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성에 도착해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24킬로미터 남짓 거리를 늦어도 3시까지는 도착해야 하므로 서둘러야 한다. 아침도 라면으로 때우고 7시, 고성을 향해서 출발했다. 14번 국도를 피해서 좀 돌아가더라도 해안선을 따라가는 1021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구름이 약간 낀 흐린 날씨지만 봄기운이 완연해서 춥지는 않다. 조금 속도를 내서 걷는다. 원문, 해조, 마구촌 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한 노인이 여심히 굴 껍질을 꿰고 있다. 굴 양식에 쓸 물건이란다. 굴 또는 가리비 껍질을 길게 꿰어 물속에 메달아 놓으면 굴 씨가 달라붙어 자라고 약 3개월 정도 지나면 채취하게 된단다. 그 많은 굴, 가리비 껍질도 모두 중국에서 수입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한산면 용호마을에는 ‘사랑이 모이는 샘’이라는 예쁜 이름의 장애아 수용시설이 있다. 초등학교 분교였던 건물을 개조해서 이용하고 있나보다. 그 옆에는 한빛교회가 있어 서로 잘 어울린다.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에 이런 장애아 시설이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걸음을 빨리해서 걸었더니 땀이 난다. 스웨터를 벗어 배낭에 넣고 또 열심히 걷는다. 아마 이 정도의 속도라면 한 시간에 4킬로미터쯤은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게다.
10시 20분, 도산면의 광도농협에 도착했다. 늘 하던 대로 제 집 들어서듯 당당하게 들어가 배낭을 벗어놓고 앉는다. 우선 커피 한 잔 마셔야지. 어쩌면 농협은 내가 즐겨 찾는 공짜카페다. 어럽쇼? 여기서는 커피를 마시려면 1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넣어야 한다. 100원이 아니다. 그냥 10원이다. 무슨 이유일까? 내 수중에 10원짜리 동전이 있을 리 없다. 창구의 직원에게 100원짜리 동전을 바꾸어 달랬더니 10원 동전 두 개를 그냥 준다. 이럴 바엔 차라리 그냥 공짜로 주지. 세상은 참 재미있지 않은가?
도산면을 지나면서 지방도가 끝나고 어쩔 수 없이 14번 국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그러나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다행이다. 11시 30분, 통영과 고성의 경계인 바다휴게소에 도착했다. 통일전망대가 있는 강원도 고성을 떠나 꼭 30일 만에 경상남도의 또 다른 고성군에 도착한 셈이다. 경계지점의 고갯길에는 예쁜 쌈지공원이 있어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피곤한 다리를 쉴 수 있어서 좋다. 아침에 겨우 컵라면 한 개를 먹고 4시간 반을 걸었더니 시장하다. 미리 준비한 김밥을 먹으며 쉰다. 시장기가 가시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인생 뭐 있어? 이 정도 살면 된 거지.’ 바다를 향해 누구 들으랄 것도 없이 소리를 지른다. 아내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좋으냐고 묻는다. 암, 좋고말고. 쉬고 싶으면 쉬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기가 그리 쉬운가?
국도를 따라 걷노라면 시시각각으로 이정표를 만나므로 목적지까지 대강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어서 편리하다. 12시, 고성까지 약 4킬로미터가 남은 지점에 예쁘고 아담한 소형 스틸하우스 모델이 전시되어있다. 예정보다 빠르게 왔으니 슬슬 구경이나 할까? 내가 다음에 집을 지으면 이런 작은 집을 지을 거라고 했더니 아내는 한 두 번 들은 게 아니라며 어차피 자기는 큰 집에 살 팔자가 아니란다. 남편은 작은 집을 좋아하고 아들은 돈이 없으니 어떻게 큰 집에 살겠느냐고 조금은 빈정거리는 투다. 하긴 내 취향이 아내의 취향과 다르니 어쩔 수 없지.
드디어 1시10분, 고성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마침 1시 25분에 서울행이 있단다. 점심을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버스를 타고보자. 서울까지 4시간이 걸린다니 집에는 6시 반쯤이면 도착할 수 있겠구나.
오늘 걸은 길 : 통영 무전동-원문-해조-마구촌-용호리-도산면-흥류, 월평-고성시내-고성버스터미널. 23.5킬로미터
첫댓글 원장님 글 잘보고 다녀갑니다...요즘 전 미녀는 괴로와로 다시 태어나려구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ㅋㅋㅋ
잘 됐네. 여기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구먼. 그래 얼마나 미녀가 되었나? 미녀되면 연하의 애인을 사귈려고 하는 건 아닌지. 아무튼 내 눈이 나으면 한 번 진하게 봅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