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 받은 부동산을 수탁자가 신탁자 동의 없이 임의로 처분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최근 계약명의신탁관계의 매도인이 악의인 경우 수탁자의 처벌여부와 관련한 의미 있는 대법원판결이 선고되어, 관련 쟁점을 모두 정리해보게 되었다.
부동산실권리자등기명의에 관한법률 제4조(명의신탁약정의 효력) 제1항은 “명의신탁약정은 무효로 한다”고 하고, 제2항은 “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로 한다. 다만,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어느 한쪽 당사자가 되고 상대방 당사자는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면서, 제3항은 “제1항 및 제2항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였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은 “제1, 2항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제3자의 범위를 선의에 국한하지 않고 “악의”의 제3자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입법에 대해서는 입법과정에서부터 ‘악의의 제3자까지 포함하는 것은 법감정에 부합되지 않아 부당하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탈법인 신탁행위에 따른 소유권상실의 위험을 신탁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이 명의신탁근절에 더 바람직하고, 실제 소송에서 선 · 악의 입증이 언제나 용이하지는 않아 선의의 제3자만 보호할 경우 자칫 거래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더 중시하여 제3자의 선의 · 악의를 불문하는 취지로 입법이 마련된 것이다. 그 때문에 수탁자의 임의처분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형사처벌 여부가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명의신탁유형별로 분석해보기로 한다.
우선, 2자간 등기명의신탁이다. 이 경우에는 등기명의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소유권은 신탁자에게 있어 명의신탁 받은 부동산을 수탁자가 임의로 처분하면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한다. 대법원 1999. 10. 12. 선고 99도3170 판결 【사기·횡령】 에서도, “ 신탁자가 그 소유 명의로 되어 있던 부동산을 수탁자에게 명의신탁 하였는데 수탁자가 임의로 그 부동산에 관하여 근저당권을 설정하였다면 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하고, 그 명의신탁이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법률 시행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하였다.
다음은, 3자간 등기명의신탁관계인데, 2자간 등기명의신탁과 같은 논리로 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될 수 있다. 대법원 2001. 11. 27. 선고 2000도3463 판결 【횡령】에서도 “부동산을 그 소유자로부터 매수한 자가 그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아니하고 제3자와 맺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매도인으로부터 바로 그 제3자에게 중간생략의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경우, 그 제3자가 그와 같은 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그 명의로 신탁된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였다면 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하고, 그 명의신탁이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법률 시행 전에 이루어졌고 같은 법이 정한 유예기간 이내에 실명등기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그 명의신탁약정 및 이에 따라 행하여진 등기에 의한 물권변동이 무효로 된 후에 처분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계약명의신탁관계인데,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이 “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로 한다. 다만,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어느 한쪽 당사자가 되고 상대방 당사자는 명의신탁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여, 계약명의신탁관계에서의 매도인이 “선의”인 경우에는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을 무효로 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유효”로 하여, 그 때문에 매도인이 “선의”인 경우에는 해당 부동산소유권은 수탁자에게 있게 되어 횡령죄성립이 부정되어왔다. 이 경우 수탁자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대법원 2006.9.8. 선고 2005도9733 판결 【횡령】등). 아울러, 매도인이 선의인 계약명의신탁관계에서 수탁자는 신탁자에 대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배임죄의 죄책도 인정되지 않는다( 대법원 2004. 4. 27. 선고 2003도6994 판결 【업무상배임】등). 그 때문에, 3자간 등기명의신탁으로 수탁된 부동산을 임의처분할 경우에는 횡령죄가 성립하는 반면, 계약명의신탁으로 등기된 부동산의 처분은 횡령죄성립이 부정되고 있어, 처벌여부를 둘러싸고 명의신탁의 유형이 둘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 2002. 2. 22. 선고 2001도6209 판결 【횡령】, 대법원 2010.11.11. 선고 2008도7451 판결 【무고·횡령】 등).
한편, 계약명의신탁 중 매도인이 “악의”인 경우 수탁자의 처벌여부는 많은 논란이 되어오다가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12. 11. 29.선고 2011도7361 특정 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법률위반(횡령) 판결에서 대법원판결로서는 첫 판단을 내리게 되었는데, 처벌가능성을 부정하였다. 피해자를 명의신탁자로 하여 횡령으로 공소제기된 사안에서 횡령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였지만, 판결이유에서 명의신탁자는 물론 매도인에 대한 횡령, 배임죄 성립을 모두 부정하고 있는 점에 특징이 있다. 자세히 소개키로 한다.
“--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가 이른바 계약명의신탁 약정을 맺고 명의수탁자가 당사자가 되어 명의신탁 약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유자와 부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그 매매계약에 따라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명의수탁자 명의로 마친 경우에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라 한다) 제4조 제2항 본문에 의하여 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당해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되므로(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7도2168 판결 참조), 명의수탁자는 부동산 취득을 위한 계약의 당사자도 아닌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에서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고, 또한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하여 매매대금 등을 부당이득으로서 반환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배임죄에서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대법원 2001. 9. 25. 선고 2001도2722 판결, 대법원 2008. 3. 27. 선고 2008도455 판결 등 참조).
한편 위 경우 명의수탁자는 매도인에 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말소의무를 부담하게 되나, 위 소유권이전등기는 처음부터 원인무효여서 명의수탁자는 매도인이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로 그 말소를 구하는 것에 대하여 상대방으로서 응할 처지에 있음에 불과하고, 그가 제3자와 사이에 한 처분행위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유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거래의 상대방인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명의신탁약정의 무효에 대한 예외를 설정한 취지일 뿐 매도인과 명의수탁자 사이에 위 처분행위를 유효하게 만드는 어떠한 신임관계가 존재함을 전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그 말소등기의무의 존재나 명의수탁자에 의한 유효한 처분가능성을 들어 명의수탁자가 매도인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에서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 또는 배임죄에서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원심은 그 채택 증거를 종합하여 심00이 천안시 서북구 00리 279-4 밭 2,922㎡(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 한다)를 매도하면서 매매계약 당시 실제 매수인은 이 사건 피해자이고 피고인은 피해자와의 이 사건 명의신탁 약정에 따라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그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뿐이라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사실인정을 한 다음, 명의수탁자인 피고인이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00농업협동조합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행위가 횡령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원심이 인정한 위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명의신탁 약정은 매수인 측의 명의신탁 약정 사실을 매도인이 알면서 명의수탁자와 계약을 체결한 이른바 ‘악의의 계약명의신탁’에 해당하여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인 명의로 마친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고 매도인인 심00이 그 소유권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 명의신탁자인 피해자에게 있음을 전제로 피고인이 그와의 관계에서 횡령죄에서의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원심은 위와 달리 피고인이 명의신탁자인 피해자에 대하여 이 사건 부동산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보아 이를 전제로 이 사건 횡령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