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군장병의 교통비 할인혜택이 없지만 89년까지는 버스를 탔을 때 할인을 해주었고 기차는 별도의 군용칸이 있어 휴가증이나 공용증 같은 것이 있으면 탈 수 있었다.
그러나 기차의 경우 군인들이 모여있는 공간에 휴가 가는 병력들은 가급적 승차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유는 부대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휴가가는 공간에서 받기 싫었던 것도 있고 군용열차는 주요노선에 가끔 운영을 할 수 밖에 없으니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서 상황에 맞는 교통수단을 택했다.
9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 가면서 당시 신세대 병력들은 택시를
1/n로 나눠 전방의 읍내에서 서울까지 편하게 나오기도 했는데 가급적이면 택시 안에서 부대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었다고 한다.
70년대 중 후반 고속도로를 이용한 고속버스가 편리해 지면서 휴가시 고속버스를 이용했는데 당시 서울시내 도심에 흩어져 있던 고속버스 터미널은 강남의 넓은 공간에 하나로 모이게 되었다.
영동과 호남선 경부선이 구분 되어 있지만 넓은 대합실과 편의시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서울역 못지 않은 교통의 요지가 되기 시작하는데 강원도나 경기 북부의 병력들이 이곳으로 오려면 전철이 건설되기 전이라 한남대교를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표를 보면 강남터미널이 건설되기 전이며 서울 도심의 각 터미널에서 출발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버스요금에 비하면 싸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당시 우표값이 10원 인것을 감안하고 다른 물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특히 군장병의 할인은 적은 급여와 휴가비를 감안 했을 때 나름의 배려였고 도움이 되는 제도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광주고속의 철학이 있어 인상적이다.
주요 대도시와 지방의 중심도시에 운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연무대에도 버스를 운행하는 것을 봤을 때 논산훈련소로 불리던 지금의 육군훈련소에 입대하던 장정들과 그들을 보내던 가족들이 많이 이용을 했던 것 같다.
천일이나 한일, 동부, 속리산등 지역을 기반으로 한 버스회사들이 지금도 있는데 광주고속은 그 규모가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려갈 땐 광주고속을 올라올 땐 한일고속을 이용한 것 같다.(올라올 땐 할인을 포기 한 것 같은 데 휴가중 사복을 입어서 그럴 수 있다.)
한일고속은 제비가 상징인데 경부선에 많은 버스를 운행했던 회사로 알고 있으며 25분마다 운행을 했고 막차가 5시 40분인 건 통행금지가 있던 시기 서울이나 부산에 도착했을 시간을 감안 배차를 하지 않았을까 ? 싶고 서울이나 부산에 도착 바로 부대로 갈 수 없어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1박을 하고 가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심야에도 버스나 택시를 타고 자가용으로 부대까지 가는 시기가 아니 었지만 휴가를 가거나 복귀를 하는 병력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