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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류연구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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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류연구사
국내에서 본격적인 탐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조류를 관찰하는 탐조는 새를 연구하기 위한 탐조와 취미로 즐기기 위한 탐조로 구분될 수 있고, 이 두 영역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1970년대까지의 탐조가 새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면 1980년대부터 대학야조회가 생기면서 취미로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볼 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새를 취미로 관찰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던 20년 전만 해도 철새도래지에서 조류를 관찰하거나 촬영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최근 탐조문화의 활발한 보급과 탐조인구의 증가와 함께 한국에서 조류학이라는 학문과 조류연구는 언제 시작되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사실 과거 한국 조류연구의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세기부터 시작된 한국 조류연구의 시작과 발전에 대해, 한국 조류학의 발전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기신 원병오 교수님이 정리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전체기간을 총 4개의 기간으로 나누어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한국의 조류학 연구사에 대해 궁금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제 1기(1835~1910) 대부분 서구인들에 의해 연구가 주도되던 시기이다. Dr. Philipp F. von Siebold는 1823년부터 1830년까지 일본 나가사키에 거주하며 수집한 표본들을 네덜란드의 Leyden Museum으로 보냈으며, 이 표본들은 Dr. C. J. Temminck에 의해 연구되어 1835년에 발표되는데, 그 중 신종으로 발표된 뿔쇠오리의 채집지로 한국이 등장한다. 한국의 조류에만 국한한 첫 번째 보고는 Canon H. B. Tristram이 1885년 Ibis에 발표한 ‘On a small collection of birds from Korea’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광범위한 채집 작업을 한 사람은 미국의 조류학자인 Pierre Louis Jouy로서 1883년 5월부터 1886년 7월까지 500점 이상의 조류표본을 수집하여 U. S. National Museum으로 보냈으며, 이 표본들은 A. H. Clark에 의해 발표된다. 폴란드의 조류학자인 M. J. Kalinowski는 1886년부터 1888년까지 서울에 머물며 조류표본을 수집하여 유럽으로 보냈고, 이 표본들은 M. L. Taczanowski에 의해 발표되었다. 또한 영국대사관 영사로 근무했던 C. W. Campbell은 1888년부터 1889년까지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총 112종을 채집하였다. 이외에도 Malcolm P. Anderson은 1905년과 1906년에 2회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여 제주도와 금강산을 포함한 국내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약 1,000여점의 조류표본을 채집하여 British Museum으로 보냈다.
2) 제 2기(1911~1955) 주로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던 시기이다. 일본인 연구자들은 한국을 일본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채집여행을 하거나 일부는 한국에서 거주하며 조사를 수행하였다. 1918년 시모코리야먀 세이이치는 직접 채집한 표본과 박물관소장 표본들을 바탕으로 ‘李王職博物館所藏鳥類目錄’을 발표하였다. 구로다 나가미치는 1917년 한국을 여행하며 약 한 달간 채집한 결과를 ‘鮮滿鳥類一般’이란 제목으로 발표하였으며, 그의 채집품 중에는 전 세계에 오직 3점의 표본만 남아있는 원앙사촌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야마시나 요시마로는 1929년 4월부터 1930년 2월까지 전문채집가인 오리이 효지로를 한국에 보내 전국적으로 279종(또는 아종) 1,940점의 표본을 채집하였다. 채집결과는 정리하여 1932년 ‘On the specimens of Korean birds collected by Mr. Hyojiro Orii’란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그동안 외국인에 의해 진행되던 한국의 조류연구에 최초로 한국인 연구자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국인 최초의 조류학자인 원홍구 박사는 1913년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며 1920년부터 조류채집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제 3기 중반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 시기의 괄목할만한 작업 중 하나는 미국인 조류학자 Oliver L. Austin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1945년 1월부터 1946년 5월까지 미군으로 수원에 근무하며, 한국의 조류에 관해 발표된 문헌과 조류표본을 검토하였으며, 조류채집도 수행하여 총 90종 492점을 채집하였다. 한국을 떠난 이후 일본과 미국의 박물관에서 한국관련 표본 및 인접국가의 표본들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를 통해 1948년 “The birds of Korea”를 발표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까지 한국에서 기록된 거의 모든 기록들이 망라하였으며, 그동안 보고되었던 연구결과들에 대해 고찰하였다. 아마추어 조류학자였던 Chester M. Fennell은 1947년부터 1966년까지 미군 군속으로 한국에 있으면서 약 4,000여점의 표본을 채집하였으며, 표본들은 Museum of Vertebrate Zoology, University of Califonia, Berkeley로 보내졌다. 또한 그는 1961년 7월부터 1962년 11월까지 한국에서 미군으로 근무한 Ben King과 함께 한국의 조류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밝혔으며, 이들의 활동은 제 3기 초반까지 계속된다.
3) 제 3기(1956~1989) 한국인 연구자에 의해 한국의 조류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된 시기이다. 특히 1970년대까지 원병오 박사의 주도하에 산림청 임업시험장 보호부 조수연구실(당시 산림청에서 담당하였던 조류관련 연구기능은 1999년 정부조직개편에 의해 환경부로 옮겨졌다)과 경희대학교 조류연구소가 연구의 주축을 이루었다. 표본의 수집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가 시도되었으며, 많은 미기록종과 새로운 번식기록을 추가하였다. 또한 제 2기까지 조류의 분포와 분류적인 분야에 집중되던 연구가 주요 철새도래지의 모니터링이나 각 종별, 지역별 생태연구와 함께 멸종위기종과 서식지에 대한 보호관리방안과 같은 분야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의 괄목할만한 연구는 철새이동경로 연구를 위한 가락지 표지연구인데, 1963년부터 시작하여 1969년까지 18만 개체가 넘는 엄청난 수의 새에게 가락지를 부착하여 많은 종의 이동경로를 규명하였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진행된 연구를 통해 원병오 박사는 1969년 “한국조류분포목록”, 1971년 M. E. J. Gore와 함께 “한국의 조류”, 1981년 문교부에서 발행한 “동식물도감(조류생태편)”을 집필하며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였다. 1980년대부터 1970~80년대에 배출된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면서 후학을 육성하였다. 이러한 연구자의 증가는 제 4기 연구 저변 확대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과거처럼 많지는 않지만 이 시기에도 외국의 연구자에 의한 한국의 조류연구에 대한 기여는 있었다. 1967년 9월부터 영국대사관의 영사로 한국을 찾은 M. E. J. Gore는 1971년 원병오 박사와 함께 “한국의 조류”를 집필하였다. 또한 1988년 봄에 2개월간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대학(East Anglia University)의 Adrian Long, Colin Poole 및 Mark Eldridge는 경희대학교 조류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의 서해안에서 도요?물떼새류를 조사하였으며, 이 조사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서해안 갯벌에 도래하는 섭금류에 대한 많은 사실들이 밝혀졌다. 이 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들은 이후 90년대에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된 갯벌지역의 조류조사에 기폭제가 된다.
4) 제 4기(1990~현재) 조류연구의 질적, 양적 팽창을 가져오는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시기이다. 시기를 나누는 경계가 되는 1990년에 한국조류학회가 구성되면서 한국의 조류연구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제 3기가 원병오 박사와 그의 연구팀에 의해 주도되던 시기라면, 제 4기는 여러 대학에서 연구자들이 배출되며 연구의 양적 팽창과 함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또한 이렇게 배출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조사지역과 시기가 크게 확대되고 조류의 생태와 현황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지게 된다. 특히 환경부에 의해 시작된, 습지에 서식하는 조류를 중심으로 겨울에 실시하는 전국동시조사는 조류연구자와 취미 탐조가의 양적 증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각 시기별로 한국에서 기록된 조류 종수의 증가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북한을 제외한 한국에서 기록된 조류는 1948년 337종이던 것이 1993년 394종이 되며 1년 평균 1.3종이 증가하였으나, 1993년 394종이던 종수는 2000년 438종이 되며 1년 평균 6.3종이 증가하여 급격한 증가세를 보인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증가세는 계속되는데, 이런 증가세는 조류관련 문헌과 탐조관련 정보의 증가, 조사장비와 동정능력의 향상 등 여러 가지 요인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요인은 인적 자원의 증가를 통한 조사지역과 시기의 확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특정 지역의 조류에 대한 조사가 전문 연구자에 의존하여 수행되던 이전 시기와 달리 일반인들로 저변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특히 신문에서 조류관련 기사를 다루거나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하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나며 조류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탐조나 조류 촬영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관심과 함께 다양한 조류도감과 관련서적이 출판되고, 조류와 관련된 비정부기구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또한 연구자나 조류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분포하게 되면서 서로 간에 정보교류의 필요성도 증대되었다. 이를 위해 조류학회의 학술발표회가 매년 2회씩 개최되는 것은 물론 학회지가 매년 발행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서로 간에 정보를 신속하게 교류하는 것도 이 시기의 특징 중 하나이다. 특히 인터넷이란 공간을 바탕으로 주고받는 탐조 문화의 보급과 정보의 교류는 최근 5~6년 동안 양과 질에서 크게 발전하고 있으며, 초보자들이 탐조를 시작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글을 마치며 최근 탐조인구는 놀랄만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필자가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던 1980년대 후반에 새를 관찰하다보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새를 관찰하면 돈이 되나요?” 사실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되지 않는’ 탐조는 경제력과 생활수준의 향상 없이 저변을 넓히기 어려운 취미생활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진국에 비해 다소 늦은 1980년대 이후 경제력의 향상과 맞물려 탐조의 저변이 확대된 것은 별로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나는 새에 대한 관심과 저변의 확대는, 지난 100년 넘는 오랜 기간동안 이 땅의 새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연구하고 연구결과를 보급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탐조를 즐기는 사람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새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장점이 많지만 그와 반대로 문제점도 발생한다. 많은 탐조인구가 있는 외국의 경우 탐조를 즐기는 사람들이 새들의 편안한 휴식을 방해하고 서식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탐조인구의 증가와 함께 벌써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러나 조류를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의 생존과 서식지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다. 올바른 탐조문화의 정립을 통해 탐조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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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맞습니다. 이 카페에서 그 메신저 역할을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