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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림 신작소시집 해설 ■
진여眞如의 모습과 보살의 삶
고 명 수 (시인·동원대 교수)
1. 존재의 본질탐구와 시인의 운명
삶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시인들은 이러
한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이 부조리한
삶의 실상은 어떠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드
러내려 애쓰는 예술행위란 무엇이며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는 누
구인가? 어느 것이 ‘참나’이고 진여眞如인가? 전래동화 ‘욕심 많은 개’ 이
야기에서처럼 먹이를 물고 있는 나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먹이를 놓쳐버
리고 허탈해하는 나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둘 다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는 카뮈가『시시포스의 신화』에서 던진 철학적 질문을 생각해 보곤
한다. 허망한 바위 굴리기를 지속하고 있는 시시포스가 우리네 삶의 본질
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한 시
시포스인가, 불행한 시시포스인가? 그리고 이러한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자살한다는 것은 다만 인생에 패배했다는 것, 혹은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명증한 인식과 서정의 균형만이 우
리들을 감동과 명철明哲에 도달케 한다고 카뮈가 말하지 않았던가. 시인
은 이처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한다.
2. 욕망의 아수라장 혹은 사바세계에서의 삶
시인 주경림은 참혹한 세계와 존재의 실상을 직시하고 그러한 세상 속
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삶이고 나다운 삶인가를 궁구한다. 최근의
우리나라 정치사회적 현실의 알레고리로 읽히는 다음의 시에서 화자는
욕망의 아수라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면
을 성찰한다.
흰공작들이 살고 있는 우리에
부리가 노란 어린 참새가 제 몸집만 한
푸른 무청 이파리를 물어왔다
머리에 꽃술이 우뚝한 흰공작이 재빨리 낚아챘다
걸음이 빨라진다
무청을 큰 보물인양 다른 공작들이 우우 쫓아다닌다
이리 뛰고 저리 날아보아도
철조망 벽에 철조망 천장,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자
무청을 씹지도 않고 한 번에 삼켜버린다
꿀떡꿀떡 목젖이 흔들렸다
긴 목을 울퉁불퉁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푸른 무청이 하얀 몸속으로 사라졌다
신선 같은 점잖고 우아한 외모에
저런 탐욕이 숨겨져있다니,
꼭 내 속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 흰공작마을 손님」부분
위의 시에서 ‘흰공작들이 살고 있는 우리’ 안은 탐욕으로 가득한 ‘사바
세계’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철조망 벽에 철조망 천장,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곳에 노랑부리 참새가 ‘푸른 무청’을 물고 틈입한다. 이 참
새는 번뇌의 표상이자 매개체이며, 그가 물고 있는 ‘푸른 무청’은 번뇌를
야기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역시 자본주의로
포위되어 있으며, 그것은 이윤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소비자의 욕구를 부
추기며 인간의 욕망을 끝없이 해방시키려 한다. 이 음험한 자본의 음모에
대해 몽매蒙昧한 중생들을 표상하는 ‘흰공작’들은, 어쩌면 독배일 수도
있는 ‘푸른 무청’을 마치 ‘보물인양’ 여기고 그것을 탈취하기 위해 우왕좌
왕한다.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바세계에서 욕망의 대상은
결국 민첩성과 힘을 지닌 ‘머리에 꽃술이 우뚝한 흰 공작’이 쟁취하고 독
식한다. 그러한 욕계欲界의 현장인 사바세계를 바라보며 화자는 실망하고
탄식한다. “신선 같은 점잖고 우아한 외모에/ 저런 탐욕이 숨겨져 있다
니”하고 탄식하는 화자의 시선은 먼저 바깥의 대상세계를 향하지만 그것
은 이내 자신의 내부자아로 향한다. 즉 처음에는 겉으로 보이는 세계가
참된 실상이 아니라는, 현상과 본질의 불일치에서 오는 실망에서 출발하
지만, 곧 이어 자기 자신 또한 다름이 없다는 내부의 자괴감이 뒤따른다.
“꼭 내 속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는 화자의 진술은 자신 또한 아직은
사바세계의 중생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솔직한 진
술인 것이다.
다음의 시는 먼 옛날 함무라비 법전에서부터 유래하는 보복의 법칙, 즉
응보應報의 소박한 형태로서 반좌법反坐法이라고도 불리는 ‘탈리오 법칙’
이란 시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오랜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사
람살이의 실상을 보여준다.
서천군 유부도 갯벌에서 붉은어깨도요새가
머리 위까지 날개를 펼쳐보지만
훌쩍 날을 수가 없다
조개 사냥을 하다 그만, 왼쪽 발을 물린 것이다
조개는 입을 앙다물어버리고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붉은어깨도요새의 편이 되어주고 싶다
“니들, 다 죽고 싶어.”
반위협조로 타일러 보려다 주춤한다
조개도 잡아먹고 새도 잡아먹고
우리끼리도 서로 죽이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결국, 조개에 물린 발은 잘려나가고 만다는데
호주까지, 붉은어깨도요새의 갈 길이 아득하다.
-「 탈리오법칙」전문
이 시 역시 형식적인 면에서 앞의 시와 구조적 유사성을 보여주면서,
내용면에서도 도요새와 조개의 관계를 통해 사바세계의 실상을 좀 더 리
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생존을 위해 타자의 생명을 탈취하려다가 타자로
부터 보복을 당하는 ‘붉은어깨도요새’의 ‘조개사냥’이라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 시적 화자는 약자의 반항이라는 비일상적 상황을 목
격하고 처음에는 무심코 ‘왼쪽 발을 물린’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붉
은어깨도요새’를 동정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이내 주춤하며 자각과 성찰
의 계기를 갖게 된다. 화자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구조에서 상위를 점하
고 있는 인간존재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자각하고 할 말이 없
어지는 것이다. “조개도 잡아먹고 새도 잡아먹고” 심지어 인간끼리도 서
로 죽이는 낯 뜨거운 현실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 화자는 잠시 ‘붉은어깨
도요새’를 연민하고 동정하지만, 이윽고 ‘호주까지’ 갈 길이 아득한 도요
새에 자신을 감정이입하여 한 때의 욕망으로 자승자박한 채 사바세계에
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아득한’삶의 미래를 추산해본다.
3. 자아에 매몰된 무명의 삶에서 벗어나기
샘에 비친 너무도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해 버린 나르키소스,
빛나는 눈, 아폴론처럼 아름다운 고수머리, 동글동글한 뺨, 상아 같은 흰
목을 한 채 활기가 넘치는 모습의 꽃미남, 그것이 자신인 줄도 모르고 그
곳을 떠나지 못한 채 자기를 사랑하던 그는 애를 태우다 마침내 죽고 만
다. 여기서 우리는 자아에 매몰된 인간의 모습을 본다. 한편 메두사는 치
렁치렁한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데 자세히 보면 그것은 모두 뱀이다.
얼어붙은 듯 쏘아보는 매서운 눈에 날카로운 송곳니로 위협하는 이 여신
과 싸우다 메두사의 등 뒤에 있는 거울을 보면 싸우던 사람이 먼저 미쳐
버린다. 그 이유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메두사보다 훨씬 더 끔
찍하기 때문이란다. 메두사 등 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고 로
버트 존슨은 ‘내면의 어두운 부분’이라 하였고,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구
스타프 융은 ‘그림자shadow’라고 하였지만, 불교적으로는 이를 무명이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의 어두움과 짙은 그림자의 무
명無明을 지닌 채 언젠가 개명開明할 밝은 세상을 그리며 마음 속 ‘백지마
을’의 미로를 살아간다.
백지白紙에 하얗게 돋아난 점자들,
그 마을에는 밤새 눈이 내렸다
모두 하얗게 눈 뒤집어 쓰고
올록볼록 여섯 개의 점으로
사랑한다고 한들, 아프다고 한들
내게는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인데
초등학생 선희가 열 개의 손가락으로
눈밭을 어루만지며 읽어나간다
빠르게 달려가다 멈칫,
손가락 끝이 떨면서
점자가 반질반질해지도록 문지른다
슬픈 대목이라도 읽은 것일까
문득, 백지마을이
내 마음 속에도 펼쳐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어
스스로에게 조차 깜깜한 墨子인 것을,
마음의 눈이 멀어, 아득하게 멀어져 있다
차리리, 선희에게 내 마음 묵자를 읽어달라 해야겠다
백지마을 점자가 반질반질해지도록.
-「 묵자墨字」전문
중생에게는 본래부터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 즉 불성佛性이 있는데,
그것이 무명無明의 구름으로 가려져 있어 깨닫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를
윤회한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인간관이다. 진리의 참된 이치를
깨닫지 못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무명 번뇌에서 헤어나지 못하
는 것이 어른세계의 실상이라면, 물론 개인차가 있기야 하겠지만, 어린이
들은 천진불天眞佛로서 이 무명의 때가 덜 묻은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시에서도 ‘선희’로 대표되는 자유로운 동심의 존재(free child)는
눈 고장에 내린 눈처럼 영혼이 맑고 깨끗하여 마음의 눈이 밝아 ‘올록볼
록 여섯 개의 점으로 된’ 문자인 점자點字를 잘도 읽어낸다. 그러나 화자
는 어느새 무명의 때가 끼어 “스스로에게 조차 깜깜한 묵자墨子인” 무지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즉 화자는 이미 ‘마음의 눈이 멀어, 아득하게 멀어져
있기 때문에 ‘선희’라는 거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마음 속 깊은 자아를
찾고자 한다. 우리네 삶이 아득하고 어두운 것은 대개 이 ‘무명無明’에 기
인한다. 인간을 어두운 사바의 욕계로 추락시키는 것이 바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으로 이루어진 무명이라고 불경佛經
은 설파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유심론적唯心論的세
계관에 기초한 불교사상은 마음을 잘 내면 이곳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
極樂淨土요, 마음을 잘못 내면 이 세상이 그대로 지옥地獄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두 부류의 존재가 공존하는 바, 하나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마음을 잘 내는 깨달은 중생, 즉 보살菩薩이요, 다른
하나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마음을 잘못 내는, 말 그대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고통 속을 윤회輪回하는 어두운 중생
衆生인 것이다.
다음의 시는 애욕과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여 생기는 ‘미움’이라는
감정과 대상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어떻게 ‘뇌’회로에 장애를 일으키는
지 그 인과관계를 현대과학과 문명의 이기를 통해 제시하고 있어서 흥미
로운 작품이다.
감마카메라로 찍은 뇌사진을 보았다
전두엽 아래 검은 웅덩이가 보인다
검은 웅덩이에 생각이 갇혀 있어
'뇌' 회로에 장애가 생긴 것이다
떨쳐버리려 할수록 떠나버린 그가 자꾸 떠올라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다
바로 저 검은 웅덩이에 미움이 갇혀 있기 때문이다
갇혀 있을수록 생각은 더욱 굳어지고,
살아남으려면 웅덩이를 퍼내야 한다
피가 몰린 그 부위만 감쪽같이 수술해 낼 수 있다니
마우스로 블록을 씌워 '잘라내기'를 클릭,
막혔던 혈류가 뻥 뚫린다.
내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다
그와 내가 한꺼번에 다 사라진다
감마카메라로 다시 찍은 뇌사진,
새문서의 여백이 하얗다.
-「 잘라내기와 붙여넣기」전문
시적 화자는 ‘감마카메라’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하나의 상징적
의식(ritual)을 치른다. ‘전두엽 아래’의 ‘검은 웅덩이’에 갇혀 있는 ‘생
각’은 집착으로 인한 ‘미움’으로 인한 것이고 그것이 급기야는 ‘뇌’ 회로
의 장애를 유발한 것이라는 화자의 주장은, 현대질병의 대부분이 마음에
기인한다는 의학계의 연구보고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갇혀 있을수록 생
각은 더욱 굳어”져서 존재와 생명 자체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으니, “살
아남으려면 웅덩이를 퍼내야 한다.”는 진술 또한 어쩌면 생존을 위한 불
가피한 선택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인간이 발전시킨 현대과학
은 “피가 몰린 그 부위만 감쪽같이 수술해 낼 수 있다”고 하니, 즉 “마우
스로 블록을 씌워 ‘잘라내기'를 클릭”하기만 하면, “막혔던 혈류가 뻥 뚫
린다.”는 놀라운 기술로 사람의 삶과 존재 자체를 바꿀 수 있다니 과히 일
체유심조一切惟心造의 세계다. ‘미움’의 검은 웅덩이라는 번뇌를 제거하니
‘하얀 여백’의 새 문서가 마련된다는 것은 심리학에서도 증명한 바와 같
이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진여眞如의 논리를 증명하는 것
이다.
4. 진여의 세계에 노니는 보살의 삶을 위하여
온갖 집착과 갈애로 점철된 무명의 자아를 벗어나려면 분별分別과 차별
差別의 마음으로부터 벗어난 평등일미平等一味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것
을 알지 못할 때는 망상妄想의 마음, 곧 업業을 짓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망상심妄想心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며, 이 근본무명으로부터 파생된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한다. 즉 자아에 매몰된 무명의 삶에서 벗어나
려면 이 분별심이라는 근본무명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으로 인해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고 악업을 짓게 되는 지말무명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럴
때 얼음이 녹듯이 ‘막혔던 혈류’가 뻥 뚫리고 청정한 불성이 드러나는 것
이다.
이 무명의 윤회에서 벗어나 진여의 세계를 노닐며 중생을 제도하는 존
재를 보살菩薩이라 할 때, 보살은 다음의 시에서처럼 존재의 유한성을 벗
어난 평등일미의 세계에서 찬란한 존재의 꽃을 피워내게 되는 것이다.
법구경 꽃마당을 거닐어 보았다
엄동설한인데도 얼음새꽃, 흰동백의
청초한 얼굴을 보았다
백량금 열매, 단풍잎은 꽃보다 더 붉었다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내 숨소리에 섬기린초 어린 싹이 파르르 떨었다
「꽃의 장」에는 색과 향기가 넘쳐나고 있어
나는 법구경의 빠띠뿌지까 여인처럼 행복해졌다
천상세계에서 꽃다발 만드는 사람의 아내, 빠띠뿌지까
잠시 인간 세상을 살다 천상으로 돌아갔다는데
천상세계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니,
저 꽃들의 피어남은 한 순간인 것을
내 몸 또한 “물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은 것”
덧없을수록 아름다워라
아름다울수록 덧없어라
-「 법구경에서 꽃을 따다」부분
이 시의 시적 화자는『법구경』의 세계를 접하면서 진리의 갈증을 채우
고 더할 수 없는 희열감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두루 아다시피『법구경』
은 남방상좌부의 경장經藏에 포함되어 있는 원시경전 가운데 하나로서,
많은 비유와 암시를 통하여 불법을 널리 펴는 데 기여한 일종의 비유문학
적인 경전이다. 후대의 대승경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명쾌
한 구성과 해학이 섞인 법문法門으로 진리의 세계, 부처님의 경지를 설파
하고 있으며, 내용도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하
다. 비록 말은 짧고 표현도 소박하지만 구구절절이 경구警句로 된 감로甘
露의 법서法書로 알려져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이 법구경의 찬란한 진리의 꽃밭 속에서 ‘색과 향기가 넘쳐나고 있’는
다양한 진리를 만나면서 시적 화자는 “저 꽃들의 피어남은 한 순간인 것”
과“ 내 몸 또한 “물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이렇게 제
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깊이 몸으로 체득하면서 시적 화자는 “덧없을수
록 아름다워라/ 아름다울수록 덧없어라”라는 찬탄을 토해내고 있다.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과, 고정불변의 실
체란 없다는 무아無我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집착과 갈애渴愛를 일으켜
윤회輪廻를 이어가는 사바세계 중생들의 가장 근본적인 번뇌煩惱를 무명無
明이라고 한다면, 이 고통스러운 무명의 상태를 벗어난 진리의 세계를 보
여주고 있는 것이 법구경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니 시적 화자가 진리의
감로甘露를 담은 법서法書인 법구경을 만나고 그 속에 몰입하여 행복해하
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제 모든 존재가 무상함을 직시하고 “덧없을수록 아름다운” 존재의
진리를 발견한 시적 화자가 구체적인 일상적 삶 속에서 그 진리를 어떻게
실천해 가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깨달은 중생으로서의 이른바 보살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시가 다음의 작품이다.
볕 좋은 가을 날 들깨를 널다보니
멍석 위에 들깨알들이 조물조물 움직인다
무당벌레들이 들깨 속을 헤집고 다닌다
제 몸집만한 깨알을 부등켜안고 뒤뚱거리는 놈,
깨알을 등에 지고 비칠거리는 놈
무진장 식량의 보고 앞에 즐거워하다
가도가도 들깨알 밭,
무당벌레들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은 모양이다
나는 그들에게 길을 내주고 싶어
양 손으로 들깨를 헤쳐 빈 공간은 마련해준다
빨간색, 주황색, 검은색, 들깨색으로
등껍질 색상이 화려하고
점박이 무늬가 크고 작은
칠성무당벌레, 남생이무당벌레, 점박이무당벌레----
새까맣게 모여든다
앙증맞게 예뻐 한 번 만져보려고 하자
내 앞에서 한 바퀴 돌며 자태를 뽐내더니
감춰두었던 비상날개를 활짝 편다
그물망 날개 속옷을 슬쩍 보여주고
하나씩 둘씩, 무리지어 무대에서 사라진다
가을볕에 날개빛이 아른거려
마음이 시려 눈을 반쯤 감고
“부디 잘 가거라”
손바닥으로 깨알들을 쓸어 다시 편편하게 만든다
-「 무당벌레 패션쇼」
1연에서 화자는 “볕 좋은 가을날 들깨를 널다”가 무진장한 욕심으로 길
을 잃고 헤매는 무당벌레들을 목격한다. 여기에서 무당벌레들이란 바로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무분별한 욕망의 방종에 허덕이는 현대의 중생들을
표상한다. ‘조물조물’ 움직이는 미물들을 통해서 시적 계기를 획득한 시
인은 그것을 사바세계의 모습으로 추상한다. 2연에서 비로소 보살의 모
습이 드러난다.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들에게 길을 내주고 보살은 자비의
마음, 즉 보시布施의 마음을 낸다. 보시에는 물질적인 자비를 베푸는 재시
財施, 진리의 갈증을 풀어주는 법시法施, 평안한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
는 무외시無畏施,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는 무주상보시
無住相布施등이 있다. 마지막의 보시가 가장 차원이 높은 보시라고 일컫는
다. 이 모두가 생명사랑이라는 공분모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하겠다. 3
연에서는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따스한 자비를 베풀었을 때 그들은 생명
의 아름다운 화엄세계를 현시하는 것임을, 그러한 아름다운 진여의 세계
를 보여준다. 4연에서 화자는 아름답게 비상하는 벌레들의 날개빛을 바
라보며 눈물겨운 삶의 모습에 감동하여 눈을 반쯤 감고 작별을 고한다.
이처럼 이 시는 생명에 대한 사랑을 지닌 보살의 마음을 노래함으로써 존
재의 확인과 자비의 윤리를 피력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주경림의 시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사바
세계의 실상을 제시하고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함께 무명에서 벗어나려는
가열 찬 노력을 통해서 마침내 생명사랑의 윤리에 도달하는 시적 화자를
통해서 모든 존재에 불성佛性이 있다는 사상과 더불어, 인간실존의 절대
긍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물론 무명과 불성은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아서, 인생의 고통과 일체번뇌의 근본인 무명의 얼음이 따뜻한 생명사
랑과 자비의 온기에 의해 녹을 때, 본래 있는 그대로의 청정한 불성이 드
러난다는 불교생명사상도 함께 드러내 보여주고 있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독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아울러 다양한 여행체험
과 박물학적인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한 주경림의 시가, 다양한 전고典
故들과 추상적 관념들을 더욱 정교한 미학적인 체계에 의해서 구체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켜 나갈 때, 아름다움과 깊이를 겸비한 완성된 예술품의
위의威儀를 지니게 될 것이며, 자본주의에 상처 입은 중생들의 마음을 어
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명수
* 1992년《현대시》로 등단.
* 시집으로『마스터키』『금시조를 찾아서』
『내 생의 이파리는 브리스틀 콘 소나무가지 끝에 걸려 있다』와
저서로『한국 모더니즘 시인론』『시란 무엇인가』
『한국현대시론』『한국 모더니즘 시론』『문학의 이해』
『사회복지실천기술론』『청소년복지 론』외 다수 있음.
* 현재 비평가, 동원대학 복지계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