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일차.150126.월. 삼척-금진항
컵라면을 먹고 왼쪽 새끼발가락에
고인 물을 빼고 06:40 찜질방을 나선다. 간 밤에 이슬비가
내렸는지 땅이
젖어있다. 이른 봄 날씨 같다. 찜질방에 휴대폰케이스를
두고 온 것을 늦게야 알아챈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여행이
끝나가며 무언가 무의식적으로 기념으로 두게 되는 건가? 점점 잊는 속도가 빨라지고 잃는 게 많아지
고
실수가 잦아진다. 잔뜩 찌푸린 날씨이긴 해도 시작부터 해안을 따라 걸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증산해변에
서 멋들어진 사진 한 방 찍겠노라고 해변에 앉아 쉬고 있는 수 백마리 갈매기 떼를 날려 보낸다. 두 컷을 찍
고 나서 돌아서자 바닷가 하늘에 멋진 그림을 그린 갈매기 떼가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앉는다. ‘갈매기들아
아침운동을 해야 한다!’고 괘변을 늘어놓는다. 파도가 해변에 그리는 그림은 그야말로 시시각각 명작이다. 그
리고
또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를 끝 없이 반복한다. 東海! 冬海! 動海! 삼척시도 동해
시도 보행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동해시로 접어들면서 어느 순간 동해북부선 철로와 나란히 간다. 어제 머슴
길을 걸었다면 오늘은 양반 길을 걷는다. 동해시 묵호에서
모든 제품을 단 돈 만원에 판다는 아웃도어점에 들
어갔다가 실망만 하고 나온다. 동해시를 지나 강릉시로
들어선다. 강릉시 옥계면이 내게 건네는 첫 인사는 갓
길이 전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다. 쌩쌩 지나는 차들도 많다. 그래도 싫지가 않다. 낭만가도 해파랑길 자전
거길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옥계해변으로 접어들면서 해파랑이 나타나고 새로운 친구 강릉바우길이 나타난
다.
한 길에 여러 이름이 중복되지만 모두를 친구 삼으니 재미가 있다. 오늘은 처자식도 잊은
채 친구도 잊은
채 나 자신도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걷는다. 금진해변 나룻터에 17:40에 도착하고 운이 좋
게도 17:50에 출발하는 강릉시내행
버스가 대기 중이다. 이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어둠 속에 더 진행할 곳도 없다. 정동진에 있는 정동찜질랜드는 휴업
중이고, 친절한 운전기사의 소개로 강릉
시내 신영극장 옆에 있는 동아찜질방을 쉽게 찾아간다. 그리고 내일 아침 금진항행 첫 버스를 어디서 몇 시에
타야 하는지를 알려주신다. 그런데 찜질방 내에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없게 모든 콘덴서를 막아버렸다. 일기
예보에
내일 눈이 많이 온단다. 그러면 버스 운행이 어렵게 되고 나의 행진은 방해를 받는다. 일단 내일 아침
을 기다리자. 대설주의보에 대비해 준비한 예비일을
소모하며 기존 일정을 수정하고 새로운 일정을 세우기가
몹시 어렵다. 재일이도 금요일과 토요일에 합류하겠다고
전화가 온다. 반갑고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