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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 목사님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가 축복받고 저주하는 자가 저주를 받는 성경적 정확한 근거’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사실은 이 제목은 부재로, 원래 제목은 ‘하나님의 나라는 올려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내려옵니다’ 였습니다. 이것을 제목으로 달려고 하니 이단들이 주로 이런 말을 하기에 제목으로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올려 간 천국은 임시 거처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내려옵니다. 이런 부분을 깊이 보고자 합니다.
답답한 것은 500년 전 기독교가 로마의 카톨릭으로부터 벗어났고, 개혁을 한 것인데, 사실상 개혁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기독교는 머물러 있고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만들어진 교리는 성경을 깊이 이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 교리는 수정되야 하는 것입니다. 교리는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공부 좀 더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도 목사님들이 태만합니다. 물론 두려워하시는 부분도 제가 압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돌아가자며 개혁을 한 것처럼, 오늘날 교회에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성경 말씀을 볼 때 간단한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 말씀은 누가 지으셨습니까? 성경을 지은 저자는 한 분입니다. 이게 기독교의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바로 성령님이 성경을 지으셨습니다. 대리인들이 그것을 대리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처음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동일한 선상에서 봐야 합니다. 같은 선상에서 내용을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인식하고 성경을 봐야 합니다. 홍길동전을 볼 때 선입견을 가지고 봅니다. 길동이는 서자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나고 그리고 언젠가 사건을 저지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봅니다. 성경을 볼 때도 전제를 두고 봐야 합니다. 삼국지도 똑같습니다. 유비가 선인이고 그리고 조조는 빌런(악당(惡黨) 또는 빌런(villain)은 영화, 드라마, 무대 연극, 소설 등에 등장하는 나쁜 역할)이고 마지막 영웅은 제갈공명이다. 이 정도는 알고 삼국지를 읽습니다. 똑같습니다. 성경 읽으실 때 한 가지 진리를 가지고 읽으면 됩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문구에서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 기독교인들은 다 죽었습니까? 성당 다니시는 분들은 뭐 합니까? 캐나다는 카톨릭이 강합니다. 위정자가 잘못되었으면 다른 사람을 선출하면 되는데 기독교인들이 비겁해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타락한 것입니다. 이 성경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우리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에 들어 있는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가지고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들을 여러분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널 죽여버리겠다고 한다고, 진짜 죽이시려고 합니까? 아버지인데 여러분은 집에서 자녀한테 죽여버리겠다고 말 안 합니까? 우리도 모르게 자녀에게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왜요? 잘못될까 봐, 부모 곁을 떠날까 봐, 세상으로 잘못 가서 잘못될까 봐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래서 절제시키는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의 언약은 절제시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전제된 후에 신약이 나옵니다. 성경 말씀 전체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 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 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내용입니다. 그렇게 주제를 세우고 성경을 보면 깊이 은혜를 받습니다. 마태복음 5장 좀 볼까요? 5장 17절에서 2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내용은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대전제입니다. 5장 6장 7장을 볼 때 이 말씀을 중심으로 보고 이해하면 깊은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오셨습니다. 그럼 율법이 뭡니까? 구약 전체일까요? 많은 목사님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솔직히 좀 건방지게 공부 좀 하라고 말씀드렸냐면 이 율법은 구약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라 합니다. 토라는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첫 번째는 모세 오경을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고, 그리고 선지자라 하신 말씀에서 선지자는 모세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모세 오경과 모세들입니다. 즉 ‘모세 오경을 지은 그리고 모세 오경을 선포한’ 이란 뜻입니다.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나비]라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선지자들이 아닙니다. 예레미아 같은 분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언자라는 뜻입니다. 즉 모세를 가리킵니다. 그냥 율법이란 말을 안 했으면 구약에 나오는 모든 선지자들을 말하는 것이었겠지만, 율법과 선지자였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것 곧 모세 오경에 한정된 선지자 곧 모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세 오경과 모세를 말씀하신 것은, 바로 십계명의 언약을 말씀하려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이런 부분을 오해하기 때문에 구약의 많은 제사의 제도들은 다 폐해졌고, 제사 제도, 제사의 근본이신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이제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십계명의 언약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십니다. 그러나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번역을 잘못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율법은 법이 아니고 원뜻은 토라 곧 가르침입니다. 가르침이라면 너희가 지켜라 이렇게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상한 말이 나옵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룬다고 합니다. 즉 구약을 이해하지 못하면 풀리지 않습니다. 이룬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뭔가 장래에 이루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가 지키는 법이 아니라 이루기 위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십계명의 언약은 여러분에게 이거 안 지키면 지옥 가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약속일까요? 약속입니다. 지금 내가 너에게 이 십계명의 언약을 주면서 한 약속을 나는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약속은 대상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와 약속을 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구약을 빼버리면 신약은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요? 이 십계명의 언약을 하나라도 버리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요? 천국은 가긴 갑니다. 가르치는 자들이 천국에 가서, 제가 보기에 한국교회 수많은 목사님들이 면류관을 받는데, 깃털 면류관을 받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깃털 받았네, 나 깃털 받았네’ 이렇게 노래할 것 같습니다. 지금 목사님들께 제가 부탁드립니다. 깃털 받지 마십시오. 아무 상금도 없는 깃털 받지 마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정말 귀한 면류관 받으시길 축복드립니다. 빼지 마십시오. 많은 목사님들이 성경 말씀을 자꾸 뺍니다. 빼지 마시고 다 가르쳐 주십시오. 안 되면 배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라고 하십니다. 그냥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하며 가르치라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가장 큰 복음은 행함을 뺀 것입니다. 행함을 십계명의 언약을 행해야 된다고 하면, 뭐라고 말합니까? 행위구원론이라고 합니다. 행위 구원의 뜻은 율법의 행위를 가리키는 겁니다. 착하게 살고 선하게 살고 세상의 빛과 소금된 삶을 사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어찌 그것을 행위 구원이라는 말로 바꿉니까? 구원받은 자들은 당연히 행위가 따라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르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성도님들 안심시키면 안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술취했다고 합니다. 잠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천국만 가면 작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시려면 성도 되시는 게 났습니다. 20절 말씀은 무슨 말씀이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천국에 가서도 상급이 있고 높낮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천국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천국에 가지 못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 부분은 의에 관한 것입니다. 포인트가 의입니다. 이 의에 대한 것은 다음 주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지금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예수님은 예언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9장 3절부터 6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하나님이 지금 십계명의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할 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데 우리가 생각 못한 이상한 말을 하십니다. ‘너는 이같이 누구에게 이르라 야곱 족속에게 이르라’는 것입니다. 왜 야곱을 이야기하실까요?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하나는 야곱 족속, 두 번째는 이스라엘 자손 사실 대상자가 같은데 하나님은 야곱 족속과 이스라엘 자손으로 구분해서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첫 번째 야곱 족속은 혈육의 자손을 말하고, 두 번째 이스라엘 자손은 이긴 자를 의미합니다. 두 가지로 하나님께서 구분하신 것은 이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하고만 맺은 것이 아니라, 뒤에 이길 자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함께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은 지금 출애굽기에도 독수리 날개를 말씀하고 계시고, 요한계시록에도 독수리 두 날개로 내가 너희를 피난처로 피난시켰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의 말씀은 신약의 말씀을 뒷받침해 주는 뿌리입니다. 그리고 뭐라 하십니까? 약속에 관한 내용인데,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백성에게도 해당됩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여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자손이 되어야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요? 언약에 관한 것입니다. 포인트가 무엇입니까? 언약에 관한 것이 바로 십계명의 언약을 듣고 잘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 내 소유가 될 것이오. 곧 내 백성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된다고 하십니다. 제사장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스라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내려옵니다. 그리고 이 땅에 건설됩니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구약을 모르다 보니까 우리가 자꾸 천국 올라가는 이야기만 합니다. 천국은 반드시 내려오게 돼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시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한번 해볼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은 구별된 이름입니다. 바로 그 이름 예수입니다. 그리고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는 뜻입니다. 주기도문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려오는 곳이고, 이 땅에 임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에는 다 구원받은 자들만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백성을 구원하여 그의 자녀와 백성을 삼고 함께 살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뜻이 어그러졌습니다. 그 어그러진 뜻을 다른 말로 하면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하늘에서는 그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땅에서는 아직 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내려오고 이 땅에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지어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뒤에 이어서 나오는 기도는 이제부터 개인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앞은 하나님의 소망에 관한 것이고 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다짐에 관한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그렇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모든 인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게 주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구약을 모르니 오해를 합니다.
‘너희가 내게 되어 제사장 나라가 되며’ 이 제사장 나라가 무엇입니까? 제사장 나라는 장자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면 이스라엘이 장자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전 세계를 다스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어떤 백성이요? 거룩한 백성 곧 구별된 백성입니다. 너희 이스라엘은 구별된 백성이 되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야곱의 족속에게만 말씀하시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전 세계 이스라엘 자손에게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이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언제 말씀하셨습니까? 창세기 32장에 나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길 때 나옵니다. 즉, 하나님을 찾고 찾는 자,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찾고 찾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벧엘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셔서 ‘네가 이 땅에 돌아올 때는 내가 너를 이 땅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네 후손을 많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형 에서가 날 죽이러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약속을 이행하십시오’ 라며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자기와 자기 자녀들을 다 죽일까 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두려움과 붙잡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 죽음의 공포에서 도망가지 않고,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싸우고 있습니다. ‘나의 생명은 여호와께 달렸습니다. 우리 형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라며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고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며 그 축복을 야곱이 받습니다. 그때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여러분이 다 아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내용은 그다음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한 번 더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하십니다. 아까 출애굽기 19장에서 너희가 야곱의 족속이고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두 가지로 말씀하신 내용이 지금 똑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볼까요? 창세기 35장입니다. 창세기 35장 1절부터 5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5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지금 야곱의 집 안에 사건이 생깁니다.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그 자녀들이 그곳에서 디나에게 수모를 줬던 자들을 살육합니다. 살육으로 더 이상 야곱은 세겜 땅에서 살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야곱은 에서로 인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히 여기까지 왔는데,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땅에 머물고 있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이 땅에 살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곧 야곱 족속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 있어야 될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들이 돌아가려고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들이 핍박을 받게 되고 홀로코스트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이 살해당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갑니다. 똑같은 사건입니다. 그때 피하여 도망가는 사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돌아왔습니다. 돌아왔지만 어디로 돌아왔습니까? 세갬으로 왔습니다. 세갬은 어떤 땅입니까? 이 세상 사람과 같이 사는 곳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 예수 잘 믿습니까? 그럼 하나님을 잘 믿습니까?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동성애가 제일 창궐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민족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가 900만이라면 그중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650만 밖에 안됩니다. 나머지는 이방인들입니다. 섞여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속적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합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지만 세상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세갬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이스라엘은 핍박받을 것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이 핍박을 받게 됨에 그들이 그제야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지금 벧엘로 돌아온 곧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곧 아버지의 성전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때 야곱이 뭐라 합니까? 자기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합니까? 의복을 바꿔라. 그리고 너의 단장품을 떼어라. 바로 두 증인이 했던 일들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단을 쌓으려고 합니다. 이방 신상과 귀고리를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이방신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얍복강을 건너 땅에 돌아왔습니다. 야곱 자손이라 하셨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야곱 족속을 어떻게 이스라엘 자손으로 바꾸는가 그 얘기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올 때 이런 단장품들을 어디에 묻습니까? 세갬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 상수리나무가 뭔가요? 상수리나무는 히브리어로 [알론]이라 합니다. 힘이라는 뜻입니다. 건조한 지역에서 다른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못하는데 반해 상수리나무는 크게 자라 그늘을 만듭니다. 아브라함도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상수리나무라는 것은 힘 곧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이때까지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였고 세상을 사랑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뜻이 담긴 것입니다. 자기들의 단장품을 묻고 그들은 떠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때로부터 이들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신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35장 6절부터 8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6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이제 야곱은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단을 쌓습니다. 단을 쌓고 엘벧엘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모인 모든 무리 전체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 모인 자가 한 민족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들은 모두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엘벧엘이라고 구분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까 출애굽기 하나님이 너희가 나의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요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장인 것입니다. 지금 야곱의 자녀들하고 야곱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방인이 함께 있습니다. 8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음에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롬바굿이라 불렀더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알론바굿은 통곡의 상수리나무라는 뜻입니다. 왜 드보라가 여기서 죽었을까요? 벧엘에 도착했을 때 드보라가 죽습니다. 드보라는 야곱의 엄마 리브가의 유모입니다. 야곱에게 드보라는 할머니로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인데 리브가를 돕고 야곱을 돕습니다. 이 이방인인 드보라는 이스라엘과 같은 민족입니다. 그래서 진짜 이스라엘은 혈육의 자녀가 아니고 믿음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기에 드보라를 넣으신 것입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돕는 자입니다. 오늘 제목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사랑하고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돕는 자들, 알리아 할 수 있게 돕는 자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들, 진심으로 그들을 형제라고 믿고 그들과 함께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그런 드보라가 여기서 죽습니다. 무엇입니까? 두 증인이 섰을 때 이방교회,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나라와 민족들은 핍박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방인의 시대가 끝이 납니다. 이방인의 시대가 끝이 나고 이스라엘의 시대로 하나님이 바꾸시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 이방인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2천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시대로 바꾸십니다. 이방인의 시대가 끝이 납니다. 끝이 나는 시점을 드보라로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핍박을 받으매 단장품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이스라엘을 도왔던 드보라는 아버지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통곡합니다. 드보라의 뜻은 꿀벌입니다. 꿀벌은 꿀을 모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돕습니다. 무엇입니까?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화목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들의 나라가 회복되어 열매 맺는 민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름 하나하나에도 그 뜻을 숨겨놓으셨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에서 좀 더 깊이 볼까요?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 같이 읽겠습니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하나님의 나라가 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곳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십니다. 그런데 장차 어떻게 하신다고 하십니까? 내려오신다. 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이다. 온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한 번 더 하나님은 또 보증하고 계십니다. 밑에 볼까요? 30절에서 34절 같이 읽겠습니다.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자꾸 염려함으로 기도하려고 합니다. 교회도 자꾸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라고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이니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선교사가 나가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전도해야 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이유는 그의 의, 곧 누구십니까? 예수입니다. 다음 주는 그의 ‘의’ 곧 예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전하고자 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놀랍게도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5장 6장에서 땅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서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라. 그의 의이신 예수가 온 세상을 다스리고 온 백성을 다 구원하는, 지구의 모든 백성을 다 구원하는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는 너희의 삶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표를 정확히 가집시다. 목표를 정확히 가지면 우등생이 됩니다. 목표를 안 가지고 절제 안 하니까 낙제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를 사랑하시고 이 세상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에 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다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계속 그의 나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라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 말씀을 하시고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그분의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소원을 이루어 드립시다. 이사야 66장 같이 읽겠습니다. 66장 1절부터 4절까지입니다.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많은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많이 드리고, 헌금을 많이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는 그러한 행위들을 기뻐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듣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순종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이 온유는 히브리어 [아나브]로 순종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내는 집에서 쉬고 싶어하는데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며 차에 태워 강릉까지 가서 바다가 너무 아름답지, 너무 좋지 하며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서 이렇게 데려왔다고 할 때 진짜 사랑일까요? 아내는 너무 아파서 집에서 쉬고 싶어한다고 할 때 이것은 고통을 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진짜 사랑이라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착각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해주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학대일 때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본위로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합니다. 진짜 사랑한다면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먼저 사랑한다는 의미는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통곡을 하고 계십니다. 뭐라고 통곡하고 계십니까? 너희 마음이 가난해지고, 낮아져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귀가 낮아지고, 귀가 열려야 천국을 갑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회개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온 것들 다 잘못되었음을 동의하는 것. 바로 야곱과 그 자손들이 상수리나무 밑에 단장품을 묻는 것, 곧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하나님은 마지막 때 그런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고 소를 잡아들이는 것은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고 헌금 많이 한다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살생과 같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너희가 나에게 예배드리러 온 것을 내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가슴을 친다. 제발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다오. 심령이 가난하여져다오. 통회하여 다오. 그리고 내 말을 들어다오. 울고 계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면서도 내가 기뻐할 것이라 착각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이사야 66장 1절 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놀랍게도 주기도문의 내용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지만 그의 나라가 이 땅에 내려옵니다.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 하십니다. 나의 발등상이라는 말씀은 왜 했을까요? 마태복음 5장에 가면 무엇이 나옵니까?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리고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리고 너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과 지금 이사야 66장의 말씀은 동일한 말씀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바로 하나님의 그리스도인들, 인류에 대한 구원계획에 대한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땅은 나의 발등상이며 왜 발등상이라고 하셨을까요? 이 발등상은 히브리어로 [하돔]이라 하는데 발을 올려 놓는 받침대라는 뜻입니다. 전쟁에서 패자를 승자가 발을 올려놓고 발로 짓밟는데, 발을 올려놓는 받침대가 발등상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마귀를 패배시키고 그를 짓밟아 누를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 하신 것입니다. 마귀의 권세를 꺾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 새로운 에스겔 성전이 섭니다.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라.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성전에 관한 말씀인데, 하나님은 이 땅에 내려와서 비로소 안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이 땅을 이룰 것이니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그것을 따라다오. 내 소망을 너희가 이루어 다오. 그런 자를 나는 기뻐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눈물을 닦아드립시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 다 사랑하시고 다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66장 10절에서 14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지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 그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기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것, 마지막 때 우리 이방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너희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세워지면 온 세계가 복음화 될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을 생각해다오. 처음부터 바울은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무엇입니까? 너희의 눈동자가 마지막 때 어디를 향하라 예루살렘으로 향하라. 이스라엘을 향하라. 우리 이방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1절에서 하나님은 가슴을 치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마지막 때에 교회는 두 가지로 나뉠 것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교회,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교회로 나뉩니다. 오늘날 많은 자들이 우리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멸망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을 대체 신학이라 합니다. 대체 신학은 마귀의 가리킴입니다.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꽤어서 대적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카톨릭이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히틀러가 카톨릭 신자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이스라엘을 도웁시다.
‘너희가 젖을 빤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다.’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그를 돕는 민족을 하나님이 풍족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지키고 돌봐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친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우리가 이스라엘을 돕고 그와 함께하고, 그들의 알리아 운동을 돕고, 그리고 그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믿도록 회복하도록 도와준다면 하나님이 이 나라를 지키십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이 지키시고 이 나라를 열방의 우두머리가 되게 할 것입니다. 그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뭐라 하십니까?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에 무성함 같으리라.’ 무엇입니까? 풀이 나자 연한 봄이 된다는 뜻입니다. 봄에 풀이 나면 얼마나 예쁩니까? 여러분 가을 풀이 되고 싶습니까? 누렇게 됩니다. 저는 가끔 푸르지오란 아파트를 지날 때마다 ‘푸르지오’가 아니라 콘크리트 빌딩 숲을 보며 ‘누르지오’ 하면서 지나갑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그와 함께하는 자들에게는 어떻게 합니까? 너희 마음에 풀이 나게 하고 너희 삶에 봄풀과 같이 살게 하고 생기가 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푸르지오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놀랍게도 예루살렘을 돕는 자에게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내 종이다.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다하리라. 하나님은 반드시 예루살렘을 저주한 자를 저주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 66장 20절부터 22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대체신학은 마귀의 획책입니다. 술수입니다. 절대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21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오.’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누가 그 일을 합니까? 이방인이 합니다. 이방인 중에서도 하나님의 종 된 자, 종 된 족속과 민족이 합니다. 그 중심이 한국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무엇입니까? 내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아버지의 성전에 거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이 땅에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그 땅에 거하게 하겠다. 너희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도 레위인이 될 것이다. 장자의 나라가 될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서 장자가 못 되서 평생 스트레스 받은 분들 의외로 많습니다. 옛날 우리 어릴 때는 부모님이 장자만 좋아했습니다. 저도 삼남이어서 셋째의 설움, 둘째 설움, 막내 설움을 압니다. 천국 가서도 둘째 셋째, 넷째가 되고 싶은 분은 열심히 이 땅에 머무르십시오. 저는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 예루살렘을 기뻐하고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장자 삼을 줄 믿습니다. 장자는 다른 자녀보다 2배로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새 땅이 이 땅에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내려옵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우리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그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예배 드립시다. 바로 이 운동은 누구부터 시작됐습니까?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골짜기가 메워지고 작은 산과 큰 산이 무너지고 평지가 될 것이다. 너희는 그의 길을 예비하라.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길을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떠는 백성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하나님의 나라 곧 예수님이 친이 다스리는 나라가 이 땅에 옴을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서 그 나라를 예배하는 족속이 이방인 중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겠습니다. 주의 길을 평탄케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떨며 순종하겠습니다.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너의 자손과 너의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말씀하신 그 은혜가 임할지어다. 주께서 온전히 임하게 약속하신 그 은혜가 임할 줄 믿사옵고 감사드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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