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zdnet.co.kr/view/?no=20230221211106
요즈음 미디어를 보면 온 세상이 AI 세계가 된 듯하다. 특히 작년 4분기에 출시된 인공지능 솔루션 ‘chatGPT’ 웹에 들어가면, 컴퓨터가 상황에 맞는 편지도 완벽하게 제시해 주며, 원하는 알고리즘 코드도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 후배 CEO의 말을 들으니 만든 코드 품질이 평균 개발자 이상이라고 한다. 이미 인공지능이 만든 우리말 책이 출판되었고, 주제에 맞는 삽화를 그리거나, 게임 캐릭터도 그려준다. 짧지만 동영상까지 만들어주는 수준이다. 정말 놀라운 진보이다. 일론 머스크가 예언했 듯이 2025년경에 인류를 초월하는 지성이 도래할 것이라는 ‘싱귤레러티’의 세상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어느 시대이건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소개되면, 솔루션 업체는 ROI(투자대비효과)에 대한 높은 생산성의 기대를 갖도록 부축인다. 1970년 80년대의 MIS, 생산관리, 1990년의 CAD/CAM, 공장자동화, 전략정보시스템, 2000년대의 GIS, ERP바람은 물론 최근의 빅데이터, Cloud, IOT, AI에 이르기까지 정보기술의 투자는 언제나 의사결정권자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한다.
그러나 경영의 세계에는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라는 말이 있다. 정보기술에 대한 기업의 투자가 산업사회 전반의 성장과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정보기술투자와 생산성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거시데이터가 이를 입증한다. 미국의 경우 1970, 80년대에 정보기술에 급격한 투자를 했음에도 국가적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이러한 현상이 2000년대에도 변화가 없었고, 2020년대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 학자들은 말한다. 이에 대한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 노스웨스턴대)과 에릭 브린졸프손 (Erik Brynjolfsson, MIT) 간의 TED 논쟁도 재미있다. 생산성의 역설에 대한 두사람의 해법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정보기술의 진보가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라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편, 생산성의 역설에 대하여 이견을 가지는 학자들도 많은데, 그들의 주장은 크게 세가지로 갈라진다.
첫째는 기술혁신의 평가지표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공공시장에서는 정보기술의 투자를 비용으로 인식하여 생산성 지표를 산출하기도 어렵고, 정보기술을 이용한 시장조사/마케팅의 기여는 총생산량을 개선하지 못하기도 한다. IT투자의 가격절감효과, 인플레이션의 과대 평가, 생산성 과소평가 등의 현상도 평가지표를 왜곡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은 속도, 품질, 가격절감, 다양성과 같은 무형적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정보기술의 투자는 생산성이 아니라 전략적 우위로 접근하여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둘째, 성과는 기업의 역량이 따라주어야 얻어진다는 주장이다. 정보기술 자원에 선행 투자를 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생산성 증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조직혁신이 뒤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정보기술을 수용하는 학습곡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빙산의 메타포를 빌면, 정보자산에 10을 투입을 했더라도, 조직자산의 혁신에 90이상의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나 정보기술의 투자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셋째는 제로섬 이론이다. 풍선처럼 한쪽이 팽창하면 다른 쪽이 그만큼 수축된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두개 회사가 50%:50%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한 회사가 정보기술을 도입하여 시장점유율 65%를 달성했다고 해도, 전체적 산업의 생산성 증가는 없을 수도 있다. IT기술이 업체의 경쟁력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산업성장에 반드시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일례로 온라인 상거래의 성공이 오프라인 상점의 생산량을 절감시킨다. 시장전체의 성장은 도모하지 못하고, 시장 재분배에 기여하는 이런 현상을 빗대어 브린졸프손은 말했다.
“정보기술은 파이를 크게 만들지는 못하고, 파이의 몫을 재구성한다“
혁신은 긍정과 부정을 모두 유발시킨다. 마치 산소를 마셔야 생명을 유지하지만, 과도한 산소가 노화를 촉진시키는 현상과 같다. 이처럼 혁신이 만든 긍정적 성과를 혁신이 초래한 부작용이 무력화하기도 한다. 시장에서는 결국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져가기 때문에 정보기술의 투자가 전체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생산성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학자들은 1) 생산성 대신에 공익적인 새로운 성과지표가 필요하고, 2) 조직 변화를 도모할 투자가 함께 따라 줘야 하며, 3) 제로섬이 아닌 플러스섬을 만들어 줄 시장 창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성과지표로서 ‘생산성’은 끝내야 할까? 투입량에 대한 산출량의 지렛대 효과인 생산성으로는 정보기술 투자의 타당성을 말하기 곤란하다는 이론이 득세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법인의 존재가치를 생산성에 두어서는 기업의 미래 정체성을 주창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사회초년생 시절에 어느 선배로부터 다단계 가입을 권유 받은 적이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회사 선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론은 세계인구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지구가 갈수록 커져야 가능한 모델인데…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산업사회의 끝없는 생산성 증대의 노력은 마치 다단계 모델처럼, 불가능한 목표를 향하는 사람들의 욕심에 기인한다. 이제는 생각을 고쳐 잡아야 한다. 생산성 지표는 생태계 특성을 설명하는 ‘균형, 무한순환, 상호의존’의 세가지 생명지표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예로부터 선각자들은 인공지능이 불러올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예언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우주선의 HAL 컴퓨터는 자신을 무력화하려는 우주인을 공격한다.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의 세상은 암울한 미래 인류의 전조를 보여주기도 했다. 통제할 수 없는 정보기술이 인류에게 끼칠 위험도 그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인류의 멸망이 기후문제가 아니라 신기술이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기술진보의 거대한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목표지향이 생산성이 되어서는 곤란한다. 왜냐하면 생산성은 약자들의 세상을 소멸시키며 다양상을 파괴한다. 마치 땅을 돈 되는 인삼밭으로 도배하여, 토지를 황폐화시키는 일과 같다.
“실수는 사람이 저지르지만, 정말 엄청난 실수를 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인공지능과 같은 정보기술의 성과지표를 생산성에 두려는 접근을 제고해야 한다.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생각을 대신해 준다면, 나의 뇌에서는 그 생각을 담당하는 시냅스가 사라진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력을 모두 빨아드려서 인류의 뇌를 퇴화시키도록 좌시해서는 안 된다. 인생이 생산성은 아니지 않는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