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03 손정은]

 

한국판 <인사이더>를 보면서…

- 로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언론정보학부 2학년

20032761 손정은

  나는 지금 논픽션 한국판 <인사이더>를 보고 있다. 로웰버그만 역을 맡은  <PD수첩>의 최지용 책임프로듀서는 “‘사소한 악’보다는 이 시대 ‘거악’과 싸우고 싶었고 그렇게 싸우고자 했다”는 멋진 대사를 남기면서 수많은 네티즌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언론의 승리를 이끌어 내며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낸 원조 인사이더와는 달리 한국판 인사이더는 MBC가 최PD를 책임프로듀서 자리에서 끌어내는 것으로 끝나 ‘찝찝한’ 결말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최PD가 다룬 내용이 이익에 눈먼 담배회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친일파와 싸워서 일 것이다.

  최PD는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이 이번 16대 국회 임기가 끝이 보이는데도 국회를 표류하고 있는 것과 관련,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을 반려한 현역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방송했다. 방송 후 해당 국회의원들은 앞으로의 선거에 치명적 영향을 입었다며 친일파 청산을 위해 싸우는 독립투사의 자손들을 향해 ‘괴한’이라고 비난했다. 친일파문제는 역사의 금기사항으로 여기고 모두들 쉬쉬해온 덕에 결국 선과 악이 뒤바뀐 황당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오만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방송이 말한 것처럼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후손들은 잘못된 역사가 잘못된 건지 아닌지를 따질 분별력조차 갖지 못 할 것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나마 이런 내용이 방송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인사이더는 방송사의 권한으로 가장 중요한 인터뷰 부분을 삭제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인사이더를 보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말로는 쉽게 하는 언론의 자유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했다. 언론인들이 진실을 위해 투쟁하는데 너무 많은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리보다 회사의 손해를 먼저 걱정하는 CBS가 그렇고, 아직까지도 힘 있는 사회지도층의 눈치를 보는 우리나라의 방송사들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줏대있고 소신있는 언론인의 모습을 보여준 로웰과 최PD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로웰이 끝까지 투쟁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인 취재원보호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학보사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학교의 주요 취재처인 학생처 직원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을 때 한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소위말해 기자가 뜨기 위해선 중요한 단서를 잡았을 때 취재원보호보다 기사를 내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off the record’는 믿을 수가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직 기자의 ‘기’자도 모르는 나지만 왠지 그 말에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이 그렇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회사와의 약속을 어긴 행위로 범죄자가 될지도 모르고, 가정까지 흔들리는 와이건에게 끝까지 믿음을 준 로웰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나는 로웰의 상황에서 취재원 보호보다 언론인으로 살면서 한번 터뜨리기 힘든 ‘대박’꺼리를 놓치지 싫어 어떻게든 방송하는데 매달렸을 것이다. 자신을 걸면서 진실을 말한 와이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출세를 위해서 말이다.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지금 인터넷상에서는 ‘PD수첩과 최진용 프로듀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되고 방송위원회와 MBC에게 항의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를 복귀시키자는 운동도 일고 있다. 비록 결말은 찝찝했지만 관객들은 무엇이 옳은지를 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말이 퍽 가슴에 와 닿았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 피해를 입었다며 자신을 비난하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선거보다 우선하는 것이 공익이며 방송은 공인에 대해 의혹을 제기할 의무가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최PD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로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