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자료 써도 되냐고 물어본 것도, 글 다쓴지도, 민들레에 실린 지도 한참 전인데 까먹고 있다가 이제야 올려요.. 격월간 잡지 민들레 2011년 12월 호에 실린 겁니다.
제목이라던지, 군데군데 수정된 곳이 있지만 어쨌든 제가 인터뷰 한 것을 바탕으로 편집된 글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다영과 매미와 정현(가명) 감사함니당ㅎㅎㅎ.
자퇴생도, 거부자도 스펙이 있어야 돼?
_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려는 ‘투명가방끈’을 만나다
하나래
초등대안을 졸업하고, 중등대안 2학년 과정을 다니다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교육공동체 나다 친구들과 세미나를 하거나 공간 민들레에서 소모임과 프로젝트 준비를 하면서 지낸다. blackcloud06@hanmail.net
곧 열아홉 살이 된다. 내 주변에는 벌써 수능을 본 사람도 있고, 재수를 하는 사람도 있고, 내년 수능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다. 대안교육이라고 해도 대학입시제도의 영향권을 벗어나긴 어려운가 보다. 엄마나 주변 어른들도 3년 전까지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고 가더라도 네가 진짜 원할 때 가라는 소리를 했었는데, 요즘엔 “그래도 대학은…”이라며 초조함을 숨기지 못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대안교육은 비단 교육과정뿐 아니라 대안적 삶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항상 들어왔다. 그런데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열아홉 살의 선택지가 이토록 좁다는 건 좀 어이없다.
초·중·고 12년은 지금 내가 살아온 날들에 비하면 길지만 앞으로 지낼 날들을 생각하면 무척 짧은 시간일 것이다. 학교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초·중·고등 과정 공부만으로는 다 포용될 수 없는 질문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까’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그 ‘어떻게 할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내 또래들의 이야기다.
최근 ‘투명가방끈’이라는 모임이 대학입시거부, 대학거부로 세상을 바꾸겠다며 수능기간 동안 토론회, 릴레이 1인 시위, 할로윈 행진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친구들 중에
투명가방끈 인터뷰.hwp
이 활동을 하는 애들이 많아서 가끔 소식을 전해 듣곤 했는데, 이번에 마음먹고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고 친구들을 붙잡고 직접 질문도 던져보았다. 총 세 명의 투명가방끈 회원들을 따로따로 만났으며, 아래 글은 그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편집한 것이다.
‘투명가방끈’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거야?
다영_이번에 ‘아수나로’에 93년생이 되게 많았어. 그래서 수능기간 전부터 고3들 모아서 같이 대학거부하면 재밌겠다는 농담을 되게 많이 했거든. 대학거부를 공동행동으로 하자고. 누구는 100명 선언해도 재밌겠다는 말도 했고. 아무튼 농담처럼 했는데 수능시즌 다가오니까 진짜 해보자 해서 하게 된 거야.
왜 이름이 ‘투명가방끈’인 거야?
매미_요새는 학교 졸업장 없으면 배움의 이력, 가방끈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잖아. 그걸 갖고 아예 우리는 투명가방끈이라고, 대학이고 입시고 다 거부한다고 한 거야. 근데 우릴 취재하고 싶다면서 “서울대 자퇴생과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고대 자퇴생 김예슬씨와 연락이 되나요?” 하고 물어보기도 하더라.(‘아수나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운동가 중 실제로 ‘투명가방끈’ 행동을 하면서 서울대 자퇴를 한 친구가 있다. 한동안 네이버 기사로 뜨기도 했지만 ‘투명가방끈’ 대표는 아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이 안에서 또 다른 학벌을 만든 것 같은 느낌이잖아. 자퇴생이나 거부자도 스펙이 있어야 진정한 거부자가 될 수 있고, 지잡대생은 거부자도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 느낌. 우리가 왜 투명가방끈인데, 정말 어이없었어.
엠건_그건 이를테면 엘리트들의 대학거부로 보인단 말이야. 이미 가진 사람들이 내가 가진 것들을 놓겠다, 버리겠다고 하는 걸로 비춰지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되게 영웅주의적인 걸로 들이대는 거지. 보면서 그게 계속 걸리더라. 그래서 나는 대학 ‘못 가는’ 사람들의 대학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또 ‘못 간다’는 말이 ‘가고 싶다’처럼 들리면 함정에 빠지는 거 아닌가, 음….
다영_내가 대학거부를 하면서 자퇴를 한 이유는 대학에 낭비할 돈이 없어서였어. 졸업하고 취직해서 자본을 뽑아내면 된다고 쳐도 기업 취직해서 그렇게 할 자신도 없고. 나는 적당히 뽑아낼 수 있는 기계가 아니잖아. 한편으로는 너무 서러웠어. 내가 고작 기업의 이윤 따위 벌어주기 위해서 이렇게 공부하고, 수능 보고, 대학가서 겁나 공부하고, 그러는 건가 싶어서 어이가 없는 거야. 어이가 터지는 거야. 그건 내가 먹고 사는 게 아니라 기업이 먹고 사는 거잖아. 노동자가 돼도 기업한테 착취당할게 뻔하니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자퇴한 것도 있어.
이번에 어떤 행동들을 한 거야?
다영_바빴어! 9월 3일에 첫 회의를 한 뒤로 24일에 대학입시거부 토론회를 했고, 할로윈 때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입시좀비·스펙좀비 할로윈 행진을 했어. 11월부터는 수능 시즌이라 쉴 새 없이 릴레이 1인 시위랑 거리캠페인을 하면서 대학입시거부에 대해 알리고, 인권 오름 사이트에 글도 연재하고, 수능 보는 날에는 대학입시거부선언 기자회견을 했지. 11월 12일에는 청계광장에서 거리 행동을 크게 하기도 했어.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대학입시거부자 총회 때 얘기 된 걸 바탕으로 11월 27일에 한 번 더 회의를 가질 예정이야.
나는 일정 중에 12일 집회 때 나랑 성수가 했던 공연(‘수염을 민다영’이란 공연팀)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 그냥 공연 팀에 넣어 달라고 찔러 보는 수준이었는데 집회하기 이틀 전에 공연이 확정된 거야! 그래서 이틀 동안 완전히 맹연습을 했는데, 공연 전날에 우리 말고 누구누구 공연하나 물어봤더니 ‘꽃다지’가 나온대. 어이쿠, ‘꽃다지’ 앞에서 이게 무슨 장난이야? 공연하는 내내 민망해가지고. 그래도 하길 잘 한 거 같아.
매미_나는 할로윈 때 입시좀비·스펙좀비 거리행진 했던 거에 대한 아쉬움이 좀 남아. 대학입시거부에 대한 홍보를 하려던 게 가장 컸지만, 우리들끼리 할로윈을 즐기자는 의미도 있었거든. 근데 기자들이 너무 많이 와서 대학거부와 상관없는 다른 행동들은 자제해야 했었어. 이를테면 다른 구호를 외친다든가 개인적으로 다른 피켓을 들고 온다든가, 그런 식으로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는데 행동 하나하나가 기자에게 포착돼서 답답했어.
실제로 행동들을 하면서는 어땠어?
매미_재밌기도 했고 대학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된 것 같아. 사실 처음엔 학교를 그만두면서도 당연히 ‘고등학교는 자퇴해도 대학교는 가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활동을 하고 이것저것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대학교를 왜 가야하지? 내가 정녕 배우고 싶은 게 있는 건가?’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 그러면서 고민이 되더라. 대학교는 그냥 가야 하는 곳인가, 아니면 꼭 가야만 하는 곳인가, 아니면 당연히 가지 말아야 하는 곳인가 하는 고민. 그러다가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배우고 싶은 것, 내가 하면 행복할 것 같은 것을 정해 놓고 이것이 대학과 어울릴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기 시작했어. 그러다 보니 대학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 욕구가 더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엠건_나도 활동하면서 대학이고 뭐고 벗어난 척 했지만 나름 마음속에 폭풍 고민이 있었지. 정말 안 가도 되는 걸까, 정말? 대학은 가야 돼! 하고 누르는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지 않았는지 느꼈던 것 같아. 그러면서 나름 블로그에 치열하게 글을 썼단 말이야. 나는 대학에 정말 가고 싶은 걸까에 대해서.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를 내 스스로 찾고 싶었던 거야. 정당화 시키고 싶으니까.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 인정한 게 유예기간을 갖고 싶다는 거였어. 고등학교 끝나자마자 내던져지는 게 너무 무섭다고, 대학을 가면 그래도 2년 혹은 4년 동안은 다시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맘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아직 어딘가에 내던져지지 않고 다시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라는 거였어.
앞으로 뭐 할 거야?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나 계획 같은 거 있어?
엠건_방향? 너무 이상으로 확 달려가서도 안 되고,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 같아. 나중에 독립할 집 보증금을 생각해서 돈 모으는 것도 꾸준히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알바로 날 혹사시키려고 대학을 안 가겠네 한 건 아니니까. 대학을 안 간다는 건 어느 정도 있는 집 자식이 아니고서야, 어쨌든 중산층 수준의 집과 가정을 꾸리고 사는 건 포기한다는 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거부라는 관점에서 그게 굳이 포기라는 얘기를 써야 될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동안 돈에만 날 꼴아박으려고 했던 시기처럼 나락으로 떨어져서 세상 살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끼면 안 되니까, 적당히 놀고 하고 싶은 거 하려고. 겁나 어렵겠지?(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매미-“당신은 왜 교육을 받습니까?” 제도권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공부도 포함해서. 왜 세미나를 듣고, 왜 강좌를 듣고, 왜 그 자리에 있고 왜 그걸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다영_수능 본 친구들아, 다들 욕봤어! 그리고 정바비(그룹 ‘줄리아 하트’ 보컬) 사랑해요! 이거 꼭 써줘. 볼 지도 모르잖아.(웃음)
엠건-음…, 사람의 힘으로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어. 되긴 될 거야. 근데 구조가 너무 커. 너무 굳세게 자리 잡고 있는 구조들은 건드려도 넘어지지 않잖아? 그래서 아무리 조례를 만들어도 청소년이 힘이 없는 존재인 이상 학내 체벌에 관해서 세상이 선생님들 편인 것처럼. 그냥 뭐 뻔한 얘기지만 그냥 맘 굳게 먹고 사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할 수 있는 건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
지금까지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는 친구 몇 명의 얘기였다. 11월 27일에 앞으로 어떻게 할까 회의를 한다는데 계속 재밌는 소식들을 전해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면 괜찮겠다는 기대도 있다. 아니, 기대만 할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비슷한 움직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 투명가방끈들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까페(http://cafe.daum.net/wrongedu1)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