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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87년
모든 이의 시선이 여미아에게 집중되었다. 휘황한 불빛을 받아 여미아의 얼굴이 지극히 매혹적이고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풍기며 빛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근 이천오백 년 전입니다. 중국은 하夏나라 시대이고, 우리나라는 옛 조선의 12세 임금이신 아한임금(재위 서기전 1834-1783)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의 삼황오제처럼, 그리고 우리나라의 세 성인聖人(환인, 환웅, 환검 즉 단군왕검)처럼, 서역 유태인들에게도(측천무후 당시 당나라에도 유태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으며 유태인 무역상들도 있었다) 삼성조三聖祖(아브라함, 이삭, 야곱)와 열두 분의 성스런 시조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요세보堯世寶라는 인물입니다. 그의 형제가 그 자신을 포함해 열둘이었는데, 요세보는 정실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부왕父王이 몹시도 사랑했던 후궁의 자식이었습니다.
요세보는 얼굴이 반악潘岳(247-300)처럼 아름답고 매우 정직하며 총명했을 뿐만 아니라 부친이 노경老境에 얻은 아들이었으므로, 그의 부친 야고보野高寶는 이 아들이 정실의 장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끔찍이 사랑해 태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태자의 격에 맞는 아름다운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정실의 아들들과 다른 첩들의 아들들인 이복형들이 그를 미워하고 시기한 건 당연했죠. 어느 날 요세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해와 달은 그의 부모를, 그리고 열한 별은 그의 열한 형제를 상징하는 것이었죠.
그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네가 과연 우리의 왕이 될 수 있겠느냐?”고 힐책하며, 공모해서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마침 아주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요세보의 형들은 종들을 이끌고 멀리 나가 그들의 재산인 가축 떼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요세보는 장막 궁 안에 있었는데, 하루는 그의 부왕 야고보가 요세보를 형들에게 보내며 형들의 안부를 알아오라 했습니다. 형들이 멀리에 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세보가 그곳에 오자, 요세보의 이복형들은 요세보의 시종들을 잡아 죄다 죽이고, 요세보까지 죽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형제의 정의상情義上 차마 그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요세보의 아름다운 채색 태자복을 벗긴 후, 그를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요세보의 채색 의복에 짐승의 피를 묻혀, 그가 맹수 떼를 만나 맹수에게 잡혀 먹힌 것처럼 꾸민 다음, 심복 부하들을 통해, 이 옷을 부왕 야고보에게로 보냈습니다.
사자들이 야고보 왕에게 와서 아룁니다.
“폐하, 이것은 소인들이 멀리 이방인들이 사는 산중에서 주운 옷이온데, 혹시 태자 전하의 옷이 아닌가 의심해서 가져왔사옵니다.”
야고보는 가만히 살펴보니, 과연 집안에서 특별하게 제작한 태자 요세보의 의복임이 분명했습니다.
“내 아들이 맹수 떼를 만나 죽었음에 틀림없구나!”
야고보는 굵은 베옷을 입고 오래도록 슬피 울며 통곡했습니다. 요세보의 죽음을 알리는 급보를 전해 듣고, 요세보의 형들도 모두 집에 돌아옵니다. 그들이 와서 부친을 위로했으나 야고보는 슬피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도 저승으로 가서 내 아들을 만나리라.”
한편, 요세보를 사간 노예 상인은 요세보를 먼 나라 애급埃及(이집트)에 팔았습니다. 요세보는 매우 건장하며 총명하고 아름답게 생겼으므로 그 나라 임금의 시위대장이 아주 비싼 값으로 그를 사갔습니다.
시위대장의 집에 들어간 요세보는 몹시 곧고 정직했을 뿐만 아니라 신 같은 지혜와 총명이 있어 맡은 일을 지혜롭게 잘 처리했으므로,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의 주인 시위대장은 그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 주고, 그를 집안 모든 종들의 우두머리로 세운 후, 집안의 재산과 살림을 도맡아 관리하게 했습니다.
요세보는 애급에 와서 애급의 언어를 부지런히 익히며, 많은 책들을 섭렵해 애급의 학문을 홀로 터득해 가는 한편, 날마다 하늘의 상제께 모국어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요세보의 얼굴이 빼어나게 잘 생겼고, 또 총명하며 지혜로웠기 때문에 그 주인의 젊은 아내가 그를 심히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요세보에게 완전히, 홀딱 반해서, 깊은 상사병에 걸린 거죠.
어느 날부터인가 여주인은 요세보에게 추파를 던지며 요세보를 유혹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여미아의 얼굴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해지자, 갑자기 사비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 요세보는 여기 있는 고조영 장군만큼이나 잘 생겼었습니까?”
여미아가 얼굴에 홍조를 띠고 간신히 대답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태평공주가 고조영의 얼굴을 은근히 바라보다가 여미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요세보는 그 유혹에 넘어갔나요?”
요세보는 매우 정직하고 순결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여주인의 추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모른 척했습니다.
여주인은 마침내 대담하게도, 그에게 동침하기를 요청했습니다.
“내 요구만 들어준다면, 내가 그대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겠어. 그리고 그대에게 아름다운 아내를 얻어주고, 남편을 통해 폐하께 진언해, 그대가 좋은 관직을 얻도록 하겠어.”
여주인은 여러 가지 감언이설로 요세보를 꾀었습니다. 그러자 요세보는 대답했습니다.
“주인나리께서는 저를 집안 종들의 머리로 삼은 후, 종들이든 재물이든 내게 죄다 위임하고 아무 것도 간섭하거나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금하신 게 단 하나 있습니다. 마마에게만큼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저질러 주인나리와 하늘의 상제께 득죄得罪하리이까?”
이후로도 여주인이 날마다 요세보에게 동침을 간청했지만 요세보는 듣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여주인과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한 날, 요세보가 출근해 보니, 자신의 집무실 안팎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주인이 요세보를 반드시 굴복시키리라 굳게 작심하고 이른 아침부터 집안의 모든 종들을 그곳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그 때 여주인이, 마치 백년 묵은 여우가 둔갑한 듯, 극히 매혹적인 옷을 입고 얼굴도 아주 색스럽게 꾸민 채, 미묘한 웃음을 흘리며 요세보의 집무실에 나타났습니다.
“나하고 동침해. 응? 어서. 여기엔 우리 둘 밖에 아무도 없어.”
여주인은 요세보의 옷을 잡고 사정하며 애원했습니다.
“마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 옷 좀 놓아주세요.”
“아니야. 당신이 나와 동침하지 않으면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야!”
요세보가 그녀의 눈빛을 보니, 마치 백여우의 그것처럼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요세보는 섬뜩했습니다. 하지만 여주인을 힘으로 굴복시킨다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다!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이로다!’
순간적으로 판단한 요세보는, 여주인이 붙잡고 있는 겉옷을 벗어버리고 몸을 빼 달아났습니다.
여미아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조영은 무 태후와 태평공주가 자신을 유혹하던 일들이 떠올라 속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미아는 볼이 상기된 채, 매우 담담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을 이어갔다.
극도로 허무하고 무안하기 짝이 없었던 여주인은, 한편으로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여봐라! 집안에 아무도 없느냐?!”
그녀는 일부러 소리소리 악을 쓰며 종들을 찾았습니다. 종들이 모여들자 그녀가 말합니다.
“그 요세보란 놈이 나를 겁간하고자 해서 내가 그의 옷을 붙들고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여기에 옷을 벗어던지고 도망쳐 나갔다.”
그녀의 말은, 당시의 겉옷이 달음박질하기에 매우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으므로, 사람들이 몰려올까봐 당황한 요세보가, 몸을 빼 달아나고자 여주인에게 붙잡힌 겉옷을 벗어버리고 갔다는 뜻입니다.
여주인은 분하고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종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속히 그놈을 잡아오라!”
그러나 종들은 평소 요세보의 인품을 잘 알고 있었고, 여주인의 행실을 보아왔는지라, 그녀의 말에 겉으로는 응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녀를 욕하며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요세보의 겉옷을 집안에 두고, 남편이 황궁에서 퇴근해 집에 돌아오자 남편에게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대로한 시위대장은 요세보를 황궁 시위대의 뜰 안에 있는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 감옥은 주로 왕에게 범죄하거나 중죄를 지은 국가의 죄수들이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요세보는 감옥에서도 예의 그 정직함과 신 같은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얼굴과 인품에서 풍기는 인상은, 누가 보더라도 일견지하, 일국의 태자처럼 당당해 보였고, 결코 죄수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수형생활도 아주 모범적이었습니다. 감옥에서는 모범 죄수를 뽑아, 옥중 사무를 처리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는데요, 마침 요세보가 사무관으로 뽑히게 됩니다.
사실, 감옥이 시위대장의 관사 경내에 있었으므로, 그 감옥의 전옥典獄(감옥소장)은, 일찍부터 시대위장의 집에 노예로 팔려와 그 집의 도집사都執事(종들의 우두머리)가 된 훤칠하고 준수하며 빼어나게 총명한 청년 요세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요세보와는 익히 아는 사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시위대장이 그 감옥을 총괄했으므로, 감옥의 전옥은 시위대장의 부하나 마찬가지였으며, 따라서 시위대장 집의 총무인 요세보는 공적, 사적으로 그 전옥을 만날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요세보의 인품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요세보가 투옥당한 경위를 전해 들어 이미 그 사태의 진상을 짐작하고 있던 전옥典獄(감옥소장)은, 옥중의 제반 사무를 요세보에게 맡긴 후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요세보가 신 같은 지혜로 매우 정직하고 능수능란하게 일을 잘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요세보가 감옥에 갇힌 것이 스물세 살 아니면 스물일곱 살<칠십인경> 때쯤이었는데요, 그로부터 오년[<칠십인경>에서는 일년]이 지난 후 그 감옥에 궁실 주류酒類 관리 관원장과 황실 주방의 관원장이 임금에게 죄를 짓고 들어오게 됩니다.
아마도 임금이 어느 날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셨는데, 갑자기 복통이 나서 거의 죽었다가 살아날 정도로 몹시 고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로한 임금은 술과 음식을 맡은 두 관원장을 감옥에 넣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고위 관리였으므로 시위대장과 감옥의 전옥은 요세보에게, 그들을 특별히 잘 섬기라고 명했습니다. 수일이 지나지 않아서 황실의 두 관리가 의미심장한 꿈을 꾸게 됩니다.
아침에 요세보가 그들의 감방에 들어가 보니, 그들의 얼굴에 근심 빛이 가득했습니다.
“오늘은 나리들께서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깃들어 있습니까?”
“아니,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가? 자네는 신처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구먼.”
그러면서 한 관리가 말합니다.
“우리가 간밤에 둘 다 요상한 꿈을 꾸었는데, 해석할 수가 없네.”
“하늘의 상제만이 그 꿈을 해석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게 말씀해 보십시오.”
황궁의 술을 맡은 관원장이 먼저 자기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꿈에 가지가 셋 달린 포도나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는데, 자기 손에 술잔이 들려 있기에, 포도송이를 따서 그 즙을 술잔에 짠 후 임금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난 후 요세보가 대답합니다.
“가지가 셋 달렸다는 것은 사흘을 뜻하고, 임금께 잔을 올렸다는 것은 복직을 의미합니다. 나리는 사면을 받고 사흘 후에 복직할 것입니다.”
요세보는 이에 덧붙여 그에게 요청했습니다.
“제 말대로 되거든 제 사정을 임금께 아뢰어서 저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멀리서 노예로 팔려와, 이곳에서 아무런 죄도 없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세보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그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암은, 그렇고말고. 내가 복직하기만 한다면, 그야 여부가 있겠는가?”
동료 관원의 꿈이 길하게 해몽되자 황실 주방의 관원장도 꿈을 들려줍니다.
“꿈에 보니, 광주리 세 개가 내 머리 위에 있고, 맨 윗 광주리에는 황상께 올릴 각종 음식물이 들어있었는데, 새들이 그 음식을 먹고 있었네.”
“그 해석은 이렇습니다. 광주리 세 개는 사흘을 의미하고, 머리 위 광주리의 음식을 새들이 먹었다는 것은 사흘 후에 나리가 참수를 당하고 시신이 나무에 걸리게 되며, 새들이 그 시신을 뜯어먹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흘이 지나니, 그날이 마침 임금의 탄신일이었습니다. 임금은 문무백관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요세보의 해몽대로 그 날 한 사람은 복직시키고 다른 사람은 처형했습니다.
아마도 철저한 조사에 의해, 임금의 복통의 원인은, 술이 아닌 주방의 음식에 있었던 것으로 판명이 난 것 같습니다. 주방에서 음식물에 독약을 탔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던 거죠.
그러나 전직을 회복한, 황실의 주류 관리 관원장은 요세보의 부탁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세보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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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12. 20.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