꽃결혼을 올리고 불교적 분위기가 넘쳐흐르는 가정을 꾸려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으면 싶다.
그래서 두 분이 삶이 너(人)와 나(我)라는 생각(山)을 없애고(破) 공덕(功德)의 숲(林)을 기르는(養) 삶이 되기를 기원한다. 너와 나라는 생각을 없애고 공덕의 숲을 기르는 것 (破人我山 養功德林)을 일러서 산림(山林)이라 하는데 ㄴ과 ㄹ이 만나면 자음접변 현상에 의해 '살림'이 되고 따라서 '살림을 차린다'는 결혼생활의 의미가 규정되는 것이다.
이 살림을 차리는 첫째 쌍이 나오게 되면 야외미팅을 진행한 인연으로 불교식 꽃결혼(華婚)의 방법론을 잘 일러주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진행의 멘트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적어주거나 직접 진행을 도와주고 싶다. 그래야 두 사람의 꽃결혼이 모든 이에게 '유익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꽃인연을 맺을 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꽃 속에 들은 꿀을 빨아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트리나포올러스의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의 줄거리인데 무엇 때문에 생을 살아가는지 모르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꽃사이로 날아다니면서 꿀을 빨아 먹다보니 저절로 수정작업을 돕게 되어 꽃들의 희망인 '열매'를 맺게 해준다는 보살행(菩薩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서로의 농익은 사랑속에서 각자가 서로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