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좌차(坐次)
약산(藥山)이 어느 날 앉았는데 석두(石頭)가 보고 물었다.
“그대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선사가 대답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석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한가히 앉은 것이로구나.”
선사가 말하였다
“만일 한가히 앉았다면 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석두가 물었다.
“그대는 하지 않는다 말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가?”
선사가 대답하였다.
“천성인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자 석두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칭찬하였다.
원래부터 같이 머물지만 이름도 모르고
되는 대로 어울려서 이렇게 가노라.
그 옛날 뛰어난 현인들도 알지 못했거늘
하찮은 범부가 어찌 밝히랴?
단하순(丹霞淳)이 송했다.
현미(玄微)함이 극진할 때, 본래부터 소연(翛然)한데
그를 일러 한가하다면 1만 8천 리일세.
밝은 강에 달 비쳐도 고기는 보이지 않거늘
태공(釣人]은 무엇 하러 낚시줄을 또 던지나?
은정엄(隱靜儼)이 송했다.
석두가 풀밭에 친 뜻은 뱀을 놀래 주려는 것이니
현묘한 기개, 비밀히 보호해 뭇 망정이 끊어졌네
재빠른 말, 바람 좇으니, 분명한 뜻 가려야 하는데
천 성인도 그 이름 모른다고 대꾸했네
불인청(佛印淸)이 송했다.
약산이 조용히 앉은 것이 아무 일도 않는다니
평지(平地)를 뒤흔들고 어지러이 망치를 내리치네.
장강(長江)은 넓고 넓은데
겹친 봉우리는 높고 높도다.
천 성인도 모른다고 했으나
만 가지 형상의 돌아갈 곳은 아는가?
후원(後園)의 나귀가 풀을 뜯고
못 속의 조개는 이끼 위에 누웠다.
원오근(圓悟勤)이 송했다.
불조(佛祖)의 속박을 풀어 헤치고
모든 규범 밖에 자유롭도다
한 가지 일도 하지 않으니
가거나 오거나 자재하도다.
옛 거울이 경대에 놓였으니 가고 옴을 분명히 가리고
황금 망치 번득이니, 무쇠 나무에 꽃이 핀다.
되는 대로 서로서로 뫼실 수 없으니
법 구름 간 곳마다 바람과 우레 일으킨다.
오조계(五祖戒)가 염하였다.
“약산이 꿈속에서 꿈을 이야기하니, 두 겹 세 겹이로구나.”
대홍은(大洪恩)이 염하였다.
“이미 갈등을 벌였으니 다시 한 주먹 갈길 일이다. 그대들 말해 보라. ‘알지 못합니다’ 하 니 누가 모르는 자인고? 만일 말한다면 그대들의 이러쿵저러쿵함을 용납하겠거니와, 만일 말하지 못한다면 내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것을 막지는 말라.”
지해일(智海逸)이 석두의 말을 들어 말하였다.
“석두가 말하기를, ‘원래부터 같이 머물지만 이름도 모른다’하니 널쪽을 짊어진 외통수로다. ‘되는 대로 어울려서 이렇게 가노라’하니 어지러이 밟는 사람이로다. ‘그 옛날 뛰어난 현인들도 알지 못했다’하니 자기를 남에게 견주는도다. ‘하찮은 범부가 어찌 밝히랴?’ 하니, 조문에 의해 판결을 내리는도다.”
다시 말하였다.
“‘뛰어난 현인들도 얼굴조차 모르고 범부도 이름조차 모른다’ 하니, 말해 모라. 지해는 알았는가? 지해가 모른다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더듬겠는가? 이미 더듬을 수 없다면 유나당(維那堂) 안에서 한 망치치는 것이나 구경하라.”
장산원(蔣山元)이 석두의 말에서 “원래부터 같이 머물지만 이름도 모르고”라고 한 데에서부터 “어찌 밝히랴?” 한 데까지를 들어 말하였다.
“그 옛날 뛰어난 현인들도 모른다 하니, 나 용화(龍華)가 오늘 입을 봉한 채 말을 않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는 양구했다가 말하였다.
“고개를 드니 석양볕이 보이는데, 원래 자기 사는 곳의 서쪽이니라.”
장로색(長蘆賾)이 염하였다.
“말해 보라. 이 존숙(尊宿)의 뜻이 어떠한가?”
그리고는 양구했다가 말하였다.
“마치 땅이 산을 받들고 있되 산이 높은 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품고 옥에 티가 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도다.”
오조연(五祖演)이 소참(小參) 때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대중들이여, 조사의 관문을 통과하고, 오솔길과 현묘한 통로를 지낸 뒤에야 비로소 이 화두를 이야기할 만하니라. 석두가 그렇게 설법한 것이 조주(趙州)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나, 동산(洞山)의 마삼근(麻三斤) 화두나, 운문(雲門)의 초불월조(超佛越祖) 화두와 비슷하다 하리라. 내게도 게송이 있느니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송했다.
되는 대로 성명을 모르다가
가뿐가뿐 눈여겨 듣는도다.
물 위에 새파랗게 뜬 것은
원래가 부평초(浮萍草)였느니라.
원오근(圓悟勤)이 소참(小參) 때 이 이야기에서 “그렇다면 한가히 앉은 것이로다.”한 데까지를 들어 말하였다.
“요즘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기를 ‘무엇을 한가히 앉은 것이라 하는가?’ 하거나, 또는 말하기를 ‘화상께서 묻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마음이 컴컴한 채 남에게 말하되 <저절로 깨달아 들어갈 곳이 있으리다.>라고 했을지도 모르므로 얼른 대답하되 <만일 한가히 앉았다면 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석두가 말하기를 ‘그대는 하지 않는다 말했는데, 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가?’ 하니……마침내는 ‘하찮은 범부가 어찌 밝히랴’라고 하기에 이르렀으니, 말해 보라. 끝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알지 못했는가? 천 성인도 이미 몰랐다면 어떻게 함께 사는고? 그러므로 이런 일은 그대들의 생각으로 따지기를 용납지 않으며, 가까이 곁으로 갈 수 없으며, 귀신도 엿볼 수 없나니, 천만 겹의 나쁜 견해를 벗어 버려야 마음의 눈이 저절로 보게 되겠거니와, 만일 소견의 가시밭을 제거하지 못하여 얻고 잃는 시비의 관문 속에 빠졌으면 영원히 교섭할 길이 없으리라.”
운문고(雲門杲)가 염하였다.
“물건이 진가 값이요, 돈은 꾸러미를 채울 뿐이니라.”
또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옛사람이 한가히 앉았던 한 가지 일을 보라. 어쩔래야 어쩔 수 없었거늘,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흔히들 한가하게 앉는 굴에 빠져드나니 요사이 총림(叢林)에서 콧구멍 없는 자들을 두고 잠자코 관조한다.[墨照]하는 것이 이것이니라.”
죽암규(竹庵珪)가 소참 때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되어지는가? 여러분들이 한가히 앉았을 때, 단지 어지러이 생각해서 망식(妄識)과 망정(妄情)으로 분별하나니, 언제 한 생각 쉬어서 참으로 한가히 앉아 보았겠는가? 도거(掉擧)가 아니면 혼침(昏沈)에 빠지나니, 도거는 환경을 좇는 분별이요, 혼침은 어두컴컴한 졸음이니, 도 언제 한가히 앉아 보았겠는가? 옛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다니고 서고 앉고 누우매 일찍이 한 털끝만한 일도 없구나’라고 했느니라.”
說話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一切不爲]”함은 성제(聖諦)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요, “그렇다면 한가히 앉은 것이로구나[伊麽則閑坐也]”라 함은 무위(無爲)와 무사(無事)의 경지에 빠져 있는지 그의 대꾸를 살피려는 것이다.
“만일 한가히 앉았다면 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若閑坐則爲也]”라 함은 성제도 하지 않거늘 무슨 한가히 앉는 일이 있겠는가 함이요, “그대는 하지 않는다 말했는데[汝道不爲]……”라 함은 거듭 살펴서 답을 다그쳐 내려는 것이며 “천 성인도 알지 못합니다[千聖亦不t識]”함은 완전히 공겁(空劫)을 초월하여 금시(今時)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찬(贊)”은 돕는다[助]는 뜻이다. “원래부터 같이 머물지만[從來共住]……”이라 함은 이름도 붙일 수 없고 형용도 할 수 없다는 뜻이요, “되는 대로[任運]……”라 하은 서나 앉으나 항상 따르고 말하건 잠잠하건 항상 함께 있다는 경지이며, “그 옛날[自古]……”이라 함은 위로 향한 외가닥 길은 천 성인도 전하지 못하거늘 학자들이 헛수고를 하는 것이 마치 원숭이가 달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단하(丹霞)의 송은 약산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고 한 대목을 밝힌 것이다.
은정(隱靜)의 송에서 “재빠른 말[迅句]……가려야 하는데[辨的]”라 함은 석두가 감별해서 물은 대목을 밝힌 것이요, “천 성인도 그 이름 모른다고 대구했네[千聖不知名]”함은 철저히 의심이 없어진 경지이다.
불인(佛人)의 송에서 “약산이[藥山]……망치를 내리치네[針錐]”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함이 도리어 어지러운 망치가 되었다는 뜻이요, “장강은[長江]……돌아갈 곳은 아는가?[知歸]”까지는 약산이 하나만 알았고 둘은 알지 못했다는 뜻이며 “후원의 나귀가[後園驢]……”라 함은 활용이 없는 경지를 뜻한다.
원오(圓悟)의 송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에 활용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오조(五祖)의 염에서 “한가히 앉았다”한 것이 곧 “꿈속[夢中]”이요, “만일 한가히 앉았다면 하는 일”이라 함이 곧 “꿈을 이야기 함[說夢]”이다.
대홍(大洪)의 염은 상등(上等)의 현인도 모르는 곳이라면 여전히 갈등이거니 그 어찌 좌지우지(左之右之)하거나 동행서행(東行西行)하도록 맡겨 두는 것만 하리요 하는 내용이니 앞의 오조의 염이 이런 뜻이다.
지해(智海)의 거화(擧話) 중 착어(着語)는 모두가 그를 허락하지 않은 뜻이요, 뒤의 착어는 모두가 그의 뜻을 도운 것이다.
장산(蔣山)의 거화에서 “고개를 드니 석양볕이 보이는데……”라 함은 여전히 본래의 자리일 뿐 딴 도리가 없는 경지라는 뜻이다.
장로(長蘆)의 염에서 “땅이 산을 받들고 있되[似地擎山]……”라 함은 스스로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산과 옥과 돌에 뜻이 없지 않다.
오조(오조)의 소참(小參)에서 “오솔길[鳥道]과 현묘한 통로[玄路]”라 함은 공공시(共功時)이며, 역시 조사관(祖師關)인데 화살이 쇠뇌를 떠나기 전의 지위에서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고, 만일 떠난 뒤라 해도 역시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주의 ……와 비슷하다[便類趙州]”라 한 데에서, ‘백수자(栢樹子)’는 미륵의 눈동자요, ‘마삼근(麻三斤)’은 일용(日用)의 눈앞에 버젓이 이루어진 일이요,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는 이야기는 불조(佛祖)의 향상사(向上事)이다.
“되는 대로 성명을 모르다가[任運不知名]……”함도 역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기능을 뒤섞어 쓰는 도리요, “물 위에 새파랗게 뜬 것[水上靑靑]……”이라 함은 푸르고 싱싱한 것을 딴 물건이라고 바라보았으나 원래 부평일 분이라는 것읻. 그렇다면 “같이 머물지만 이름도 모른다”함은 딴 일이 아니라 오솔길과 현묘한 통로가 그것이며, 정전백수자가 그것이며, 마삼근이 그것이며,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또 오솔길과 현묘한 통로가 곧 정전 백수자이며, 곧 마삼근이며, 곧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이야기요, 또 마삼근이 곧 오솔길과 현묘한 통로이며, 곧 정전백수자이고, 곧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이야기이며, 도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이야기가 곧 오솔길과 현묘한 통로이고 곧 정전백수자이며, 곧 마삼근이니, 조사관을 통과한 이라야 비로소 이럴 수 있거니와 만일 이와 같지 못하다면 도리어 군소리[剩語]가 되는 것이다.
원오(圓悟)의 소참은 존귀하신 가풍을 밝힌 것이다.
운문(雲門)의 염은 석두와 약산이 안목도 같고 증득함도 같다 하여 그 가문의 가풍을 인정한 내용이다.
또 거화는 약산이 귀신굴 안에서 살 계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내용이다.
죽암(竹庵)의 소참은 다만 한가히 앉았다 한 부분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