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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설계를 맡긴 사람들요? 제 평생에 최악의 클라이언트였죠.”
건축사 강병국(50·동우건축) 소장이 말한 문제의 건축주는 부인과 두 딸이다. 강 소장이 설계한 ‘이 집’에는 강 소장과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고객인 ‘세 여자’가 살고 있다. 강 소장이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에 집을 지은 것은 2006년이다. 그전까지 아파트가 아닌, 더구나 서울 밖에서의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계기는 돈 때문이었다. 부인이 운영하던 간호학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서울 목동의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남은 돈으로는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밖에 얻을 수 없었다. ‘차라리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을 짓자’ 싶었다. 부지를 물색했다. 두 딸의 교육, 땅값, 출퇴근 거리를 고려해야 했다. 오포읍 능평리가 세 가지 조건에 맞아떨어졌다.
강 소장의 전원주택 제의에 두 딸이 먼저 조건을 달고 나섰다.
“알록달록한 집 아니면 싫어! 그리고 수영장.”
노출 콘크리트 방식으로 무채색 일색인 아빠의 건축을 싫어했던 두 딸이 선수를 치고 나왔다. 부인은 한술 더 떴다.
“그럼 난 사우나.”
문제는 돈이었다. 여유만 있다면 수영장·사우나뿐이겠는가. ‘건축가’의 자존심을 걸고 얼마든지 멋있는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달 쓰자고 수영장을 꼭 만들어야겠어?” “원하는 대로 하려면 건축비 예산이 초과된다니까.”
다른 건축주에게는 팍팍 먹히는 ‘예산 초과’란 단어가 ‘세 여자’에겐 도통 통하지를 않았다. 논리적 설득이 아예 불가능했다. 두 딸은 다른 집과 비교해가며 아빠의 자존심까지 건드렸다.
“아빠는 왜 저 집처럼 못 지어?”
부족한 예산, ‘세 여자’의 요구, 건축가의 자존심. 강 소장은 이 모든 것의 접점을 찾느라 고역을 치러야 했다. 건축 기간도 1년여가 걸렸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도면을 그려야 했고, 돈이 없는 만큼 그의 노력으로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았다. 어쨌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객인 ‘세 여자’의 요구대로 수영장, 사우나가 있는 알록달록한 집을 지었다. 집에는 한학에 조예가 있는 지인이 지어 준 ‘상연재(尙淵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상연재는 2008년 경기도 건축문화대상 동상을 받았다.
알록달록 수영장이 있는 집
대지 515㎡(150여평, 도로로 24평 정도가 빠져 실제는 132평), 건축면적 86.9㎡(26평), 연면적 190㎡(58평)의 상연재를 짓는 데는 땅값, 건축비, 세금까지 포함해 총 4억원이 들었다. 옹벽이며 주차장까지 만들어진 땅값이 2억2000만원, 건축비가 1억6800만원, 중개수수료·세금 등으로 1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건축비는 3.3㎡당 350만원. 일반적으로 4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건축가였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돈이 부족해 집 크기도 처음 계획보다 줄어들었다.
12월 17일 상연재를 찾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경기도 분당시와 광주시의 경계에 위치, 분당 중심가에서 차로 1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전원주택단지로 조성된 마을 이름은 ‘솔메마을’이라고 했다. 산이 빙 둘러싸고 있는 사이로 말발굽처럼 30여가구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중에서 알록달록한 상연재는 주변의 다른 집들과는 확연하게 구별이 됐다.
상연재는 집 입구부터 예상을 깼다. 마당으로 연결되는 보통 집과는 다르게 대문을 열면 벽이 가로막는다. 대문은 보기 드물게 폴리카보네이트(플라스틱의 일종)를 사용하고 중간에 색유리로 포인트를 넣었다. 색유리는 사무실에서 샘플로 굴러다니는 것을 살짝 들고 왔단다. 가장 싼 소재라서 선택했다는 폴리카보네이트 대문은 현대적이면서 독특하다. 대문에서는 집이 보이지 않는다. 벽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비로소 탁 트인 마당이 나타난다.
2층으로 지은 집은 남향으로 일자형이다. ‘ㄱ자’ 형으로 짓고 싶었지만 예산이 허락하지 않았다. 폭은 좁지만 좌우로 긴 탓인지 평수보다는 훨씬 커 보였다. 녹이 슬지 않는 징크(zinc)를 테두리로 두르고 그 안에 대문처럼 색유리를 포인트로 넣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마치 작은 미술관 같다. 테라스도 돌출 구조가 아니라 방처럼 만들었다. 천장과 정면 쪽을 뚫어 벽면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강 소장의 건축 스타일과는 다른 두 딸을 위한 ‘알록달록한’ 집이 탄생했다.
건축에도 반전이 있다
강 소장은 이 집의 곳곳에 반전을 숨겨놓았다. 동선의 흐름에 따라 긴장과 이완이 반복된다. 대문에 들어서면 막혔다가 확 뚫린 마당이 나타나고, 현관으로 들어서면 막혔다가 천장이 확 트인 거실이 나타나는 식이다. 다음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고 공간의 효과도 극대화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관 쪽의 낮은 천장에 대비돼 거실 천장이 유난히 높아 보인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수은주에도 불구하고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실은 따뜻했다. 일자형의 집은 폭이 좁아 햇볕이 안쪽까지 충분히 들었다. 빛이 너무 많이 들어 한여름에는 덥지 않을까? 그런 의심을 품었다면 ‘건축가의 집’이란 것을 잠깐 잊은 것이다. 건물 전면에 약간 튀어나오게 둘러놓은 징크가 한옥의 처마 역할을 해서 여름엔 빛을 차단해준다. 여름과 겨울에 다른 태양의 고도까지 고려한 것이다.
1층에 안방·거실·부엌이, 2층엔 두 딸의 방 2개와 작은 컴퓨터방이 있다. 컴퓨터방은 두 딸의 행동을 거실에서 ‘감시’할 수 있도록 유리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느냐”는 항의에 부딪혀 그냥 벽으로 만들었단다.
집이 현대적이라면 마당은 ‘매란국죽’ 사군자로 꾸몄다. 한쪽에 대나무 30여 그루를 심고 매화나무와 국화를 심었다. 번식력이 뛰어난 대나무는 곳곳에 무성한 뿌리를 내리고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당 양옆으로 소나무 두 그루가 휘어지며 점점 큰 그늘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마당 안쪽으로 두 딸이 소원했던 수영장이 있다. 10m 길이의 수영장 옆으로는 나란히 텃밭을 만들었다. 마지못해 만든 수영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여름이면 아내도 큰 튜브 위에 누워서 몇 시간이고 책 읽는 걸 즐겨요. 뉴스에선 폭염이라고 하는데 물속에 있다 보면 추워서 집에 들어올 정도예요. 텃밭도 바로 옆에 있죠, 고기 구워 먹다 더우면 물에 뛰어들면 되죠. 수중등을 설치해서 야경도 끝내주죠. 수영장이 주는 여유를 생각하면 처음에 너무 경제논리로만 따졌다 싶더라고요.”
수영장뿐만 아니라 전원주택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아파트에 살 때는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몰랐지만 여기선 하루하루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분당에서 고작 10여분 거리인데도 밤하늘은 별천지다. 안방에 천창(지붕에 낸 유리창)을 만들어 놓아 침대에 누우면 얼굴 위로 별빛이 쏟아진다. 비오는 날이면 ‘후두둑 후두둑’ 2층 높이의 천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더없이 운치 있다. 부인은 지금도 비가 오면 천창 밑으로 달려와 빗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한다. 텃밭에서 얻는 기쁨도 크다. 가족 수대로 방울토마토 네 그루를 심고 “하루에 열 개씩은 먹자” 했는데 미처 따먹지도 못할 만큼 주렁주렁 열렸다. 겨울이라 방치된 텃밭에 남아있는 치커리 몇 포기가 무성했을 수확을 짐작하게 했다.
사람을 생각하는 건축
문제는 자연의 여유가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잔디며 텃밭이며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도 상상 이상이었다. 잔디는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텃밭도 조금만 소홀하면 엉망이 되지, 바비큐도 먹을 땐 좋지만 뒤처리하려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마당 관리는 철저하게 강 소장 담당이다. 강 소장의 노동에는 관심 없는 ‘세 여자’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에 푹 빠졌다. 어느날 셋이서 모여 이런 결의를 하더란다. “우리 이젠 아파트에서 살지 말자!”
그나마 이사 와서 1년은 시간 여유도 있고 집 꾸미는 재미도 있었다. 중국산 돌부처며 석탑을 사다가 갈고 다듬어 새로운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 회사일이 바빠지면서 점점 마당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2~3년은 365일 야근하느라 아예 마당 쳐다볼 시간도 없단다. 야근에 얼마나 지쳤으면 그는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에 ‘부적’을 붙여놓았다. ‘야근 물리치고 칼퇴 불러오는 부적’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아직까지 효험은 전혀 없단다.
“그래도 바쁜 만큼 회사가 잘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몰라서 하는 소리란다. “건축사무소에서 일이 많은 것은 그만큼 하고 있는 일이 없다는 이야기예요. 수주를 따기 위해 계속해서 이곳저곳에 입찰제안서를 들이밀어야 하니 안에서만 정신없이 바쁜 거지요.”
강 소장은 상연재뿐 아니라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그가 설계한 논산의 생폴 요양원은 2004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고, 서울 신촌연세세브란스 종합관은 2009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호서대 산학중심대학도 아산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건물은 조형물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람을 위해 건물을 지으면서 정작 사람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겉에서 보면 밋밋하지만 살면서 좋아지는 건물이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식적 요소보다 자연과 빛을 이용한 설계를 좋아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이야말로 더없이 훌륭한 디자인이죠.”
영화에게 건축을 묻다
그는 건축과 사람과의 연결 고리를 영화에서 주로 찾는다. 영화 매니아인 그는 건축사협회서 주관하는 건축영화제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건축영화제는 올해 4회째로 매년 10월쯤 열린다. 그가 전원주택을 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영화 때문이었다. 아파트에서는 아무리 방음에 신경을 써도 마음껏 음향을 즐기기 힘들었다. 집을 지으면서도 신경을 쓴 것이 영화감상을 위한 시설이었다. 높은 천장의 거실 한쪽 벽에 150인치 프로젝트용 스크린을 설치했다. 스크린 뒷벽은 음향효과를 살리기 위해 나무 막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해 사이사이 홈을 만들었다.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마음껏 볼륨 높여놓고 영화 감상 하는 행복은 이 집에 이사 와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였다. 아쉽게도 몇 년째 영화관은 폐업 중이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고3’이 닥쳤기 때문이다. 큰딸에 이어 올해 둘째가 줄줄이 대학 입시를 치렀다. 입시도 끝났고 다시 영화관을 꾸밀 기대에 부풀어 있다.
비록 ‘365일 야근’에 삶은 묶여 있지만 예술가의 끼는 호시탐탐 그를 유혹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화가를 꿈꿨다. 대학 때는 드러머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적도 있다. 나이 오십을 넘긴 요즘도 영화감독을 꿈꾼다.
가슴 한편에 꿈을 담고 사는 건축가, 그는 두 번째 ‘우리 집’을 구상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는 상연재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이다. 그중에서 절대 반복해선 안될 ‘실수’가 있단다.
“마당 건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니까요. 잔디 안 깎아도 되고, 텃밭하고 씨름 안 해도 되고, 손길 안 가도 되는 마당을 만들 겁니다. 그런 마당이 어디 있느냐고요? 다 방법이 있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