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사라예보의 중앙우체국. 소소한 우편취급소가 여러 군데 있긴 했지만, 뭐니뭐니 해도 중앙우체국은 그만한 위용을 지니고 있으니 딱히 편지를 보낼 일이 없다 하더라도 여행지에서는 꼭 중앙우체국에 가 볼 일이다. 나는 오늘, 한 가지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사라예보의 중앙우체국을 방문하였다!
사라예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세풍 건물이라고만 생각하고 처음엔 이 문을 그냥 지나쳤다. 한참 걸어가다 지도를 보고 번지수를 다시 확인하고 되짚어 찾아온 상아색 건물.
우체국 내부도 베이지톤을 닮은 상앗빛으로 깔끔하게 칠해져 있었다.
우체국의 천장 한가운데 달린 이 시계를 보고 싶었다, 사실. 유명한 시계다. ^^ 바둑판 무늬의 창으로 만들어진 천장도 멋있고 가운데 매달린 시계도 멋있고 창살의 무늬도 멋있고 전체를 두르고 있는 상앗빛도 멋있는 우체국이었다.
가운데 놓인 탁자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체국이 아닌 도서관 느낌을 나게도 하는 곳이다.
여느 우체국처럼 금융 업무와 우편 업무를 동시에 보고 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한 건의 우편 업무를 해결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모스타르의 나의 Dada 할머니께 편지를 쓰는 것. 나에게 빌려주시면서 다 보고난 후 되돌려 달라고 하셨던 모스타르 지도를 가방 안에 곱게 넣어둔 채로 사라예보행 버스를 타버렸다. 꼭 돌려드리려고 했는데... 그래야 다음 여행자에게 또 빌려주실 수 있으실 텐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라예보에 도착해서 편지를 보내기로 결정! 마침, 할머니께서 주신 명함이 있었고, 그 명함에 할머니의 아파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우체국 창구에 가서 봉투를 한 장 구입했다. 그리고 내게 있던 편지지에 간단한 편지를 썼다. 바로 저 편지지에, 할머니의 숙소를 칭찬하는 글을 남겨드렸기 때문에 지도와 편지를 보시면 발신인이 나라는 것을 아시리라 생각했다.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꼭 돌려드리려고 했는데, 깜박 하고 사라예보까지 갖고 와 버렸다고... 편지를 썼다.
From과 To를 적고... 할머니의 주소를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적어넣었다. 아, 무사히 이 지도와 편지가 할머니께 도착하기를... 봉투를 접어 다시 창구에 가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돈 얼마를 지급하였다. 국내 우편 요금이라서인지 무지 저렴하였던 기억.
이 편지를 보내고 나니 어찌나 홀가분해지던지... 이제 편한 마음으로 사라예보 '투어'를 시작! 사라예보 올드타운으로 go, go!! ^^
올드타운은 골목골목 빼곡하게 들어찬 '수베니르(상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웨딩숍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나무문 너머 쇼케이스에 전시된 웨딩드레스. 오늘은 어떤 신부가 저 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려나. 가슴 떨리는 일...
웨딩숍에서 몇 걸음 걸어가다 보면, 과거 실크로드 시절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 팔고 했다던 일종의 상점 집합소가 나온다. 아주 작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짠- 하고 나타나는 이곳은,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빙 둘러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당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사라예보 올드타운의 골목길에서는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 반드시 작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야 이곳을 볼 수 있다.
온통 터키식 문양과 빛깔로 가득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흥정을 하고 물건을 사고판다.
옷과 가방과 쿠션과 방석과 침대커버와 장신구들... 참으로 화려하다. 화려한 것과 어울리지 않는 내가, 평생 저 빛깔의 물건들을 사용할 일이 있을까... 세심하고 찬찬하게 들여다보면서, 실크로드 시절의 사람들을 그려보았다...
이렇게 화려한 침대커버가 덮인 침대에 누우면, 나는 정신이 사나워 잠이 제대로 올 것 같지 않다. 큭. 하지만, 빛깔과 무늬만 화려할 뿐 그 빛깔과 무늬가 새겨진 천은 참으로 소박하였다. 가장 소박하면서 가장 화려한 물건들로 가득하던 곳.
이렇게, 마당에는 사람들이 가득가득.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저마다 진지하고 저마다 소란하다.
LG에어컨은 사라예보도 접수했구나... 올드타운에서 우리나라 상표를 만날 때마다 반가움에 뭉클. 에어컨은 LG, TV는 삼성이더라...
예쁜 마그넷도 한 개 집어들고, 예쁜 보석함은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그냥 내려놓고... 느릿느릿... 올드타운을 걷는다.
하단에 있는 저 손잡이가 길쭉한 바가지 모양의 주전자는, '졔즈바'다. 졔즈바로 터키식 커피를 끓이는데, 터키식 커피는 퍽 진하고 독하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처럼...
긴세월, 이렇게 한결같은 작업을 계속해오고 계시는..... 장인! 사진을 찍겠다 말씀드렸는데, 별다른 표정 변화없이 무심하게 하시던 일 마저 하시더라는... 그래서, 완전 더 멋있게 느껴졌다는... ^^
옷가게 안에 낡은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다 말고 잠시 악보를 들여다보며 멍- 당신도, 피아노를 좋아하는군요... 가게 안에까지 피아노를 들여놓다니 말이에요. 당신이 연주하는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듣고 싶어요! ^^
아, 이제 나도... 슬슬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 내가 묵은 호텔의 주인 아주머니께서 사라예보 지도에 볼펜으로 굵게 표시하시면서 추천해주신 식당.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일종의 전통음식이라는 '체바치치'를 잘하는 집이란다. 가격도 저렴하고 식당도 멋있고 맛도 좋다고... 올드타운에서 제일 괜찮은 레스토랑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던 곳.
짜잔- 와, 나도 이 식당이 참 마음에 들었다. 깔끔한 나무 테이블과 깔끔한 나무 의자들.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 밝고 화사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유럽의 레스토랑 중 이렇게 밝고 화사한 곳은 참 드물다. 대부분 어두컴컴...
식사 시간이 지난 터라 내부는 한산.
야외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팀들도 있긴 하였으나, 나는... 추웠던 관계로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 어쩜 좋아. 메뉴판도 마음에 든다. 보스니아어로 된 메뉴판 뒷편에는 영어로 된 메뉴판이 있다.
나무 무늬가 아니라... 실제 나무로 만든 메뉴판. 어째 이 레스토랑은 모든 것이 나무로구나... 좋다.
근데, 내가 시킨 건... 호텔 주인 아주머니께서 적극 권해주신 체바치치가 아닌, 그릴에 구운 치킨 요리. 체바치치는... 고기를 넣어 먹는 것이라서 못 먹고... ㅠ
빵을 따로 시켜서 치킨 요리와 함께 먹었다. 맛있었다!
이것이 바로 '체바치치'다. 저 담백한 빵 사이에 고기가 들어가는데, 사이드로 나온 다진 양파를 넣어서 마치 햄버거처럼 들고 먹는다. 물론, 잘라 먹어도 되고 포크로 찢어 먹어도 된다. 손으로 들고 되너를 먹듯 포크로 내용물을 파먹어도 된다. 고기는, 마치 소세지처럼 손가락 모양과 크기로 나온다.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 맛을 보진 못하였지만... 먹어본 사람이, 맛있단다.
이곳이 내가 묵었던 호텔이다. DIVAN. 방은 종류별로 있다. 침대가 6개 있는 도미토리 형식의 방도 있고 싱글룸도 있고 더블룸도 있다. 도미토리는 12.5유로. 사라예보에서 이 정도라면 꽤 저렴한 편. 싱글룸이나 더블룸은 보통 3성급 호텔 정도의 가격. (뭐, 그것도 나라마다 동네마다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작고 아담한 호텔인데, 아침 식사를 주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차려주신다. 심플하면서 실속있는 메뉴들로 차려지는 아침... 여행자의 힘의 원천이 되는... ^^
아마 인터넷 예약이 가능한 듯 하지만, 나는 이 호텔을 현지에서 헌팅했다. 현대식 시설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고 올드타운에 위치해 있고 무엇보다 주인 아주머니와 그 딸이 여행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무척 편했던 기억이다. 아주머니로부터 여행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었고 사라예보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 'Boom boom...' 이렇게 총소리도 흉내내면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사라예보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 곳은...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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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Vincent van Gogh 원문보기 글쓴이: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