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9월12일 마을 잔치에관한 보고서.hwp
2009년도 9월12일 광주문화유랑단 마을 잔치에 관한 보고서
드디어 풍악이 울려 퍼질 마을 잔치 날 이른 점심 때 부터 마을 경로당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자리를 잡으신다. 아침의 흐린 구름도 어느새 온데 간데 없고 알곡이 여물만한 쨍쨍한 볕 아래 화정남초등학교 옆 놀이터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육문화공동체 결 사무실에서 나온 선생님들이 놀이터 안 모래밭에 대형천막을 설치하는 동안 수양재(라인동산 101동205호)는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가득했다. 율이엄마, 지효엄마, 현아엄마, 연서엄마가 합심하여 애호박전과 부추전을 준비하기 위해 앞치마를 싸들었다. 지효엄마는 배추김치와 솔김치를 담그며 간을 보고 현아엄마와 율이엄마는 후라이팬 가득 반죽을 올린다. 간을 맞추느라 서로 맛을 보아가며 홍고추, 청고추를 올린 부침개가 한 장 두 장 쌓이기 시작했다. 연서엄마는 애호박을 썰어 밀가루에 묻힌 후 두 손 바쁘게 전을 지진다.
이번 마을 잔치는 2009년 상반기 내 집 앞 마을 가꾸기 사업의 최종판으로 지난 6개월간의 활동상황을 정리, 보고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어찌 보면 겁 없이 뛰어든 대단위 사업이었고(총사업비2700만원) 광주 문화 유랑단의 역량을 총결집하고자 최선을 다한 시간들이었다.
2009년2월에 사업계획서를 내어 당선이 되고, 3월은 마을주민 설문조사와 공부모임을 가지며 어떻게 사업을 꾸릴지 머리를 맞대는 시간이었다. 4월에 본격적으로 어린이 생태 탐험단을 꾸려 발대식을 하고, 중앙공원 아래 텃밭을 조성하여 유랑단 가족이 공동경작과 공동생산의 야망을 실현코자 했다.
5월에는 장흥군 지렁이학습장으로 전체 답사를 다녀오고 집마다 지렁이 토분을 키우기 시작했다. 화정4동을 생태 마을로 만들기 위해 내 집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지렁이 기르기와 텃밭의 싹을 키우는 것이라 여겨졌다.
드디어 6월부터 찬슬엄마(안정선)의 스타트로 공작교실이 문을 열었다. 새로 마련한 유랑단 사랑방은 넉넉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이제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모일만한 장소였다. 뚝딱이 공작교실은 입소문이 나서 동네 아이들도 이따금씩 참여를 하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재미있고 신기한 나무 곤충들이 생겨났다. 나 또한 썰어진 나무를 만지면서 새로운 맛에 빠져들었고 어린이들은 물론 자기 작품을 소중히 간직하며 전시될 날을 기다렸다.
또한 6월엔 격주로 석인엄마의 자연요리교실이 아이들을 기다렸고, 1강은 주변의 흔히 널려있는 식품 속 첨가물에 관해 공부를 했다. 어린이들은 직접 여러 가지 간식류(소시지, 햄, 스낵, 사탕, 우유등)를 맛보면서 첨가물의 종류와 위해성에 대해 토의하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첨가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보다 적극적으로 그 심각한 폐해를 인식하고 있었다.
2강은 채소 맛보기, 3강은 수박화채 만들기, 4강은 부침개 만들기로 진행되었고 매주 월요일 마다 유랑단 사랑방(현재 금호2차 아파트 관리사무소 지하)은 시끌벅적한 체험학습장이 되곤 했다.
이어서 7월 여름방학 기간 동안 영준아빠(임병기)의 환경교실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매일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어 사라지는지 직접 현장 체험을 했다. 쓰레기 매립장, 상무지구의 하수종말처리장, 상무지구 소각장을 방문하여 도시의 오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생생하게 살펴보았다.
8월 한여름엔 율이엄마의 바느질 교실이 생겨났고, 나 또한 처음으로 천가방을 손바느질했다. 한 땀 한 땀 더디게만 보이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어린이들은 리스 장식품을 하나씩 만들었다.
정말 올 해 만큼 역동적이고 바쁜 시간들이 또 있었을까?
원종엄마(조혜진)의 마을 지도 교실에선 동네를 직접 돌며 가게와 마을길을 그리고, 내가 십 년 넘게 살고 있는 장소를 구석구석 뒤져가며 새롭게 재인식하는 계기기 되었다. 정말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이렇듯 우리는 6개월 동안 동거동락하는 한솥밥으로 지냈다. 엄마, 아빠가 곧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가 때론 새로운 사고를 배우는 학생이 되었다.
교육의 틀과 경계가 과감히 느슨해지고 언제든지 판을 벌릴 생각과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함께 만들어가고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미래형 시민이고 탈근대적 학습체계가 아니겠는가!!
오늘 화정4동 마을 잔치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선보일 것이다. 다정성껏 마련한 생김치와 부침개를 석작에 나누어 담고 우리는 급히 점심을 먹었다. 엄마들끼리 생김치를 찢어서 보리밥에 얹어 먹으니 천하무적이 된 것 같다.
꿈틀이놀이터- 유랑단 가족들의 고심 끝에 나온 귀한 이름이다. 신호윤 작가 선생님이 달아놓은 명패가 참으로 발랄하고 예쁘다. 지렁이 사육 상자가 놓인 곳엔 동네 꼬마들이 미끄럼을 타고 체험장에선 흙피리 만들기와 목공교실, 지렁이토분이 전시되어 야단법식이다.
특히 유랑단 어린이(장다빈, 장서원, 장세영,오시은)들이 집에서 들고 나온 물건을 좌판에 벌여놓고 손님을 부른다. 오백원, 삼백원을 외치며 머리띠와 장난감, 팔찌, 문구류를 파는데 의외로 수입이 짭짤하다. 나중엔 지폐를 흔들어 보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결 사무실의 솔레솔레(박시훈) 선생님의 소개로 귀빈들의 인사말이 이어진. 서구청장, 동장, 시의원, 구의원 등등~
이제 화정4동 풍물놀이패가 꿈틀이 놀이터 축하 길놀이를 펼친다. 하얀 고깔이 파란 하늘 아래 둥실둥실 떠있는 구름 같다. 내가 이 곳에 살면서 처음으로 마을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세대를 넘어서 서로 어울리고 놀 수 있는 판이 생겼을 때 어린이도 노인도 함께 만날 수가 있다.
모두 낯선 이방인이 아닌 한 시대를 겪어가는 따뜻한 이웃으로 보듬기 위해 이런 장바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어린이 생태 탐험단 중에 신찬슬과 김율 어린이가 단상에 나가 그동안 노는 듯 즐겼던 활동 소감문을 발표하고 있다. 의젓하게 자신이 키우는 지렁이에 관해 소개하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기의 느낌을 당당히 표현하는 찬슬이와 율이가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마침내 마을 가꾸기 사업 6개월간의 대장정 끝에 탄생한 꿈틀이 놀이터 준공식 테이프커팅이 시작되었다.
이 공간을 꾸미기 위해 늦은 밤마다 장흥에서 달려온 율이 아빠, 매일 공사 현장을 살펴보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영준아빠의 열정과 의지, 퇴근 후에도 피곤한 몸을 내색하지 않고 온갖 살림을 도맡아 하신 건우엄마, 지렁이 퇴비사업과 텃밭 가꾸기를 기꺼이 도맡아 탐구하신 찬슬아빠, 언제나 호탕한 포청천 같은 웃음을 날리며 자리를 빛내 준 지효아빠, 코스모스 같은 미소와 따뜻한 정이 어우러진 원종아빠, 바쁜 직장생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낸 연서아빠의 지지와 격려,
그 분들이야 말로 이 커팅식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겠는가!!
이제 유랑단의 에너자이저 엄마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마치 전투를 앞둔 전사처럼 신속하게 준비한 음식들을 접시에 펼쳐놓기 시작하는데 손발이 척척 맞는다.
잔치집 음식에 필수격인 여러 가지 떡과 누른 머리고기, 호박과 솔부침개, 따끈따끈한 두부와 전라도식 매콤한 김치, 포도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법,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한 잔 술에 가락이라도 뽑을 듯 하다. 늦게 당도한 떡볶이 솥단지는 뚜껑을 열자마자 불티나게 팔려가고 지효엄마, 연조엄마, 현아엄마, 시은엄마, 율이엄마, 찬슬엄마, 민우엄마, 연서엄마는 한 마음이 되어 음식을 서빙한다. 사방에서 아우성 치듯 쏟아지는 주문을 소화시키는 엄마들의 모습이 헬스키친을 연상케한다.( 미국의 유명한 레스토랑) 내겐 한 편의 영화 같고 다양한 변주속 어우러지는 교향악 같다.
유모차를 밀고 지렁이 토분에 관해 설명을 듣던 젊은 엄마들, 놀이터의 주인격인 동네 어린이들,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 경로당에서 오신 분들 모두에게 오늘의 사건이 뿌듯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생태마을의 중심은 결국 매일 부딪히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이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의 마을이란 어른과 아이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는 관계 속에 더불어 사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젠 마을의 환경과 자연을 돌아보고 가꾸며 마을의 사람들이 존중받고 서로 소통하는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어쩌면 광주문화유랑단의 소박하고 작은 실천, 재생산되는 만남 속의 새로운 공부, 서로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사랑의 눈길로 바라봐주는 것, 뭔가 내 삶 가운데 가치 있는 일을 찾고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락함을 잠시라도 내려놓는 자세, 나만의 세상에서 더불어 함께 가는 세상을 위해 구습을 버려가는 변화된 모습이 생태마을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유랑단에서 펼치는 갖가지 창의적인 생각과 놀이판이 화정4동 마을에 꽃이 되리라는 기대가 나를 즐겁게 만든다. 이 즐겁게 저절로 피어나는 꽃이 또 다른 봄을 부를 것이다.
2009년9월16일 새벽에 꽃 피는 마을을 상상하며 고전부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