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역사 (11월 4일)●
1650년 윌리엄 3세(William III), 영국 왕 출생
1716년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 사망
1740년 오거스터스 몬테규 톱레이디(Augustus Montague Toplady), 영국 성직자, 작가 출생
1847년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독일 작곡가 세상떠남
1856년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 프랑스 화가 세상떠남
1859년 조셉 론트리(Joseph Rowntree), 영국 코코아 제조업자, 자선가 세상떠남
1862년 미국의 발명가 리처드 게틀링(Richard Gatling), 다총신 기관포를 발명함
1873년 에덴 필리포츠(Eden Phillpotts), 영국 소설가, 극작가 출생
1879년 윌 로저스(Will Rogers), 미국 배우 출생
189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출간
1901년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비 이방자여사 출생
1901년 영왕 비 이방자 여사 출생
1904년 소설가 이태준 출생
1911년 독일-프랑스, 모로코협정 체결
1914년 보그(Vogue)지의 에드나 우드먼 체이스(Edna Woodman Chase)가 계획한 최초의 패션쇼가
뉴욕 리츠칼튼(Ritz-Carlton)호텔에서 열림
1918년 아트 카니(Art Carney), 미국 배우 출생
1918년 윌프리드 오웬(Wilfred Owen), 영국 시인 세상떠남
1920년 조선체육회, 첫 전국야구대회 개최
1921년 일본수상 하라 다카시(原敬), 도쿄역에서 피살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Tutankhamen)의 무덤을 발견함.
1926년 조선어학회, ‘가갸날’ 제정
1926년 한글점자 완성
1933년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1937년 세계최대 일본 전함 '대화(大和)' 기공
1946년 파리에 본부를 두고 유네스코
(UNESCO : the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가 설립됨
1950년 서양화가 이인성 사망
1952년 미국 34대 대통령에 아이젠하워 당선
1954년 제2군관구사령부 창설(부산)
1956년 소련군, 헝가리 부다페스트 진주, 카다르 친소정권 수립
1961년 딘 러스크 미국무장관 내한
1961년 소련, 북극해서 31회 핵실험
1961년 한국-룩셈부르크, 국교 수립
1965년 Nui ca du 전투, 주월 해병 제2여단의 최초 공세작전으로 제2대대, 5중대가 공격 감행
1966년 제1회 전국기능올림픽대회 개막
1973년 단양서 동양최초의 동굴벽화 발견
1979년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고 직원들을 협박함
1980년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국 40대 대통령으로 당선됨
1980년 인천함, 육. 공군 및 해경과 합동작전으로 횡간도 출현 간첩소탕.
1982년 현대미포조선소 제2공장 준공. 세계 제1의 대단위 수리조선소 준공
1983년 대구 광명그룹 도산
1983년 버마,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사건이 북한 공작원에 의한 것으로 단정,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공식발표.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창립
1990년 윤석양이병,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하다
1991년 이멜다 마르코스(Imelda Marcos), 미국에서의 5년간의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필리핀으로 돌아옴.
1991년 한·태국 군수협력양해각서 체결
1992년 미국 제42대 대통령에 빌 클린턴 당선.
1993년 북한, 외교부 대변인 "UN의 북핵사찰결의 인정 못해" 발표.
1993년 성철스님 입적
1993년 제2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개최(서울)
1995년 북한, 실종미국 수색에 350만$ 요구.미국, "과다"라고 거부.
1995년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Itzhak Rabin) 총리, 텔아비브(Tel Aviv)의
평화집회에서 극우파 유태인 청년 이갈 아미르(Yigal Amir)에게 암살당함.
1995년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질 들뢰즈 자살
1996년 한-러 국방장관 모스크바에서 회담. "군사협력 양해각서" 서명.
서명과 동시에 발효하며 5년 유효. 일방에서 의의제기 없으면 자동연장.
1997년 국민신당, 이인제 전경기지사를 대통령선거 후보로 결정
1997년 프랑스 화물차 운전자들이 임금과 근무조건에 대한 협상을 걸고 도로와 항구를 봉쇄하며 시위을 벌임
1999년 이영욱 연구팀, 은하계 형성에 관한 논문 네이처지에 발표
2002년 국내 감자칩서 발암물질 검출
2005년 `은방울 자매` 박애경씨 별세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1899년 11월 44세 때 <꿈의 해석>을 펴내며 심리학이란 말 대신
정신분석이라는 용어를 썼고 새 세기의 시작으로 관심을 끌기 위해 출판사는
1900년으로 그 연도를 표기하였다.인간의 심충심리를 이해하고 그에 근거하여
예술의 새 차원을 연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1901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비 이방자 태어남
1904 소설가 이태준 태어남 필명 상허. 대표작: 해방전후, 달밤, 구원의 여상
1920 조선체육회, 제1회 전국야구대회 개최
1933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1961 해외여행금지법 폐지
1966 제1회 전국기능올림픽 대회 열림
1969 울진서 팬텀기 추락. 3명 사망, 가옥 6동 전소
1973 한국동굴학회, 충북 단양 고수동굴서 신석기시대 추정 음각벽화 발견
1983 대구 광명그룹(회장 이수왕),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자금난으로 도산
1985 고대생 30여명, 새마을 중앙본부에서 시위 농성 서울시내 7개대생 14명, 주한 미 상공회의소 점거 농성
1988 국회, 일해재단 1차 청문회, TV 생중계
1989 대학입시 중압감에 시달리던 김태규 군 지윤희 양 아파트서 투신자살
1990 강원도 인제 군측교에서 관광버스 추락, 21명 사망, 21명 부상
1990 윤석양 이병,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1993 서울 영등포 신화병원에 수술 잘못에 앙심 품은 백희현이 방화
1993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겸 해인총림방장인 이성철 스님 입적
향년 82세로 속명은 영주. 경남 산청출신으로 1936년 해인사에서 하동산(河東山)
스님을 은사로 득도.'81년 조계종 7대 종정을 맡은 후 '91년 재추대됨
저서: <선문정로(禪門正路)>, <한국불교의 법맥>, <본지풍광(本地風光)> <자기를 바로 봅시다>
1995 노태우 구속과 92년 대선자금 공개, 5.18특별법제정 제6차 국민대회 열림
1847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 세상 떠남
예술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부유한 환경에서 이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난
멘델스존은 9세 때 공개연주를 할만큼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
작곡가일 뿐 아니라 연주자, 지휘자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준
그는 38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낭만주의 음악에 커다란 자취를 남겨놓았다.
대표작: 한여름밤의 꿈, 핑걸의 동굴, 스코틀란드 교향곡
1946 유네스코 헌장 효력 발생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과 교류를 통해 각국 국민들 사이의 이해를 두텁게 하고
동시에 국가 간의 협력 관계를 촉진함으로써 국제평화와 안전을확보하려는
국제연합의 전문기관이다.우리 나라는 1950년 6월 14일부터 유네스코 회원이 되었다
1952 미국 제34대 대통령에 아이젠하워 당선
1979 이란 회교도와 학생, 테헤란주재 미대사관 점거 대사관직원 60명 인질
1992 제42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46세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 당선 미 하원선거에서 김창준 씨 당선
1993 독일, 영국, 덴마크, 스위스에서 쿠르드족 반군 소행인 듯한 테러 발생
터키 대사관 등 터키계 건물 등 폭발
1993 대만 중화항공소속의 보잉 747기 바다에 빠짐/홍콩의 카이탁 공항에 착륙중 활주로를
이탈하면서 토리아항의 바다에 빠졌으나 다행히 탑승객 전원 무사
【오늘의 역사】11월4일
△1901/11/04 영왕 비 이방자 여사 출생
△1904/11/04 소설가 이태준 출생
△1911/11/04 독일-프랑스, 모로코협정 체결
△1921/ 11/04 일본수상 하라 다카시(原敬), 도쿄역에서 피살
△1926/11/04 한글점자 완성
△1926/11/04 조선어학회, ‘가갸날’ 제정
△1937/11/04 세계최대 일본 전함 `대화(大和)` 기공
△1946/11/04 유네스코 발족-유네스코 헌장 발효
△1950/11/04 서양화가 이인성 사망
△1952/11/04 미국 34대 대통령아이젠하워 당선
△1956/11/04 소련군, 헝가리 부다페스트 진주, 카다르 친소정권 수립
△1961/11/04 한국-룩셈부르크, 국교 수립
△1961/11/04 소련, 북극해서 31회 핵실험
△1961/11/04 딘 러스크 미국무장관 내한
△1966/11/04 제1회 전국기능올림픽대회 개막
△1973/11/04 단양서 동양최초의 동굴벽화 발견
△1979/11/04 이란 학생들 미국 대사관 인질극
△1980/11/04 레이건, 제40대 미국대통령에 당선
△1980/11/04 레이건, 제40대 미국대통령에 당선
△1982/11/04 현대미포조선소 제2공장 준공
△1983/11/04 대구 광명그룹 도산
△1983/11/04 버마, 북괴와 단교. 정부승인 취소
△ 1989/11/04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창립
●1605년 - 영국의회 폭파 미수 사건 혐의자 현장 검거
스코틀랜드의 장로파 교회, 잉글랜드의 국교회에 밀려 설자리를 잃은 카톨릭은 17세기 초, 권력 회복과 카톨릭 부활을 꿈꾸며 영국 의회 폭파 음모를 추진한다. 1604년 봄 로버트 카테스비(Robert Catesby)가 최초로 구상한 이 계획은 "화약으로 의회를 폭파"시켜 국왕은 물론 상원과 하원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카톨릭이 그 자리를 대시한다는 것이다. 카테스비의 제안을 접한 동료들은 대륙에 망명 중인 카톨릭 교도의 지원을 호소했으며, 이 과정에서 "1606년 영국의회 폭파 음모 사건"의 전설적 주인공 '가이 포크스'(Guy Fawkes)가 합류했다. 가이 포크스와 12명의 가담자들은 의회 건물과 인접한 구택을 임대한 후, 의회 건물의 지하까지 땅굴을 파고 가공할 만한 분량의 폭약을 설치했다. 이들은 또한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폭약 위에다 철근과 석재를 덮은 뒤 석탄과 땔감으로 위장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605년 10월 26일 의회 지도자인 몬테글(Monteagle) 경 앞으로 배달된 익명의 편지 한 통으로 인해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공개되고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다. 사건에 가담했던 몬테글 경의 처남 프란시스 트레셤(Francis Tresham)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서한에는 '곧 닥치되게 될 위험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의회 개원식에 불참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익명의 편지가 빌미가 되어 당국의 수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폭약 점화'라는 최후의 임무를 자원했던 가이 폭키가 1605년 11월 4일 거사 성공 직전에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가이 포크스 검거 며칠 후 의회 폭파 음모의 제안자였던 카테스비와 세 명의 혐의자가 추적과정에서 피살되고 나머지 관련자도 모두 당국에 연행된다. 1606년 1월 27일 개회된 의회폭파 음모 사건 혐의자에 대한 공판에서 기소자 전원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사건 관련자들은 1월 30일과 31일 양일에 거쳐 익명의 편지 작성자로 추정되는 프란시스 트레셤을 제외하고는 모두 참수형을 당했다.
●셰리든 Richard Brinsley (Butler) Sheridan(1751.11.04~1816.07.07)
셰리든은 풍속희극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영국의 극작가이자 흥행주·웅변가이며, 휘그당 정치인이다.1773년 우여곡절 끝에 연인 엘리자베스 앤 린리와 결혼했으며 그후 생계수단으로 연극을 시작했다. 1775년 1월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희극 <연적 The Rivals>이 초연되었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2번째 공연에서 갈채를 받았다. 뒤이어 상연된 <성 패트릭의 날 : 교활한 중위 St. Patrick's Day, Or, The Scheming Lieutenant>·<듀에너 The Duenna> 등으로 셰리든은 1년도 못 되어 최고의 극작가로 부상했다. 1776년 드루어리레인 극장의 동업자가 되어 <험담꾼들 The School for Scandal> 등을 감독하고 공연했다.정치에 흥미를 느껴 1780년 하원의원이 되었고, 외무부 차관(1782)을 거쳐 재무장관이 되었다(1783). 말년에는 해군 재무부장(1806~07)과 추밀고문관을 지냈다. 1809년 2월 드루어리레인 극장의 화재 사건과 낭비벽에 따른 심각한 재정난 등으로 괴로운 말년을 보냈다.
셰리든 Richard Brinsley (Butler) Sheridan1751년 11월 4일 태어남 / 1816년 7월 7일 죽음
셰리든, Joshua Reynolds 경이 1788~89년에 그린 유화(부분) "양심은 용기와 상관없어. 정치와 상관없는 것처럼 말이야."- 리처드 셰리든, <듀에너> 3막 4장에서
●독일 음악가 멘델스존 세상 떠남(1847.11.04)
독일 낭만파 작곡가인 펠릭스 멘델스존이 1847년 11월 4일 세상을 떠났다.7세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작곡 등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9세 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고 10세에 작곡을 시작한 천재. 은행가인 아버지와 독일의 소크라테스로 불리는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이 할아버지로, 부유하고 교양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12세 때 괴테를 만나 모차르트와 바흐의 곡을 들려주고 자신이 작곡한 곡까지 들려주자 72세의 괴테가 그 솜씨에 감탄했다고 한다. 대표작에 '한여름 밤의 꿈', '무언가' 등이 있다.
●제1회 전국조선야구대회 개최(1920.11.04)
야구경기가 이 땅에서 처음 시작한 것은 1904년의 일이다. 미국인 선교사 GL길레트(한국명 吉禮泰)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한 야구가 전국적인 규모의 대회로 열린 것은 1920년이었다. 이해 조선체육회(회장 張斗鉉)의 창립기념으로 11월 4일부터 3일간에 걸쳐 제1회 전국조선야구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또 이 대회에서는 비록 야구경기의 한 종목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최초의 전국규모의 운동경기여서 실은 제1회 전국체육대회이기도 했다.배재학당 운동장에서 열린 이 대회는 중등부 및 청년부에 각각 5개팀이 출전했다. 연일 5천명 이상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대성황을 이루던 이 경기에서 경신고(儆新高)가 휘문고(徽文高)를 눌렀고, 중앙고는 보성고(普成高)를 이겼으나 배재고에 지고 말았다. 그래서 경신 대 배재고가 결승에서 겨뤘으나 배재가 우승했다.청년부에서는 배재구락부가 중앙기독청년회(YMCA), 삼한(三韓)구락부, 경신구락부를 연파하고 우승했다. 그리고 1921년 10월 31일의 제2회 전국야구에서는 평양 숭실전문과 인천팀 등 지방팀도 참가했다. 특히 인천팀과의 대전에서 천도교팀 4번 타자 손효준(孫孝俊)은 3점 홈런을 호쾌하게 날렸다. 이것이 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 야구사상 최초의 홈런이다.
●'가갸날' 제정(1926.11.04)
1926년 오늘은 음력 9월 29일로, 훈민정음이 세상에 태어난지 480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어연구회(지금의 한글학회) 인사 등 100여 명은 이날을 '가갸날'로 제정했다. 음력 9월 29일로 정한 것은 조선왕조 실록 권113 세종 28년 9월 조에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9월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가갸날'은 1928년 명칭을 '한글날'로 바꿨다. 그러나 1940년 7월 경북 의성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1946년 다시 날짜를 변경했다. 해례본 서문의 "세종 28년 9월 상한"이라는 구문을 근거로 한글학회는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글점자 '훈맹정음' 발표 1926. 11. 4
한글점자 1926년 11월 4일 한글점자연구를 계속해오던 제생원(濟生院) 맹아부(지금의 서울맹아학교) 교사 박두성이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안해 발표했다. 맹인들을 위한 글자인 점자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프랑스인 V. 아위이다. 프랑스 장교 C. 바르비에 대위가 1819년 고안한 점자는 야간전투 때 의사전달을 위한 것으로 야간글자로 불렸다. 프랑스의 L. 브라유는 바르비에의 문자체계를 출발점으로 해서 1829년 6점 점자를 발표했다. 브라유 체계는 1854년 파리의 학교에서 공식 채택되었고, 1932년 영어권 국가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브라유 점자체는 수학과 과학 기호용, 음악 기호용, 속기용 등으로 활용되었으며, 1892년 최초로 브라유 타자기가 고안되었다. 박두성은 브라유의 6점 점자를 연구해 한글점자를 창안했다. 훈맹정음은 발표 후 계속 수정·보완되었고, 1982년에는 '한국점자통일안'이 새롭게 선보였다. 한글점자는 합리적인 반면 부피가 크다는 단점이 있어, 단음절 약자인 1종 약자, 다음절 약자인 2종 약자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한글 점자 '훈맹정음' 발표(1926.11.04)
1926년 11월 4일 한글점자연구를 계속해오던 제생원(濟生院) 맹아부(지금의 서울맹아학교) 교사 박두성이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안해 발표했다.맹인들을 위한 글자인 점자를 최초로 고안한 사람은 프랑스인 V. 아위이다. 프랑스 장교 C. 바르비에 대위가 1819년 고안한 점자는 야간전투 때 의사전달을 위한 것으로 야간글자로 불렸다. 프랑스의 L. 브라유는 바르비에의 문자체계를 출발점으로 해서 1829년 6점 점자를 발표했다. 브라유 체계는 1854년 파리의 학교에서 공식 채택되었고, 1932년 영어권 국가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브라유 점자체는 수학과 과학 기호용, 음악 기호용, 속기용 등으로 활용되었으며, 1892년 최초로 브라유 타자기가 고안되었다.박두성은 브라유의 6점 점자를 연구해 한글점자를 창안했다. 훈맹정음은 발표 후 계속 수정·보완되었고, 1982년에는 '한국점자통일안'이 새롭게 선보였다. 한글점자는 합리적인 반면 부피가 크다는 단점이 있어, 단음절 약자인 1종 약자, 다음절 약자인 2종 약자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유네스코 창설(1946.11.04)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평화는 정치ㆍ경제ㆍ군사의 힘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으며 지적, 도덕적 관계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이에 1946년 오늘, 교육ㆍ과학ㆍ문화의 보급과 교류를 통한 국가간의 협력을 목적으로 한 국제연합(UN) 전문기구 유네스코(UNESCOㆍ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설립됐다. 첫 총회는 같은 달 20일 프랑스에서 열렸다.주요활동은 교육(문맹퇴치, 초등의무교육 보급, 난민교육), 과학(생물학, 해양학, 환경문제 등의 국제연구교류), 사회과학(인권, 개발도상국 언론인 육성), 문화(세계문화유산 지정, 유적 보존 및 보수, 전통문화 보호) 등이 있다.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으며 현재 191개 정회원국과 6개의 준회원국이 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에 가입했다.
●중공군 불법 침입(1950.11.04)
1950년 오늘 중공군이 의용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전쟁에서 북한군을 돕기 위해 우리 나라에 불법 침입했다.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6ㆍ25 남침으로 일단 후퇴했던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 도망치는 북한군을 쫓아 38선을 넘어 백두산 근처까지 이르러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으나, 중공군의 침입으로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소련군, 헝가리 반소봉기 진압 (1956.11.04)
1956년 오늘, 소련 탱크들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포격을 가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건물들은 무너지고 거리는 온통 총성과 공포로 가득 찼다.열흘전인 1956년 10월 23일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헝가리 반소민주화 봉기. 시위가 헝가리 전역으로 번지자 소련은 천여 대의 탱크를 앞세워 무력진압을 단행했다. 소련군의 공격으로 만 여명에 달하는 헝가리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3만 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반소 민주화봉기가 진압된 뒤 헝가리에는 소련의 지지를 받는 카다르정권이 들어섰다. 헝가리의거 이란 학생들 미국 대사관 인질극(1979.11.04)1978년 들어 팔레비 국왕에 대한 반발이 이란 곳곳에서 거세게 몰아쳤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등은 연일 팔레비의 퇴진을 요구하며 데모를 벌였고, 평생의 정적 호메이니도 망명지에서 총궐기를 촉구했다. 결국 팔레비가 1979년 1월에 도망하고 2주후 호메이니가 망명, 15년 만에 귀국함으로써 이란에 불어닥친 이슬람혁명도 결실을 맺었다.혁명후 이란 전역이 반미(反美)로 급선회한 것과는 달리 이란 정부 일각에서 미국과의 긴장 완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무렵인 1979년 11월 4일, 400여명의 과격파 학생들이 이란 내 미국 대사관에 난입, 70여명의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삼았다. 직접적으로는 10월에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팔레비의 이란 송환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미국과 접근하려는 이란 인사들에 대한 견제이기도 했다.미국은 미국내 이란인 추방과 이란인 자산동결, 이란산 석유수입금지 등으로 맞서며 한편으로 인질구출 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하는 바람에 더욱 궁지로 몰렸다. 이는 카터의 재신임 실패로 귀결됐다. 이미 석방된 13명의 흑인·여성을 제외한 인질 52명은 알제리의 중재로 444일 만인 1981년 1월 20일 전원 석방됐다.
● [1979년] 이란 학생들 미국 대사관 인질극
눈을 가린 채 이란주재 미국대사관 앞에 모인 군중들에게 끌려가는 인질들.
1978년 들어 팔레비 국왕에 대한 반발이 이란 곳곳에서 거세게 몰아쳤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등은 연일 팔레비의 퇴진을 요구하며 데모를 벌였고, 평생의 정적 호메이니도 망명지에서 총궐기를 촉구했다. 결국 팔레비가 1979년 1월에 도망하고 2주후 호메이니가 망명, 15년 만에 귀국함으로써 이란에 불어닥친 이슬람혁명도 결실을 맺었다.혁명후 이란 전역이 반미(反美)로 급선회한 것과는 달리 이란 정부 일각에서 미국과의 긴장 완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무렵인 1979년 11월 4일, 400여명의 과격파 학생들이 이란 내 미국 대사관에 난입, 70여명의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삼았다. 직접적으로는 10월에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팔레비의 이란 송환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미국과 접근하려는 이란 인사들에 대한 견제이기도 했다.미국은 미국내 이란인 추방과 이란인 자산동결, 이란산 석유수입금지 등으로 맞서며 한편으로 인질구출 작전을 펼쳤으나 실패하는 바람에 더욱 궁지로 몰렸다. 이는 카터의 재신임 실패로 귀결됐다. 이미 석방된 13명의 흑인·여성을 제외한 인질 52명은 알제리의 중재로 444일 만인 1981년 1월 20일 전원 석방됐다.
●성철 스님 열반(1993.11.04)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이 1993년 오늘 경남 합천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자들에게 "참선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앉은 상태에서 열반했다.성철 스님은 한국 근대 선불교를 중흥시킨 고승이다. 속명은 이영주. 191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출가하여 해인사에서 득도하였다. 속세와 관계를 끊고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한 승려로 알려져 있다.16년간 생식을 했으며 대구 파계사에서 행한 8년간의 장좌불와(눕지 않고 앉아서만 수도하는 것)로 유명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남긴 성철 스님의 핵심 사상은 '한번에 깨닫는다'는 '돈오돈수'이다.
● [1995년]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질 들뢰즈 자살
철학사의 비주류를 통해 주류를 전복시키려 했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질 들뢰즈(70)가 1995년 11월 4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자살했다. 들뢰즈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은 `들뢰즈붐`이 일기 시작하던 시점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1925년 파리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출생한 들뢰즈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파리 8대학 철학교수를 지냈다. 교수시절 그는 철학, 문학, 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1987년 은퇴한 이후에는 집필과 방송활동에 관여해왔다.
유럽에서 그가 유명해져 논쟁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은 1972년. 펠 릭스 가타리와 함께 정치학과 정신분석의 상호관계에서 현대적 삶을 조명한 `안티 오이디푸스:자본주의와 정신분열`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인간의 욕구를 개인적인 것으로 보는 기존의 정신분석학에 반기를 들고 모든 욕구는 `사회적`임을 논증했다. 니체의 `안티 크리스티`가 19세기의 고정관념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기념비였다면, `안티 오이디푸스`는 니체주의적 틀 안에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종합, 20세기의 고정관념을 뒤엎은 대저로 평가받고 있다.
●이스라엘 라빈 총리 피살
1995. 11. 41995년 11월 4일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텔아비브에서 중동평화회담 지지 연설 후 극우 유대인 청년에게 저격을 당해 피살되었다. 두 번에 걸쳐(1974~77, 1992~95) 이스라엘의 총리를 지낸 라빈은 1953년 영국 참모대학을 졸업하고, 1964년 이스라엘 참모총장이 된 후 속전속결 전략으로 6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1968년 주미 대사로 파견되어 미국에 있을 때 닉슨 행정부를 비판했으며, 중동 평화를 위해 아랍 영토로부터 이스라엘이 철수할 것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강경론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1973년 노동당원으로 의회에 진출했고 1974년 노동부장관이 되었다. 1974년 4월 메이어 총리가 사임하자, 그해 6월 이스라엘 본토 태생으로는 최초로 이스라엘의 제5대 총리가 되었다. 1975년 이집트 대통령과 협정을 맺음으로써 이스라엘은 시나이 유전과 전략거점에서 철수했고, 그 대신 이스라엘 상품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1994년 10월 중동 평화에 대한 공로로 Y. 아라파트, 이스라엘의 외무장관 S. 페레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95년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질 들뢰즈 자살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질 들뢰즈(70)가 1995년 11월 4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자살했다. 들뢰즈의 갑작스런 자살 소식은 `들뢰즈붐`이 일기 시작하던 시점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1925년 파리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출생한 들뢰즈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파리 8대학 철학교수를 지냈다. 교수시절 그는 철학, 문학, 과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다. 1987년 은퇴한 이후에는 집필과 방송활동에 관여해왔다.
유럽에서 그가 유명해져 논쟁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은 1972년. 펠 릭스 가타리와 함께 정치학과 정신분석의 상호관계에서 현대적 삶을 조명한 `안티 오이디푸스:자본주의와 정신분열`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들뢰즈는 이 책에서 인간의 욕구를 개인적인 것으로 보는 기존의 정신분석학에 반기를 들고 모든 욕구는 `사회적`임을 논증했다. 니체의 `안티 크리스티`가 19세기의 고정관념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기념비였다면, `안티 오이디푸스`는 니체주의적 틀 안에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종합, 20세기의 고정관념을 뒤엎은 대저로 평가받고 있다. 1605년 로마 카톨릭의 옹호자였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 11월 5일에 영국 국회의사당 지하실에 폭약을 설치하여 제임스 1세와 국회를 폭파시키려 했던 음모가 발각되어 체포됨
▶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 열반 (1993)
1993년 오늘, 조계종 제6대 종정을 역임한 성철 스님이 82살의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합천 해인사에서 거행된 다비식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몰려들어 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켰봤다.성철 스님은 해인사 초대방장을 지낸 한국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었다.열반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유명한 법어는 남기기도 했다.
성철 스님 열반 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성철 스님 생가가 복원되었다.생가터에는 기념관과 동상 그리고 겁외사라는 사찰도 건립돼 2001년 3월 문을 열었다.
▶ 소련군, 헝가리 반소봉기 진압 (1956)
1956년 오늘 ! 소련 탱크들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포격을 가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다페스트의 건물들은 무너지고 거리는 온통 총성과 공포로 가득 찼다.
열흘전인 1956년 10월 23일부터 격화되기 시작한 헝가리 반소민주화 봉기 !
시위가 헝가리 전역으로 번지자 소련은 천여 대의 탱크를 앞세워 무력진압을 단행했다.
소련군의 공격으로 만 여명에 달하는 헝가리 국민이 목숨을 잃었고 3만 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반소 민주화봉기가 진압된 뒤 헝가리에는 소련의 지지를 받는 카다르정권이 들어섰다.
▶ 레이건, 40대 대통령 당선 (1980)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 로널드 레이건 ! 1980년 오늘 예순 아홉 살의 나이로 40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레이건은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에 찬사를 보내는 선거유세 작전을 폈다. 그는 카터의 41%에 비해 51%의 압도적인 지지로 승리를 거뒀다. 라디오 아나운서를 거쳐 영화배우로 활약했던 레이건. 카터는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미 국민들은 레이건을 선택했으며 나는 이 결정을 받아 들인다' 고 말했다.
▶ 이집트 원유 저장탱크 폭발 (1994)
이집트 남부 드룬카 마을 ! 1994년 오늘 드룬카 마을에 최악의 재난이 닥친다. 유 저장 탱크가 벼락에 맞아 마을 전체가 온통 화염에 휩싸인다. 경찰과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강한 바람과 원유가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로 진화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넋을 잃은 채 울부짓는 드룬카 마을 사람들!화재로 인한 사망자만 5백 명에 달했다. 마을은 순식간에 숯덩어리로 변했고 5천 여명의 마을 주민들은 이웃마을 사원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고통을 견뎌야 했다.
▶ 트루먼 시대 종료 (1952)
2차대전 후 미국을 이끌어 온 트루먼 대통령 ! 1952년 오늘 ! 아이젠하워가 34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투르먼 시대는 막을 내린다. 1934년 민주당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정계의 길에 들어선 트루먼 ! 트루먼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사망하자 미국의 33대 대통령이 됐다. 1945년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 ! 트루먼이 대통령으로서 결정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트루먼은 1948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메카시 선풍 등으로 통치력이 악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 국민들은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트루먼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참고> 성철 스님 입적(1993.11.04)
http://www.knnews.co.kr/news.asp?cmd=content&idx=595378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1461&yy=2005
<참고> 투탕카멘 무덤 발견(1922.11.04)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9046&yy=2006이 게시물을..
오늘의 관심뉴스는 연예인의 기부에 관한 기사입니다. 우리에게 잘알려지고 부담없는 남자 MC 유재석씨가 8년동안 기부를 해왔으나 알려지지 않도록 요청했다고 합니다. 금액이 적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오른 손이 한일 왼손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 인지 모르지만 선행을 베푸시는 유재석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도 불우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많이 안겨주시는 훌륭한 MC가 되어 주시기를 바래봅니다. 수고하세요~---오-늘-의--관-심-뉴-스--'국민MC' 유재석 남몰래한 선행 뒤늦게 알려져 감동 [스포츠칸 2008.11.03 14:42:12]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국민 MC’ 유재석의 남몰래한 선행이 뒤늦게 밝혀져 감동을 주고 있다.
8년전부터 지금까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를 해왔던 것. 이같은 사실은 최근 최근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2008 꿈을 담은 모금함 무지개 상자 캠페인’(이하 무지개 상자 캠페인) 포스터에 박명수, 박경림 등 유명 연예인과 함께 유재석이 모델로 나서면서 밝혀졌다. 이번 모델은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는 3일 한 언론매체와의 전화통화에서 “유재석이 8년전 재단 출범 당시부터 기부문화 취지에 공감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기부를 해왔다”며 “이런 인연으로 유재석에게 포스터 모델로 나서줄 것으로 부탁했고 유재석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며 일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그간 유재석의 기부 내역에 대해 물음에 “유재석이 자신의 기부 내역에 대해 외부에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기부를 해서 더 이상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번 ‘무지개 상자 캠페인’ 포스터에는 유재석뿐 아니라 김성은, 박경림 등을 비롯한 연예인과 최은경 아나운서,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총괄이사,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만화가 허영만 등이 함께 했다. 사진은 조선희 작가가 촬영했다. 이들 역시 아름다운재단에 오랫동안 기부문화에 동참한 것이 인연이 돼 포스터 촬영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스포츠칸 온라인 뉴스팀>-ⓒ 스포츠칸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