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비 앙 로즈 / La Mome 리뷰 (Edith Piaf 의 일생) + 음악과 동영상모음
2007년/ 각본+감독: Olivier Dahan /주연: Marion Cotillard + Jean Pierre
Martins / 음악: Christopher Gunning / 140분
누가 보아도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기구하고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 온 그녀를
2시간 정도의 영화 한편으로 다 그려낸다는 건 사실상 무리이고,
오히려 미니 시리즈로 만든다 해도 최소한 5-6부작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전설적인 그녀에겐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
에디뜨 삐아프(에딧 삐앞) (Edith Piaf, 1915-1963),
본명: 에딧 지오반나 까숑(Edith Giovanna Gassion).
1915년12월19일, 프랑스 빠리(Paris) 에서 태어나고, 1963년10월11일,
50세도 안된 나이에 프랑스 남부, 그라스(Plascassier)지방에서 영면한 후,
쇼팽(Chopin)도 누워있는 빠리의 뻬르 라셰즈(Pere Lachaise)공동묘지에
안장이 된 샹송(Chanson)의 영원불멸의 여왕(여제).
수많은 가수들의 자전적인 영화 제작이 유행이 된 이 21세기 초이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점을 감안한다면,
끌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감독이 1983년에 ‘Edith Et Marcel’를
만든 이후, 그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 영화의 출시는 오히려
후시지탄(後時之嘆)의 느낌도 없진 않다.
곡예사인 30대 중반의 아버지, 루이(Louis Alphonse Gassion, 1881-1944)와
이태리 혼혈의 거리가수, 20살의 어머니, 아니타(Annetta Giovanna Maillard,
1895-1945)는 그녀를 빠리의 베르빌(Belleville) 길가에서 출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돈이 없었고, 이후, 순조롭지 못한 이들의 결혼 생활과 아빠, 루이의
1916년의 입대로 인해, 버려진 아기, 에디뜨는 외할머니네 집을 잠시 거쳐,
노르망디 지방의 친 할머니네 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을 파는) 티틴(Titine)이 일시적인 대모 역할을 하는 가운데,
3살 때부터 4년간 수막염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일시적인 맹인의 고통을 겪게
되는데, 그녀의 회고에 의하면, 테레사 성녀(Saint, Therese De Lisieux)께서
이 때, 자신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었음을 굳게 믿는다고 하였다.
14살이 되던 1929년부터 빠리의 길거리에서 아버지의 마술 공연을 거들다가,
‘La Marseillaise(프랑스 국가)’를 부르며 노래를 시작한 에디뜨는 16살 때에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하여 이복자매인, 시몽(마몽/Simone Berteaut)과 함께
살면서, 거리에서 노래도 하고 돈이 없으면 매춘도 하는 부랑자 생활을 하는데,
루이 듀뽕(Louis Dupont) 이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곧 임신을 하여,
18살 때에 이미 딸, 마르셀(Marcelle, 1933-1935)을 출산한다.
그리고는 20살의 어머니, 아니타가 그랬던 것과 똑 같이 자신도 자식을
돌보지 않다가, 2년 후 그 외동 딸, 마르셀을 병으로 잃는 불행을 겪는다.
빠리의 샹제리제(Champs Elysees)에서 ‘Le Gerny’ 라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루이 르쁠레 (Louis Leplee)사장이 거리에서 에디뜨를 발견한
1935년(그녀 나이 20살 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매우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영화의 원제목이기도 한 ‘라 몸 삐앞’(La Mome Piaf/Kid Sparrow/작고 어린
참새)이라고 그녀에게 무대 이름을 지어준 후, 음악 공부도 다시 시키고,
(나중에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은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내게 한 후,
거물, 모리스 슈발리에 (Maurice Cheval! ier)가 나오는 쇼에 출연을 시켜,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또 음반 녹음도 데뷔하게 만든 루이 르쁠레는
그러나 이듬 해, 1936년 4월에 의문의 살인을 당하면서, 에디뜨 역시도
용의자의 일원으로 만들며, 곤경과 실의에 빠뜨리게 된다.
이후, 에디뜨에겐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의 큰 스승이 되는 시인, 레이몽
아쏘(Raymond Asso)의 헌신적인 도움과 지독한 훈련으로 본격적인 가수의
길에 접어든 그녀는 같은 해에 무려 15곡이 넘는 노래들을 녹음하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되는데, 이 시절에 가까이 지내던 장 꼭도
(Jean Cocteau)같은 문화계 거물인사들과의 친분은 그녀의 경력을 더욱 더
다양하고 화려하게 만들어, 1940년에는 장 꼭도의 연극(La Bel Indifferent)
에도 출연을 하였고, 이후 영화에서도 그녀를 만나 볼 수 있게 된다.
(생애 총 출연작:10편).
“한 달 동안 나눈 대화보다 침대에서의 하룻밤이 그 남자를 가장 잘 알 수가
있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지만, ‘샹송의 여왕’과 함께 ‘염문과 스캔들의 여왕’
이라는 호칭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 당시부터인데, 자신의 쇼에 오프닝 가수로
나오던 6살 연하의 신인, 이브 몽땅(Yves Montand, 1921-1991)과의 동거생활,
또 빠리와 뉴욕을 왔다 갔다 하다가 나중에 자신이 죽였다고 자학을 하게 되는
미들급 세계권투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 (영화 자막에는 막셀/ Marcel Cerdan
/1949년10월에 비행기 사고로 죽음)과의 비극적인 사랑 등이 그녀에 관한
1940년대의 주요 헤드라인이었고,
또 그녀에게 제2의 이브 몽땅같은 존재였던 9살 연하의 샬 아즈나불(Charles
Aznavour, 1924)과 함께 있다가 (두 번 이나)당한 1951년의 교통사고는
이후, 에디뜨를 알콜과 몰핀 중독에서 영영 못 빠져나오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1952년, 싱어 송 라이터인 자끄 필(Jacques Pills)과 첫 번째 정식 결혼식을
올린 후에도 에디뜨는 많은 스캔들로 1956년에 이혼을 하게 되는데,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에디 꽁스탄틴(Eddie Constantine),
장 루이 조베르(Jean Louis Jobert), 앙리 꽁떼(Henry Contet) 등이
다 그녀의 연인 목록에 올랐었던 유명 인사들이었고,
투병 중이던 1962년에도 “사랑만이 인생의 전부”라며, 자기보다 21살이나 어린
테오 사라뽀(Theo Sarapo. 1936-1970)와 두 번째로 정식 결혼을 하였으나,
그에게 막대한 부채만 남기고, 이듬 해, 1963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30년대와 1950-1960년대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영화의 줄거리 전개가
어떤 면에서는 두서없기도 하지만, 그러나 오히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을 한듯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시간 때문에, 그녀 곁에 머물렀던 수많은
남성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과의 사랑만이 집중조명을
받은 점도, 또 그녀가 돌보지 않아 두 살 때 수막염으로 죽은 그녀의 유일한
혈육, 마르셀(Marcelle/1933-1935/그녀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가 된다는
사연/영화 끝에 잠깐 언급) 이야기 등이 모두 거두절미 된 점도 아쉽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영화음악적인 측면이다.
’작은 참새‘ 나 ‘작은 숙녀‘ 정도로 해석이 될 원제(라 몸/La Mome)와는
별개로 미국이나 한국에선 흥행을 염두에 두고 붙인 (개봉)제목이겠지만,
바로 영화의 제목인 불세출의 대 명곡, ‘라 비 앙 로즈’(장밋 빛 인생/La Vie
En Rose)의 팬으로서는 섭섭함을 느낄 정도로 음악적인 초점은 이 명곡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곡을 포함하여 그녀가 1940년대에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시킨 여러 명곡들이 마치 모두 다 연인, 마르셀 세르당 때문에 만들어졌고,
또 그에게 바치는 곡들 정도로만 왜곡 해석된 점도 불만이 아닐 수 없다.
한편, TV시리즈의 음악을 주로 만들어온 크리스 거닝(Christopher Gunning,
1944. 영국)의 OS는 에디뜨 삐아프의 워낙 많은 오리지널 버전 삽입곡 들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음은 이해가 되는데, 그녀의 1936년의 첫 번째 극장
공연에서 그녀의 목소리대신 (뜻밖에) 연주로만 흘러나오던 얌전한 분위기의
메인 Theme은 엔딩 크레디츠를 포함하여 모두 세 네 번 가량 들을 수가 있다.
이 명곡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샹송을 논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 영화의 제목인 ‘장밋 빛 인생’(라 비 앙 로즈)은 이브 몽땅과의 사랑이
한창일 때인, 1944년 10월, 에디뜨가 직접 작사를 하고 작곡을 하였다고 한다.
[대외적인 작곡가는 루이 기(Pierre Louiguy/Louis Guy, 1916-1991, 스페인)로
되어있음/ 자세한 이야기는 ‘사브리나’(1954)의 리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