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신인상 수상자 특집 김동곤
책장 다비茶毘ㆍ2 외
세상 밖을 떠돌던 긴 그림자
많은 길을 지나 고향에 이르렀다
동구 느티나무 가지처럼 낮은 어스름
내 시든 고요는 경계가 지워지지 않는다
뒷산 그림자가 긴 어둠을 데리고
성큼성큼 길 없는 저녁으로 내려왔다
빈 마당엔 유연有緣한 달빛이 무연하고*
뒤란 감나무 가지에 구겨진 시간이 걸렸다
오늘 책장은 겨울을 건넜다
방 한켠에 앉아 육신을 덜어내지 못하고
책장은 오랜 시간 서느런 묵념에 잠기다
엷어진 나이처럼 시시하게 마당에 부려졌다
가문 겨울 들녘을 침묵한 바람이
허기진 저녁 골목을 가늘게 서성이다
버리지 못한 생生의 낡은 장난을 데리고
조붓한 마당을 농담처럼 심심하게 뒹굴었다
낯선 시간으로 타오르는 먼 순례처럼
한 움큼의 적멸을 뒤미처 끝내지 못한 책장
어둠은 어둠 속으로 저 혼자 살아와
소리 없이 내 오랜 그림자를 집어삼켰다
아궁이에 들어가 식은 재를 남기고
여위는 거리만큼 가난한 여백을 여의는 시간
책장은 바람의 노래처럼 하얀 연기를 비우고
버릴 것 없는 낮은 저녁으로 아스라이 스러졌다
* 무연하다: 아득하게 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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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몸을 맡겨서
우리의 겨울을 만든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낮게 흐르는
차가운 물줄기를 끌어안고
우리의 울음을 더욱 뜨겁게 만들어
겨울을 엮는다
태고의 잊히지 않는 비밀한 혁명
일사불란의 결빙이다
햇살이 우리 수행 정진을 바라볼 때
흐트러지는 우리의 대오大悟
그러나 밤의 적막이 익숙하게 찾아오면
어제처럼 하얀 달빛 폭우가 내려와
뜨겁게 이긴 무상無相 대오隊伍를 짓고
우리는 단단한 적멸이 된다
결빙 아래 유영하는 물고기
동안거에 든
면벽한 노승의 미소처럼
하얗게 묵언의 시간을 인내한
차갑게 사리捨離하는 바람 소리 하나
낮아져서 익숙한 결빙의 겨울 강
쉰여섯 굽이
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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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곤 1967년 경남 함양 안의 출생으로 2022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광명 전국 신인 문학상 시 대상을 받았으며 공역서 《국어 시간에 옛글 읽기》, 《국어 시간에 옛 시 읽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