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을유년 하안거가 해제됐다. 이날 조계총림 송광사도 하안거 해제일을 맞아 해제법회를 열고 또 다른 수행을 위한 한철 수행을 마감했다.
90일 동안 자기와의 싸움을 마친 35명의 수행자들은 또 다른 정진을 위해 산문을 나섰다. 선방에서 못 다한 공부를 챙기기 위해, 그 동안 찾아 뵙지 못한 은사 스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스님들의 빈자리에는 수행자들의 소임을 알리는 명단인 ‘용상방’이 여전히 남아있다.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원철 스님은 결제부터 해제일까지 선방에 붙어있는 용상방의 숨은 의미를 “‘결제’가 모여서 공부하는 것을 뜻한다면 ‘해제’는 흩어져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수행자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나름대로의 소임을 갖고 가행정진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용상방의 참 뜻”이라고 해석했다.
용상방은 스님들의 대중 소임 역할을 적어놓은 게시판이라 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의 ‘용상’은 물에서 으뜸인 용과 뭍에서 으뜸인 코끼리에 수행자를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용상방은 용상에 해당하는 수행자들의 명단을 말한다.
하안거 결제에 앞서 수행자들은 자기가 머물고자 하는 사찰에 허락을 받는 입방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방부(榜附) 들인다’ 라고 한다. 이는 용상의 덕을 성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올린다는 ‘용상방에 이름을 붙인다’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즉 용상방은 안거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방부를 들인 수행자들이 용상이 되기 위해 수행 정진할 것은 물론, 맡은 소임을 소흘히 하지 말라는 ‘경책’과도 같다.
혜능 스님(해인율원장)은 “용상방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수행자들의 소임 분배를 통해 대중생활을 원할하게 하고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용상방에 이름이 붙여진 스님들의 소임은 어떻게 배분될까.
혜거 스님(금강선원장)은 “조실이나 유나는 그 선원의 최고의 덕을 지닌 스님이 맡으며, 청소나 공양주 같은 ‘낮은 소임’은 법납이 낮은 스님이 맡는다”며 “어른 스님인 조실이나 중간 스님인 입승, 찰중은 낮은 소임을 자청해 맡을 수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하심’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특히 혜거 스님은 “한 소임을 여럿이 맡는 경우는 있으나, 한 사람도 소임에 빠지는 경우는 없다”며 이는 안으로는 공부하고 밖으로는 도량을 수호하면서 대중을 봉양하라는 뜻이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행자들의 소임 배분이 겉으로는 타율적으로 보이지만 자율적으로 맡는 경우가 많고, 그럴 경우 스스로 대중들과 한 ‘약속’이기 때문에 소임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법납 순으로 또는 자율적으로 맡은 소임이 법명과 함께 용상방에 오르게 되면 큰방에서 앉는 자리가 정해진다.
큰방 자리 가운데를 중심으로 오른쪽을 청운 또는 청산, 왼쪽을 백운이라 한다. 청산은 선원에 상주하는 스님들이, 백운은 한 철 살
다 떠나는 스님들이 앉는다. 자리는 선방 경력과 상관없이 법납 순으로 앉는다.
오늘날 선원에는 조실 방장을 비롯해 수좌, 선덕, 유나 등의 선원 어른 스님들이 수행자들의 안거를 지도한다. 이 스님들의 지도 아래 선방 스님들의 반장격인 입승, 대중의 잘못을 살펴 시정하는 찰중 등 현재 우리나라 용상방 직책은 모두 80여종에 이른다.
혜거 스님은 “용상은 세속에서 임금의 자리를 말하며, 불교에서는 법왕의 자리를 말하는데, 용상방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바로 법왕 즉 부처가 되기 위해 용맹정진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라고 강조했다. 유남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