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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 문학동네 2022.01.18 |
장미의 이름은 장미』은희경 “분명히, 아름다움이 있어요”2022-02-14 l 조회 438
피부로 느껴지는 확연히 다른 기온. 눈에 들어오는 낯선 문자들. 그리고 귓가에서 웅성거리는, 알아듣지 못할 언어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 외국의 공항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느껴지는 감각들이 있다. 불안과 설렘이 반반씩 섞인 그 마음은 여행을 하는 동안 조금씩 다른 것으로 바뀌어간다. 나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들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과 나를 특정 국적과 인종, 여행자라는 위치에 가두는 편견에 대한 당황스러움으로 말이다.
은희경의 신작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은 뉴욕에 도착한 여행자가 낯선 배경 속에서 낯설게 반응하는 '나'를 관찰하고, 타인에 대한 다른 이해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그린 네 편의 소설을 담고 있다. 『중국식 룰렛』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은희경 작가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2014년에 출간된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처럼, 독립적인 4편의 소설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 소설집입니다. 처음부터 연작 소설로 계획하고 쓴 작품들인가요?
첫 작품을 쓸 때만 해도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쓰고 나서도 뉴욕 갔을 때의 이야기가 자꾸 떠오르고 내가 이 공간에 대해서 더 할 이야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세 편쯤 더 연작으로 써야겠다 생각했어요.
「장미의 이름은 장미」와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처음부터 두 편을 연결해서 쓰려고 했어요. 이혼한 남녀의, 하나는 여자 이야기, 다른 하나의 남자 이야기죠. 그때는 용서가 안되었던 어떤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보이는 이야기에요.
여러 장소 중에서 특별히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뉴욕은 가까운 사람이 살고 있어서 자주 갔던 도시에요. 그래서 그냥 스쳐지나가는 여행지라기보다는 살짝 발을 더 깊이 디딘 생활 감각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본다고 할까요.
이 소설집은 타인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지점에 대한 것이에요. 여행자가 단순히 어떤 낯선 곳을 체험하는 것에 멈추는 게 아니라, 낯선 곳에서의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삶의 다른 방식을 알게 되고 내 삶의 낯선 지점들도 떠올리게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은 한국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다 짧은 일탈에 대한 기대를 품고 뉴욕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막상 뉴욕에 와서는 드라마틱한 변화나 경험은 또 없어요.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인물들도, 또 독자들도 느끼게 되더라고요.
어떤 발견 같은 것을 쓰고 싶었어요.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낯선 곳에서 나를 객관화시켜 보니 나는 내가 알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세계가 나를 상처준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 식으로요.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아들이 엄마와 여행을 하는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보니 엄마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고, 「양과 시계가 없는 공장」에서는, 여기서는 그저 그렇지만 다른 환경에서 좀 다른 존재,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인물이 결국 자기 현실을 다시 보게 되고요.
여행이란 멀리 갔다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돌아온다는 것은 결국 '나'를 제대로 보는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여행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소설 속 인물들은 '여행자'로서 현지인들에게 환대와 친절을 받지만 그들의 삶에 조금 더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매몰차게 선 밖으로 밀려나요.
여행하면서 그런 경험들 있지 않나요? 이건 어떻게 보면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에요.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만, 그 약자가 자신과 동등해지면 갑자기 경쟁 상대로 보면서 내치는 그런 심리가 있잖아요. 누군가를 시혜적으로 대하다 그가 내가 가진 것을 침범해오면 냉정해지는 그런 거죠.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서는 조기 유학을 가서 현지에서 정착해 살아가는 민영과, 여행을 와서 민영의 집에 머물게 된 승아가 서로의 사고 방식 차이 때문에 부딪치는데요. 민영은 승아의 오지랖이 불편하고, 승아는 민영의 개인주의와 독립적인 성향이 서운하고요. 그런데 승아 입장에서 '너무 서구적인' 민영도 마이크나 다른 현지인들 사이에 있으면 그들 사이에서 소외감과 벽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승아와 민영이 서로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마이크와 민영 사이의 벽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우리는 이런데 저기는 이렇더라 그런 단순 비교가 아니라, 사회의 여러 층위에서 존재하는 여러가지 편견과 벽들을 보게 돼요. 그런 오해와 벽,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 세계의 어떤 냉정함 그런 것들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타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요.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수진은 자신에게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 마음 속에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영어가 서툰 수진과 마마두는 쉬운 단어로 짧은 단딥형으로 대화를 주고받아요. 그 직역투의 대화 읽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웃음). 초급 영어 회화라 굉장히 단순하고 어색한 대화지만, 높임말도 없고 에두르는 것 없이 직선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진은 해방감도 느끼는데요.
수진은 마마두와 깊은 관계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어가 없어서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을 어떤 면에서 해방감으로 느껴요. 좀 함부로 말해도 되는구나, 외국인이니까 괜찮아, 이런 생각으로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거겠죠.
마지막에 마마두와 수진이 함께 쓴 '우리의 미래'라는 작문은, 빈약한 단어와 단순한 문장으로도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줘요. 수진은 단순하고 틀에 박힌 글을 썼다면, 마마두는 문장도 단순하고 어휘가 풍부하지 않아도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글을 썼거든요.
마마두의 글은 좀 아름답게 쓰고 싶었어요. 마마두는 화려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 글을 건조하게 쓸 수밖에 없지만, 다정함이 느껴졌으면 했어요. 살짝 연애 감정을 담아서, 좀 애틋한 마음으로 써봤죠.
저는 제 자신을 일종의 사실주의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실을 제대로 보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고요. 그렇지만 이번 소설들에서는 각 작품마다 하나씩이라도 어떤 따뜻한 장면을 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서 승아와 민영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랄지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 눈 속에서 엄마에게 다가가는 장면 같은 것이요. 소설 전체에서, 주인공들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고 조금씩은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장미는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장미다, 라는 문구에서 나온 건데요.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요?
브루클린 식물원에 실제로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식물들을 작품 속 문구랑 같이 전시한 셰익스피어 가든이 있는데, 문학이 만든 언어가 실제 식물과 어울려서 많은 상상을 떠올리게 하죠. 그 장소를 쓰고 싶어서 셰익스피어 가든에 장미가 있었던가 생각하다가 딱 떠올랐어요.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장미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제가 이 소설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 그 문구에 잘 포착된 것 같았어요.
우리가 무언가에 어떤 식으로 이름을 붙이고 규정을 내리는 것에는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고 그런 것이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벽이 되죠. 사실 이름을 붙이는 것의 본질은 더 가까워지려는 마음이 있는 건데 말이죠. 사실 제목에 '장미'라는 말이 두 번이나 들어가니까 너무 감상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좀 걱정했는데, 그래도 셰익스피어가 쓴 문구라고 하니까 (웃음)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화자는 50대의 남성 소설가입니다. 앞의 세 작품은 모두 여성 화자였는데, 이 작품은 남성 화자로 한 이유가 있나요?
직업을 작가로 한 것은 우연히 뉴욕으로 여행을 가게 되는 설정을 해야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제가 작가로서 외국 행사에 참여하면서 생각했던 것도 있었거든요. 보면 진짜 내 작품이 궁금해서 나를 초청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에서 제가 '한국' 작가로 어떤 역할을 해주기는 바라는게 있다는 것이 보이는데, 그런 것에 대한 반발이 좀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화자를 여성 작가로 했는데, 뭔가 잘 안 풀리더라고요. 저는 인물이 나와 비슷하면 잘 안 써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자식이 엄마를 완전히 상투적으로만 이해하다 객관적인 인물로 보면서 엄마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인데, 그런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아무래도 딸보다는 아들과 엄마의 관계가 더 적절한 것 같았어요.
'한국 어머니'라고 하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인물을 먼저 떠올리지만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 엄마인 유정 씨는 냉정하고 독립적인 80대 여성이고, 자식들이 어릴 때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의 것을 모두 포기하고 헌신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몫으로 최소한의 것은 남겨놓는 사람이죠. 이런 인물이 좀 신선하기도 했어요.
우리 엄마 세대들도 모두 개인적인 고유성을 가지고 있었을 거에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걸 표현하지 못하고 주어진 엄마 역할을 하며 살았을 뿐이죠. 그래서 시대에 대체로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개인으로서의 열망이 있는 그런 인물이 저는 좀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쓴 그런 할머니 이야기가 사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가끔 듣지만 제가 알고 있는 80대의 어떤 표현 못한 삶을 재현해주고 싶었다고 할까요.
유정은 여행이 죽음의 예행연습인 것 같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개념 중에는 '끝'이라는 것도 있지만, 저는 낯선 곳, 알지 못하는 곳에 간다는 것에 더 끌려요. 알지 못하는 낯선 곳이라는 점에서 여행하고 죽음이 좀 닮은 것 같아요. 또, 그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도요.
그리고 저는 여행을 가면 평소에는 떠오르지 않던 과거의 일들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사람이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재구성해보는 것, 그것이 죽음에 대한 연습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일상 속에 있다보면 삶이 이대로 계속될 것 같지만 여행을 가면 이 삶에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그런 감각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마냥 흘러가던 삶을 단절시키고 다시 복귀하고, 그런 것이 내가 살아온 나의 삶을 새롭게 편성하는 느낌도 주고요.
작가님이 뉴욕을 여행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이라면 어떤 것인가요?
한국은 뭐든지 속도가 굉장히 빠르잖아요. 그런데 뉴욕에서는 빠른 것은 빨리 가지만 느린 것은 또 느리게 가요. 그렇게 속도가 다른 것들이 한자리에 있다는 것? 한국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오래된 것이 버젓이 있기도 하고, 아직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새로운 것도 있고요. 제가 70년대에 성장하고 80년대에 청춘기를 보내서 그런지 뭔가 획일적인 개발논리 이런 것에 반감이 좀 있어요. 그래서 획일적이지 않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좀 인상적이었어요.
혹시 뉴욕 말고 배경으로 해서 쓰고 싶은 도시나 장소가 있나요?
제가 스페인 말라가에서 3개월 동안 레지던스를 지낸 적 있어요. 뉴욕 여행은 가까운 사람이 있어서 만나러 간 것이기도 하고 현지의 생활과 삶의 여러 층위들을 보는 여행이었다면, 말라가에서의 경험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죠. 스페인어로 네/아니오 도 할 줄 모르는 상태로 가서, 아는 사람은커녕 한국인도 한 명 없는 곳에서 혼자 다른 인생을 살아본 거니까요. 언젠가 말라가를 한 번 써보고 싶긴 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어떤 분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따뜻하다, 감상적이다 싶은 부분도 있을 거에요. 그런데 그런 걸 숨기지 않았다고 할까요. 제 소설에 대해서 '냉소와 독설'이라고 많이들 하시는데, 저는 다만 미봉적인 위로나 대책없는 낙관이 싫었던 거였어요. 좀 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보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서 그게 차갑게 느껴졌을 수는 있지만 저는 제 소설들이 차갑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저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독자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어떤 겹이 있을지 몰라도 분명히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가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 너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