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시인과 함께하는 산보인문학팀 '나비시회'가 무크지 2호를 출간했습니다.
◉출판사 서평
강은교 시인과 배재경 시인이 시작한 산책 속의 인문학 모임인 〈나비시회〉에서 무크지 《나비시회》 2호를 펴냈다. 이번 2호에는 강은교 시인과 최휘웅 시인의 ‘포앰에세이’가 주목을 끈다. 강은교 시인은 「유혹들-피와 살의 스파크」에서 시인이 시를 쓰면서 고민하는 언어적 전략, 중층 이미지, 기교의 시 등 시 창작의 여러 정황들을 열거하면서 시인 내부의 발화성 이미지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문학에세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최휘웅 시인은 「내 시의 바탕화면」이라는 주제로 학창시절부터 시작된 문학적 관심과 대학에서 대한민국 쉬르레알리즘의 거장 조향 시인을 만나면서 갖추게 된 자신의 시적 환경을 가감없이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 결국 시인은 언어의 囚人으로 늘 고민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2호에 초대된 ‘나비 친구들’은 전국에서 김성춘, 김경호, 이창희, 이월춘, 조기현, 김정수, 정훈, 김종태, 금지은, 권상진, 리호, 배주열, 김미정, 김이오, 구경화 시인 등 열다섯 시인의 작품들이 실렸다. 나비시회 회원들은 강은교, 고훈실, 권오주, 김려, 김명옥, 김미선, 김뱅상, 박산하, 박이훈, 배재경, 백미늠, 송지음, 임헤라, 천유근, 최휘웅 시인의 시가 실렸다. 대다수 회원들이 부산, 울산, 경남에 분포되어 있으며 산행대장은 권오주 시인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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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시회 속으로
시 또는 시인에게 전략이라는 게 있을까. 시, 시인에게 그런 말이 어울리는가.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언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대상이든지, 어떤 이미지이든지, 시 또는 시인에게는 전략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절단이 그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 절단은 사유에서 올 수도 있지만, 언어의 조합, 또는 그 에서도 올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럴 때 중층의 이미지, 또는 시인 내부의 그것은 시인의 전략이 되어 시의 배후에 자리잡는 것이다. 그것은 또 피와, 피의 인 살의 스파크가 시 속에서 일어나게 하리라. 절단은 여기서 은밀하게 이루어져 순간의 순환성이 되어 시인에게서 시로, 또는 시에게서 시인에게로 순간 순환이 되리라.
(중략)
기교의 시는 수명이 50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네
.........D.H. 로렌스의 편지
나는 이 말을 조금 고친다.
기교만의 시는 수명이 50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네
멀리 있는 불빛은 아름답구나. 보이지 않아서 아름답구나. 한밤을 지새게 하는구나.
작곡가 말러를 모델로, 아마도 그의 어느 한순간을 다룬 영화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첫 장면에 나오는 ‘안개’는 그 작곡가의 일생의 배후로서 나타난다. 말러는 우연히 만난 그 미소년에게 다가갈 수 없으므로 그 소년은 말러의 내부에서 더 아름다워지며 안개처럼 그와 소년을 갈라놓는 절단의 영화미학적 장치 내지 전략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거꾸로 그린 화가 고야도 그런 배후를 지닌 절단을 그린 것이리라. 난해한 현대 화가 베이컨의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라는 유명한 그림도 그러한 배후의 절단을 화폭위에 옮긴 것이리라.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 그림은 들판에 내려앉는 큰 새를 그리던 중에 변모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큰 새의 배경과의 절단을 그리다 보니, 그것은 그의 내면의 배후가 스며 완벽한 다른 그림으로 탄생한 것이다.
-강은교, 포앰에세이 「유혹들-피와 살의 스파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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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니까 문학이 나의 적성이 아니겠는가 싶어서 국문학과에 진학해 와서도 나는 막연한 의식 선상을 해매고 있었다. 이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 읽는 위주의 인생에서 글 쓰는 인생으로 미래가 탈바꿈될 것이란 예감이 있었지만 아직 나의 인생관, 예술관, 세계관은 시계視界 제로였다.
이때, 조향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무엇인가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는 듯했다. 그분이 추천하는 책들을 주섬주섬 정독하면서 나의 인생관, 문학관 등이 질서정연해지기 시작했다. 조 향 선생님은 문예사조 시간에 서양문화의 두 기둥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변증법적 발전을 설명하면서 토인비의 역사 철학을 언급하셨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와 <현대문명비판>을 접하게 된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고, 문명비판의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의 밑거름이 되었다. 조향 선생님은 미래파, 입체파, 다다, 초현실주의, 표현파, 상징파 등 현대 문예사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수해 주셨다. 이런 가운데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중요성과 이것이 현대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입문』과 『꿈의 해석』 번역판을 구하여 탐독하게 된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이해가 생긴 것은 이 무렵부터다. 나의 시의 방향도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프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 심리주의 소설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생겼고, 내가 한 때, 시에서 리비도나 성도착 같은 내면 지향적인 이미지 찾기에 몰두하게 된 것도 이런 책들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이밖에 대학생 시절에 탐독했던 책으로는 프랑스의 비평가 알베르스가 쓴 『20세기의 지적 모험』(을유문화사 간행)을 들 수 있다. 20세기 세계 문학의 성격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다룬 책으로 나에게는 문학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그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문학에 대한 정연한 이론을 제공해준 책은 최재서의 『문학원론』(1963년 춘조사 간행)이다. 최재서는 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운동의 이론적인 선구자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당시 최재서는 경성제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미 주지주의 문학이론을 처음으로 우리에게 소개한 분이다. 1939년에 <인문평론>이란 잡지를 운영하면서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최재서의 『문학원론』은 그 당시에 나왔던 많은 문학입문서 중 가장 돋보이는 책으로 여겨졌다. 김기림의 『시론』도 한국모더니즘 시의 지평을 연 책이지만 그 깊이나 체계, 그리고 문학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성찰은 그 이상의 성과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은 문학의 본질, 목적, 기능, 효용과 언어의 문학적 역할, 그리고 인접 예술(음악과 회화)과의 관계, 사상, 정서, 상상 등이 문학에 작용하는 비중을 논리정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의 해명을 위하여 주로 영문학 작품들을 텍스트로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서양의 역대 문학이론가들의 주장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최재서는 섣불리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많은 타인들의 주장을 인용하고, 또 그것을 비교 분석한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에게 설득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문학의 본질이나 기능, 문학에 접근하는 방법 등에 관한 지식과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최휘웅, 포앰에세이 「내 시의 바탕화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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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시회 2호 목차
CONTENTS
나비詩會 2024 무크 2호 Literary Magazine 발행일 2024년 1월30일
발행인 강은교 편집인 배재경
편집위원 고훈실 권오주 김려 김명옥 김미선 김뱅상 박산하 박이훈 백미늠 이종암
Poem Essay
강은교 | 유혹들-피와 살의 스파크
최휘웅 | 내 시의 바탕화면
나비 친구들
김성춘 | 연미사에 갔더니 외 1
김경호 | 녹물에 젖네 외 1
이창희 | 등대부근 외 1
이월춘 | 봄은 와야 한다 외 1
조기현 | 또 하나의 절벽 외 1
김정수 | 화
정 훈 | 독 외 1
김종태 | 상생 외 1
금지은 | 나비나비야 외 1
권상진 | 바닥이라는 말 외 1
리 호 | 아따 외 1
배주열 | 노가리 외 1
김미정 | 또는, 눈사람의 기분 외 1
김이오 | 소파를 천천히 긁는다 외 1
구경화 | 수목장 외 1
나비 시인들
강은교 | 당고마기 고모네 초록빛 식탁 외 1
고훈실 | 플라톤의 약국 외 2
권오주 | 웅크리고 앉아 외 2
김 려 | 지난 일은 묻지 않기로 하자 외 2
김명옥 | 좋은 이웃 외 2
김미선 | 달마고도 외 2
김뱅상 | 이집션 블루, 8/8 외 1
박산하 | 어떤 토르소 외 2
배재경 | 복권방으로 오세요 외 1
백미늠 | 고추나무 외 2
송지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 2
임헤라 | 왼손에 대한 사용 설명서 외 1
천유근 | 구월의 숲 외 2
최휘웅 | 꿈의 방정식 Ⅱ 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