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비가 오는 중에도 삼일에 한번은 비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지 보름인데 비오는 날은 물론이고 그친 날도 해가 나지 않아 날씨가 꾸무럭했다. 이웃에게 필요하면 캐 가라고 했으나 손도 대지 않았다. 죽은 풀이 흉측하게 서 있는데다 풀밭에서 마늘 캘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리라.
<하긴 주인이 싫은 걸 이웃들이라고 싫지 않겠어. 썩든 말든 먹을 만큼은 캤으니 그냥 버려야겠다.>
부르릉 탕탕탕탕
시동줄을 당기니 예초기의 엔진음이 경쾌했다. 풀의 시체들을 베어넘겼다. 중간에 탁탁 나뭇가지도 베어졌다. 두더지 다니는 곳에 효과가 있다는 신나무 말뚝이 베어지는 소리였다. 두더지와 풀에게 된통 당한 꾼은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잡았다.
풀을 벤 꾼이 이번에는 콩 묘판을 향했다. 이식시기를 놓쳐 콩들이 많이 자라 있었다. 높이가 30센티나 되니 장마비를 받아먹고 밀식상태로 서 있었다. 날을 갖다대니 반이 뭉텅이로 잘려져 나갔다.
그리하여 콩은 이식되기 전에 일차 순지르기가 되었다. 후덥지근했으나 햇빛이 짱짱하게 내리지 않아 콩심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띠리링
“제초제를 쳐봐야겠어요. 함께 하실 수 있죠?”
목사였다. 먼젓번에 교인들과 함께 풀을 쥐어뜯다 만 곳이 많이 남아있었다. 이틀이 멀다하고 내리는 장마비에 자라는 풀을 보며 처음에는 전전긍긍하다가 콩포기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랫밭은 다행히 전년에 담배밭 하느라 씌운 비닐 덕분에 풀이 심하지 않아 예초기로 다스릴 수 있었으나 위쪽에 길게 누운 밭은 대책이 서지 않았었다. 목사는 자포자기하던 꾼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농약의 꿈을 사로잡았었다. 그러나 교우들의 협력을 받지 못하여 제초제라도 사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목사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주저앉았을 것이다.
“힘들어 내년에는 못하겠습니다.”
무농약 농사의 꿈을 집어던진 꾼이 체념하여 툴툴거렸다.
“백프로는 없어요. 힘들더라도 사역자가 앞장서서 끌고 가다 보면 교우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분무기에 고깔노즐 달아 제초제를 치고 있었다. 약제는 그라목손이었다. 목사는 수동식 등짐분무기를 지고 꾼은 엔진분무기였다. 바람부는 날씨라 그런지 고깔노즐로 살포하는데도 약제가 바람결에 콩포기 쪽으로 날아갔다. 약을 맞아 콩이 죽는다면 안하느니 못한 것이다.
<이거 안되겠다. 어쩌면 좋을까?>
“어디 봅시다.”
목사가 더듬거리더니 왼쪽편에 붙은 조절손잡이를 돌렸다.
“이제 쳐 보세요.”
약줄기가 바람타고 콩포기에 뿌려지던 것이 개선되어 있었다.
“이제 되었습니다. 잘 됩니다.”
기계치인 꾼은 목사의 도움을 받아 콩밭에 제초작업을 할 수 있었다. 약을 탈 때 함께 딸려온 작은 병에 든 약제를 따로 넣는 것이 불편했다. 자살용으로 그라목손을 마실 때 전착성분을 함께 마시지 않으면 회생의 가망이 더 높다하여 제조회사에서 일부러 전착제 성분을 따로 포장했다고 했다.
그라목손은 자살을 위한 약제로 유명해져 있었다.
풍수해를 당했거나, 빚에 찌들었거나, 괴로운 일을 당하여 삶을 포기해야 할 때 마시고 죽는 것으로 백프로 확실하고 저렴하게 택할 수 있는 농약이었다. 쥐약이나 맹독성 살충제, 살균제 등을 마셨을 때 병원에 옮겨져 위세척을 받으면 그들은 살아났다. 그러나 재수없게도 그라목손을 마신 사람은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파라코 성분이 체내에 들어가면 삼십분 안에 조직을 파괴하기 시작하여 근육을 나무 껍질처럼 단단하게 섬유질로 만드는 작용을 한다고 했다. 많이 마실 것도 없이 40씨씨(소주잔 한잔)에 팔팔하던 사람도 그라목손 성분이 폐조직을 서서히 굳게 하여 말기 폐암환자처럼 호흡곤란으로 일주일만에 고통스럽게 천천히 죽게 한다고 했다.
자살자가 고독성 살충제 대신 제초제를 택하는 이유는 풀 죽이는 약은 치사율이 낮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신다고 했다. 죽기 전에 생에 대한 미련은 갖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다. 한모금만 넘기면 세상 어떤 살충제 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하여 <죽음 100%>라는 것을 모르고 마시는 것이다. 파라코성분이 15분이내에 조직을 파괴하기 시작하는데 약을 마신 사람을 발견하여 병원에 옮기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넘어 병원에 도착하기 일쑤란다. 이미 망가진 몸에 위세척을 해봤자 죽은 아들 불알 만지기다.
약에는 특유의 색소를 진하게 섞는데 그라목손의 색소는 초록색이었다. 연한 초록은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는 색채라던데 초록색으로 경고색을 대신했으리라.
<경고색이라면 빨간 핏빛이 더 효과적일 텐데.>
농약관리청에서는 전착성분을 따로 만들도록 만든 이유라는게 자살하는 이가 약제를 조제해서 마시기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조제를 타서 마시지 않아도 백프로 골로 가는 것은 변함없다고 하니 그 제초제로 농사짓는 사람들만 골탕먹이는 꼴이었다. 파란 액체를 뿌리기만 하면 지긋지긋한 풀이 하룻만에 죽어 시원한데다 약값도 다른 약제의 반값이니 그라목손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인생이 힘들고 고된 이들이 자살을 선택하지만 이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금방 약먹고 죽으려 하는 이도 그의 푸념을 들어주고 동의해 주면 99%이상은 자살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전문상담을 하는 전문직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 맞다. 힘들기 보다는 외롭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거야. 약제를 따로 만들어 다른 농부들을 힘들게 하기 보다는 자살예방을 위한 전문가를 많이 양성하는게 어때? 그리고 행복한 나라건설을 서둘러야지 농사꾼들에게 피멍이 들게 하는 정책들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하지.>
이때 B카페에서 어떤 주제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초제와 화학비료 사용 이대로 좋은가?>
떡배라는 닉을 가진 이가 농약과 비료 덕분에 수확량이 증산되어 기아로부터 해방시켜 주었고 화학농약 성분 때문에 어떤 질환을 앓았다는 보고가 없으니 화학농약과 비료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친환경농사를 고집하는 이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식물체에 흡수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0.00001%라도 뿌리에 흡수되어 인체에 축적되면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친환경농사로 승부하지 않는다면 외국의 GMO농산물과 기계화 대량농산물의 저가 가격공세를 어찌 막아낼 수 있는가?>
떡배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친환경농사 쪽인 도고 쪽 양편으로 갈렸다. 꾼은 웃었다.
<누가 터지든 싸워 보라지. 다음 아고라도 아니고 어떤 결정이 나든 농정에 영향을 미칠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박터지게 싸울 필요가 뭐 있남.>
나중에는 논쟁이 아닌 갖은 개인적인 욕설로 전개되고 있었다. 카페란 곳이 그런 곳이었다.
양편이 다 흥분하고 있었다. 이들이 같은 장소에 있었다면 피떡이 될만큼 패싸움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회원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자 카페지기가 휴전을 제의한 후 그 게시판이 폐쇄되었다. 회원들간의 싸움을 조장하는 게시판의 존속은 필요없다는 취지였다.
신기했다.
약을 맞은 풀들이 삼십여분 만에 붉은 반점이 생기더니 죽음의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라코가 주성분이라는 그라목손은 맹독성 제초제가 분명했다. 이파리 넓은 것은 조금 더 걸렸지만 잎이 좁은 벼과 식물들은 약을 맞은 지 삼십분이 지나지 않아 갈색 죽음의 색깔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파라코 성분은 약을 치자마자 식물에 작용하여 풀을 죽이기에 농민들이 애용하는 약제였다. 땅에 닿으면 즉시 흙을 단단히 끌어안고 불활성화 되어 성분이 완전히 분해되는데 오년이상 걸린다고 했다.
<그라목손을 제조하는 회사에서는 파라코의 분해기간이 오래 걸리지만 흙을 꽉 끌어안아 식물체에 흡수되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는 절대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그라목손이라는 제초제를 살포하면서 꾼은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풀밭으로 만드느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다른 선택사항이 없을 것이었다. 이미 이천평의 밭을 백만원의 임차료를 주기로 했기에 풀과 함께 기르기엔 도지값도 뽑을 수 없기에 다른 선택사항이 없었다. 저녁때가 되니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간식을 많이 먹었는데도 배고픈 것이 초록색 액체만 보면 허기를 느끼는 꾼의 특이한 습성도 한몫 했으리라.
저녁때가 될 때까지 목사와 함께 작업한 밭이 사분의 일 가량으로 줄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저 혼자서 풀들을 처치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
자기 농사도 아닌 교회농사였지만 목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고맙긴요. 주님의 일을 하는 것에 권사님이 제게 감사하실 필요없지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데 일손이 미치지 않는 것을 목사님께서 해결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권사님도 수고하셨어요. 나머지는 제가 나중에 슬슬 쳐보지요.”
원래 목회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교인들의 신앙을 독려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꾼이 협력자를 구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일이 생기니 목사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깝네요. 좋은 옻나무를 모두 잘라버렸네요.”
꾼이 영수형의 밭에서 고라니 방지용 울타리를 손질하고 있을 때 과수원 노인이 와서 던진 말이었다. 일전에 옻 때문에 자른 옻나무들이 갈색으로 바싹 말라있었다. 자를 때 손가락에 묻은 검은 옻진 때문에 일주일 정도 고생했었다.
“밭둑에 저 녀석들 때문에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모두 없애 버렸지요. 헤헤.”
“요즘 옻나무를 사러 다니는 양반들이 있더군요. 어제보니 손목 굵기만한 나무를 오만원에 사가더군요. 즙을 내어 건강음료를 만든다던데 나는 옻나무가 없어서 팔지 못했지요. 저 위에 내 땅에 심겨져 있는 옻나무는 건드리지 마시오.”
<아뿔싸, 그런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오십만원은 벌 수 있었을 텐데. 재운이 따르지 않는군.>
꾼의 괜한 후회를 씻어 내려는지 장마비가 힘차게 내리고 있었다.
76부에 계속합니다.
첫댓글 그라목손 .....보기만해도 무섭네요.필요악인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넓은 농장을 가진 농부님들은 제초제 쓰지 않으려 해도 힘들죠.
초록색의 역한 냄새를 풍기는 그라목손이 무서운 독약이지요
저도 텃밭농사라고 한 200여평 지어보니.. 장마에 크는 풀들을 정말 당해낼 수가 없더라구요
시골서 농사짓는 분들이 정말 대단 하신거더라구요 ㅎㅎㅎ
농사의 기본은 풀을 없애는 것이지요.
싹이 작을 때 얼른 없애야지 그렇지 않으면 약간의 비에도 작물보다 더 잘 자라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