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과산] 9월호에 실린 [Mountain Story]
김규순의 풍수이야기(8) 글 ; 서울풍수아카데미원장 김규순
왕기가 서린 응봉과 성균관
그 풍수적 상관관계는?
요즘 필자는 대학교 풍수를 분석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개인주택의 경우는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에 매몰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대학교 풍수는 수만 명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 교육시설이므로 그 의미가 더 크고 깊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당국의 교육시설에 대한 풍수의뢰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무료로 봉사하겠다. 그럼 왕기기 깃든 응봉과 성균관의 풍수적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
사진 좌측에 우뚝솟은 백악(북악)이 있고 그 아래에는 청와대가 보인다. 백악산이 다정하게 성균관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우측에 아래쪽으로 길게 있는 숲이 창덕궁, 창경궁, 종묘가 있는 지역이다. 중턱에 성균관대학교의 캠퍼스가 보이고(창덕궁 위의 하얀 건물), 응봉도 보인다. 남산에서 찍은 사진.
한양도성의 반을 차지한 응봉의 에너지, 성균관에 모이다
삼각산의 정기를 오롯이 이어받은 백악산(북악산)은 날아가듯이 크게 좌측능선을 그리다가 응봉(鷹峰)으로 솟구친다. 응봉은 매봉이라고도 하는데, 매는 송골매를 말한다. 우리나라에 응봉(매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수백 개가 넘을 정도로 친숙한 새이다. 풍수적으로 매와 관련된 지명이 나오면 기운이 뭉쳐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에서도 와룡동과 금호동 그리고 갈현동에 각각 응봉이 있어서 3개나 된다.
그렇지만 왕기(王氣)가 서린 응봉은 백악산의 좌측 능선의 끝마디에 맺힌 응봉이 유일하다. 동궐의 주산이 응봉이므로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응봉은 예닐곱 개의 능선을 좌우로 뻗치면서 그 영역을 상당히 넓게 구축하고 있으므로 커다란 역량을 가진 봉우리이다. 송골매(鷹)는 날개가 양쪽에 있듯이 응봉도 양 날개를 가지고 있다. 응봉의 우측 날개에는 가회동, 안국동, 와룡동, 명륜동, 수송동, 경운동, 견지동, 인사동, 관철동, 계동, 원남동, 연건동 등 유서 깊은 동네들을 아우르고 있다. 응봉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을 보면 서쪽으로는 세종로, 동쪽으로는 대학로, 남쪽으로는 청계천을 경계로 하고 있어서 한양도성 전체면적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응봉이 펼쳐 놓은 능선아래에는 지금도 많은 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헌법재판소, 감사원, 통일원남북회담사무소, 정독도서관, 국군서울지구병원(구), 교육행정연수원, 서울대병원, 성균관 외에 운현궁, 보신각, 탑골공원, 조계사, 수운회관 그리고 미국대사관을 위시한 많은 외국대사관이 응봉의 자락에 의지하고 있다.
(상)1970년대의 성균관대학교 전경. 호암관(꼭대기에 둥근 돔이 있는 건물) 뒤로 보이는 산이 응봉이다.
(하)조선시대의 한양 고지도. 중앙에 우뚝 솟은 산이 백악(북악)이고 그 아래 경복궁이 보인다.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응봉과 낙산이 그려져 있다. 응봉 아래에 건물이 그려져 있고 성균, 창경, 창덕이라고 적힌 글이 보인다. 응봉에 의지한 건물을 뜻한다.
응봉의 에너지가 모인 성균관
응봉의 중출맥에는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종묘가 지어져 있고, 서울대학교병원이 들어서 있다. 창경궁으로 이어진 중출맥과 낙산 능선 사이에 짧은 능선이 있다. 이곳이 바로 조선의 엘리트를 양성한 성균관이 있다.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가교육기관으로 최고의 엘리트를 배출한 교육기관이다. 성균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인데, 앞뒤로 나란히 능선을 타고 지어져 있다.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위시하여 안자, 맹자 등 대유학자 20분과 우리나라 18성현의 위패 모셔 놓은 곳이고, 명륜당은 강학 공간(講學空間)이다. 성균관이 들어선 능선은 짧지만 강한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능선은 응봉의 두상 즉 송골매의 머리이다. 머리는 모든 동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정보수집과 상황판단 그리고 실천력과 인내심의 발원지이다. 강력한 에너지의 근원이다. 명륜당은 강력한 에너지가 순화되어 흐르는 대지위에 조용히 앉아 있다. 이곳은 조선 오백년의 유교 정신을 실천한 엘리트를 양성한 최고의 배움터로써, 유생들이 자신의 포부를 펼치기 위해 ‘절차탁마’하는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앞에 봉는 건물이 교수회관, 오렌지색 중앙도서관이 있고 그 아래에 대학본부건물인 600주년기념관이 서 있다. 이런 순서는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학교 건물의 나열순서와 거의 동일하다. 매우 안정된 모습을 갖추게 되니 향후 발전이 기대된다. 대학평가를 보면 성균관대학교가 국내대학10위권 언저리에 있다가 2001년부터 6위에 고정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대학평가와 세계대학평가에서도 해마다 순위가 수십단계씩 상승하고 있음은 풍수적 분석이 정확함을 증명해주고 있다.
민족정통성이 깃든 성균관대학교
성균관이 자리하고 있는 능선 북쪽에는 성균관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풍수는 성균관의 풍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균관대학교는 조선시대 최고의 국가교육기관인 성균관 건물의 위쪽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는 동일한 능선 위에 있다. 이처럼 좋은 자리에 캠퍼스를 마련하고도 일찍이 일류대학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제에 의해 단절된 성균관의 전통을 이어받은 성균관대학교가 유교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근대대학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유림출신의 민족독립운동가인 심산 선생의 지도력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외세에 의한 학교가 아니며, 친일파 세력에 의한 학교도 아니다. 성균관대학교는 일제의 앞잡이였던 황도유림(皇道儒林)에 의한 테러와 혼란이 있었지만,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선생과 유림에 의해 설립된 성균관대학교는 유교를 건학정신으로 한 600년간 국내 유일의 민족정통대학으로 창립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유교를 가르치는 대학이 설치되어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세계유일의 대학교이다.
그러나 1953년에 20평정도의 학교부지가 있었을 뿐이었으니 문묘의 부지를 문화재청으로부터 임대하여 사용하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최초의 대학본부는 6.25로 소실된 비천당(丕闡堂) 자리에 임시로 지어졌다. 여기도 응봉의 능선을 비켜선 곳으로 좋은 자리가 아니다.
1957년 초대총장이었던 심산 선생이 자유당 정권에 의해 일체의 공직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초대총장부터 7대 총장까지는 임기를 마친 분도 없었다. 그 후 1970년대의 총장자리는 박동묘(9대/유정회국회의원), 황산덕(10대/법무부장관)현승종(11대/국무총리), 장을병(15대/국회의원) 총장을 거치면서 정치입문의 교두보로 인식되었다. 항일운동의 경력이 있던 조좌호 13대총장(1983-1987) 시절에 비로소 안정되기 시작했고, 정범진 총장(16대/1995- 1999) 때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동상-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려고 독립자금을 조달한 제1차 2차 유림단사건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사건은 심산이 주동한 것이다. 정치적인 활동보다는 교육에 의해 조선 오백년 동안 왜곡된 유교를 개혁하고 가르침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노력한 분이 심산이다.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유교를 표방한 심산 선생은 시중지도(時中之道)에 근거한 시의정신(時義精神)을 역설하였다.
질곡의 시간을 겪은 데엔 풍수적 이유가?
대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학본부(행정), 중앙도서관(학생), 교수회관(교수)이다.
대학본부는 1962년부터 1998년까지 물이 지나가는 계곡 언저리에 있었다. 애초부터 대학본부의 건물은 잘못된 장소에 놓여 있었다. 계곡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자리이므로 에너지를 축적하며 성장 발전하는 자리가 아니다.
성균관대학교가 창립되면서부터 부대껴 온 오랜 기간 질곡의 세월이 느껴진다. 개교이후 1998년까지 힘겨운 시간을 맞이하면서 2류 대학으로 전락하는 등 시련의 연속이었던 이유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초기에는 재정이 취약하여 향교재산의 갹출과 몇 몇 독지가가 희사한 자산으로 연명하였다. 삼성을 재단으로 영입하였으나 내분으로 결별(1965-1977)하고, 봉명그룹을 재단에 영입하였으나 사학재단의 부실경영으로 퇴진(1979-1991)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총동창회까지도 분열이 되어 활동이 정지된 비운의 시기(1987-1993)가 있었다.
1996년 삼성그룹을 재단으로 재 영입함에 따라 학교의 모습이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학보다는 그 출발이 늦었고 응집력도 약했다.
퇴계인문관 뒤로 응봉이 보인다. 성균관을 지켜주는 응봉. 한양 도성 안에서 역량이 가장 큰 봉우리이다. 퇴계인문관이 능선 사이의 계곡을 막고 서 있어서 응봉의 정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유학의 발전소인 유학대학이 새 시대를 이끌어갈 에너지를 얻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캠퍼스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자리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균관대학교가 1999년 11월에 새로운 대학본부건물인 600주년기념관을 준공하였다. 새 시대에 새 부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교수회관(1964년)-중앙도서관(1987년)-대학본부-명륜당-대성전이 응봉에서 이어진 명륜동 능선을 따라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그 모양새가 갖추어졌다. 명륜동 캠퍼스에서 옛 건물은 (구)대학본부와 교수회관 만이 남아 있을 정도로 환골탈퇴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풍수적인 불리함을 정리한 것은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본부가 제자리를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는 재정이 약한 탓도 있겠지만, 일제의 지배기간동안 민족의 전통 콘텐츠를 잃어버린 탓이다. 풍수는 미신이라고 교육을 하면서 우리의 명산에 쇠못을 박던 일제의 치밀한 ‘조선의 정신 말살 전략’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하겠다. 조선의 멸망과 일제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세월을 거치면서 걸레처럼 헤어진 우리의 전통 콘텐츠를 재빨리 복구하지 못한 탓이다.
좌측에 오렌지칼라가 있는 건물이 중앙도서관, 그 옆 기둥이 있는 건물이 현재 대학본부인 600주년 기념관, 중앙에 2층으로 보이는 건물이 옛날 대학본부(앞에서 보면 4층-현재 학생회관)이다.
옛날 대학본부(현재 학생회관). 앞으로 주택가는 계곡이고 좌측의 숲은 성균관 구역이며 우측의 숲은 창경궁의 좌청룡 능선이다. 계곡 중간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선택과 집중'의 정답이 풍수에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풍수의 달인이었다고 생각한다. 풍수의 원리를 따져보면 유학에 있어서 <군자>의 개념에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군자와 같은 땅이면 최고의 명당이다. 군자는 편벽되지 않고, 후덕하고 곧고 굳으며 중용을 행하는 사람이다. 시대의 불리함과 민족 내분의 심각한 분열이 너무도 심하여 지리(地利)의 이로움을 미처 챙기지 못한 탓이리라 생각된다.
풍수는 간단하고 쉬운데서 출발해야 한다. 향수를 포장한 종이에서 향기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더럽고 고약한 사람을 만나면 불편해지는 것과 같다. 좋은 곳에 들어서 있는 건물에 들어가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집중이 잘된다. 건물과 궁합이 맞지 않는 자리에 들어선 건물에 들어가면 위축되고 침체된 느낌을 갖게 되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산란해진다. 우리 삶의 화두는 선택과 집중이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옳고 정확한 선택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노력하는 것도 빠지면 안 된다. 주인공의 거주지와 학습공간이 선택과 집중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풍수학의 정신이다.
성균관대학교 캠퍼스 뒤로 응봉이 보인다. 산꼭대기에 군부대 시설이 있어서 접근이 쉽지 않다. 600주년기념관 옥상에서 찍은 사진.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국제관, 좌측에 보이는 기와집이 비천당(丕闡堂)으로 조선시대 과거를 보던 장소이다. 앞에 보이는 숲은 성균관으로 대성전과 명륜당이 나무로 덮혀있다. 국제관이 명륜당 바로 뒤에 있어서 ‘명륜관’이라고 명명한 유학대학이 위치하면 상징적으로 가장 뛰어날 것이나 아쉽게도 국제관이라는 별 의미가 없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응봉은 백악산에서부터 3번째 봉우리이다. 그래서 성균관대학교는 '3'이라는 숫자와 세번째와 인연이 많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학교이름도 세글자이다. 백악산에서 동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면 첫 번째 봉우리가 있고 숙정문을 지나면 두 번째 봉우리가 수리부엉이를 뜻하는 휴암(鵂岩)이다. 마지막으로 일어난 봉우리가 응봉이다. 세 번째의 응봉이 역량이 크고 강하므로, 세째가 성균관대학교의 발전에 인연이 더욱 크고 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낙산의 흐름에서 파악해 보면, 동소문고개는 장풍이 되지 않는 곳이므로 성균관대학교에 힘든 시기가 닥치겠지만, 그 시기를 극복하면 낙산의 중후한 기운처럼 인재가 구름같이 모여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qsoon]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성균관대학교유학대학원 석사학위취득. 계명대학교 졸업. 대기업 점포개발 고문역임. 문화센터, 대기업, 평생교육원 강의. 청운대학교·동방대학원대학교 출강. 기업풍수컨설팅 다수(빌딩, 점포선정, 사무실, 건물부지 외 풍수마케팅분야) www.location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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