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충무공은 출진하지 않자 선조는 왕명을 거절했다며 이충무공을 투옥하였다고합니다.
그러나 조정 중신들의 반대로 백의종군으로 형이 낮쳐줬다고합니다.
하늘에서 내린사람 충무공..
이충무공은 항상 큰전투가 있기 전에 꿈에 신령이 나타나 대승을 할것이라며 알려주었습니다.
중국같은경우 군신인 관운장이 전투에서 승리를 예측해주는 일은 있어도 신령이 알려주는 일은 상당히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충무공은 그런일을 항상 큰전투가 있기전에 나타나 말해주었다고하니 보통사람은 아닌것 같다라는 판결이 났습니다. 신령이 꿈에 나타났다는것은 난중일기에서 보입니다.
거북선의 등껍질의 재질은 어떤것인가..?
앞서 본문내용에 있지만 이점에서 상당히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엄청난 무기를 단하루만에 만드는 엄청난기술력,그리고 장부나 난중일기의 예기, 이 내용들은 거북선의 등껍질이 무쇠가 아니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일본역사서에 보면 등껍질이 무쇠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일본형 거북선까지 나오게됬는데 일본은 거북선의 등껍질을 무쇠로 생각하니 일본형 거북선도 물론
무쇠로 만들었을것입니다. 그당시 일본의 기술은 그릇조차 나무로 만든 그릇이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일본이 그렇게 기술력이 좋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현재로도 하기 힘들 일을 말입니다.
또한가지 거북선의 등껍질이 무쇠가 아니다는 가설중 하나인데요 일본무기중에서 귀갑차라는것이 있는데
검차와 비슷한것으로 철로만든 수레에 사람이 타고 총을 쏘아 대는 병기인데요. 귀갑차의 귀는 거북귀 입니다
이를 보아 일본은 거북선의 등껍질이 철이다 라는 착각할 가능성도있습니다.
이런 가설들을 종합해보면 나무로 만든 등껍질위에 아주 얇은 철판이 깔려있는 거북선이 나오는데요
우리가 보통생각하는 거북선과 많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가능성이 있다고봅니다.
일본은 당시 배에 화포가 없었 조총으로만 상다했기에 거북선의 등껍질을 관통할수 없었을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일본의 배에 화포가 있었더라면 나무위에 얇은 철판을 언진 거북선은 그대로 구멍이 뚤렸을것입니다.(당시 일본은 왜란 말에는 부산포에서 노획한 화포를 배에 장착했지만 사용법을 몰라 몇번써면 망가졌다고합니다. 그정도로 일본은 그당시 기술력이 떨어졌음을 알수있습니다.)
일본이 배에 화포를 장착하고 주로 화포로 공격했다면 거북선의 등껍질은 100% 무쇠로만 만든 등겁질이 될것입니다만 기록이나 전투장면을 그린 그림등을 보면 일본에 배에 화포가 장착되어 주로 화포로 공격했다는 내용은
보기 드믑니다.
처니가 연구를 통해 알아낸 사실인데 왜란때 미스터리가 상당히 많더군요
원균이 100여척의 배를 싸우지도않고 가라앉혔다는등 신립장군님이 문경세제가아닌 탄금대로 옴겼다는등
이 이하의 글은 따른분께서 남긴 보충 설명부분입니다.
이 댓글을 쓰는 이유는 처니님의 글에 조금더 첨가해야 할 부분을 이야기 하는것입니다
처니님의 글에 전혀 태클걸 생각없습니다 내용의 대부분이 맞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최초의 거북선 발명자에 대한 이야기는 신봉승씨가 쓴 책 조선왕조500년
이란 책에 보면 제 28권 왜란편에 나와있구요
두번째 적탄에 맞아 사망한거라고 보긴 힘듭니다
그이유는 이순신장군은 대장군선을 타고있었겟죠 근데 대장군선을
앞에다 몸빵하듯 내밀었을린 절대 없었단 말입니다.
따라서 이순신장군의 은신설 자살설등의 가설이 나오게 된것입니다.
세번째 최초의 철갑선... 이이야기는 좀... 제가 아는 내용은 없으나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말한바에 그대로 따르자면 분명히 철갑선은 아니라고
봅니다.
네번째 지상과 다른 수군의 체계상 우리 조선의 수군은 철저하게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육상관 달리 수시로 왜구들의 침입을 받았으며 따라서 이걸 막기위해서
철저히 훈련된 수군은 육군과 달리 승리를 할수 잇었던 것입니다.
이순신장군이란 구국의 성웅 혼자 이루어낸 승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절대 이순신장군을 깎아 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다음 내용들은 제가 아는 그대로 이기때문에 더이상 드릴말씀은 없구요
한가지 가토의 거짓상륙은.. 신봉승씨의 책중에 29권 타국에서 중
왜군이 부산앞바다에 3일이나 머물렀으나 이순신이 치지 않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가만히 따져보면 말이 되질않습니다.
그당시 해군력으로도 3일이면 대마도에서 부산까지 충분히 온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순신장군이 눈시퍼렇게 뜨고 있는 부산앞바다에 가토가 미쳤다고
나잡아봐라 하고 있었겟습니까? 그걸아는 선조가 일부로 보냈다고밖에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조는 애초부터 죽이려 했던겁니다.
그후 이순신 장군은 죽고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중 두명은 장군이 되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완은 정묘호란때 의주부윤으로 있다가 전사한걸로
되어있구요 손자 이봉상은 청주에서 이인좌의 난때 전사한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그의 조카 손자 모두 국가와 민족과 백성과 사직을 위해
목숨을 다 바쳤다는 사실만 잊지 않고 가슴속 긍지로 남겨두면 되겠습니다
허허허 이 순신은 위대하다라는 말에는 공감 그러나, 이미 당시에 돌아갈 수도 없는터, 지금와서 이런 저런 학설로 그 분을 다 알수는 없는 것이고, 확실한 것은 당파가 극에 달하고 관료우선 중시정책에 따라 빽그라운드 없는 충무공이나 일반 의병장들만 논공행상에 빠진.. 참으로 미운 공자넘때메
충무공이 힘이 약하다고?? 그건 말도 안돼져.. 약한분이 폼으로 큰칼을 옆에차고 깊은 시름을... 그거도 한 밤에...(이건 충무공 본인의 고백임) 배만드는 기술자가 아님염 다시 말해 해군과는 거리가 먼.. 무기 개발자라고 표현함이 오를듯.. 그 기술을 철갑선에 접목시킨거구여.. 활잡이는 아닌데 왜 활을??
배타면 총은 없고 활ㅃ이라야 장거리 공격가능.. 기본이구여..일본배는 전투선이 아니구 상륙및 운반선임. 그리고, 그 넘들은 총만 믿은거져 ㅋㅋ 당연히 해전은 준비된 사수로 무장된 우리가 유리..육군은 준비된자에게 당한 신립의 부족한 용병술 때문이었구여.. 뛰어난 장수는 분명하나 아무리 항우장사면 뭘해여..
장량보다 못한 것인디... 그러나 이 순신은 이이의 백만 양병설에 동감한 걸로 그리고 준비한 무인으로 주장하는 학설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료는 월탄 선생님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보시고 민초들의 험한 왜란당시의 피폐함을 살펴보면.. 빨리 이해 되겠져. 모든 진실들이....
첫댓글 음~^^ 자~알~ 읽었어요~!
거북선은 나대용과 우치적 등이 만들지않았나요? 이순신도 손놓고 앉아있진 않은걸로 아는데..
보충이 많이 필요하겠네요.. 아래에 답글씁니다..
길어서 못읽겠네..
"칼의 노래"란 소설을 읽어보시오~^^
허허허 이 순신은 위대하다라는 말에는 공감 그러나, 이미 당시에 돌아갈 수도 없는터, 지금와서 이런 저런 학설로 그 분을 다 알수는 없는 것이고, 확실한 것은 당파가 극에 달하고 관료우선 중시정책에 따라 빽그라운드 없는 충무공이나 일반 의병장들만 논공행상에 빠진.. 참으로 미운 공자넘때메
양반중시 정책(유학 사상)으로 우리의 순수 선조분들의 위업이 땅에 묻혀버린 시대적 불운이 통탄할뿐, 그리고 뭔 학자입네하고 떠들어싸도, 학설같고는 정확한 고증이 될 수는 없져. 백문이 불여일견인데.. 타임머신을 빨리 개발해야...
충무공이 힘이 약하다고?? 그건 말도 안돼져.. 약한분이 폼으로 큰칼을 옆에차고 깊은 시름을... 그거도 한 밤에...(이건 충무공 본인의 고백임) 배만드는 기술자가 아님염 다시 말해 해군과는 거리가 먼.. 무기 개발자라고 표현함이 오를듯.. 그 기술을 철갑선에 접목시킨거구여.. 활잡이는 아닌데 왜 활을??
배타면 총은 없고 활ㅃ이라야 장거리 공격가능.. 기본이구여..일본배는 전투선이 아니구 상륙및 운반선임. 그리고, 그 넘들은 총만 믿은거져 ㅋㅋ 당연히 해전은 준비된 사수로 무장된 우리가 유리..육군은 준비된자에게 당한 신립의 부족한 용병술 때문이었구여.. 뛰어난 장수는 분명하나 아무리 항우장사면 뭘해여..
장량보다 못한 것인디... 그러나 이 순신은 이이의 백만 양병설에 동감한 걸로 그리고 준비한 무인으로 주장하는 학설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료는 월탄 선생님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보시고 민초들의 험한 왜란당시의 피폐함을 살펴보면.. 빨리 이해 되겠져. 모든 진실들이....
저.... 100만이아니라 10만인데..요;;;
이것 외에두 우리 국사교과서에 오류가 정말 많습니다 ^^ 일일이 열거 하려면 시간이 오래걸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